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게시판
|
|
|
|
![]()
| 11월 11일(화) 아침방송법문 : “사람 마음 변화시키는 건, 사랑과 존중입니다.” |
|
|
2025-11-11 07:12:06, 조회 : 555, 추천 : 0 |
|
|
|
불기 2569년 11월 11일(화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사람 마음 변화시키는 건, 사랑과 존중입니다.”
불심사 아침방송을 함께하시는 법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법문의 주제는 “사람 마음 변화시키는 건, 사랑과 존중입니다.”입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것은 오직 진심에서 비롯된 따뜻한 마음뿐입니다.
그 마음이 바로 사랑이고, 그 사랑이 존중으로 이어질 때, 닫혀 있던 마음이 열리고, 어두웠던 관계가 다시 빛을 찾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미묘합니다.
어떤 말로는 쉽게 상처받고, 어떤 눈빛 하나에도 위로를 받습니다.
그렇기에 마음은 억지로 바꿀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억지로 바꾸려 할수록, 그 마음은 더 멀어집니다.
하지만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고, 진심으로 존중하면, 그 마음은 스스로 부드러워지고, 변화의 길로 나아갑니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바꾸려 하지 말고, 먼저 내 마음을 바꾸라. 내 마음이 바뀌면 세상은 이미 바뀌어 있다.”
잡아함경(雜阿含經)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본래 깨끗하나, 탐·진·치의 먼지가 덮였을 뿐이니, 그 마음을 맑히는 방법은 사랑과 자비이며, 그 마음을 평등하게 하는 것은 존중이니라.”
이 말씀은 바로 오늘 법문 주제의 핵심을 짚고 있습니다.
사랑과 존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수행의 두 축입니다.
사랑이 탐욕을 녹이고, 존중이 분노를 녹입니다.
사랑은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존중은 관계를 부드럽게 합니다.
우리가 신행생활을 하며 느끼는 갈등도 대부분은 ‘마음의 온도’에서 비롯됩니다.
냉정한 말 한마디, 무심한 태도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닫게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따뜻한 말 한마디, 이해의 미소 하나가 마음을 엽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과 존중의 힘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은 논리나 권위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를 ‘한 사람의 부처님으로 보는 시선’입니다. 그 시선이 바로 존중이고, 그 존중이 바로 자비입니다.
법구경(法句經)에서는 이렇게 설합니다.
“분노를 멈추게 하는 것은 분노가 아니요, 오직 자비이니라.미움을 녹이는 것은 미움이 아니요, 오직 사랑이니라.”
이 말씀은 단순히 마음의 교훈이 아니라, 실제적인 수행의 원리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바뀌는 이유는 그가 잘못을 깨달아서가 아니라, 누군가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사랑받은 사람은 다시 사랑을 배우고, 존중받은 사람은 존중할 줄 알게 됩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연기의 법칙이기도 합니다.
법우 여러분,
사랑은 단지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중생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사랑을 자(慈)라 하고, 슬픔을 함께하는 마음을 비(悲)라 합니다. 자(慈)는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 비(悲)는 중생의 고통을 덜어줍니다.
사랑과 존중은 바로 이 자비(慈悲)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내가 상대를 사랑하고 존중할 때, 그 마음은 이미 자비행이 되고, 그 행위는 곧 보시요, 공양이며, 수행입니다.
사람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물과 같아서, 따뜻한 손길이 닿으면 반드시 흐른다.”
이 말씀처럼, 사람의 마음이 변화하지 않는 것은 냉기 때문입니다.
그 냉기를 녹이는 것은 따뜻한 사랑의 기운과 존중의 태도입니다.
비판으로는 마음이 굳어지고, 사랑으로는 마음이 열립니다.
명령으로는 마음이 움츠러들고, 존중으로는 마음이 살아납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설하신 자비의 작용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 먼저 사랑과 존중으로 바라보면, 그 순간 관계의 에너지가 달라집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전해지고, 억지로 설득하지 않아도 이해가 일어납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수행의 첫걸음이 신심(信心)이라면, 그 신심이 자라는 밭은 바로 ‘사랑과 존중’의 마음입니다.
사람을 믿는 마음, 그가 변화할 수 있다고 믿는 마음이 사랑의 씨앗입니다.
그리고 그 씨앗을 자라게 하는 햇살이 바로 존중입니다.
불심사 법우님들께서도 아마 느끼셨을 것입니다.
매일의 기도 속에서, 법회 자리에서, 서로에게 따뜻한 한마디를 건넬 때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그 한마디가 법당의 공기를 바꾸고, 한 사람의 하루를 바꿉니다.
사람의 마음은 강요로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과 존중의 기운 앞에서는 스스로 바뀝니다.
그것은 마치 햇살 앞에 얼음이 녹는 것과 같습니다.
유교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마음은 거울과 같아, 사랑을 비추면 맑아지고, 경멸을 비추면 탁해진다.”
사람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의 불성을 믿는 일이고, 그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불성을 깨우는 일입니다. 사람이 변화한다는 것은 결국, 그 마음속 부처님이 깨어난다는 뜻입니다. 사랑과 존중은 그 깨어남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오늘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이 법문은 단지 ‘좋은 사람이 되자’는 덕목이 아닙니다.
사랑과 존중은 수행의 근본이요, 관계의 연기(緣起)를 맑히는 지혜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은 교리나 논쟁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 사람의 괴로움을 함께 느끼는 자비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곧 사랑이고, 그 태도가 곧 존중입니다.
이제 우리 마음속을 돌아봅시다.
나는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존중하고 있는가. 혹여 내 말 한마디가 누군가를 닫히게 하지 않았는가, 내 시선이 누군가를 작게 만들지 않았는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수행의 길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 길은 바로 내 앞의 사람에게 향한 사랑과 존중의 한마디에서 시작됩니다.
법우 여러분, 사람의 마음이 변화하는 순간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것은 언제나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 주었을 때 일어납니다.
사람은 이성보다 감정으로 움직이고, 논리보다 온기로 녹습니다.
그래서 사랑과 존중은 마음을 변화시키는 가장 위대한 수행의 힘입니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거울과 같으니, 미움이 비추면 어둡고 사랑이 비추면 밝다.”
이 짧은 말씀 속에 모든 관계의 해답이 들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거울과 같습니다.
내가 그에게 어떤 마음을 비추느냐에 따라 그 거울은 달라집니다.
냉정함을 비추면 냉정이 돌아오고, 따뜻함을 비추면 따뜻함이 돌아옵니다.
이것이 인연의 법칙이요, 부처님께서 설하신 연기의 이치입니다.
중아함경(中阿含經)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마음이 화합하면 세상이 화합하고, 말이 부드러우면 인연이 맑아진다.”
이 말씀은 우리가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임을 알려줍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내 마음의 거울입니다.
상대방이 내게 보이는 태도는 결국 내가 비춘 마음의 그림자입니다.
그래서 사랑과 존중으로 사람을 대하면, 그의 마음속에서도 사랑과 존중이 깨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설하신 “자비의 인연”입니다.
자비는 한 방향의 시혜가 아니라, 서로를 비추는 관계의 힘입니다.
사람은 사랑받을 때 자신이 존귀한 존재임을 깨닫고, 존중받을 때 자기 안의 부처님을 발견합니다. 그 깨달음이 바로 변화의 시작입니다.
유마경에는 “모든 중생은 불성을 지니고 있으니, 그를 함부로 여기지 말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곧 존중의 근본정신입니다.
사람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불성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존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안의 부처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그의 말투, 행동, 모순까지도 ‘인연의 그림자’임을 알게 됩니다. 그때 마음에 연민이 피어나고, 그 연민이 곧 사랑으로 변합니다.
사랑은 상대를 바꾸는 힘이 아닙니다.
사랑은 내 마음을 바꾸는 힘입니다.
내 마음이 바뀌면, 그 마음이 상대에게 전해지고, 그 전해진 따뜻함이 다시 돌아와 관계를 바꿉니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의 순환(循環)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남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은 반드시 자신을 이롭게 하느니라.”
사랑과 존중으로 사람을 대할 때, 그 마음의 진동은 나를 감싸며 복으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사랑과 존중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나를 위한 길입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많은 사람이 말로는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 마음속에는 존중이 없습니다. 존중이 빠진 사랑은 집착이 되고, 사랑이 빠진 존중은 형식이 됩니다. 이 두 마음이 함께할 때 비로소 조화가 이루어집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중도(中道)의 길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랑은 따뜻하게 품되 집착하지 않고, 존중은 거리감을 두되 냉정하지 않는 마음의 조화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변화는 마음이 변하는 것입니다.
그 변화는 위대한 사건이 아니라, 한마디 따뜻한 말, 한 번의 공손한 인사에서 시작됩니다.
“오늘도 건강하시지요?” “덕분에 힘이 납니다.”
이런 한마디 속에 사랑이 있고 존중이 있습니다.
이 짧은 문장들이 사람의 하루를 바꾸고, 그 마음을 일으킵니다.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섬세하고, 동시에 그렇게 위대합니다.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존중은 공덕의 문이고, 사랑은 해탈의 길이다.”
이 말씀은 존중이 수행의 문을 여는 첫걸음이며, 사랑이 그 문을 통과하게 하는 실천임을 알려줍니다. 존중은 관계의 문을 열고, 사랑은 그 안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우리가 불심사에서 서로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합장하며 감사하는 것도 결국 이 존중의 실천이요, 사랑의 표현입니다.
작은 절 한 번, 따뜻한 눈길 하나가 이미 수행의 행위입니다.
법우 여러분, 사람의 마음이 변화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거창한 설법이나 긴 기도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일상 속, 한순간의 자비심에서 일어납니다.
내가 먼저 존중하고, 내가 먼저 사랑하면, 그 순간 이미 세상은 달라집니다.
그 마음이 내 가족에게, 도반에게, 이웃에게 이어지면 그곳이 바로 불국토가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이 청정해지면, 세상이 곧 정토가 된다.” 하셨습니다. 그 정토는 먼 곳에 있는 천국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입니다.
때로는 누군가의 차가운 말 한마디에 마음이 다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대가 미움을 느낄 때, 자비로 그 마음을 돌리라.
그대가 멸시를 느낄 때, 존중으로 그 마음을 돌리라.”
이 말씀은 우리가 순간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사랑과 존중으로 다시 중심을 세워야 함을 가르칩니다. 사람의 마음은 돌처럼 굳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물처럼 흘러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 변화의 물줄기를 인도하는 손이 바로 우리의 사랑과 존중입니다.
화엄경(華嚴經)의 말씀도 깊이 다가옵니다.
“일체 중생은 다 나의 스승이니, 나는 그들을 존경하노라.”
이 구절은 부처님께서 모든 존재를 존중하신 자비심의 표현입니다.
존중이란, 상대를 나보다 낮게 보지 않는 마음입니다.
그가 나보다 어리거나, 배우지 못했거나, 실수를 했더라도, 그 안의 불성을 믿는 것이 존중입니다. 이 마음이 생기면 비난은 사라지고, 이해가 생깁니다.
그 이해가 바로 사랑의 씨앗입니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사랑과 존중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변화가 있습니다.
그 변화는 말없이 일어나고, 부드럽게 퍼져 나갑니다.
이것이 바로 無言之敎(무언지교), 즉 말 없는 가르침입니다.
사랑은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고, 존중은 침묵 속에서도 느껴집니다.
우리가 매일 선명상으로 마음을 닦고, 법문으로 길을 세우는 이유도 결국 이 무언의 자비를 삶 속에서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그리하여 불심사에서 울려 퍼지는 모든 염불 소리 속에는 사랑과 존중의 진동이 함께 깃들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나는 오늘, 사랑과 존중으로 누구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는가?”
만약 단 한 사람이라도 미소 짓게 했다면, 그것이 곧 불공이며, 수행이며, 보시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은 거대한 힘이 아니라, 한 사람의 따뜻한 진심입니다. 그 진심이 세상을 바꾸고, 그 사랑이 정토를 만듭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눈 말씀처럼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힘은 오직 사랑과 존중에서 비롯됩니다. 사랑은 따뜻한 햇살과 같아서 닫힌 마음의 문을 열게 하고, 존중은 부드러운 바람과 같아서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합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미움이 설 자리가 없고, 존중이 있는 곳에는 다툼이 머물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자비는 모든 덕행의 근본이며, 존중은 모든 인연의 완성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매일 기도하며, 서로에게 합장으로 인사하는 그 마음 안에 이미 사랑과 존중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수행이며, 그것이 곧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삶이 때로는 거칠고 냉정하게 느껴질지라도, 사랑과 존중의 마음을 잃지 마십시오.
그 마음 하나로 우리는 고통을 자비로 바꾸고, 원망을 이해로 바꿀 수 있습니다. 사랑은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존중은 세상을 평화롭게 합니다. 사람을 설득하려 하지 말고 이해하려 하고, 다투려 하지 말고 존중하려 하십시오. 그러면 세상은 조용히 바뀝니다. 그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자비행(慈悲行)의 길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존중의 마음으로 대하며 살기를 발원합니다. 내 곁의 한 사람을 사랑하면 세상이 따뜻해지고, 한 사람을 존중하면 세상이 평화로워집니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화할 때, 불심사의 모든 도반의 삶이 곧 정토가 되고, 이 세상이 곧 부처님의 나라가 됩니다.
이제 마음속으로 다짐해 봅니다. “나는 오늘 사랑하겠습니다. 나는 오늘 존중하겠습니다.” 이 짧은 서원이 오늘을 빛내고 내일의 공덕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사랑은 마음을 밝히는 등불이고, 존중은 그 등불을 지켜주는 바람막입니다. 이 두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하루는 이미 행복하고, 여러분의 인생은 이미 깨달음의 길 위에 서 있습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