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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4일(금) 아침방송법문 : “삼귀의, 오계 지키면 행복한 불자”
眞虛性宗 2025-11-14 08:06:17, 조회 : 510, 추천 : 0
불기 2569년 11월 14일(금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삼귀의, 오계 지키면 행복한 불자”

법우 여러분, 오늘의 법문 주제는 “삼귀의, 오계 지키면 행복한 불자”입니다.  
이 주제는 불교 신행의 근본이자, 불자로 살아가는 모든 삶의 출발점입니다.  
우리가 불자로서 부처님을 믿고 따르는 길은 삼귀의에서 시작되고, 신행의 실천은 오계를 통해 완성되어 갑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귀의하고 계율을 지키는 일은 곧 불자의 행복을 스스로 짓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삼귀의(三歸依)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귀의(歸依)란 말은 돌아가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고통과 불안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마음이 머무를 곳을 찾아 부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불(佛)은 깨달은 존재요, 진리의 스승이며, 법(法)은 그 스승이 깨달은 진리의 길이요, 승(僧)은 그 길을 함께 걷는 청정한 수행자들입니다.  
이 세 가지에 귀의한다는 것은 인생의 방향을 ‘탐욕과 어리석음이 아닌, 지혜와 자비’로 돌리는 것입니다.  

법구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피난처가 있으나, 그 어떤 피난처도 참된 안식처가 될 수 없다.  
오직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귀의한 이에게만 진정한 평화가 있으리라.”  
이 말씀은 삼귀의의 의미를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삶의 전환으로 바라보라는 가르침입니다.  
불자라면 누구나 세 번 절하며 ‘불법승 삼보에 귀의합니다.’라고 서원하지만, 그 서원의 진정한 힘은 우리의 마음이 그 방향으로 돌려질 때 비로소 생겨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삶 속에서 방향을 잃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사람의 마음은 흔들리며, 욕심과 비교, 경쟁이 끝없이 우리를 휘감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다시 삼귀의로 돌아가야 합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누구에게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이 물음이야말로 불자로서 깨어 있는 삶의 시작입니다.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것은, 결국 나의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지혜로 나아가려는 용기를 세우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혼란 속에서도 부처님은 항상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바로 서면 세상이 바르게 보인다.”
이 말씀처럼, 삼귀의는 단지 신앙의 의식이 아니라 혼탁한 세상 속에서 올바르게 보는 눈, 즉 바른 견해(正見)를 세우는 일입니다.  

법(法)에 귀의한다는 것은 진리의 길을 배우는 것입니다.  
앙굿따라 니까야에서는 이렇게 설하셨습니다.  
“법을 배우는 이는 어둠 속에 등불을 켜는 자요, 법을 실천하는 이는 그 등불을 세상에 나누는 자라.” 우리는 모두 부처님 법의 제자입니다.  
매일의 말과 행동 속에서 탐욕을 줄이고, 분노를 다스리며, 타인에게 자비를 베푸는 삶이 곧 법에 귀의한 삶입니다.  
즉, 법에 귀의한다는 것은 이론으로서의 진리를 믿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서의 진리를 살아내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승(僧)에 귀의한다는 것은, 도반들과 함께 바른 길을 걷겠다는 서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홀로 깨달음을 얻으셨지만, 그 길을 걸어가는 이들에게는 도반이 있었습니다.  
승가는 단지 출가 스님들의 모임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불법을 따르며 살아가는 모든 수행자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도반을 만나는 일은, 곧 부처님을 다시 만나는 일과 같습니다.  

삼귀의의 세 가지 귀의처는 이렇게 깨달음과 진리와 공동체로 이어집니다.  
불자는 이 세 가지를 잊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그 안에 자신을 두며 살아갑니다.  
바람이 불고, 세상이 변해도 부처님께 귀의한 마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불자로서의 행복의 기초입니다.  

그렇다면 왜 삼귀의와 오계를 함께 이야기해야 할까요?  
그것은 귀의가 믿음의 출발이라면, 계율은 그 믿음의 실천이기 때문입니다.  
즉, 삼귀의가 마음의 방향을 세우는 일이라면, 오계는 그 마음을 행동의 길로 이어주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서원하고, 몸으로 실천할 때 비로소 불자의 삶은 완전해집니다.  

범망경에서는 이렇게 설합니다.  
“계(戒)는 부처님의 생명이며, 계를 잃으면 불법 또한 사라지리라.”  
계율은 우리를 속박하는 규범이 아니라 삶을 자유롭게 하는 법의 울타리입니다.  
마치 흐르는 물이 둑이 있을 때 방향을 잃지 않듯, 우리의 삶도 계율이 있을 때 고요히 흐릅니다.  
삼귀의가 마음을 바로 세우고, 오계가 삶을 지켜주는 이 둘이 함께할 때 비로소 우리는 행복한 불자가 됩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는 종종 계율이라고 하면 지키기 어려운 약속으로 느낍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결코 부담을 주기 위해 계를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언제나 자비의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제자들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다. 그들에게 계율을 주는 것은 오히려 고통을 멀리하기 위함이다.”즉, 계율은 자유를 위한 약속이며, 행복을 위한 방편입니다.  

살생하지 않음은 생명에 대한 존중이고, 도둑질하지 않음은 정직의 실천이며, 사음(邪淫)을 삼감은 가정과 사회의 신뢰를 지키는 일입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음은 진실의 씨앗을 심는 것이며, 술을 멀리함은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수행입니다. 이 다섯 가지는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 속 말과 행동, 생각 하나하나에 스며 있습니다.  

계율을 지키는 삶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길입니다.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자기 마음 앞에 떳떳한 삶. 그것이 바로 불자에게 주어진 참된 행복입니다.  
그래서 법구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계율을 지키는 이는 향기로운 꽃처럼, 그 향이 바람을 거슬러 온 세상에 퍼지리라.”이 말씀처럼, 계행은 스스로를 밝히고 세상을 맑히는 향기입니다.  

오늘 이 아침, 우리가 부처님께 귀의하고 오계를 새롭게 다짐한다면 그 순간부터 이미 행복은 우리 곁에 있습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계를 지키는 나 안에 있습니다.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을 배우며, 승가와 함께 살아가는 그 마음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열반의 평화의 씨앗이 됩니다.  

법우 여러분, 이제 우리는 오계를 삶 속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오계는 단지 불교의 계율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이자 사회와 가정을 지탱하는 도덕의 근본입니다. 오계를 지키는 것은 단순히 죄를 짓지 않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맑히고 타인에게 평화를 전하기 위함입니다. 즉, 계율은 억제가 아니라 해방이며, 금지가 아니라 자유를 위한 부처님의 지혜로운 방편입니다.

첫째, 살생하지 않는 계(不殺生戒)는 모든 생명에 대한 자비심을 키우는 첫걸음입니다. 작은 벌레 한 마리라도 생명을 해치지 않으려는 그 마음이 곧 부처님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애경(慈愛經)에서는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바라고, 아무도 다른 이를 해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설하셨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존중할 때, 그 순간 우리 마음속의 분노와 폭력은 사라지고 평화가 자리 잡습니다. 그리고 그 평화가 곧 행복의 기초가 됩니다. 살생을 멀리한다는 것은 단순히 칼을 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로도 남을 상처 주지 않고, 생각으로도 남을 미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가 대하는 한 사람에게 미소로 대하고, 한 마디의 말에 따뜻함을 담는 그 순간에 있습니다.

둘째, 도둑질하지 않는 계(不偸盜戒)는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마음을 길러줍니다. 부처님께서는 앙굿따라 니까야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족을 아는 자는 부자이고, 탐욕을 좇는 자는 가난하리라.” 이 말씀은 단순히 물질의 많고 적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풍요를 가르쳐 주십니다.

남의 것을 빼앗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세우는 일입니다. 현대사회는 끝없는 경쟁과 비교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자는 타인의 소유를 부러워하기보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인연과 복을 감사히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도둑질하지 않는 계의 실천입니다. 탐욕은 늘 부족함을 낳고, 감사는 언제나 충만함을 낳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많을수록, 삶은 이미 부처님의 빛으로 채워집니다.

셋째, 삿된 음행을 삼가는 계(不邪淫戒)는 인간관계를 청정하게 하는 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욕망은 불과 같아서, 방일하면 타고, 절제하면 따뜻하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절제의 아름다움을 가르쳐 줍니다. 욕망을 무조건 억누르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신과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지혜를 배우라는 뜻입니다. 음행을 삼간다는 것은 단지 육체적인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청정함을 지키는 일입니다. 부부 간의 신뢰, 가족 간의 존중, 그리고 인간관계의 바름은 모두 이 계에서 비롯됩니다. 불자의 사랑은 집착이 아닌 자비이며, 욕망이 아닌 이해입니다. 그러한 사랑이 있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함께 성장할 수 있습니다.

넷째, 거짓말을 하지 않는 계(不妄語戒)는 진실의 힘을 세우는 계입니다. 세상에서 말은 칼보다 강하다고 합니다. 말 한마디로 사람의 마음을 살릴 수도 있고,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참된 말은 향기로운 꽃과 같고, 거짓된 말은 독이 된 화살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진실된 말은 우리의 마음을 맑게 하고, 타인의 마음을 평화롭게 합니다.

불자의 말은 남을 속이거나 꾸미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자비의 언어가 되어야 합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소문과 말이 넘쳐나는 시대에, 거짓말을 멀리하고 진실한 말을 하는 일은 곧 계행의 실천이자 세상을 밝히는 등불입니다. 한 마디의 바른 말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합니다. 그러니 불자는 언제나 진실을 말하되, 그 말이 상처가 아닌 자비가 되게 해야 합니다.

다섯째, 술을 멀리하는 계(不飮酒戒)는 방일(放逸)을 막고 마음의 청정을 지키는 계입니다. 술은 단지 마시는 음료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을 흐리게 하고 지혜를 가리게 하는 행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방일은 모든 죄악의 문이요, 방일하지 않음은 모든 선행의 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술은 한순간의 즐거움을 주지만, 그 대가로 이성을 잃고 마음을 흐리게 합니다.

불자는 순간의 쾌락보다 마음의 평정을 선택해야 합니다. 술을 멀리한다는 것은 단지 마시지 않는 것을 넘어, ‘내 마음이 흐려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스린다.’는 서원입니다. 세상은 유혹으로 가득하지만, 그 속에서도 마음을 맑게 지키는 자만이 참된 행복을 얻습니다.

이 다섯 가지 계율은 모두 한 가지로 귀결됩니다. 그것은 ‘남을 해치지 말라’는 자비의 마음입니다. 계율의 본질은 억압이 아니라 사랑이며, 금지가 아니라 보호입니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오계를 주신 것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계를 지키는 사람의 마음에는 언제나 평화가 깃듭니다.

증일아함경에서는 “계행을 지키는 자는 스스로의 마음을 지키는 자요, 마음을 지키는 자는 천상의 행복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바로 오계의 참된 의미입니다. 계율을 지키면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도 괴로움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결국 삶 전체가 평화로워집니다.

불자는 오계를 통해 자신을 다스리고, 세상을 이롭게 합니다. 계율을 지킨다는 것은 단지 ‘하지 말라’는 금지의 의미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는 적극적인 행위입니다. 살생하지 않음으로써 생명이 존중받고, 도둑질하지 않음으로써 사회가 신뢰로 서며, 거짓말하지 않음으로써 진실이 자라납니다. 계율은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심어진 부처님의 씨앗입니다. 그 씨앗이 자라날 때, 우리 안에서 자비와 지혜가 피어나며, 그것이 바로 불자의 행복으로 이어집니다.

법우 여러분, 오계를 지키는 것은 완벽한 사람이 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때로는 실수할 수도 있고, 약속을 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다시 돌아오는 마음’입니다. 한 번 무너졌다고 해서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마음, 그것이 불자의 힘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넘어짐을 두려워하지 말고, 일어나지 않음을 두려워하라.” 수행자는 넘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일어서는 그 마음이 바로 정진의 빛입니다. 오계를 지키려는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이미 우리는 수행의 길 위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다섯 가지 계율은 우리가 매일의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불법의 형태입니다. 불자는 그 계율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다듬고, 타인과의 관계를 조화롭게 하고, 사회를 맑게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실천이 쌓여서 결국에는 마음의 행복으로 돌아옵니다. 오계를 지키는 삶은 외로운 길이 아니라, 부처님과 함께 걷는 길이며, 수많은 도반과 더불어 걸어가는 평화의 길입니다.

법우 여러분, 삼귀의와 오계는 불자로서의 신행의 뿌리이자, 삶의 등불입니다.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것은 곧 깨달음의 길로 향하는 결심이며, 오계를 지킨다는 것은 그 결심을 삶으로 실천하는 약속입니다. 믿음과 실천이 하나가 될 때, 불자는 흔들리지 않는 행복을 얻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따르는 이는 고요 속에 머물고, 계를 지키는 이는 스스로 빛을 낸다.” 우리가 삼귀의의 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하고, 오계의 실천으로 자신을 단속한다면, 그 삶은 이미 해탈의 문에 닿아 있습니다.

삶의 고통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삼귀의와 오계는 그 고통을 지혜로 바꾸는 힘이 됩니다. 부처님께 귀의한 마음은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되고, 오계를 지키는 행위는 마음을 맑히는 향기가 됩니다. 믿음으로 시작하고, 실천으로 이어지는 그 길 위에서 불자는 비로소 참된 평화를 얻습니다. 그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행복한 불자의 모습입니다.

오늘 하루도 부처님께 귀의하며, 계율을 지키는 기쁨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작은 일에도 자비를 담고, 말 한마디에도 진실을 담으며, 마음의 등불을 꺼뜨리지 마십시오. 불자의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바로 지금, 부처님께 귀의하는 이 마음에 이미 머물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오늘의 법문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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