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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1일(토) 아침방송법문 : “남을 탓하기보다 마음을 살피면 길이 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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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1 07:55:56, 조회 : 446,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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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70년 2월 21일(토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남을 탓하기보다 마음을 살피면 길이 열린다.”
법우 여러분,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문제와 마주합니다, 그 문제들은 때로는 사람의 모습으로 다가오고 때로는 환경의 모습으로 다가오며 때로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습니다.
그때 우리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은 종종 이것입니다, “저 사람 때문입니다.” “상황이 이래서 어쩔 수 없습니다.” “환경이 나를 힘들게 합니다.”라는 말입니다.
남을 탓하는 일은 순간적으로 마음을 가볍게 하는 듯 보이지만 그 가벼움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오히려 탓하는 마음은 다시 분노와 원망으로 돌아와 우리를 더 무겁게 만듭니다.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에서 “마음이 모든 것의 근본이요 마음이 모든 것의 주인이다, 마음이 악하면 괴로움이 따르고 마음이 선하면 즐거움이 따른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겪는 괴로움의 출발점이 바깥이 아니라 마음임을 일깨워 줍니다, 상황은 같아도 마음이 달라지면 결과는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같은 말을 들어도 어떤 사람은 크게 상처를 받고 어떤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넘깁니다, 그 차이는 말의 내용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상태에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남의 말과 행동을 원인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 말과 행동을 해석하는 우리의 마음이 괴로움을 키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기법은 모든 것이 인연 따라 일어난다고 가르칩니다, 지금의 상황도 단 하나의 원인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조건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입니다.
그 조건 속에는 나의 말과 태도와 습관과 선택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탓하는 자리에서 성찰하는 자리로 옮겨갑니다.
남을 탓하면 나는 피해자가 되고, 마음을 살피면 나는 수행자가 됩니다, 피해자는 억울함에 머물지만 수행자는 배움의 기회를 얻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자기를 이기는 자가 천 명을 이기는 자보다 낫다.”라고 하셨습니다, 남을 이기는 일보다 내 분노와 집착을 이기는 일이 더 어렵고 더 값지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종종 정의를 내세워 화를 냅니다, “나는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옳은 입장을 말했을 뿐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옳은 말이라도 집착이 섞이면 날카로워지고 날카로움은 상처를 남깁니다, 상처는 관계를 단절시키고 단절은 또 다른 괴로움을 낳습니다.
마음을 살핀다는 것은 스스로를 비난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를 낮추는 일도 아니고 나를 포기하는 일도 아닙니다.
마음을 살피는 일은 오히려 나를 지키는 길이며 나를 자유롭게 하는 길입니다, 분노와 원망의 사슬에서 벗어나게 하는 길입니다.
가정에서 다툼이 생겼을 때 상대의 말투만을 문제 삼기보다 내 기대가 무엇이었는지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고 집착이 강하면 분노도 강해집니다.
직장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상사의 태도만을 탓하기보다 내가 얼마나 유연하게 소통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고집은 대화를 막지만 유연함은 새로운 길을 엽니다.
도반과의 오해가 생겼을 때 상대의 허물만을 들추기보다 내 마음의 좁은 틀을 돌아보는 순간 관계는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남의 허물을 보지 말고 자기의 허물을 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위축시키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성장의 방향을 안으로 돌리라는 자비의 가르침입니다.
남을 탓하는 마음은 밖으로 향하지만 성찰하는 마음은 안으로 향합니다, 밖으로 향한 마음은 늘 흔들리지만 안으로 향한 마음은 점점 단단해집니다.
우리는 세상을 다 바꿀 수는 없지만 내 마음 하나는 돌이킬 수 있습니다, 그 하나의 전환이 인생의 방향을 바꿉니다.
우수의 절기를 지나며 얼음이 서서히 녹듯이 우리의 굳은 생각도 조금씩 풀릴 수 있습니다, 억지로 깨뜨리려 하지 말고 따뜻한 성찰로 녹이면 됩니다.
남을 탓하는 동안에는 길이 막힌 듯 보이지만 마음을 살피는 순간 작은 틈이 보입니다, 그 틈이 바로 새로운 선택의 자리입니다.
화가 올라올 때 곧바로 반응할 것인가 아니면 한 번 더 숨을 고를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 작은 선택이 쌓이면 삶의 방향은 크게 달라집니다.
마음을 살핀다는 것은 모든 책임을 나에게 돌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내가 바꿀 수 있는 자리에서부터 시작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남의 말과 행동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지만 나의 반응은 조금씩 다듬어 갈 수 있습니다, 그 다듬음이 곧 수행입니다.
부처님께서 “스스로를 등불로 삼으라.”고 하신 말씀은 남을 비추는 빛이 되기 전에 스스로를 밝히는 빛이 되라는 뜻입니다, 마음을 밝히는 사람은 어디서든 길을 찾습니다.
남을 탓하면 원망이 남지만 마음을 살피면 지혜가 남습니다, 원망은 관계를 어둡게 하지만 지혜는 길을 밝힙니다.
법우 여러분,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남을 향해 있던 시선을 안으로 돌리는 그 순간 이미 열리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누군가를 탓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거든 잠시 멈추어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지금 내 마음은 어떠한가”라고 말입니다.
그 질문 하나가 새로운 길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조금 더 자유롭고 조금 더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문제를 만날 때마다 자연스럽게 원인을 찾으려 합니다, 그 원인을 밖에서 찾으면 마음은 잠시 편해지는 듯 보이지만 그 편안함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바깥의 조건은 내가 완전히 통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기대어 해결을 찾으려 하면 마음은 늘 불안 속에 머물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잡아함경에서 “세간의 괴로움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일어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괴로움의 뿌리가 외부 상황이 아니라 마음의 작용에 있음을 분명히 밝히는 가르침입니다.
남을 탓하는 마음은 대개 성냄에서 비롯되고, 내 생각만 옳다고 여기는 태도는 어리석음에서 비롯되며, 상황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아 괴로운 것은 탐욕과 집착에서 비롯됩니다.
이 세 가지 마음작용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우리는 계속해서 바깥만을 원망하며 같은 자리를 맴돌게 됩니다.
예를 들어 가정 안에서 반복되는 갈등이 있다면 우리는 상대의 말투나 태도만을 문제 삼기 쉽지만 그 갈등이 계속되는 데에는 나의 고집과 기대와 두려움도 함께 작용하고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직장에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상사의 결정만을 탓하기 쉽지만 그 결정 속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태도와 선택을 살피는 순간 전혀 다른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음을 살핀다는 것은 현실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현실을 더 정확히 바라보는 일입니다, 밖만 보는 눈은 반쪽짜리 시야이지만 안을 함께 보는 눈은 온전한 시야입니다.
금강경에서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 하여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고 하신 말씀은 집착에 머물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상황을 보라는 뜻입니다.
남을 탓하는 마음은 한 자리에 머물러 굳어지지만, 성찰하는 마음은 유연하게 움직이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습니다.
우리는 종종 정의감이라는 이름으로 분노를 합리화합니다, 그러나 정의와 분노는 다릅니다.
정의는 지혜와 함께 가지만 분노는 집착과 함께 갑니다, 지혜는 길을 열지만 집착은 길을 좁힙니다.
누군가의 잘못이 분명해 보일 때에도 먼저 내 마음의 상태를 살피는 이유는 그 판단이 자비 위에 서 있는지 아니면 분노 위에 서 있는지를 보기 위함입니다.
자비 위에 선 판단은 관계를 살리지만 분노 위에 선 판단은 관계를 끊습니다, 관계가 끊어지면 아무리 옳아도 외로움만 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성냄은 성냄으로써 그치지 않고 오직 자비로써 그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상대를 바꾸기보다 나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 갈등을 풀어가는 근본임을 보여줍니다.
마음을 살피는 사람은 말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면 분위기가 달라지며 분위기가 달라지면 결과도 달라집니다.
우리가 바깥을 바꾸려 애쓰는 동안 놓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미묘한 내면의 변화입니다, 내 마음이 바뀌면 같은 상황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연기법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갈등 또한 여러 조건이 얽혀 이루어진 현상일 뿐이며, 그 조건을 하나씩 풀어가는 일은 상대를 몰아세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태도를 다듬는 데서 시작됩니다.
남을 탓하는 습관은 오랫동안 몸에 배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습관은 반복으로 만들어졌듯이 새로운 반복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탓하려는 생각이 올라올 때마다 한 번 더 숨을 고르고 내 마음을 묻는 연습을 계속하다 보면 서서히 반응은 줄어들고 이해는 늘어납니다.
이해가 늘어나면 시야가 넓어지고 시야가 넓어지면 선택의 폭도 넓어집니다, 선택의 폭이 넓어질수록 우리는 더 자유로워집니다.
자유로운 사람은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환경 속에서 길을 만듭니다, 그 길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작은 태도의 변화에서 시작됩니다.
법우 여러분, 길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습니다, 마음을 살피는 하루하루가 쌓여 어느 순간 스스로 길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남을 탓하기보다 마음을 살피는 수행은 느려 보이지만 가장 빠른 길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바깥을 향한 원망을 안으로 돌려 성찰로 바꾸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막다른 길에 서 있지 않습니다, 이미 한 걸음 내딛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한 걸음이 또 다른 한 걸음을 부르고 결국에는 전혀 다른 풍경을 만나게 할 것입니다, 그 풍경은 평화와 여유와 자비가 머무는 자리일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는 종종 길이 막혀 있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막혀 있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내 마음일 때가 많습니다.
남을 탓하는 동안 마음은 점점 굳어지고 시야는 좁아지며 선택의 여지는 사라집니다, 그러나 마음을 살피는 순간 굳어 있던 생각은 조금씩 풀리고 좁아졌던 시야는 다시 넓어집니다.
부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이 가장 큰 승리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남을 이기는 일이 아니라 내 분노와 집착을 이기는 일이 진정한 길을 여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상대를 바꾸지 못해도 내 마음은 돌이킬 수 있고 환경을 당장 바꾸지 못해도 내 태도는 바꿀 수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미 길은 시작되고 있습니다.
남을 탓하기보다 마음을 살피는 수행이 쌓일수록 우리는 조금 더 가벼워지고 조금 더 자유로워지며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오늘 하루 누군가를 원망하는 마음이 올라오거든 잠시 멈추어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지금 내 마음은 어떠한가”라고 말입니다.
그 질문 하나가 새로운 길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우리는 평화와 지혜를 함께 만나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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