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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16일(화) 아침방송법문 : “비우니 채워지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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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6 08:08:54, 조회 : 550,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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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우 여러분, 불기 2569년 9월 16일 화요일 아침방송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주제는 “비우니 채워지더라.”입니다.
이 주제는 단순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 속에는 불교의 핵심 가르침인 공(空)의 진리와, 일상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쌓으려 합니다.
재산을 쌓고, 명예를 얻고,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쌓으려 애씁니다.
그러나 아무리 채우려 해도 마음은 늘 허기지고, 만족은 잠깐 머물다 사라집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비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잡아함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욕망은 불길과 같아서, 채우려 할수록 더욱 타오르나니, 오직 내려놓음으로써 꺼지느니라.”욕망을 계속 채우려 할수록 오히려 갈증은 더 커지고, 마음의 불길은 더욱 거세집니다.
그러나 집착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울 때, 그제야 고요와 평화가 찾아옵니다.
가을의 나무를 떠올려 보십시오.
푸르던 잎사귀가 하나둘 떨어져 나가고, 나무는 점점 앙상해집니다.
겉으로는 비어가는 듯 보이지만, 그 속에서는 새로운 생명을 준비하는 충만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겨울을 지나 다시 봄이 오면, 비운 자리에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어나며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비움은 곧 채움의 시작인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가 마음속에 쌓아 놓은 욕심과 분노, 미움과 집착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들을 움켜쥔 채로는 결코 행복을 채울 수 없습니다.
분노를 가득 품고 있으면서 평안을 기대할 수 없고, 탐욕을 놓지 않으면서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내려놓아야 비로소 채워지고, 비워야 비로소 충만해집니다.
금강경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어디에도 머무르지 말고, 그 마음을 일으키라.
이 말씀은 곧 집착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야, 그 자리에 참된 보리심이 자라난다는 뜻입니다.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마음을 낼 때, 그 마음은 세상과 중생을 향한 자비로 가득 찰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법우 여러분, 비움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은 늘 무언가를 붙잡고자 하고, 버리지 못하는 습관에 젖어 있습니다.
“혹시 이걸 놓으면 내가 손해 보지 않을까?
혹시 이걸 버리면 내 삶이 공허해지지 않을까?”
이런 두려움 때문에 내려놓지 못하고, 그래서 더 무거워집니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입니다.
비우면 가벼워지고, 버리면 자유로워집니다.
오히려 내려놓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얻게 되고, 채워지게 됩니다.
마치 꽉 찬 그릇에는 새로운 물을 담을 수 없듯, 비워야만 맑은 물을 다시 채울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자주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탐욕은 버려야 한다. 버린 만큼 얻는다. 집착은 내려놓아야 한다. 놓은 만큼 충만하다.” 이 가르침은 단지 수행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꾸리고 일터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가 일상에서 조금만 마음을 비워 보십시오.
누군가의 잘못을 끝까지 붙잡고 원망하기보다, 한번은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으로 비워 보십시오.
그러면 그 빈자리에는 따뜻한 관계가 다시 채워집니다.
불필요한 욕심을 비워 보십시오.
그러면 그 자리에는 오히려 만족과 평화가 채워집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고자 하는 “비우니 채워지더라.”는 삶의 지혜입니다.
법우 여러분, 비움은 결핍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집착을 내려놓으면, 마음은 더 넓고 깊어져서 새로운 인연을 맞이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립니다.
반대로 내려놓지 못하면, 그 집착이 우리 삶을 가두는 벽이 되어 버립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 그것을 끝까지 붙잡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 사람은 이미 잊고 지나갔을지 몰라도, 내 마음은 여전히 갇혀서 괴로움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원망과 분노를 비우면, 마음은 자유로워지고 새로운 기쁨을 맞이할 준비가 됩니다.
비움은 단순히 버림이 아니라, 더 큰 자유와 충만으로 가는 문입니다.
유마경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마음이 곧 부처요, 부처가 곧 마음이다.”
마음속에 집착과 번뇌로 가득 차 있으면, 부처님을 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비우면, 그 자리가 곧 부처님 자리요, 자비와 지혜가 충만한 법계가 됩니다.
법우 여러분, 비움의 힘은 일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집안을 정리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불필요한 물건이 가득 쌓여 있으면 새로운 것을 들일 자리가 없고, 마음도 답답해집니다.
그러나 과감히 정리하고 비워내면, 공간이 넓어지고 새 바람이 들어옵니다.
마음의 세계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 창고는 늘 정리와 비움이 필요합니다.
욕심을 비우고, 분노를 비우고, 미움과 질투를 비우면, 그 빈자리에 자비와 사랑이 들어옵니다.
부처님께서는 “무상(無常)을 알면 집착을 놓게 되고, 집착을 놓으면 자유가 온다.” 하셨습니다.
무상한 세상에서 모든 것은 머물지 않고 흘러가기 마련이니, 붙잡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바로 알면 내려놓는 지혜가 생깁니다.
이제 한 가지 물음이 생깁니다.
“비운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
비운다는 것은 곧 ‘마음의 집착을 놓는 것’입니다.
돈을 버리고, 물건을 다 버려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소유하되 집착하지 않고, 가지되 움켜쥐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비움의 실천입니다.
부처님 당시의 이야기를 떠올려 봅니다.
한 재가자가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저는 가족을 부양하고 생계를 위해 재산을 모아야 하는데, 그것도 다 비워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그대가 모으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탐욕에 사로잡혀 집착한다면 괴로움이 따른다.
소유하되 집착하지 말라. 그러면 그대의 삶은 자유롭고 충만하리라.”
법우 여러분, 이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해당됩니다.
가정을 돌보고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물질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나눌 줄 알 때 참된 충만을 경험하게 됩니다.
비움은 단절이 아니라 균형이며, 단식이 아니라 조화입니다.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채우라고 말합니다.
더 벌어라, 더 가져라, 더 올라서라, 더 인정받아라.
그러나 부처님은 그 반대 길을 제시하십니다.
덜어내라, 내려놓아라, 집착하지 말라.
바로 그곳에서 진정한 채움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한 수행승이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더 가지려 애쓰는데, 왜 우리는 버려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물을 끌어 모으려 하지만, 나는 물길을 트고자 한다.
물이 고이면 썩지만, 흐르면 온 생명을 살리기 때문이다.”
법우 여러분, 이 말씀처럼 움켜쥔 채로는 썩고, 나누고 비워야 흐름이 생겨 새 생명이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작은 비움을 실천해 봅시다.
말을 아껴 보십시오. 불필요한 말, 남을 해치는 말, 화내는 말을 비우면, 그 자리에는 따뜻한 말이 채워집니다.
시간을 비워 보십시오. 욕심으로 가득 찬 일정을 조금 내려놓으면, 그 자리에는 여유와 평화가 채워집니다.
마음을 비워 보십시오. 미움과 원망을 놓아버리면, 그 빈자리에 용서와 자비가 채워집니다.
비움은 결핍이 아니라 풍요입니다.
버림은 손해가 아니라 충만입니다.
내려놓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오늘도 이 진리를 가슴 깊이 새기며, 비움의 실천을 통해 충만한 삶을 열어가기를 서원하면서 오늘 아침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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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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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성불하십시오.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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