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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7일(금) 아침방송법문 : “괴로움과 친구 되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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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7 08:02:38, 조회 : 534,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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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9년 11월 7일(금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괴로움과 친구 되는 법”
법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불기 2569년 11월 7일 금요일, 오늘은 스무 번째 절기인 입동(立冬)이며 또한 지장재일(地藏齋日)입니다.
겨울의 문이 열리고, 들녘의 생명들이 쉼으로 들어가는 시기입니다.
이처럼 자연이 고요로 향하듯 우리 마음도 이제 내면의 계절을 맞이해야 합니다.
오늘의 법문 주제는 “괴로움과 친구 되는 법”입니다.
이 주제는 인생의 어느 시기에서나 우리에게 깊이 다가오는 가르침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괴로움을 싫어합니다.
괴로움은 삶의 가장 낯선 손님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을 삶의 중심에서 직시하셨습니다.
첫 번째 가르침, 사성제(四聖諦)의 시작도 “이것이 괴로움이다(此是苦)”라는 진리의 선언으로 열립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것은 괴로움이 단순히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적 조건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잡아함경에서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괴로움을 알고, 괴로움의 원인을 끊고, 괴로움의 소멸을 깨닫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실천하라.”이 말씀 속에 인생의 모든 지혜가 들어 있습니다.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 속에서 길을 찾는 것이 수행의 길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종종 괴로움을 피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괴로움은 피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피할수록 마음속 그림자는 더 크게 자라고, 도망칠수록 고통은 더 깊은 곳에서 우리를 붙잡습니다.
괴로움은 피해야 할 적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친구이자 스승입니다.
괴로움과 친구가 될 수 있을 때, 그 괴로움은 더 이상 우리를 해치지 못합니다.
괴로움은 바람과 같습니다.
그 바람이 차갑다고 문을 닫으면 방 안의 공기는 탁해집니다.
그러나 문을 열어 그 바람과 함께 숨을 쉬면, 그 바람은 다시 맑은 기운이 되어 우리를 살립니다.
우리의 삶도 그러합니다. 괴로움을 외면하지 않고 그와 함께 숨 쉬면, 그 괴로움이 곧 나를 깨우는 지혜의 바람이 됩니다.
지장보살님께서는 지옥 중생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큰 서원은 “지옥이 비지 않으면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곧 “괴로움이 있는 곳에 내가 가겠다.”는 서원입니다.
지장보살의 자비는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괴로움 속으로 들어가 함께 머무는 사랑입니다. 우리 또한 인생의 괴로움 속에서 그분처럼 두려움 없이 자비로 머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괴로움이란 무엇입니까?
괴로움은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에서 생깁니다.
건강했던 몸이 병들고, 가까웠던 사람이 멀어지고, 사랑하던 인연이 떠날 때 우리는 괴로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것을 무상(無常)이라 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생하고 멸합니다. 그 무상의 이치를 이해할 때 괴로움은 사라지고, 이해하지 못할 때 괴로움은 계속됩니다.
법구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마음으로 말하며, 마음으로 행한다. 청정한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면 행복이 그를 따른다.”
즉, 괴로움이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괴로움을 대하는 마음의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같은 일이 일어나더라도, 마음이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괴로움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겨울이 찾아왔을 때 어떤 이는 춥다며 괴로워하지만, 어떤 이는 이제 봄을 준비할 시간이라 생각하며 감사해합니다.
괴로움과 행복의 차이는 환경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입동의 바람은 모두에게 불지만, 그 바람을 어떻게 느끼는가는 각자의 선택입니다.
괴로움을 친구로 삼는다는 것은 그 괴로움이 내 삶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괴로움 속에도 나의 불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중생은 본래 부처다.”라고 합니다.
그 말은 괴로움 속에도 부처가 있다는 뜻입니다.
괴로움을 미워하지 말고, 그 안에서 자비를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수행자의 시선입니다.
괴로움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마치 어머니가 아픈 자식을 품는 마음과 같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이 아프다고 미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깊이 품고 더 따뜻이 감싸줍니다.
그 사랑이 바로 자비이며, 그 자비 속에서 괴로움은 녹아 사라집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와 같아야 합니다.
자신의 아픔을 미워하지 않고 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옵니다.
유마경에는 “병이 있는 것이 곧 깨달음의 문이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괴로움이 곧 수행의 출발점임을 뜻합니다.
괴로움을 피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그 괴로움 속에서 나를 돌아보는 마음이 지혜를 낳습니다. 괴로움이 없다면 자비도 없습니다. 괴로움을 모르면 사랑을 모릅니다.
괴로움이 바로 깨달음의 씨앗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여러 가지 괴로움이 있습니다.
몸의 괴로움, 마음의 괴로움, 인연의 괴로움, 그리고 세상의 괴로움. 그러나 이 모든 괴로움의 뿌리는 집착(執着)입니다. 집착이 없으면 괴로움도 없습니다.
중아함경에는 “마음이 집착을 버리면 괴로움은 흘러간다.” 하셨습니다.
무언가를 꼭 쥐고 있을 때 손이 아프듯, 집착을 놓는 순간 마음은 자유로워집니다.
괴로움을 놓기 위해선 먼저 ‘쥐고 있는 나’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입동의 계절은 내려놓음의 계절입니다. 나무는 잎을 버리고, 들판은 비워냅니다.
모든 생명이 자신을 덜어냄으로써 다음 봄을 준비합니다.
우리의 삶도 그러해야 합니다.
지난 계절의 슬픔, 원망, 상처를 그대로 붙잡고 있다면 새로운 봄이 와도 그 빛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괴로움을 친구로 삼는다는 것은, 그 괴로움을 놓아주는 용기를 배우는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괴로움은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그 괴로움 덕분에 우리는 성장합니다.
꽃은 추위를 견디며 피어나고, 바다는 폭풍을 이기며 더 깊어집니다.
사람도 괴로움을 통과할 때 비로소 강해지고, 그 속에서 진정한 자신을 만납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고(苦)의 진리입니다.
괴로움을 피하지 말고, 괴로움을 바라보십시오.
그 괴로움을 이해할 때, 그대의 마음에는 더 이상 괴로움이 없습니다.
그때부터 그 괴로움은 지혜로 바뀌고, 그 지혜는 자비로 피어납니다.
법우 여러분, 괴로움은 피할 수 없는 인생의 진실입니다.
그러나 괴로움을 피하지 않고 바라볼 줄 아는 사람만이 삶의 본모습을 이해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을 단순히 고통의 상태로 보지 않으시고 그것을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문으로 보셨습니다. 괴로움 속에는 반드시 진리가 숨겨져 있으며 그 괴로움을 통찰하는 순간 그 사람의 마음에는 자비와 지혜가 피어납니다.
법구경에는 “세상에 괴로움이 있으나 그것을 보는 눈을 가진 이는 적다.”고 하셨습니다. 괴로움은 모두에게 있지만 괴로움을 바라보는 마음의 태도는 각자 다릅니다.
어떤 이는 그 괴로움에 휘둘리고 어떤 이는 그 괴로움을 껴안아 스승으로 삼습니다. 수행자의 길은 괴로움을 거부하지 않고 그 괴로움 속으로 들어가 그와 함께 숨 쉬는 길입니다.
지장보살님께서는 지옥의 고통 속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
지옥이 비지 않으면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은 곧 괴로움을 피하지 않고 그 한가운데로 들어가겠다는 자비의 실천이었습니다. 지장보살님의 자비는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 속에서 머무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그 마음을 배우면 인생의 괴로움 또한 나를 자비로운 사람으로 길러주는 인연임을 알게 됩니다.
괴로움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습니다.
나의 욕심이 괴로움이고 나의 비교심이 괴로움이며 나의 두려움이 괴로움입니다.
그러므로 괴로움을 없애려면 먼저 내 마음의 모양을 알아야 합니다.
증일아함경에 “마음을 아는 자는 괴로움을 벗어나지만 마음을 모르는 자는 괴로움 속에 산다.”하셨습니다. 마음을 들여다보면 괴로움은 점차 힘을 잃습니다.
왜냐하면 괴로움은 어둠과 같아 그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등을 켜면 어둠이 사라지듯 마음의 자비를 켜면 괴로움은 더 이상 머물 곳이 없습니다.
괴로움을 친구로 삼는다는 것은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을 이해하고 그것을 자비의 거울로 삼는 일입니다. 그 거울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보고 남을 봅니다. 나의 아픔이 남의 아픔과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될 때 그 마음에는 연민이 자라고 그 연민이 곧 자비가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의 네 가지 원인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탐욕(貪), 성냄(瞋), 어리석음(癡), 그리고 집착(執)입니다.
이 네 가지가 사라질 때 괴로움은 자연히 소멸됩니다.
그러나 이들을 단칼에 없애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의 수행 속에서 하나씩 내려놓아야 합니다.
화가 날 때마다 “이 분노는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안다.” 하고 알아차리고, 욕심이 일어날 때마다 “이 욕심 또한 덧없음을 안다.” 하고 지켜보는 것이 바로 괴로움과 친구가 되는 첫 걸음입니다. 알아차림은 괴로움에 빛을 비추는 행위입니다.
입동의 계절은 내려놓음의 시간입니다.
나무가 잎을 버리듯 우리도 지난날의 괴로움을 놓아야 합니다.
나무가 잎을 버리지 않으면 새봄의 싹을 틔울 수 없듯 우리 마음이 집착을 버리지 않으면 새 지혜가 자라지 않습니다. 괴로움을 내려놓는 것은 괴로움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괴로움아, 네가 있었기에 내가 성장했고 네 덕분에 나는 지금의 나로 살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때 괴로움은 더 이상 적이 아니라 평생 함께할 친구가 됩니다.
불교에서는 괴로움을 고해(苦海)라 부릅니다.
그러나 그 고해를 건너는 배가 바로 자비입니다.
화엄경에는 “자비는 중생을 실은 큰 배요 지혜는 바다를 건너는 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자비로 괴로움을 대할 때 그 괴로움은 건너야 할 강이 아니라 지나가는 물결이 됩니다.
그리고 그 물결은 결국 나를 깨달음의 언덕으로 데려갑니다.
인생의 바다는 결코 고요하지 않습니다. 폭풍도 있고 파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파도마저 바다의 일부이듯 괴로움 또한 삶의 일부입니다.
그 파도와 싸우지 말고 파도의 리듬에 몸을 맡기면 어느새 바다는 우리를 품어줍니다. 괴로움도 그러합니다. 괴로움이 올 때 그 흐름을 거스르지 말고 함께 흘러가십시오. 그러면 괴로움은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성장시키는 물결이 됩니다.
지장재일에 우리가 지장보살님께 기도드리는 이유는 바로 이‘함께 머무름의 자비’를 배우기 위함입니다. 지장보살님은 중생의 괴로움을 대신 짊어지는 분이 아니라 그 괴로움을 함께 나누어 가볍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괴로움을 줄이려면 괴로워하는 이를 돕는 마음을 내라.” 내가 괴로운 순간에도 누군가를 위로하는 마음을 낸다면 그 순간 내 괴로움은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자비는 나를 살리고 세상을 살립니다.
입동의 찬바람이 불어도 지장보살의 자비는 우리를 따뜻하게 감쌉니다.
자연이 잠들고 세상이 고요해지는 겨울의 문턱에서 우리 마음 또한 고요히 자신을 돌아볼 때입니다. 내 마음의 괴로움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그 괴로움을 자비로 안아줍시다. 그때 비로소 괴로움은 고통이 아니라 수행이 됩니다.
부처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남기신 말씀 중 하나가 “모든 것은 무상하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상은 괴로움을 이기는 지혜입니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괴로움 또한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괴로움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 사실을 알면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고 삶은 고요해집니다.
법우 여러분, 괴로움이 찾아올 때마다 이렇게 마음속으로 되뇌어 보십시오.
“이 괴로움도 지나가리라. 이 괴로움 속에도 부처님이 계시다.”
그 한마디가 마음의 등불이 되어 어둠을 걷어냅니다.
괴로움과 싸우지 말고 괴로움과 함께 걸으십시오.
그 길의 끝에는 반드시 자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지장재일의 공덕으로 우리 모두가 괴로움을 통찰의 지혜로 바꾸고 자비의 마음으로 세상을 밝히는 불자가 되기를 서원드립니다.
괴로움과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은 이미 부처님 마음을 품은 사람입니다. 오늘 하루, 괴로움을 받아들이는 그 순간마다 부처님의 미소가 우리 마음속에서 피어나기를 기원드립니다.
불기 2569년 11월 7일(금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괴로움과 친구 되는 법”
법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불기 2569년 11월 7일 금요일, 오늘은 스무 번째 절기인 입동(立冬)이며 또한 지장재일(地藏齋日)입니다.
겨울의 문이 열리고, 들녘의 생명들이 쉼으로 들어가는 시기입니다.
이처럼 자연이 고요로 향하듯 우리 마음도 이제 내면의 계절을 맞이해야 합니다.
오늘의 법문 주제는 “괴로움과 친구 되는 법”입니다.
이 주제는 인생의 어느 시기에서나 우리에게 깊이 다가오는 가르침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괴로움을 싫어합니다.
괴로움은 삶의 가장 낯선 손님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을 삶의 중심에서 직시하셨습니다.
첫 번째 가르침, 사성제(四聖諦)의 시작도 “이것이 괴로움이다(此是苦)”라는 진리의 선언으로 열립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것은 괴로움이 단순히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적 조건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잡아함경에서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괴로움을 알고, 괴로움의 원인을 끊고, 괴로움의 소멸을 깨닫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실천하라.”이 말씀 속에 인생의 모든 지혜가 들어 있습니다.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 속에서 길을 찾는 것이 수행의 길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종종 괴로움을 피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괴로움은 피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피할수록 마음속 그림자는 더 크게 자라고, 도망칠수록 고통은 더 깊은 곳에서 우리를 붙잡습니다.
괴로움은 피해야 할 적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친구이자 스승입니다.
괴로움과 친구가 될 수 있을 때, 그 괴로움은 더 이상 우리를 해치지 못합니다.
괴로움은 바람과 같습니다.
그 바람이 차갑다고 문을 닫으면 방 안의 공기는 탁해집니다.
그러나 문을 열어 그 바람과 함께 숨을 쉬면, 그 바람은 다시 맑은 기운이 되어 우리를 살립니다.
우리의 삶도 그러합니다. 괴로움을 외면하지 않고 그와 함께 숨 쉬면, 그 괴로움이 곧 나를 깨우는 지혜의 바람이 됩니다.
지장보살님께서는 지옥 중생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큰 서원은 “지옥이 비지 않으면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곧 “괴로움이 있는 곳에 내가 가겠다.”는 서원입니다.
지장보살의 자비는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괴로움 속으로 들어가 함께 머무는 사랑입니다. 우리 또한 인생의 괴로움 속에서 그분처럼 두려움 없이 자비로 머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괴로움이란 무엇입니까?
괴로움은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에서 생깁니다.
건강했던 몸이 병들고, 가까웠던 사람이 멀어지고, 사랑하던 인연이 떠날 때 우리는 괴로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것을 무상(無常)이라 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생하고 멸합니다. 그 무상의 이치를 이해할 때 괴로움은 사라지고, 이해하지 못할 때 괴로움은 계속됩니다.
법구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마음으로 말하며, 마음으로 행한다. 청정한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면 행복이 그를 따른다.”
즉, 괴로움이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괴로움을 대하는 마음의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같은 일이 일어나더라도, 마음이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괴로움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겨울이 찾아왔을 때 어떤 이는 춥다며 괴로워하지만, 어떤 이는 이제 봄을 준비할 시간이라 생각하며 감사해합니다.
괴로움과 행복의 차이는 환경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입동의 바람은 모두에게 불지만, 그 바람을 어떻게 느끼는가는 각자의 선택입니다.
괴로움을 친구로 삼는다는 것은 그 괴로움이 내 삶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괴로움 속에도 나의 불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중생은 본래 부처다.”라고 합니다.
그 말은 괴로움 속에도 부처가 있다는 뜻입니다.
괴로움을 미워하지 말고, 그 안에서 자비를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수행자의 시선입니다.
괴로움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마치 어머니가 아픈 자식을 품는 마음과 같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이 아프다고 미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깊이 품고 더 따뜻이 감싸줍니다.
그 사랑이 바로 자비이며, 그 자비 속에서 괴로움은 녹아 사라집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와 같아야 합니다.
자신의 아픔을 미워하지 않고 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옵니다.
유마경에는 “병이 있는 것이 곧 깨달음의 문이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괴로움이 곧 수행의 출발점임을 뜻합니다.
괴로움을 피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그 괴로움 속에서 나를 돌아보는 마음이 지혜를 낳습니다. 괴로움이 없다면 자비도 없습니다. 괴로움을 모르면 사랑을 모릅니다.
괴로움이 바로 깨달음의 씨앗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여러 가지 괴로움이 있습니다.
몸의 괴로움, 마음의 괴로움, 인연의 괴로움, 그리고 세상의 괴로움. 그러나 이 모든 괴로움의 뿌리는 집착(執着)입니다. 집착이 없으면 괴로움도 없습니다.
중아함경에는 “마음이 집착을 버리면 괴로움은 흘러간다.” 하셨습니다.
무언가를 꼭 쥐고 있을 때 손이 아프듯, 집착을 놓는 순간 마음은 자유로워집니다.
괴로움을 놓기 위해선 먼저 ‘쥐고 있는 나’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입동의 계절은 내려놓음의 계절입니다. 나무는 잎을 버리고, 들판은 비워냅니다.
모든 생명이 자신을 덜어냄으로써 다음 봄을 준비합니다.
우리의 삶도 그러해야 합니다.
지난 계절의 슬픔, 원망, 상처를 그대로 붙잡고 있다면 새로운 봄이 와도 그 빛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괴로움을 친구로 삼는다는 것은, 그 괴로움을 놓아주는 용기를 배우는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괴로움은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그 괴로움 덕분에 우리는 성장합니다.
꽃은 추위를 견디며 피어나고, 바다는 폭풍을 이기며 더 깊어집니다.
사람도 괴로움을 통과할 때 비로소 강해지고, 그 속에서 진정한 자신을 만납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고(苦)의 진리입니다.
괴로움을 피하지 말고, 괴로움을 바라보십시오.
그 괴로움을 이해할 때, 그대의 마음에는 더 이상 괴로움이 없습니다.
그때부터 그 괴로움은 지혜로 바뀌고, 그 지혜는 자비로 피어납니다.
법우 여러분, 괴로움은 피할 수 없는 인생의 진실입니다.
그러나 괴로움을 피하지 않고 바라볼 줄 아는 사람만이 삶의 본모습을 이해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을 단순히 고통의 상태로 보지 않으시고 그것을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문으로 보셨습니다. 괴로움 속에는 반드시 진리가 숨겨져 있으며 그 괴로움을 통찰하는 순간 그 사람의 마음에는 자비와 지혜가 피어납니다.
법구경에는 “세상에 괴로움이 있으나 그것을 보는 눈을 가진 이는 적다.”고 하셨습니다. 괴로움은 모두에게 있지만 괴로움을 바라보는 마음의 태도는 각자 다릅니다.
어떤 이는 그 괴로움에 휘둘리고 어떤 이는 그 괴로움을 껴안아 스승으로 삼습니다. 수행자의 길은 괴로움을 거부하지 않고 그 괴로움 속으로 들어가 그와 함께 숨 쉬는 길입니다.
지장보살님께서는 지옥의 고통 속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
지옥이 비지 않으면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은 곧 괴로움을 피하지 않고 그 한가운데로 들어가겠다는 자비의 실천이었습니다. 지장보살님의 자비는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 속에서 머무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그 마음을 배우면 인생의 괴로움 또한 나를 자비로운 사람으로 길러주는 인연임을 알게 됩니다.
괴로움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습니다.
나의 욕심이 괴로움이고 나의 비교심이 괴로움이며 나의 두려움이 괴로움입니다.
그러므로 괴로움을 없애려면 먼저 내 마음의 모양을 알아야 합니다.
증일아함경에 “마음을 아는 자는 괴로움을 벗어나지만 마음을 모르는 자는 괴로움 속에 산다.”하셨습니다. 마음을 들여다보면 괴로움은 점차 힘을 잃습니다.
왜냐하면 괴로움은 어둠과 같아 그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등을 켜면 어둠이 사라지듯 마음의 자비를 켜면 괴로움은 더 이상 머물 곳이 없습니다.
괴로움을 친구로 삼는다는 것은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을 이해하고 그것을 자비의 거울로 삼는 일입니다. 그 거울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보고 남을 봅니다. 나의 아픔이 남의 아픔과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될 때 그 마음에는 연민이 자라고 그 연민이 곧 자비가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의 네 가지 원인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탐욕(貪), 성냄(瞋), 어리석음(癡), 그리고 집착(執)입니다.
이 네 가지가 사라질 때 괴로움은 자연히 소멸됩니다.
그러나 이들을 단칼에 없애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의 수행 속에서 하나씩 내려놓아야 합니다.
화가 날 때마다 “이 분노는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안다.” 하고 알아차리고, 욕심이 일어날 때마다 “이 욕심 또한 덧없음을 안다.” 하고 지켜보는 것이 바로 괴로움과 친구가 되는 첫 걸음입니다. 알아차림은 괴로움에 빛을 비추는 행위입니다.
입동의 계절은 내려놓음의 시간입니다.
나무가 잎을 버리듯 우리도 지난날의 괴로움을 놓아야 합니다.
나무가 잎을 버리지 않으면 새봄의 싹을 틔울 수 없듯 우리 마음이 집착을 버리지 않으면 새 지혜가 자라지 않습니다. 괴로움을 내려놓는 것은 괴로움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괴로움아, 네가 있었기에 내가 성장했고 네 덕분에 나는 지금의 나로 살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때 괴로움은 더 이상 적이 아니라 평생 함께할 친구가 됩니다.
불교에서는 괴로움을 고해(苦海)라 부릅니다.
그러나 그 고해를 건너는 배가 바로 자비입니다.
화엄경에는 “자비는 중생을 실은 큰 배요 지혜는 바다를 건너는 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자비로 괴로움을 대할 때 그 괴로움은 건너야 할 강이 아니라 지나가는 물결이 됩니다.
그리고 그 물결은 결국 나를 깨달음의 언덕으로 데려갑니다.
인생의 바다는 결코 고요하지 않습니다. 폭풍도 있고 파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파도마저 바다의 일부이듯 괴로움 또한 삶의 일부입니다.
그 파도와 싸우지 말고 파도의 리듬에 몸을 맡기면 어느새 바다는 우리를 품어줍니다. 괴로움도 그러합니다. 괴로움이 올 때 그 흐름을 거스르지 말고 함께 흘러가십시오. 그러면 괴로움은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성장시키는 물결이 됩니다.
지장재일에 우리가 지장보살님께 기도드리는 이유는 바로 이‘함께 머무름의 자비’를 배우기 위함입니다. 지장보살님은 중생의 괴로움을 대신 짊어지는 분이 아니라 그 괴로움을 함께 나누어 가볍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괴로움을 줄이려면 괴로워하는 이를 돕는 마음을 내라.” 내가 괴로운 순간에도 누군가를 위로하는 마음을 낸다면 그 순간 내 괴로움은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자비는 나를 살리고 세상을 살립니다.
입동의 찬바람이 불어도 지장보살의 자비는 우리를 따뜻하게 감쌉니다.
자연이 잠들고 세상이 고요해지는 겨울의 문턱에서 우리 마음 또한 고요히 자신을 돌아볼 때입니다. 내 마음의 괴로움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그 괴로움을 자비로 안아줍시다. 그때 비로소 괴로움은 고통이 아니라 수행이 됩니다.
부처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남기신 말씀 중 하나가 “모든 것은 무상하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상은 괴로움을 이기는 지혜입니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괴로움 또한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괴로움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 사실을 알면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고 삶은 고요해집니다.
법우 여러분, 괴로움이 찾아올 때마다 이렇게 마음속으로 되뇌어 보십시오.
“이 괴로움도 지나가리라. 이 괴로움 속에도 부처님이 계시다.”
그 한마디가 마음의 등불이 되어 어둠을 걷어냅니다.
괴로움과 싸우지 말고 괴로움과 함께 걸으십시오.
그 길의 끝에는 반드시 자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지장재일의 공덕으로 우리 모두가 괴로움을 통찰의 지혜로 바꾸고 자비의 마음으로 세상을 밝히는 불자가 되기를 서원드립니다.
괴로움과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은 이미 부처님 마음을 품은 사람입니다. 오늘 하루, 괴로움을 받아들이는 그 순간마다 부처님의 미소가 우리 마음속에서 피어나기를 기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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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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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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