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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22일(월) 아침방송법문 : “한 달의 첫걸음, 마음을 바로 세우는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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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2 08:18:23, 조회 : 534,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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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법우 여러분, 오늘 이 의미 깊은 초하루 아침, ‘한 달의 첫걸음, 마음을 바로 세우는 날’이라는 주제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함께 나누어 보려 합니다.
우리는 흔히 ‘새 출발’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새해, 새 학기, 새 달, 새 주, 그리고 오늘 이 새아침.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움을 갈구하며, 그 시작점에서 희망과 각오를 다집니다.
그러나 그 각오는 생각보다 쉽게 일상의 물결에 씻겨 나가고, 우리는 어김없이 옛날의 습관과 번뇌의 굴레 속으로 다시 빠져들곤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우리가 ‘마음의 출발’을 제대로 세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출발점이 바르지 않으면, 그 길은 결국 옳은 곳으로 향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유마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청정하면 국토도 청정하다.” 우리가 바라는 새로운 출발, 새로운 결실은 결국 외부의 조건이 아닌, 우리 내면의 마음가짐에서부터 비롯됩니다.
마음이 청정하지 않은데, 어떻게 청정한 삶, 평안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진정한 새 출발이란, 결국 마음을 바로 세우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마음을 바로 세운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마치 흔들리는 나침반이 진정한 북극을 찾아 안정을 찾듯, 우리의 의식과 생각과 행동의 근본이 되는 그 중심축을 바르게 놓는 일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쉼 없이 외부의 대상에 끌려 다니며, 좋고 싫음, 옳고 그름, 얻고 잃음에 따라 파도처럼 출렁입니다. 그 파도 속에서 우리는 고통과 방황을 느낍니다.
마음을 바로 세운다는 것은, 이 파도 같은 마음의 표면이 아닌, 그 깊은 바닥에 늘 고요하고 변함없이 자리한 ‘참나’, 즉 우리의 본성(佛性)을 찾아 그 것을 중심으로 삼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돌아봄’이 필요합니다.
지금 내 마음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무엇에 흔들리고 있는지,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마음 챙김의 힘을 키워야 합니다.
초하루는 이러한 돌아봄을 실천하기에 가장 좋은 날입니다.
한 달의 시작점에서 지난달을 되돌아보고, 다가올 한 달을 바라보며, 내 마음의 상태를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지난달, 내 마음은 평안했는지, 아니면 자주 동요했는지, 나의 말과 행동은 남을 해치거나 내 양심을 저버리지는 않았는지, 나는 진정으로 나 다웠는지, 아니면 남의 눈치와 평가에 치여 살았는지를 차분히 되짚어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찰은 결코 자신을 괴롭히거나 자책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법구경에서는 “지금까지 해온 모든 잘못은 밤새도록 흐르는 강물에 털어버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지난 과오와 후회, 그 모든 것은 이미 지나가 버린 강물과 같습니다.
우리가 그 강물을 붙들고 있다는 것은, 이미 지나간 것에 매여 현재를 살지 못하는 어리석음입니다.
성찰은 그 강물이 왜 더러워졌는지, 그 원인을 찾아 미래에는 더 맑은 물이 흐르도록 하기 위한 지혜로운 행위입니다.
마음을 바로 세우는 두 번째 단계는 바른 발원(發願)입니다.
발원이란 단순한 소망이나 염원이 아닙니다.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는 굳건한 결의이고,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는 나침반입니다.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깨닫지 못하면 이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겠다.”고 하신 그 큰 서원이 바로 가장 위대한 발원이었습니다.
우리도 이 초하루에, 나에게, 내 가족에게, 그리고 일체 중생에게 보편적인 이로움을 주는 바른 발원을 세워야 합니다.
‘나는 이번 달에는 조금 더 인내하는 사람이 되겠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격려의 미소를 건네는 사람이 되겠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며, 게으르거나 핑계 대지 않겠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항상 마음에 두고, 화가 날 때면 3초만이라도 숨을 참아 보겠다.’ 이렇게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발원을 하는 것입니다. 이 발원이야말로 한 달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잃어버리기 쉬운 마음의 중심을 다시 찾게 해주는 등불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이 발원을 지키기 위한 바른 실천이 필요합니다.
마음만 바로 세웠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가짐을 일상의 언어와 행동, 생각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해 나갈 때 비로소 그것은 살아있는 수행이 됩니다.
화엄경에서는 “모든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바른 실천으로 부처의 경지를 증득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남이 시키거나, 부처님이 도와주시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발원과 결의를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일 아침, 오늘 하루는 내가 세운 발원을 잊지 말자고 다짐하고, 저녁에는 오늘 내가 그 발원을 얼마나 지켰는지를 돌아보는 작은 실천이 쌓여서, 한 달 후에는 결실을 맺게 될 것입니다.
이 실천의 과정에서 우리는 실패도 하고, 넘어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실망하거나 자책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깨어있음을 요구합니다. 넘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일어나 발원을 잊지 않고 나아가는 그 깨어있음이 바로 수행의 본질입니다.
법우 여러분, 이 초하루, 우리는 단순히 달력이 바뀌는 물리적인 시작점에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라는 우주에서, 새로운 각오와 바른 마음으로 나아가는 영적인 출발선에 서 있습니다.
이 출발을 위해 우리는 신중께 기도합니다.
신중(神衆)이란 단순히 복을 비는 대상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지키고, 부처님의 법이 널리 퍼져 중생을 구제하는 일을 돕는 호법선신(護法善神)들입니다.
그분들께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의 바른 발원과 바른 실천을 지켜보고 지켜주시도록, 그 거룩한 힘에 우리의 작은 힘을 의탁하고 결합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작은 마음과 힘만으로는 쉽게 무너지고 지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 그리고 호법선신들의 가호가 함께 하신다면, 우리의 발걸음은 한결 든든해질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모여 신중기도를 드리는 깊은 의미입니다.
나의 바른 마음과 바른 실천, 그리고 부처님과 보살님, 호법신들의 가호가 하나가 되는 그 장엄한 순간을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번 달이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의미의 결실의 가을이 되기를, 지난 여름 땀 흘려 보린 내면의 씨앗들이 맺어져, 지혜와 자비라는 열매로 무성해지기를 발원합니다.
그 열매는 결코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내 가족을, 이웃을, 그리고 더 나아가 모든 중생을 위한 자비의 열매가 되어야 합니다.
반야심경의 핵심은 공(空)입니다. 모든 현상은 본질이 비어있어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나라는 존재도, 내가 세운 발원도, 내가 바라는 결실도, 모두 인연 따라 일어났다가 인연 따라 사라질 뿐입니다.
이 진리를 깨달을 때, 우리는 내 발원에 집착하거나, 결실에 연연해하는 또 다른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하되, 집착하지 않는 지혜로운 삶, 중도(中道)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바른 마음으로 출발하고, 바르게 실천하지만, 그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그렇게 자유로운 마음으로 한 달을 걸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법우 여러분,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이자 음력 8월 초하루 법회일 아침 함께하고 있습니다.
한 달의 시작에서 발원을 세우고, 마음을 다잡으며, 신중기도를 올려 삶을 외호 받는 날입니다. 오늘 아침 이 자리에 함께한 모든 법우님들이 부처님의 가피와 신중님의 수호 속에서 한 달을 원만히 살아가시기를 발원합니다.
한 달의 첫걸음을 어떻게 내딛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첫 발은 방향을 결정합니다.
첫 마음은 그 길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그래서 옛말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증일아함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청정하면 세상도 청정해진다.”이 말씀은 오늘 우리가 초하루를 맞이하여 마음을 새롭게 다스리는 이유를 잘 보여줍니다.
내가 내 마음을 바르게 세우면, 나의 삶은 바른 길로 나아가게 되고, 그 바른 삶은 결국 내 가족과 사회, 더 나아가 세상을 바르게 만드는 힘이 됩니다.
그러므로 초하루는 단순히 달의 시작이 아니라, 마음의 시작입니다.
오늘의 서원이 곧 한 달을 이끌어가는 힘이 되며, 그 서원이 우리의 일상 속에서 실천될 때 비로소 참된 불자의 삶이 열립니다.
신중기도의 의미도 여기에 있습니다.
신중님은 단지 외부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존재가 아니라, 사실은 우리 마음 안의 바른 의지, 올바른 실천을 지켜주는 힘입니다.
법화경 보문품에서 관세음보살께서 중생의 울음을 듣고 자비로 화답하신다고 했듯이, 신중님의 가피 또한 우리의 마음 속 청정한 발원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오늘 법우님들께서 세우신 작은 발원 하나가 신중님의 가피와 만나 큰 힘이 되어, 삶의 길을 바르게 열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한 달만 잘 살아보자”라는 다짐을 합니다.
그 다짐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하루를 모아 한 달이 되고, 한 달을 모아 일 년이 되며, 일 년을 모아 평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선행이라도 가볍게 여기지 말라. 작은 물방울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룬다.”
오늘 세운 작은 서원이 바로 그 물방울과 같습니다.
꾸준히 지켜내면 반드시 큰 복덕의 바다가 됩니다.
현실 속의 삶은 때로 우리를 지치게 하고, 여러 번 다짐을 해도 금세 흔들리게 합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초하루의 발원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오늘 마음을 바로 세웠다. 나는 오늘 부처님께 귀의했다. 나는 오늘 선행을 다짐했다.” 이 기억이 삶의 나침반이 되어 우리를 다시 바른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직장 생활 속에서 부당함을 겪거나, 가정에서 갈등이 생기더라도, “오늘은 초하루, 나는 마음을 바르게 세운다.”라는 서원을 떠올리면, 화를 내기보다는 자비로 대할 수 있고, 원망하기보다는 이해로 감싸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부처님 가르침을 일상에 실천하는 길입니다.
법우 여러분, 초하루의 의미는 단지 개인의 서원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함께 초하루 기도를 드리며, 신중님께 발원하고, 부처님께 귀의할 때, 이 서원은 공동체의 힘으로 확장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잡아함경에서 “선한 벗과 함께하는 삶은 수행의 전부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불심사에서 함께하는 이 아침방송 역시 바로 그런 의미를 지닙니다.
나 혼자가 아니라, 도반들과 함께 발원하고 다짐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불자의 길입니다.
오늘 아침, 법우님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단 하나입니다.
“오늘 세운 이 서원을 반드시 지켜내십시오.”
크고 거창한 서원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하루에 한 번 부처님께 합장하겠다는 서원, 하루에 한 번 좋은 말을 하겠다는 서원, 하루에 한 번 남을 돕겠다는 서원도 좋습니다.
이 작은 약속이 여러분의 한 달을 바꾸고, 그 삶을 바꿀 것입니다.
이제 한 주가 시작됩니다.
월요일의 출발이자, 초하루의 시작입니다.
마음을 바로 세우고, 서원을 세우고, 그 서원을 실천하는 삶으로 나아갑시다.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이 곧 한 달을 잘 살아내는 길이고, 그 한 달이 곧 우리의 일생을 빛나게 할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처럼,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오늘 우리가 세운 이 마음이 곧 우리의 부처님이요, 우리의 신중님입니다.
이상으로 오늘의 법문을 마치며, 법우님들의 한 달과 한 주, 그리고 오늘 하루에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충만하시길 발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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