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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19일(월) 아침방송법문 : “비우고 참회할 때 새 복이 들어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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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9 07:54:35, 조회 : 480,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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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70년 1월 19일(월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비우고 참회할 때 새 복이 들어온다.”
법우 여러분, “비우고 참회할 때 새 복이 들어온다.”는 이 말씀은 섣달 초하루 법회일에 가장 어울리는 수행의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참회를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비는 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에서 참회는 과거를 후회하며 자신을 낮추는 행위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부터 다시 바르게 살겠다는 깨어 있는 결단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이 어두우면 아무리 많은 복을 쌓아도 그 복을 담아낼 그릇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참회는 복을 부르는 수행이 아니라, 복이 머물 수 있는 마음을 만드는 수행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가 비워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재물이 많아서가 아니라, 생각이 많아서 마음이 무거운 것은 아닙니까.
사람에 대한 서운함, 자신에 대한 실망,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가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마음이 가득 차 있으면 새로운 인연도, 새로운 은혜도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비운다는 것은 버린다는 뜻이 아니라, 쥐고 있던 손을 잠시 펴는 일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집착이 사라질 때 지혜가 드러난다고 하셨습니다.
참회는 바로 이 집착을 내려놓는 첫 수행입니다.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도 내려놓고, 남을 원망하던 마음도 내려놓으며, “그때의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연민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참회의 시작입니다.
법우 여러분, 섣달 초하루는 한 해의 끝자락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문턱과도 같은 날이며 그래서 이 날의 기도와 법문은 무엇을 더 얻을 것인가 보다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가를 먼저 묻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복을 이야기할 때 건강과 재물과 형통함을 먼저 떠올리지만 부처님께서는 복의 뿌리는 외부 조건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에 있다고 분명히 가르치셨습니다.
마음이 어지럽고 가득 차 있으면 아무리 좋은 인연이 와도 그 인연을 알아보지 못하고 이미 받은 은혜조차 부담으로 느끼게 되며 그래서 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 때문에 스스로 문을 닫게 됩니다.
비운다는 것은 가진 것을 모두 없애는 것이 아니라 집착하고 붙들던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며 참회는 과거를 파헤치며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삶을 다시 바로 세우는 용기 있는 선택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참회를 죄의 고백으로만 보지 않으셨고 오히려 무명과 집착을 알아차리고 다시 깨어나는 지혜의 수행으로 보셨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가장 많이 짊어지고 사는 짐은 물질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서운함과 풀지 못한 감정과 스스로를 향한 자책과 비교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의 짐을 내려놓지 못하면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고 기도는 간절함이 아니라 조급함으로 변해 버립니다.
그래서 섣달 초하루의 참회는 잘못을 세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이며 한 해 동안 나도 모르게 쌓아온 원망과 집착과 욕심을 하나씩 내려놓는 수행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는 종종 과거의 나를 붙잡고 현재의 나를 괴롭히며 그때는 왜 그렇게 했을까라는 질문으로 스스로를 몰아세우지만 부처님 가르침에서는 그 마음마저도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그때의 나는 그때의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고 지금의 나는 지금의 조건 속에서 다시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참회의 시작입니다.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결국 남도 용서하지 못하게 만들고 그 마음은 다시 내 삶을 옥죄는 업장이 되어 돌아옵니다.
비움은 바로 이 고리를 끊는 지혜이며 참회는 그 지혜를 실제 삶에서 실행하는 첫걸음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업장이란 과거의 행동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행동을 붙잡고 계속 반복하는 마음의 습관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보다 더 큰 문제는 지나간 일을 계속 마음속에서 되새기며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굳어지는 데에 있습니다.
참회를 통해 우리는 이 굳어진 마음을 풀어내고 다시 유연해질 수 있으며 이 유연함 속에서 새로운 인연과 새로운 복이 자연스럽게 스며듭니다.
법우 여러분, 비우는 수행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작은 선택의 반복 속에서 서서히 자라납니다.
오늘 한 번 덜 화내고 오늘 한 번 덜 따지고 오늘 한 번 말하기 전에 잠시 멈추는 그 순간이 바로 비움의 수행이며 참회의 실천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비우면 삶은 신기하게도 조금씩 가벼워지고 그 가벼움 속에서 우리는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은혜와 도움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복은 쫓아다니며 구하는 것이 아니라 복이 머물 수 있는 마음을 가꾸는 데서 시작된다고 하셨습니다.
섣달 초하루의 기도는 그래서 무엇을 이루어 달라는 청원보다 내 마음이 복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되게 해 달라는 발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릇이 깨끗하면 맑은 물이 자연히 담기고 그릇이 기울어지지 않으면 물은 오래 머무를 수 있습니다.
참회는 이 그릇을 씻는 일이며 비움은 이 그릇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법우 여러분, 삶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잠시 멈추어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내 마음이 너무 많은 것을 붙잡고 있지는 않은지, 혹시 놓아도 될 감정까지 꼭 쥐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조용히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버리라고 하지 않으셨고 다만 괴로움을 낳는 집착만은 내려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집착을 내려놓을 때 삶은 비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숨 쉴 공간이 생기고 그 공간 속에서 감사와 평안과 새로운 복이 자라납니다.
비움은 상실이 아니라 회복이며 참회는 벌이 아니라 새 출발입니다.
섣달 초하루 이 아침에 마음을 비우고 참회하는 법우 여러분의 기도는 이미 복의 문 앞에 서 있는 기도이며 그 문을 여는 열쇠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의 마음가짐입니다.
법우 여러분, 이제 우리는 비움과 참회가 왜 수행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되는지를 마음 깊이 새겨볼 시간에 이르렀습니다.
부처님께서 참회를 설하실 때 늘 함께 강조하신 것은 자책이 아니라 전환이었고 후회가 아니라 깨어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참회란 과거의 나를 심문대에 세우는 일이 아니라 과거의 나를 내려놓고 지금의 나를 다시 세우는 일이며 그래서 참회는 언제나 현재형 수행입니다.
섣달 초하루라는 이 날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 현재의 선택을 통해 한 해의 마지막을 맑게 정리하고 다가오는 시간을 가볍게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한 해를 돌아보며 잘한 일보다 못한 일에 더 오래 머물고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 채 다음 해를 맞이하곤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에서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무거운 업장이며 가장 깊은 집착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지나간 일을 붙잡고 계속 자신을 책망하는 것은 참회가 아니라 또 다른 집착이며 그 집착은 삶의 문을 닫아버리는 결과를 낳습니다.
비우고 참회한다는 것은 바로 이 마음의 매듭을 하나씩 풀어내는 작업이며 풀어낼 때마다 마음에는 숨 쉴 공간이 생기고 그 공간 속으로 새로운 인연과 새로운 복이 스며듭니다.
법우 여러분, 복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선물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드는 인연입니다.
마음이 닫혀 있으면 복도 닫히고 마음이 열리면 복도 함께 열리며 이 단순한 이치를 우리는 삶 속에서 수없이 경험해 왔습니다.
힘들고 지칠수록 작은 일에도 짜증이 나고 고마움을 느끼기 어려워지듯이 마음이 가벼워질수록 사소한 것에서도 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은혜를 발견하는 눈이 바로 복을 알아보는 눈이며 참회와 비움은 이 눈을 다시 열어주는 수행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이 맑아지면 길은 스스로 열린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외부 환경이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내 마음부터 맑히라는 가르침입니다.
섣달 초하루의 기도는 그래서 무엇을 이루어 달라는 요구보다 내 마음이 복을 알아보고 복을 머물게 할 수 있도록 바르게 쓰이게 해 달라는 발원이 되어야 합니다.
법우 여러분, 삶은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인간관계 또한 언제나 뜻대로만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세상이나 사람을 바꾸려 애쓰기보다 먼저 내 마음의 태도를 돌아보는 수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혹시 아직 내려놓지 못한 서운함이 남아 있는지, 혹시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마음속에 머물러 있는지, 혹시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지는 않은지 조용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이 마음들을 그대로 안고 새해를 맞이한다면 아무리 많은 기도를 드려도 그 기도는 무거운 짐을 실은 채 길을 떠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결심하여 그 짐을 하나 내려놓는다면 마음은 훨씬 가벼워지고 기도는 곧장 길을 찾게 됩니다.
비움은 포기가 아니라 정리이며 참회는 벌이 아니라 회복이라는 사실을 이 섣달 초하루 아침에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보시기 바랍니다.
부처님께서는 수행이 깊어질수록 삶이 단순해진다고 하셨는데 이 단순함은 욕심이 줄어들고 비교가 사라지며 자기 자신과 화해하게 될 때 자연스럽게 찾아옵니다.
자기 자신과 화해하지 못한 사람은 늘 마음속에서 싸움을 벌이게 되고 그 싸움은 결국 주변 인연들에게까지 번지게 됩니다.
반대로 자신과 화해한 사람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여유가 깃들고 그 여유가 곧 복이 되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선업의 흐름이며 참회와 비움이 새로운 복을 불러오는 이유입니다.
법우 여러분, 수행자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자주 살피는 사람입니다.
오늘 하루 한 번이라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오늘 하루 한 번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면 그 하루는 이미 복된 수행의 하루입니다.
섣달 초하루의 기도는 하루의 기도가 아니라 남은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우는 기도이며 이 방향이 바로 서 있을 때 크고 작은 인연들은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찾아옵니다.
새 복이 들어온다는 것은 갑자기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얻게 된다는 뜻이며 이 마음이야말로 가장 큰 복입니다.
이 마음을 지닌 사람은 어려움 속에서도 길을 찾고 평범한 하루 속에서도 감사할 줄 알며 인연이 바뀔 때에도 원망 대신 이해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법우 여러분,
이제 섣달 초하루 아침을 지나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발원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쌓아온 집착을 내려놓겠습니다, 미처 다 알지 못했던 제 마음을 용서하겠습니다, 그리고 새로 오는 인연을 열린 마음으로 맞이하겠습니다.”
이 발원이 바로 참회의 완성이며 이 완성 위에서 새로운 복은 이미 길을 찾기 시작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언제나 멀리 있지 않고 오늘 이 자리에서 바로 실천될 수 있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비우고 참회하는 이 아침의 마음을 하루로 이어가고 하루를 한 달로 이어가며 그 한 달을 다시 한 해의 방향으로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삶 자체가 기도가 되고 수행이 되며 그 삶 속에서 맺히는 모든 인연이 곧 복이 됩니다.
이 섣달 초하루 아침에 드린 법우 여러분의 기도가 헛되지 않기를 발원하며 비움과 참회로 맑아진 마음 위에 새해의 복된 인연이 차곡차곡 쌓이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부처님 가피가 법우 여러분의 오늘과 남은 모든 날 위에 늘 함께하시기를 발원하며 이 법문을 마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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