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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02일(화) 아침방송법문 : “나누는 기쁨이 가장 큰 기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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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2 08:03:40, 조회 : 541,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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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우리가 함께 나눌 주제는 “나누는 기쁨이 가장 큰 기쁨이다.”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불자의 첫걸음을 언제나 보시에서 시작하도록 하셨습니다.
법구경에는 “지혜로운 이는 재물을 모아 남을 돕고, 보시하기를 즐기며 게으르지 않는다. 그러한 이는 이 세상과 내세에서 복락을 누리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구절은 단순히 남에게 베풀라는 교훈이 아닙니다.
나눔을 실천하는 순간 그 나눔이 고스란히 내 마음의 기쁨으로 되돌아오고, 그 기쁨은 세상 속에서 새로운 인연과 복락을 열어간다는 뜻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는 일상 속에서 ‘나누면 줄어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전혀 다릅니다. 촛불 하나가 수십 개의 촛불을 켜도 처음의 불빛은 줄어들지 않듯, 마음에서 우러난 사랑과 정성은 나눌수록 더욱 밝아지고 커집니다. 움켜쥐면 결국 사라져버리지만, 나누면 끝없이 자라나는 것이 바로 자비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불교가 전하는 공덕의 법칙입니다.
증일아함경에는 “비록 한 줌의 곡식이라도 청정한 마음으로 보시하면 무량한 복덕을 얻는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나눔은 양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어떠한가가 중요합니다.
청정한 마음, 진실한 마음으로 베푸는 작은 보시가 큰 보시보다도 더 큰 공덕을 쌓습니다. 길가에 떨어진 새에게 던져준 한 알의 곡식이 그 생명을 살릴 수 있고, 병든 이웃을 향한 위로의 말 한마디가 삶을 버티게 할 힘이 되기도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시하는 자의 얼굴은 항상 빛난다.” 이 말씀은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베풀고 나누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밝아지고, 그 기쁨이 얼굴에 드러납니다.
밝은 얼굴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도 빛을 비춥니다.
잡보장경에는 “밝은 얼굴은 향을 태우는 것보다 더 큰 공덕이 있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향은 금세 사라지지만, 밝은 얼굴에서 나오는 미소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 따뜻한 힘을 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시와 나눔을 단순히 물질의 차원에서만 보지 말고, 얼굴빛 하나, 말 한마디의 친절까지도 보시로 바라봐야 합니다.
법우 여러분, 보살행은 나눔에서 시작됩니다.
보살영업경에는 “항상 남을 돕고, 좋은 말을 하며, 남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라. 이는 큰 복덕을 짓는 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남의 괴로움을 덜어주고, 남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는 것이 바로 보살의 길입니다.
누군가의 성취를 시기하지 않고 함께 기뻐해 주는 것, 누군가가 고통 속에 있을 때 등을 돌리지 않고 함께 아파해 주는 것, 이것이 보살의 마음입니다.
기쁨을 나누면 기쁨은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슬픔은 반으로 줄어듭니다.
불교에서는 보시를 세 가지로 나눕니다.
첫째는 재보시입니다. 이는 물질을 나누는 보시입니다. 굶주린 이에게 음식을 주고, 추위에 떠는 이에게 옷을 입히고, 경제적으로 힘든 이웃을 도와주는 행위입니다.
둘째는 법보시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바른 지혜를 전하는 나눔입니다.
법문을 전하고, 불법을 알려주어 무지를 덜어주는 것이 법보시입니다.
셋째는 무외보시입니다. 두려움을 덜어주고 용기를 주는 나눔입니다.
병든 이를 위로하고, 외로운 이를 돌보고, 위태로운 상황에서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것이 무외보시입니다. 이 세 가지 보시는 불자라면 누구나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으며, 그 공덕은 끝없이 쌓입니다.
유마경에는 “보살이 병든 이를 간호하는 것은 곧 부처님을 공양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곧 자비로운 손길 하나가 부처님께 올리는 가장 향기로운 공양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아픔을 덜어주고 눈물을 닦아주는 행위는 곧 부처님께 꽃과 향을 올리는 것보다 더 귀한 공양이 됩니다.
법우 여러분, 나눔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자식에게 사랑을 나누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심을 나눕니다.
부부는 서로의 수고를 알아주고 격려하며 마음을 나눕니다.
도반과는 신심을 나누고, 사회에서는 어려운 이웃과 재물을 나눕니다.
자연과도 나눌 수 있습니다. 물을 아끼고 나무를 심으며, 환경을 보호하는 작은 실천들이 곧 나눔이 됩니다. 이 모든 행위가 불보살님께 올리는 공양입니다.
탐욕은 마음을 좁히고 괴롭게 합니다. 그러나 나눔은 마음을 넓히고 자유롭게 합니다. 부처님은 “탐욕의 불길은 스스로를 태우지만, 보시의 향기는 세상을 적신다.”고 하셨습니다. 탐욕은 스스로를 불태우고 주변까지 해칩니다.
그러나 보시는 향기처럼 퍼져나가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고 세상을 맑게 합니다.
나눔은 내 안의 집착을 내려놓게 하고, 탐욕에서 벗어나 자유와 해방을 얻게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우나 마음은 더욱 메말라 가고 있습니다.
끝없는 경쟁과 비교 속에서 사람들은 행복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나눔의 삶을 살아가는 순간 마음은 따뜻해지고 행복이 솟아납니다.
나눔 없는 행복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나눔 속의 행복은 오래가고 더 넓어져서 세상을 환하게 밝힙니다.
실제로 많은 사례가 있습니다.
길가에서 굶주린 이웃에게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내어준 사람은 잠시의 손해를 본 것이 아니라, 상대의 생명을 살리고 자신의 마음에 깊은 기쁨을 심었습니다.
병실을 지키며 아픈 이를 돌본 이는 피곤했지만, 그 자비로운 행위가 곧 부처님께 올린 최고의 공양이 되었습니다.
이웃의 무거운 짐을 들어주고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 그 모든 것이 나눔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나눔은 무궁무진합니다.
길가의 쓰레기를 줍는 작은 실천, 힘든 도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따뜻한 배려, 병든 이웃을 찾아가 안부를 묻는 정성, 이 모두가 나눔입니다.
가족과 함께 따뜻한 밥상을 나누는 것, 아이에게 웃음을 전하는 것, 이웃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 이 또한 모두 보시입니다.
오늘 하루, 웃음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며 기쁨을 나누는 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작은 나눔이 쌓여 큰 행복이 되고, 그 행복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됩니다.
보살영업경의 말씀처럼 “항상 남을 돕고, 좋은 말을 하며, 남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는 것”을 실천하는 하루가 되기를 서원합시다.
여러분, 오늘은 우리 삶에서 가장 값지고, 또 가장 큰 기쁨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그 기쁨은 어디에 덧씌워진 것이 아닌, 우리 내면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참다운 기쁨입니다.
그것은 바로 나눔이라는 행위를 통해 찾을 수 있는 기쁨이지요.
흔히 우리는 기쁨을 얻는 것에서 찾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성공을 했을 때, 편안함을 누릴 때 우리는 기쁘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것도 소중한 기쁨입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그런 기쁨보다 더 근본적이고 오래 지속되는, 내어줌을 통한 기쁨이 있음을 일깨워 주고 계십니다.
부처님께서는 보시를 육바라밀의 첫 번째로 두셨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물질적인 것을 주고받는 차원을 넘어, 우리 마음속에 있는 아상이라는 벽을 허물고,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연기의 진리를 체험하게 해주는 가장 직접적인 실천행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나눌 때, 비로소 우리는 그 대상과 하나가 됩니다. 그 나눔이 한 끼의 음식이든, 한마디의 격려이든, 혹은 그저 함께해주는 시간 그 자체이든 말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맛있는 음식을 혼자 먹을 때의 기쁨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나누어 먹을 때의 기쁨, 과연 무엇이 더 크고 또 더 깊은 기쁨 이었는지를요.
혼자 먹을 때의 기쁨은 입맛에만 국한된, 순간적인 기쁨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 나눌 때의 기쁨은 상대방의 미소와 행복한 반응까지도 함께 느끼는,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포괄적인 기쁨입니다.
그 기쁨은 나의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 됩니다.
나눔은 기쁨을 두 배로 만들 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속의 탐냄과 집착, 인색함이라는 번뇌를 녹여내는 불씨와 같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내어줄 때, 내 것이라는 집착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집니다.
그 자유로움이 바로 평안이고, 그 평안이 진정한 기쁨의 토대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남을 함께 기쁘게 하는 지혜를 얻는 행위인 것이지요.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눔이란 반드시 거대하고 화려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아주 사소하고 소박한 것들로부터 시작됩니다.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작은 배려도, 힘들어 하는 이에게 건네는 한 줄기의 따뜻한 말 한 마디도, 누군가의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어주는 것도 모두 소중한 나눔입니다. 그것은 경제적 가치로 환산될 수 없는 마음의 가치입니다.
법화경에서는 희시(喜施)의 공덕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마음으로 기쁨을 내어 남의 선한 일과 공덕을 함께 기뻐해주는 것, 이것 또한 가장 쉽고 위대한 나눔 중 하나입니다. 남의 행복과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해주는 그 마음은, 내 마음속에 있는 시기와 질투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고, 그 자리를 환한 빛으로 가득 채워줍니다. 이렇게 나눔은 우리의 내면을 더욱 밝고 풍요롭게 가꾸어 나갑니다.
여러분, 진정한 나눔은 계산이나 기대에서 비롯되지 않습니다.
내가 이것을 주었으니, 그 사람은 나에게 저것을 해주어야지라는 마음은 아직도 나와 내 것에 집착하는 마음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속의 나눔은 무주상보시입니다.
주는 이도, 받는 이도, 주는 물건도 실체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상태에서, 그저 지금 이 순간, 베풀어야 하는 인연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나눔이야말로 가장 값지고, 그 기쁨 또한 가장 큽니다.
우리는 때로는 자신이 너무 가진 것이 없어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나눌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따뜻한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있다면, 비록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더라도 우리는 언제나 나눌 수 있습니다. 한껏 웃어주는 미소도, 진심으로 들어주는 경청도, 함께 흘려주는 눈물도, 모두가 가장 아름다운 나눔이 될 수 있습니다.
나눔은 강물과도 같습니다. 흐르고, 흘러서 만나는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하지만 그 강물이 고이면 썩어버리듯, 나눌 마음을 가지고도 나누지 않으면, 그 마음은 오히려 인색함과 후회라는 것으로 변해 우리를 옥죌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가진 것, 그 무엇이든 아낌없이 흘려보내는 지혜를 길러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자신을 위한 가장 큰 복을 짓는 길입니다.
부처님의 삶은 바로 나눔의 연속이었습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의 지혜라는 가장 값진 보배를 우리 모든 중생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수많은 이들의 마음에 빛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작은 빛이라도 그 빛을 나누어 세상을 조금 더 밝게 하는 존재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니 법우 여러분, 오늘 하루만이라도 “어떻게 더 나눌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자신에게 던져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작은 실천을 통해 느껴지는 마음의 풍요로움과 기쁨이 어떤 것인지를 직접 체험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나눔은 결국,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최고의 지혜로운 행위임을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그 기쁨이란, 얻는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이 더 깊고, 또 오래도록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 평안의 씨앗이 되어 줄 것입니다.
오늘도 나눔을 통하여 행복한 하루되시기를 기원드리며 아침방송의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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