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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창포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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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2일(화) 아침방송법문 : “말 한마디가 인연을 맺는다.”
眞虛性宗 2025-12-02 08:05:54, 조회 : 523, 추천 : 0
불기 2569년 12월 2일(화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말 한마디가 인연을 맺는다.”

존경하는 불심사 법우 여러분,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우리가 매일 숨 쉬듯이 내뱉는 '말'에 대해 아주 긴밀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수만 마디의 말을 하며 살아갑니다.
밥을 먹는 것보다, 잠을 자는 것보다 더 많이 하는 행위가 바로 말입니다.
너무나 일상적이기에 우리는 종종 말의 무거움과 그 파급력을 잊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불교의 관점에서 볼 때, 입(口)은 업(구업, 口業)을 짓는 가장 큰 문입니다.

신구의(몸, 입, 생각) 삼업 가운데, 왜 입을 통한 업이 그토록 중요하게 다루어지겠습니까?
말은 형체가 없습니다. 손으로 잡을 수도 없고 눈으로 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형체가 없기에 시공간을 초월하여 날아갑니다.
한번 뱉어진 말은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주 어딘가에 에너지로 남아 반드시 작용을 일으킵니다.
과학자들조차 소리의 파동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하물며 감정과 의도가 실린 인간의 말은 얼마나 강력한 업의 씨앗이 되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숫타니파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는 입안에 도끼를 가지고 나온다.
어리석은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함으로써 그 도끼로 자신을 찍고 남을 찍는다."
참으로 섬뜩하면서도 뼈저린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가슴에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흉터로 남습니다. 물리적인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고 새살이 돋지만, 말로 입은 상처는 10년, 20년이 지나도 그날의 고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우리를 괴롭힙니다.

반대로, 진심을 담은 따뜻한 말 한마디는 죽어가는 사람도 살려내는 생명수가 됩니다.
절망의 끝자락에 선 사람에게 건넨 "괜찮아, 너는 할 수 있어"라는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기도 합니다. 말에는 에너지가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화를 담아 말을 하면 그 말은 독화살이 되어 날아가 상대의 심장을 찌르고, 내가 자비를 담아 말을 하면 그 말은 꽃비가 되어 내려 상대의 마음 밭을 적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짓는 인연의 90퍼센트는 바로 이 말에서 시작됩니다.

좋은 인연도 말로 맺어지고, 철천지원수 같은 악연도 결국 말 한마디의 실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말 한마디를 섞어보면 "아, 이 사람과는 오래가겠구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말속에 담긴 인격과 배려의 향기를 맡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아무리 겉모습이 화려해도 말에 가시가 돋친 사람은 곁에 두고 싶지 않습니다.

옛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말을 유창하게 잘하라는 처세술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고, 그 마음을 어루만지는 진실 된 말의 힘을 강조한 것입니다. 천 냥이라는 거액의 빚은 돈으로만 갚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면 돈보다 더 큰 신뢰라는 자산을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초기 경전에는 말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난디비살라'라는 소의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힘이 장사이고 아주 잘생긴 소 '난디비살라'가 있었습니다.
주인은 이 소를 무척 아끼고 사랑해주었습니다. 어느 날, 주인은 마을 사람들에게 "내 소는 천 수레의 짐도 끌 수 있다"고 자랑을 하며 큰돈을 걸고 내기를 했습니다.
내기 당일, 수레 천 대를 연결해 놓고 주인은 소의 등에 올라타 채찍을 휘두르며 소리쳤습니다.

"이 멍청한 놈아! 어서 끌어라! 이 미련한 짐승아!"
평소 주인의 사랑을 받던 소는 주인의 거친 욕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를 멍청하고 미련한 놈이라니...'
소는 마음에 상처를 입고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주인은 내기에서 져서 전 재산을 잃고 시름에 빠졌습니다.
그날 밤, 소가 꿈에 나타나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제가 언제 멍청하고 미련한 짓을 했습니까? 왜 저에게 그런 험한 말을 하셨습니까? 다시 내기를 하십시오. 이번에는 저에게 부드럽고 다정한 말을 해주십시오."
주인은 다시 빚을 내어 더 큰 내기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나의 소중한 친구여, 사랑스러운 나의 아들이여, 우리 한번 힘을 내보자."
그러자 소는 온 힘을 다해 천 대의 수레를 끌었고, 주인은 큰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법우 여러분, 말 못 하는 짐승도 험한 말에는 상처받고 고운 말에는 감동하여 힘을 씁니다. 하물며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우리 법우님들은 매일 아침 불심사 방송을 들을 때 가장 먼저 천수경을 독송합니다.
천수경의 첫 구절이 무엇입니까? 바로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입니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이것은 입으로 지은 업을 깨끗이 씻어내는 진언입니다.

왜 부처님께서는 수많은 가르침 중에서 구업을 씻는 것을 가장 먼저 하라고 하셨을까요? 입이 깨끗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경전을 읽고 염불을 해도 그 공덕이 새어 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릇이 더러우면 맑은 물을 담아도 금세 오염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불교에서 경계하는 네 가지 구업, 즉 망어, 기어, 양설, 악구가 있습니다.
첫째, 망어(妄語)는 거짓말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둘째, 기어(綺語)는 꾸미는 말입니다. 진실 없이 번지르르하게 아첨하는 말입니다.
셋째, 양설(兩舌)은 두 혀를 놀리는 것입니다. 이쪽 가서 이 말 하고, 저쪽 가서 저 말 하며 이간질하는 것입니다.
넷째, 악구(惡口)는 험한 말입니다. 욕설이나 비난으로 남의 가슴에 못을 박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는 인연을 끊어버리는 칼날과도 같습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말이 너무 많은 말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SNS, 문자, 전화, 그리고 직접적인 대화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소통한다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진정한 소통은 단절되어 가고 있습니다.
말은 많아졌지만, 그 속에 담긴 진심과 온기는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가장 가깝고 소중한 가족에게 상처 주는 말을 너무나 쉽게 합니다.
"당신이 뭘 알아?", "그럴 줄 알았어.", "넌 누굴 닮아서 그 모양이니?", "돈도 못 벌어오면서." 이런 가시 돋친 말들이 차곡차곡 쌓여 부부의 인연, 부모 자식의 인연을 멍들게 하고 병들게 합니다.

밖에서는 남들에게 그렇게 친절하고 교양 있는 사람도, 현관문만 열고 들어오면 폭군으로 변하거나 짜증 섞인 말투로 가족을 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순서가 잘못된 것입니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인연은 바로 내 곁에 있는 가족입니다.
가족에게 하는 말이 부드러워야 집안에 화기가 돌고 복이 들어옵니다.
오늘부터라도 가족에게 "미안하다", "고마워", "사랑해", "고생했어"라는 말을 하루에 한 번씩 꼭 해보십시오.
처음에는 어색할지 몰라도, 그 말의 힘이 가정의 행복을 되찾아 줄 것입니다.

법화경에서는 '화안애어(和顔愛語)'를 강조합니다.
부드럽고 온화한 얼굴(화안)과 사랑스러운 말(애어)로 중생을 대하라는 것입니다.
돈이 없어도, 가진 것이 없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최고의 보시가 바로 이 무재칠시(無財七施)입니다.
미소 짓는 얼굴로 상대를 바라보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 이것이 바로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이고 행입니다. 우리가 절에 와서만 보살이 되려고 하지 말고,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화안애어를 실천하는 살아있는 보살이 되어야 합니다.

말하는 방법에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지혜로운 대화법을 익혀야 합니다.
첫째, '나 전달법(I-message)'을 사용해 보십시오.
"너 때문에 화가 나"라고 상대를 비난하는 대신, "네가 그렇게 행동하니 내 마음이 섭섭하네."라고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주어를 '너'에서 '나'로 바꾸기만 해도 말의 공격성이 사라지고 상대가 내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둘째, '쿠션 언어'를 사용하십시오.
직설적으로 요구하기보다 "죄송하지만", "바쁘시겠지만", "괜찮으시다면"과 같은 부드러운 말을 앞에 붙이는 것입니다. 이 작은 완충재가 관계의 마찰을 줄여줍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는 흔히 "나는 뒤끝이 없어, 그냥 홧김에 한 말이야."라고 스스로를 변호하곤 합니다. 하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뒤끝이 남습니다. 아니, 평생의 한이 되어 가슴에 꽂힙니다. 유리잔을 바닥에 던져 산산조각 낸 뒤에 "미안하다"고 사과한다고 해서, 깨진 유리조각이 다시 원래대로 붙습니까?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듯,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다시 거두어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옛 선지식들은 "말하기 전에 입안에서 세 번 굴려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말을 내뱉기 전에 세 개의 문을 통과시키십시오.
첫 번째 문, '이 말이 진실한가?'
두 번째 문, '이 말이 꼭 필요한가?'
세 번째 문, '이 말이 친절한가?'
이 세 가지 문을 모두 통과하지 못한 말이라면, 차라리 침묵 속에 묻어두는 것이 낫습니다.

침묵은 때로 백 마디 말보다 더 깊은 위로와 평화를 줍니다.
불필요한 말을 줄이는 것, 그것이 바로 구업을 짓지 않는 최고의 수행입니다.
특히 오늘 만나는 첫 번째 사람에게 건네는 말이 여러분 하루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배우자나 자녀에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하루를 시작한다면, 그날 하루는 온통 꼬이고 불쾌한 일들만 일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가족에게 "잘 잤어? 오늘 날씨가 참 춥네, 옷 따뜻하게 입어요."라고 건네는 다정한 말 한마디, 그 한마디가 그날 하루 우리 집안의 공기를 훈훈하게 바꿉니다.

직장에 출근해서 동료에게 "어서 와요, 어제 그 일 처리하느라 고생 많았죠?"라고 건네는 따뜻한 인사, 그 한마디가 삭막한 일터를 사람 사는 곳으로 만듭니다.
말에는 강력한 각인력(刻印力)이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내가 하는 말을 남의 말보다 더 크게 듣고,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내가 습관적으로 "아이고 죽겠다", "짜증 나", "재수 없어"라는 말을 하면, 뇌는 '아, 주인님이 죽고 싶구나, 짜증나는 상황을 원하는구나'라고 인식하여 몸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을 뿜어내고 실제로 그런 상황을 끌어당깁니다.

반대로 "나는 행복해", "감사해", "사랑해", "운이 좋아"라고 말하면 우리 뇌는 정말로 행복한 호르몬인 엔도르핀과 세로토닌을 분비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니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좋은 말을 써야 합니다.
나의 건강과 행복, 나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언어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생활 속의 수행이고, 이것이 바로 입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어떤 씨앗을 심으시겠습니까?
불평과 비난의 씨앗을 심어 고통의 열매를 거두시겠습니까,
아니면 감사와 칭찬의 씨앗을 심어 행복의 열매를 거두시겠습니까?
선택은 오직 여러분의 혀끝에 달려 있습니다.
혹시 지금 누군가와의 관계가 꼬여 있어 답답하십니까?
오랫동안 연락을 끊고 지내는 친구나 형제가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그 매듭을 푸는 열쇠도 말에 있습니다.
자존심을 조금만 내려놓고 먼저 다가가십시오.
"그동안 잘 지냈어?", "그때는 내가 미안했어", "고마워", "보고 싶다"라고 먼저 말해보십시오. 그 진심 어린 한마디가 천 리 밖의 얼어붙은 마음도 녹이고 끌어당기는 기적 같은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인연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짓고 내가 가꾸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농사의 씨앗은 바로 나의 입에서 나오는 따뜻한 말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구시화문(口是禍門)'이라 했습니다.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구시복문(口是福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입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재앙이 들어오는 문이 되기도 하고, 만복이 들어오는 문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의 입을 복을 짓는 문으로 활짝 여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향기가 되어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그 행복이 돌고 돌아 다시 여러분에게 더 큰 축복으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입니다.
찬바람이 부는 12월의 아침, 옷깃을 여미는 추위 속에서도 우리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시린 손을 녹여주는 따뜻한 난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캄캄한 어둠 속 길을 비추는 등불이 되기를 간절히 서원합니다.

말 한마디에 천지신명이 감응하고, 말 한마디에 삼천대천세계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말이 곧 인격이고, 말이 곧 그 사람의 미래입니다.
오늘 불심사 아침방송을 들으시는 모든 법우님들께서는 청정한 구업(口業)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을 가득 맺으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가슴에 새길만한 시 한 편을 소개해 드리며 법문을 맺을까 합니다.
어느 옛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말하기 좋다 하여 남의 말 말을 것이,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을.
말로서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법우 여러분, 말을 줄이고, 꼭 필요한 말은 아껴서 하되, 그 말에는 반드시 진심과 자비를 담으십시오.
그것이 바로 불자의 품격이며, 부처님을 닮아가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대덕심 [2025-12-02] :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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