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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26일(월) 아침방송법문 : “비우면 보이고, 고요하면 들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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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6 08:21:51, 조회 : 476,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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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70년 1월 26일(월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비우면 보이고, 고요하면 들립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우리는 “비우면 보이고, 고요하면 들립니다.”라는 주제로 부처님 성도재일의 의미를 함께 새기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수행의 한 문장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걸어가신 길 전체를 함축하고 있는 가르침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왕자의 신분과 안락한 삶을 내려놓고 출가하셨습니다.
그 출가는 무언가를 얻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이미 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는 선택이었습니다.
권력과 부, 명예와 안락함을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세상의 실상이 보이기 시작했고, 중생의 고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비움이 먼저인 이유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욕심과 집착으로 가득 차 있으면,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고, 사람을 사람 그대로 만나지 못합니다.
내 생각, 내 기준, 내 상처가 앞서기 때문에 늘 왜곡된 모습만 보게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수행의 첫걸음으로 탐욕을 비우고, 성냄을 비우고, 어리석음을 비우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비운다는 것은 버린다는 뜻이 아니라, 붙잡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생각이 일어나도 붙잡지 않고, 감정이 올라와도 거기에 매달리지 않으며, 상황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그것을 나의 전부로 여기지 않는 태도입니다.
이 비움이 시작될 때, 우리는 비로소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비움과 함께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 고요입니다.
마음이 가벼워지면 자연히 소리가 줄어들고, 소리가 줄어들면 고요가 찾아옵니다.
이 고요는 침묵과 다릅니다.
고요는 생명이 살아 있는 상태이며, 깨어 있는 상태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고요 속에서 사성제의 이치를 보셨고, 연기의 진리를 들으셨습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가 기도를 하거나 수행을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도 바로 이 고요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약사여래 부처님께 기도드릴 때도, 병이 낫기를 바라는 마음 이전에 내 마음의 소란을 먼저 내려놓아야 합니다.
마음이 고요해질 때, 치유의 힘은 비로소 작용하기 시작합니다.
약사여래의 가피는 요란한 기적이 아니라, 조용히 스며드는 치유입니다.
성도재일은 깨달음의 날이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묻는 날이기도 합니다.
나는 무엇을 너무 많이 붙잡고 있는지,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소리는 무엇인지, 오늘 하루만이라도 무엇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이 질문에 답하려는 그 마음 자체가 이미 수행이며, 이미 성도의 길 위에 서 있는 모습입니다.
이제 법우 여러분의 삶으로 돌아와 보십시오.
요즘 가장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해결하려 애쓰기 전에, 잠시 내려놓고 고요히 바라보는 연습부터 해 보시기 바랍니다. 비우면 보이고, 고요하면 들린다는 이 단순한 진리가, 바로 그 순간 여러분의 삶에서도 작용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부처님 성도재일에 우리에게 전해주는 가장 현실적인 가르침입니다.
법우 여러분, 특히 오늘은 성도재일과 약사재일이 겹치는 뜻 깊은 날이니만큼, 부처님께서 어떻게 비우심으로써 보셨는지, 어떻게 고요 속에서 들으셨는지, 그리고 우리 일상에서 이것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를 한층 더 세밀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새벽을 떠올려 보십시오.
보리수 아래에서 마지막 번뇌의 그림자를 마주하시던 부처님은, 마왕 파순이 일으킨 온갖 괴로움과 유혹, 두려움과 의심을 단 한 번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없애려 하거나 밀어내려 한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작용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며 묵묵히 앉아 계셨습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봄이 바로 비움의 출발점이며, 고요의 실천이었습니다.
대반야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지혜는 고요한 마음에 머물고, 고요는 비움에서 시작된다.”이 문장은 수행의 전체 흐름을 단 한 줄에 담은 말씀입니다.
고요가 지혜를 불러오고, 비움은 고요를 불러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우연히 얻어지는 깨달음이 아니라, 비움과 고요가 익어지면서 자연스레 드러나는 진리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먼저 세상의 어지러움을 비우셨습니다.
그 어지러움 속에서 태어난 욕망과 비교심, 경쟁심과 집착을 비우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세상도 이와 같습니다.
자신을 쉬지 않고 몰아붙이고, 남과 비교하며 초조함을 키우고, 불안과 걱정 속에서 스스로를 소모시키면서도 정작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도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 모든 소란이 텅 빈 것(공)임을 보셨습니다.
텅 빈 줄 알았기 때문에 다시 채우려 애쓰지 않으셨고, 다시 채우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이 고요해졌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복잡한 이유는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너무 붙잡고 있기 때문이며, 사람의 말에 너무 휘둘리기 때문이며, 상황을 내 뜻대로 움직이려는 욕심이 클 때 마음은 바로 어두워지고 요란해집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먼저 내려놓는 수행을 강조하셨습니다.
가지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질 집착을 내려놓고, 내 생각이 항상 옳다는 아집을 내려놓으면 세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우면 보인다는 이 말은 비움이 목적이 아니라 보임이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비움은 길이고 보임은 목적입니다.
마음이 비워질 때 비로소 법(法)이 보이고, 인연이 보이고, 타인의 마음이 보이며, 나의 본래 마음이 보입니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실 때 바로 이 보임이 일어났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연기(因緣)로 존재하고, 조건이 모이면 생겨나고 조건이 사라지면 사라지는 법이라는 진리가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그 진리가 드러나는 순간 번뇌와 괴로움의 뿌리가 뽑히고 해탈의 문이 열렸습니다.
이것이 성도재일의 본뜻입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수행은 ‘고요하면 들린다.’는 말씀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고요할 때 중생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고요할 때 연기의 진리가 들렸고, 고요할 때 법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고요함은 귀가 조용한 상태가 아니라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입니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때 사람의 말도 제대로 들립니다.
마음이 고요할 때 가족의 마음도 들리고, 주변 사람들의 숨결도 들리고, 때로는 나 자신이 미처 알아채지 못한 내면의 울음도 들립니다.
우리는 왜 들리지 않을까요.
시끄러워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시끄럽기 때문입니다.
걱정 때문에, 너무 시끄러워서 남의 말도, 나의 말도, 부처님의 말씀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중아함경에서 “고요한 마음에 진리가 머문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법우 여러분, 고요는 수행의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고요해지면 들리고, 들리면 바뀌고, 바뀌면 성숙합니다. 즉 고요가 깨달음 전체를 열어주는 문입니다.
성도재일에 우리가 이 말씀을 깊이 되새겨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수행자의 일상 그 자체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은 먼 종교적 사건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가에 따라 가까이 다가오는 현실입니다.
비우고 고요하면 나의 삶에도 보임과 들림이 찾아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누군가에게 서운함을 느낄 때, 그 서운함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따지기 전에 마음을 먼저 비워 보면 새로운 것이 보입니다.
상대의 말 속에 담긴 다른 뜻이 보이고, 나의 오해가 보이며, 오히려 그동안 내가 놓쳤던 따뜻한 마음이 보입니다.
이때 마음은 고요해지고, 고요해지니 상대의 진심도 들립니다.
또 어떤 날은 인생이 막다른 길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바뀌지 않고, 해결책이 보이지 않고, 답답함이 마음을 막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계속 붙잡고 있는 마음을 먼저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을 내려놓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만 바라보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고요해진 자리에서 비로소 길이 보입니다.
길이 보이는 순간, 그것이 깨달음의 작은 씨앗입니다.
여기서 약사여래 부처님의 의미도 함께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약사여래의 치유는 몸의 병보다 마음의 병을 먼저 치유하시는 가르침입니다.
마음이 고요해지지 않으면 치료도 더디고, 마음이 비워지지 않으면 회복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약사경에서는 “마음이 바르면 병이 반쯤 이겨진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마음이 바름은 마음이 고요해진 상태를 말합니다.
고요한 마음에서 회복의 힘이 나오고, 그 회복의 마음이 다시 몸과 인연을 밝히기 시작합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성도재일과 약사재일을 맞아 우리가 해야 할 수행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첫째, 내려놓는 비움.
둘째, 멈추는 고요.
셋째, 비움과 고요 속에서 드러나는 보임과 들림.
이 세 가지가 합쳐져 깨달음의 문이 열립니다.
비움과 고요는 먼 수행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 한 번만이라도 내 마음이 지금 무엇에 붙잡혀 있는가를 보십시오.
그리고 그 붙잡힌 것을 잠시 내려놓아 보십시오.
내려놓는 순간, 마음이 환해지고, 그 환함 속에서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고, 보이지 않던 길이 보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길이며, 성도재일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현실적인 선물입니다. 오늘 하루가 비움으로 밝아지고 고요로 깊어지는 수행의 하루가 되기를 진심으로 발원드립니다.
법우 여러분, 앞서 우리는 부처님 성도재일의 깊은 의미와 비움과 고요의 가르침을 수행자의 눈으로 넉넉히 살펴보았습니다.
이제는 이 가르침이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실제로 작용하는지, 그리고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조금 더 현실적으로 마음에 새겨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비운다는 것은 단순히 물건을 비우거나 생각을 억지로 지우는 일이 아닙니다.
비움이란 ‘내가 지금 쥐고 있는 것의 무게를 알아차리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내가 지금 가장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분노인지, 걱정인지, 비교심인지, 아니면 오래된 상처인지, 그 마음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차릴 때 비움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억지로 없애려 하지 않고, 다만 ‘놓아도 되는 것’임을 인정하는 순간 비움은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또한 고요함 역시 억지로 조용함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식사 준비를 하다가도, 직장에서 복잡한 일이 있어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마음이 흔들려도, 그 모든 순간에 우리는 아주 짧게라도 멈출 수 있습니다.
멈추고 한 번 숨을 고르면 마음의 결이 바뀌고, 바로 그 짧은 멈춤이 고요의 시작입니다.
고요는 긴 시간이 아니라 ‘깨어 있는 짧은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수행입니다.
성도재일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날이지만, 오늘 우리에게는 ‘나도 지금 여기에서 작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날’입니다.
큰 깨달음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오늘 하루 내가 해야 할 말 한마디를 바르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깨달음이고, 누군가에게 상처 줄 수 있는 행동을 멈춘다면 그것이 깨달음이며, 욕심이 올라오는 순간 잠시 멈추어 비워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성도의 길입니다.
약사재일 또한 같은 흐름입니다. 약사여래께서는 우리에게 몸의 병만이 아니라 마음의 병, 인연의 병, 집착의 병을 먼저 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마음을 고요히 하면 치유의 바람이 스스로 불기 시작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이 두 날이 겹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비움–고요–치유–깨달음’이라는 한 흐름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인연입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하루를 시작하시면서 이렇게 마음속으로 작게 다짐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을 잠시 놓아 보겠습니다.”
“마음이 시끄러울 때 잠시 멈추겠습니다.”
“비우고 고요히 머물러 보겠습니다.”
이 작은 다짐이 오늘 하루를 밝게 만들고, 이 밝음이 여러분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따뜻하게 비춰 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주제를 다시 마음에 담아 봅니다.
비우면 보입니다. 고요하면 들립니다. 보이면 바뀌고, 들리면 성숙합니다.
오늘 하루가 비움으로 환해지고 고요로 깊어지며, 그 고요 속에서 작은 깨달음이 피어나는 귀한 날이 되기를 부처님 전에 발원드립니다.
불기 2570년 성도재일, 그리고 약사재일의 가피가 법우 여러분 가정마다 두루 머물기를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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