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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22일(목) 아침방송법문 :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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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2 08:08:52, 조회 : 474,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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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70년 1월 22일(목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
법우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괴로움이 없는 날을 거의 경험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으며 괴로움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숨 쉬는 모든 존재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있는 보편적인 현실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우리는 크고 작은 걱정을 안고 하루를 시작하고, 몸의 불편함이나 마음의 불안,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갈등과 상처,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 속에서 스스로도 모르게 괴로움과 동행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어떤 법우님들은 “이 괴로움이 언제쯤 끝날까요.”라고 묻고, 또 어떤 분들은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계속 생길까요.”라고 하소연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질문 앞에서 우리를 위로하기보다 먼저 삶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도록 이끌어 주셨으며, 그 첫 번째 가르침이 바로 “이것이 괴로움이다.”라는 선언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늙음도 괴로움이고 병듦도 괴로움이며 죽음도 괴로움이라고 하셨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 역시 괴로움이며 원하지 않는 것과 만나야 하는 것 또한 괴로움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절망하게 만들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괴로움을 외면하지 말고 정면으로 바라보라는 자비로운 초대입니다.
우리는 흔히 괴로움을 없애기 위해 바깥을 먼저 바꾸려고 애쓰지만,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의 진짜 뿌리는 바깥의 조건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음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사람의 말 한마디, 사건 하나, 환경의 변화가 괴로움의 계기가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곧바로 괴로움이 되는 것은 아니며 그 모든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붙잡느냐에 따라 괴로움은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합니다.
같은 말을 들어도 어떤 이는 웃어넘기고 어떤 이는 밤잠을 설칠 만큼 괴로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의 근본 원인을 갈애와 집착이라고 하셨는데, 갈애란 ‘이래야 한다.’ ‘이것만은 꼭 가져야 한다.’ ‘이 상황은 절대 바뀌면 안 된다’는 마음이며 집착이란 그 생각을 놓지 못하고 계속 붙잡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흔히 행복을 위해 집착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집착은 행복이 아니라 괴로움을 만들어 내는 가장 확실한 재료입니다.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할수록 삶은 거칠어지고, 사람은 점점 더 쉽게 상처받으며, 마음은 늘 긴장 상태에 머물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집착의 마음을 불과 땔감에 비유하셨는데, 불은 땔감이 없으면 타오르지 못하듯 괴로움 또한 집착이라는 땔감이 있을 때만 계속해서 번져 갑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마음에 걸릴 때 그 말을 계속 곱씹고 붙잡을수록 괴로움은 커지고, 이미 지나간 일을 반복해서 떠올리며 ‘왜 그랬을까’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하고 집착할수록 마음은 현재에서 멀어집니다.
괴로움은 지금 이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붙잡고 놓지 않는 마음속에서 계속 재생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삶을 포기하거나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그 괴로움에 끌려가지 않는 지혜를 기르는 것입니다.
괴로움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이 괴로움이 지금 내 마음에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이미 괴로움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느낌을 느낌으로만 알아차릴 때 집착이 생기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괴로움을 나와 동일시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내가 괴롭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괴로움은 나 자신이 되지만, ‘괴로운 느낌이 일어나고 있다’고 바라보면 괴로움은 하나의 현상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 작은 차이가 수행에서는 매우 큰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가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는 괴로움이 강해서가 아니라, 괴로움을 붙잡고 있는 시간이 너무 길기 때문입니다.
괴로움은 본래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과 같지만, 우리는 그 손님에게 자리를 내주고 차를 대접하며 오래 머물도록 허락해 왔습니다.
이제부터는 괴로움이 찾아오더라도 ‘아, 손님이 왔구나.’ 하고 알아차린 뒤 다시 보내는 연습을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아침, 부처님께서 열어주신 괴로움의 진실을 마음에 새기며, 괴로움을 없애려 애쓰기보다 괴로움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 옮겨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이 이해가 깊어질수록 괴로움은 더 이상 우리 삶의 주인이 아니라, 수행의 스승이 되어 우리를 지혜의 길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이제 우리는 괴로움의 본질을 이해하는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그러나 괴로움의 실체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며, 괴로움이 어디에서 오고 어떻게 사라지는지, 그리고 실제 생활 속에서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참다운 자유와 평온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길을 사성제라는 네 가지 진리로 정리해 주셨고, 그 진리를 바탕으로 팔정도라는 실천의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사성제와 팔정도는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가르침입니다.
첫 번째 진리는 고제(苦諦), ‘이것이 괴로움이다.’라는 진리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을 회피하거나 부정하지 말고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고 하셨으며, 괴로움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순간부터 괴로움의 힘은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누군가의 말 때문에 마음이 흔들릴 때, 상황이 뜻대로 되지 않아 괴로울 때, 몸이 아파서 고통이 밀려올 때, 그 괴로움을 없애려 애쓰기보다 그 괴로움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있는 그대로 비추어 보는 것입니다.
괴로움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단순한 반응에서 벗어나 관찰의 자리에 서게 되고, 바로 그때 괴로움의 성질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 진리는 집제(集諦), 괴로움이 생겨나는 원인에 대한 진리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의 근본 원인을 갈애(渴愛)라고 하셨으며, 갈애란 ‘이대로는 안 된다’ ‘반드시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목마름 같은 집착입니다.
우리는 늘 과거에 대한 집착, 미래에 대한 불안, 현재 상황에 대한 불만 속에서 괴로움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고, 이 마음이 바로 괴로움의 씨앗을 계속 물주고 키우는 힘이 됩니다.
사람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할수록 더 괴로워지고, 환경이 바뀌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할수록 마음은 점점 더 좁아져 갑니다.
따라서 괴로움의 원인을 밖에서 찾는 대신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애와 집착을 살피는 것이 수행의 핵심입니다.
세 번째 진리는 멸제(滅諦), 괴로움은 소멸될 수 있다는 진리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커다란 희망이며, 괴로움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깨뜨리는 위대한 선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의 원인이 제거되면 괴로움 또한 반드시 사라진다고 가르치셨고, 이 멸(滅)은 단순한 고통의 부재가 아니라 마음이 본래의 고요와 자유로움으로 돌아가는 경지를 말합니다.
마치 흐린 하늘이 걷히면 저절로 푸른 하늘이 드러나듯, 마음속 집착이 사라지면 괴로움도 자연스럽게 소멸합니다.
이 멸의 상태는 평범한 사람에게도 가능하며, 오늘 이 자리에서 숨을 바라보는 순간에도 그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네 번째 진리는 도제(道諦),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실제적인 길, 즉 팔정도입니다.
팔정도는 수행자만을 위한 길이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여덟 가지의 실천입니다.
팔정도를 완벽히 실천해야만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팔정도의 방향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그 자체가 이미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삶입니다.
팔정도의 첫 번째는 정견(正見)입니다.
정견이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눈이며,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와 연기(緣起)의 진리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변하고, 고정된 실체가 없으며,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진리를 이해하면 우리는 더 이상 집착과 분노로 삶을 바라보지 않게 됩니다.
정견을 갖춘 사람은 작은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상대의 말 한마디에도 마음이 쉽게 상하지 않으며, 삶의 모든 순간을 수행의 기회로 삼습니다.
두 번째는 정사유(正思惟)입니다.
정사유란 바른 방향으로 마음을 흘러가게 하는 것이며, 탐욕과 분노, 해로움의 생각이 아닌 이로움과 자비의 마음으로 생각을 이끄는 것입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나’가 아니라 ‘이 괴로움은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라고 바라보고, ‘저 사람이 문제다’가 아니라 ‘내 마음은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라고 살피는 것, 이것이 정사유입니다.
세 번째는 정어(正語), 바른 말을 짓는 것입니다.
괴로움은 말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으며, 우리가 내뱉는 말은 곧 마음의 상태입니다.
남을 헐뜯는 말, 화내며 쏟아내는 말, 진실이 아닌 말은 결국 우리 마음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괴로움을 키웁니다.
반대로 따뜻한 말, 건너는 말, 고무시키는 말은 자신과 상대의 마음을 동시에 밝힙니다. 말을 바르게 짓는 것은 곧 괴로움을 줄이는 가장 즉각적인 수행입니다.
네 번째는 정업(正業), 몸으로 짓는 바른 행동입니다.
해로운 행위를 멈추고 선한 행동을 실천할 때 마음은 가벼워지고 괴로움이 줄어듭니다.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이 행동이 나와 남에게 도움이 되는가.’를 한 번 되짚어 보는 습관만으로도 많은 괴로움이 예방됩니다.
다섯 번째는 정명(正命), 바른 삶의 방식을 뜻합니다.
탐욕과 해로움을 기반으로 한 삶은 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며 괴로움의 조건을 키우지만, 양심과 자비에 기반한 삶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수행의 토대를 단단하게 합니다. 바른 생업은 단순한 경제 활동을 넘어 수행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여섯 번째는 정정진(正精進)입니다.
정진의 핵심은 과도한 욕심이 아니라 꾸준함이며, 괴로움을 없애겠다는 다급함이 아니라 수행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하루 10분이라도 호흡을 바라보고, 하루 한 번이라도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의 정진을 이어 가는 것, 이것이 정정진입니다.
일곱 번째는 정념(正念),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잃지 않는 마음입니다.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히면 괴로움이 깊어지고, 미래의 걱정에 머물면 불안이 커지지만,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마음은 고요해지고 괴로움은 약해집니다.
정념은 머무르는 연습이며, 괴로움이 와도 그 괴로움에 휩쓸리지 않고 바라볼 수 있게 해줍니다.
마지막 여덟 번째는 정정(正定), 바른 삼매의 상태입니다.
정정은 마음이 고요해져 흔들리지 않는 상태이며, 이 고요함 속에서 괴로움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합니다. 깊은 삼매에 들지 않더라도, 호흡에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도 괴로움이 약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팔정도는 결코 멀리 있는 수행이 아니라 우리의 하루 속에 녹아 있는 실천입니다.
지금 실천할 수 없으면 평생 실천할 수 없으며, 지금의 작은 실천이 모여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큰 힘이 됩니다.
이 팔정도의 길을 조금씩이라도 따라가다 보면 괴로움은 반드시 약해지고, 삶은 새로운 빛을 띠기 시작합니다.
법우 여러분, 이제 우리는 괴로움이 삶의 실패나 벌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마주하는 자연스러운 진실이며, 동시에 수행으로 나아가게 하는 문이라는 사실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괴로움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해해야 할 대상이며, 없애야 할 적이 아니라 바르게 대면해야 할 스승과도 같은 존재임을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일러주셨습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더 이상 괴로움이 생기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이 일어나더라도 그 괴로움에 끌려가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 줄 아는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이 힘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으며, 매일의 삶 속에서 조금씩 길러지는 수행의 결과입니다.
오늘 하루 괴로움이 올라올 때 숨을 한 번 바라보고, 말을 하기 전에 마음을 한 번 살피고, 판단하기 전에 멈추는 연습을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괴로움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수행이 특별한 시간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고, 쉬는 모든 순간 속에서 이어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가정에서의 작은 갈등, 일상에서의 불편함, 몸과 마음의 노쇠함조차도 수행의 재료로 삼을 수 있을 때 괴로움은 점점 힘을 잃게 됩니다.
법우 여러분, 괴로움이 다시 찾아오더라도 스스로를 탓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괴로움이 있다는 것은 아직 마음이 살아 있고, 깨어 있고, 배우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괴로움이 왔을 때 예전처럼 휩쓸리는 삶을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한 번 더 숨을 고르고 바라볼 것인가 하는 선택입니다.
오늘 나눈 이 법문이 당장의 괴로움을 모두 없애주지는 못하더라도, 괴로움 앞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비춰주는 작은 등불이 되기를 발원합니다.
그 등불을 하루하루 밝히며 살아갈 때, 괴로움은 더 이상 우리 삶을 지배하는 주인이 아니라 지혜로 나아가게 하는 인연이 될 것입니다.
이 아침, 부처님께서 열어주신 길을 마음에 새기며,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으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수행을 이어가시길 두 손 모아 발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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