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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1일(수) 아침방송법문 : “관음재일에 묻는 우리의 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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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1 08:10:07, 조회 : 458,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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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70년 2월 11일(수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관음재일에 묻는 우리의 마음”
법우 여러분, 오늘 우리는 관음재일을 맞아 “관음재일에 묻는 우리의 마음”이라는 주제로 법문을 나누고자 합니다. 관음재일은 관세음보살님의 자비광명이 온 법계에 충만한 날이며, 중생이 올리는 작은 소리마저 외면하지 않으시는 보살님의 자비가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 인연의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 아침에 불심사 마음의 법당에 모여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복이 되고 가피가 됩니다.
관세음보살님은 모든 중생의 괴로움을 자세히 관하시고, 합당한 모습으로 응해주시는 분이기에, 오늘 이 재일의 아침은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를 깊이 살피기 좋은 시간입니다. 지금 내 마음은 괴로움에 묶여 있지는 않은가, 분별과 집착에 끌려 다니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자비와 지혜의 마음을 잘 일으키고 있는가를 관음의 마음으로 돌아보는 것이 이 재일의 큰 수행이 됩니다.
관세음보살님에 대한 가장 깊은 가르침은 법화경 관세음보살 보문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경전에는 “중생이 고통 속에서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지극한 마음으로 부르면 그 소리를 들으시고 즉각 구원해 주신다.”고 설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극한 마음, 그리고 부르는 순간의 진실함입니다.
그 순간의 간절함과 더불어 매일 이어지는 지속적인 귀의의 마음이 합쳐질 때 관세음보살님의 자비는 더욱 강하게 작용합니다. 오늘이 관음재일이기에 그 작용은 더욱 깊고 빠르게 일어날 수 있으며, 우리가 일상에서 놓치고 있었던 작은 괴로움들조차 보살님의 가피 속에서 서서히 녹아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재일은 기도를 더욱 열어야 하는 날이며, 우리 마음의 방향을 다시 세우는 날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은 단지 외부에서 기적을 내려주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 안에 이미 깃들어 있는 자비의 성품을 깨우는 인연을 만들어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관세음보살님의 이름을 부르면 마음이 먼저 부드러워지는 이유는, 이름 속에 담긴 자비의 파동이 내 마음의 분별을 녹여주기 때문입니다. “관세음보살”이라는 이름 다섯 자를 지극하게 염하면 마음의 파도가 잔잔해지고, 불안이 가라앉고, 분노의 근원이 약해지고, 어둡던 마음에 따뜻한 숨결이 들어옵니다. 왜냐하면 그 이름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자비의 기운을 불러오는 큰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관음재일에 우리가 그 이름을 깊이 새기며 법문을 듣는 것은 마음의 방향을 자비와 지혜로 돌리는 수행의 가장 중요한 터전이 됩니다.
법우 여러분, 관세음보살님께서는 어떤 모습으로 중생을 구제하시는가에 대해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는 삼십이응신(三十二應身)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는 중생의 상황과 근기에 맞추어 보살님께서 모습을 바꿔 나타나신다는 뜻입니다. 누군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는 두려움을 없애는 지혜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누군가 외로움에 흔들리고 있을 때에는 든든한 의지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누군가 슬픔 속에 잠겨 있을 때에는 눈물과 함께 그 마음을 어루만지는 자비의 모습으로 나타나신다는 뜻입니다.
즉, 보살님은 기적처럼 하늘에서 내려오는 분이 아니라 우리 삶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미 나에게 응답하고 계신 분입니다. 그 응답을 알아차리는 힘이 바로 관(觀)입니다. 관세음보살의 관은 바라보는 관이 아니라 꿰뚫어 보는 관이며, 곧 “마음을 깊이 살피는 수행”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의 마음을 묻는다는 것은 곧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으로 나를 들여다보는 수행이 됩니다.
관음재일의 가르침을 우리 삶에서 더 현실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은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이 흔들립니다. 어떤 순간에는 화가 나고, 어떤 순간에는 서운함이 치밀고, 어떤 순간에는 불안이 가슴을 죄고, 어떤 순간에는 이유 없이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것이 중생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관세음보살님의 가르침은 그런 흔들리는 마음을 억지로 없애라는 것이 아니라, 그 흔들림을 바로 바라보고 자비로운 눈으로 감싸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괴로움은 괴로움 그대로 바라볼 때 비로소 힘을 잃기 때문입니다. 그 괴로움을 외면하거나 억누르면 더 큰 괴로움이 되지만,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괴로움은 자연스럽게 흩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관(觀)의 힘입니다. 관세음보살의 수행은 단지 염불만이 아니라 관찰과 성찰입니다. 화가 날 때 “지금 나에게 분노가 일어났구나.”하고 바라보는 것, 불안할 때 “지금 내 마음이 흔들리고 있구나.”하고 알아차리는 것, 슬플 때 “지금 내 안에 슬픔이 있구나.”하고 자비로 살피는 것, 바로 이것이 관음의 수행이 됩니다.
그래서 관음재일에는 우리의 감정, 생각, 말, 행동을 모두 보살님의 자비로운 마음으로 살피는 것이 큰 수행이 됩니다.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소리를 듣는다.”고 했지만 그 소리는 사실 우리 마음속에서 먼저 울립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은 “내 마음의 소리를 잘 듣는 수행”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그러나 법우 여러분, 우리의 마음은 자주 분별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스스로를 자비롭게 바라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의 이름을 염하는 수행이 필요합니다. “관세음보살”이라고 한 번 부르는 순간 마음의 결이 달라지고, 두 번 부르면 마음이 조금 고요해지고, 세 번 부르면 마음의 분별이 약해지고, 열 번을 염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기 시작합니다. 염불은 단지 소리를 내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수행입니다.
이름을 부르며 자비를 떠올리는 순간, 마음이 자연스럽게 부드러워지고 따뜻해지며 괴로움을 다스릴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이 재일을 맞아 법우님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관세음보살 염불은 생활 속에서 언제든 할 수 있는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강력한 수행”이라는 사실입니다. 차를 기다리는 동안, 길을 걸으며, 공양을 준비하며, 잠들기 전 몇 분만이라도 염불을 하면 그 하루는 이미 보살님의 자비 안에서 보호받는 하루가 됩니다.
법우 여러분, 관음재일의 가장 큰 의미는 자비를 일으키는 날이라는 데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는 단지 중생의 괴로움만 보고 계신 것이 아니라, 그 괴로움을 자비로 품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수행도 자비로 이어져야 합니다. 자비는 어렵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일, 바쁜 와중에도 숨 한 번 고르고 마음을 내어주는 일, 힘들어하는 이에게 말 한마디 건네는 일, 가족에게 조금 더 부드러운 말투를 사용하는 일, 자신을 자책하지 않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 이런 모든 행동이 자비의 실천이 됩니다. 자비는 결심이 아니라 선택이며 실천입니다. 오늘 이 재일에 자비를 한 번 선택한다면 그 선택은 또 다른 따뜻함을 낳고, 그 따뜻함은 또 다른 선을 낳으며 결국 나의 삶 전체를 바꾸는 힘이 됩니다.
법우 여러분,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방향입니다. 관음재일은 마음의 방향을 관세음보살님께 두는 날이며, 자비를 향해 마음의 바람을 돌리는 날입니다. 오늘 아침 방송을 통해 전해지는 이 법문이 법우님들의 삶에서 관세음보살님의 자비행으로 이어지고, 이 하루가 고요하고 평안하며 밝게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
법우 여러분, 이제 관음재일에 우리가 어떤 마음을 살펴야 하는지, 그 질문을 어떻게 수행으로 연결할지 조금 더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관음재일은 관세음보살님의 자비가 가장 깊게 드리워지는 날이기에, 이 날 우리의 마음에 던져야 할 질문은 그저 잘 사는가, 못 사는가가 아닙니다. 오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지금 내 마음은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무엇을 향하고 있는가.”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의 원력은 모든 중생을 향한 자비이지만, 우리의 마음은 때로 자비가 아닌 분별을 향하고, 때로는 집착을 향하며, 때로는 두려움과 불안으로 흘러갑니다. 그래서 재일에는 마음의 방향을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그 방향은 자비인가, 분노인가, 이해인가, 판단인가. 내가 어떤 마음을 내고 살아가는지가 결국 나의 업을 만들고, 그 업이 내 삶의 길을 만들어 가기 때문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의 자비를 배우는 가장 중요한 마음자세는 “나에게도 괴로움이 있고, 남에게도 괴로움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종종 내 괴로움은 크게 여기고 남의 괴로움은 가볍게 여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상처가 생기고 오해가 생기며, 문제가 커지고 관계가 멀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관세음보살님의 관음행은 내 괴로움만 보지 않고 상대의 괴로움도 함께 바라보는 수행입니다.
상대의 말이 거칠게 들릴 때, 그 사람의 표정이 불편할 때, 그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판단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관음의 수행은 그 순간 이렇게 묻습니다. “저 사람도 지금 마음이 아프지는 않을까, 괴로움이 있지는 않을까.” 이 질문 한 번이 마음의 방향을 분노에서 자비로 바꾸어 줍니다. 이것이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을 배우는 첫걸음이며, 오늘 관음재일의 가장 중요한 실천입니다.
또한 관음재일에 우리는 “내가 내는 말이 관세음보살님의 마음과 합당한가.”를 살펴야 합니다. 관세음보살 보문품에는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면 그 이름을 듣고 중생의 두려움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말도 누군가에게 두려움을 없애는 말인지, 혹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인지 살펴야 합니다. 말은 칼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한마디가 마음을 무너뜨릴 수도 있고, 한마디가 삶을 지탱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의 자비를 배우는 사람은 말을 할 때 마음에 한 번 멈추어 보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지금 쓰려는 말이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가.” “이 말은 따뜻한가, 날카로운가.” “이 말은 보살님의 자비와 닮아 있는가.” 관음재일에는 반드시 이런 질문을 해보는 것이 수행이며, 이 질문을 반복하는 것이 관음행의 가장 구체적 실천입니다.
유마경에서는 “마음이 병들면 세상이 병든 것처럼 보이고, 마음이 청정하면 세상도 청정하게 보인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관음재일은 내 중심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돌아보는 날입니다. 중심이 바깥을 향해 있을 때 우리는 쉽게 흔들리지만, 중심이 마음 안에 있을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의 중심을 단단하게 해주는 수행이 바로 관세음보살님의 이름을 부르는 일입니다.
법우 여러분, 관음재일의 수행은 삶의 아주 작은 자리에서도 가능합니다. 우리는 일상의 아주 사소한 순간에도 관음행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길을 걷다가 힘들어 보이는 사람을 보면 마음속으로 “관세음보살” 한 번 염해주는 것, 가정에서 가족의 말투가 조금 거칠 때 마음속으로 먼저 그 사람의 괴로움을 생각해 보는 것, 직장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 있을 때 이 순간 내 마음을 부드럽게 하자고 자비를 일으키는 것, 이런 작은 실천 하나하나가 모두 관세음보살님의 자비와 연결된 수행입니다. 누군가에게 직접 도움을 주지 못해도, 단지 그 사람을 향해 마음속에서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그 사람을 향한 자비의 기운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관음행은 행위의 크기가 아니라 마음의 진실함으로 평가됩니다.
또한 관음재일에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야 할 질문 중 하나는 “나는 내 괴로움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괴로움을 겪을 때 그것을 피하거나 외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괴로움은 피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어지고 더 큰 그림자를 만들게 됩니다. 관세음보살님은 괴로움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품어주는 자비’를 가르치십니다. 내가 괴로울 때 관세음보살님의 이름을 부르는 수행은 내 괴로움을 떨쳐내기 위한 주문이 아니라, “지금 괴로움이 일어났지만 내가 그것을 잘 품고 가겠다.”는 다짐입니다. 괴로움을 밀어내지 않고 바라보는 수행은 괴로움이 스스로 힘을 잃게 만듭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의 수행을 하는 사람은 괴로움의 순간일수록 더 깊이 자비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의 수행은 결코 어려운 수행이 아닙니다. 우리가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말, 생각, 행동 속에서 자비를 일으키면 그것이 모두 관음행입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님의 이름을 일상에서 잠시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조금씩 밝아집니다. 왜냐하면 보살님의 이름은 마음의 방향을 자비로 돌리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마음은 나를 보호하고, 나를 부드럽게 하고, 나를 지혜로 이끌며,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도 자비의 기운을 전하게 됩니다. 이것이 관음재일에 수행을 열어야 하는 이유이며, 관세음보살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이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이제 법우님들께 하나의 질문을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습니다. “내 마음은 지금 자비로운가.”이 질문은 관음재일의 핵심이며, 우리 수행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든 그 뿌리에 자비가 깔려 있다면 그 길은 반드시 좋은 길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자비 없이 이루어지는 행동과 말은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고통을 낳을 뿐입니다. 자비는 수행의 시작이자 끝이며,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을 배우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오늘 관음재일의 이 법문을 통해 법우님들 마음속에 작은 자비의 씨앗 하나라도 심어졌다면, 그 씨앗은 언젠가 큰 연꽃처럼 피어날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관음재일에 우리가 돌아보아야 할 마음은 어렵지 않습니다. 괴로움이 올라올 때 그 괴로움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내 곁의 사람을 볼 때 그 마음에 조금 더 따뜻함을 더하며, 하루의 작은 순간마다 관세음보살님의 자비로운 이름을 한 번 떠올리는 것, 이것이 바로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하는 삶이며 관음재일의 가장 큰 수행입니다. 자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마음을 조금 더 부드럽게 하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되고, 그 실천이 쌓여 관세음보살님의 가피와 은혜로 이어집니다. 오늘 하루도 관세음보살님의 자비광명이 법우님들의 마음과 걸음마다 함께하기를 발원드리며, 관음재일의 법문을 이 마음으로 회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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