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head9.jpg
Home 방송안내 신행생활 음악수필 불교강좌
 
  운영자인사
  운영자소개
  방송시간표
  생방송듣기
  방송대화방
  윈앰프설치
  사이버연등
  후원금보시

무창포불교대학


  방송게시판

 2월 25일(수) 아침방송법문 : “나라는 껍데기에 갇혀 있지 마세요”
眞虛性宗 2026-02-25 08:32:29, 조회 : 451, 추천 : 0
불기 2570년 2월 25일(수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나라는 껍데기에 갇혀 있지 마세요”

법우 여러분, 오늘은 “나라는 껍데기에 갇혀 있지 마세요.”라는 주제로 깊이 있는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나’라는 틀 안에 가두고 살아갑니다.
그 틀 속에는 내가 살아오며 겪었던 일들, 받은 상처, 내가 만든 이미지, 남이 나에게 붙여준 평가, 그리고 습관처럼 반복된 생각과 감정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굳어버린 껍데기와 같아서 처음에는 나를 보호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를 갇히게 만들고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게 막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상태를 두고 “상(相)에 머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만든 ‘나라는 상(相)’은 실체가 아닙니다.
금강경에서도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라 하여 어떤 고정된 것에도 머물지 말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머문다는 것은 곧 집착이며 이 집착이 우리 마음을 좁히고 고단하게 만듭니다.
특히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된다, 나는 원래 이런 성격이다’라고 굳게 믿으면 그 믿음이 나의 한계를 만들고 가능성을 막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마음은 본래 깨끗하고 광대하여 헤아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느끼는 괴로움의 대부분은 사실 ‘나’라는 고정된 틀에서 비롯됩니다.
누가 나를 평가하면 금세 흔들리고, 작은 비난에도 마음이 부서지며, 남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 역시 ‘나를 이렇게 보고 싶다’는 틀 속에서 일어나는 작용입니다. 이 틀을 깨지 못하면 하루하루가 타인에게 흔들리고 과거에 갇혀버립니다.
그러나 그 틀이 껍데기일 뿐임을 알면 우리는 바로 그 자리에서 자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오온개공(五蘊皆空), 오온은 모두 비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오온이란 색(몸), 수(느낌), 상(생각), 행(의지적 움직임), 식(분별)인데 우리는 이 다섯 가지를 합쳐 ‘나’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그것은 임시로 모여 있는 인연의 조합일 뿐이며 실체로 고정된 ‘나’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비어 있다면, 그 비어 있는 존재를 왜 굳어 있는 틀에 가두어 괴로움을 만들어야 하겠습니까.
비어 있으니 변화할 수 있고, 변화할 수 있으니 자유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변화하기보다 익숙한 틀 안에 머무는 것을 더 편안하게 느끼곤 합니다.
내가 아는 나, 남이 아는 나, 내가 만들어 놓은 모습은 변화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마음이 덜 불편합니다.
하지만 그 틀이 오래될수록 삶은 반복되고, 마음은 경직되고, 수행은 더디고, 고통은 깊어집니다. 부처님께서는 “구습에 머무는 자는 새 길을 찾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틀이 작아지면 마음도 작아지고 마음이 작아지면 세상이 좁아지고 관계가 힘들어집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는 때때로 스스로를 이렇게 묶어 둡니다.
“나는 착한 사람이라 화내면 안 돼.”  
“나는 늘 참아야 하는 사람이다.”  
“나는 능력이 부족하다.”  
“나는 원래 내성적이라 사람들 사이에서 힘들다.”  
이와 같은 말들은 나를 다스리는 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나를 가두는 말입니다.
그 말들이 하나의 껍데기가 되어 나의 행동을 제한하고 마음을 억압하여 변화의 길을 막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무아(無我)의 가르침은 바로 이 껍데기를 벗기라는 초대입니다.
무아란 ‘내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고정된 나에 머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숨 쉬는 나와 지금 걷는 나와 웃는 나와 슬퍼하는 나가 모두 다르듯, 우리는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입니다.
변하는 존재를 고정된 틀에 가두면 괴로움이 생기고, 변하는 존재를 그대로 인정하면 편안함이 찾아옵니다.
따라서 무아의 수행은 나를 지우는 수행이 아니라 나를 열어주는 수행입니다.

‘나라는 껍데기’를 가장 크게 만드는 것이 바로 상처입니다.
과거 누군가에게 들은 말, 실패했던 경험, 이해받지 못했던 순간들이 껍데기처럼 딱딱하게 굳어 나의 마음을 감싸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 두렵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 무겁고,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나를 꿈꾸는 것이 어렵습니다.
상처는 틀이 되고, 그 틀이 나를 지금까지 묶어둡니다. 그러나 상처는 본래 고정된 것이 아니라 기억일 뿐이며 기억은 바라보는 순간 변화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이 일체를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모든 현상과 감정, 심지어 내가 믿는 ‘나’라는 틀까지도 마음이 만들어낸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만든 것은 마음이 다시 바꿀 수 있습니다.
내가 만들어 놓은 ‘나’라는 이미지도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 속에서 충분히 바꿀 수 있습니다. 따라서 수행이 깊어질수록 나를 규정하던 말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고 본래의 밝고 자유로운 마음이 드러납니다.

우리가 ‘나’라는 껍데기 안에 갇히는 가장 큰 이유는 비교입니다.
남의 잘됨을 보며 흔들리고 남의 어려움을 보며 불안해하고 남의 평가를 들으며 마음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교는 실체가 없는 나를 더 굳게 만들 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타인의 허물을 보지 말고 내 마음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비교를 멈추는 순간 나는 나로서 자유로워지고 내 안에 있는 선한 힘이 자라납니다.
비교는 나를 가두지만 깨달음은 나를 열어 줍니다.

또한 우리는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믿음을 너무 쉽게 확정해 버립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대개 왜곡되고 좁아져 있습니다.
실수한 적이 있으면 ‘나는 부족하다’고 규정짓고, 힘든 일을 겪으면 ‘나는 약하다’고 단정하며,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 ‘나는 나쁜 사람이다’라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결론은 하나의 순간에서 나온 임시적 판단입니다.
한순간의 판단이 인생 전체를 규정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판단과 결합하여 스스로를 괴롭히며 껍데기를 더 단단하게 만듭니다.

이 껍데기를 깨는 첫 번째 수행은 “나를 바라보는 힘”입니다.
생각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바라보고, 감정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알아차리는 힘이 마음을 넓히고 틀을 부수는 첫걸음이 됩니다.
내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무엇에 붙잡혀 있는지 바라보면 껍데기는 금세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알아차림은 틀을 약화시키고, 알아차림이 반복되면 틀은 무너집니다.
부처님께서는 “관심(觀心), 마음을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 수행은 “생각하지 않고 느끼는 순간을 늘리는 것”입니다.
나라는 껍데기는 대부분 생각에서만 존재합니다.
그러나 지금 숨 쉬는 이 순간, 지금 손의 감각, 지금 바람의 움직임 속에는 껍데기가 없습니다. 느끼는 순간은 늘 자유롭고 넓으며 가벼운 자리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생각보다 감각을 믿고, 판단보다 알아차림을 더 소중히 여깁니다.
감각은 껍데기를 뚫고 나오는 문입니다.

세 번째 수행은 “말을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로 자신을 가두고 말로 자신을 해방합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라는 말은 틀을 강화하고 “나는 변화할 수 있다”는 말은 틀을 느슨하게 만듭니다.
부처님께서는 “구업(口業)을 조심하라, 말은 마음의 그림자”라고 하셨습니다.
따뜻한 말, 가능성을 여는 말을 사용하면 마음은 그 말이 향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껍데기를 벗기기 시작합니다.

법우 여러분, 그래서 이 껍데기를 벗기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어떤 습관에 갇혀 있는지, 어떤 말투로 스스로를 규정하는지, 어떤 감정에 반복적으로 머무르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처님께서는 “탐· 진· 치가 마음에 머물면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히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만든 이 감옥을 벗어나기 위해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첫 번째 포인트는 ‘자기 동일시를 내려놓는 연습’입니다.
자기 동일시란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믿고 스스로를 하나의 이미지로 묶어버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으면 “나는 상처 잘 받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한 번 실수하면 “나는 항상 부족하다”고 결론을 내리며 작은 일에도 “나는 원래 이런 성격이라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가둡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가고 머무는 모든 마음은 변하고 머문 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며, 지금의 나는 한 시간 전의 나와도 다릅니다.
변하는 존재를 고정된 틀에 매단다면 괴로움이 생기고 그것이 껍데기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두 번째 포인트는 ‘감정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감정은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구름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감정이 일어나면 “이것이 나다”라고 믿고 감정의 흐름 전체를 ‘나 자신’이라고 착각합니다.
슬프면 “나는 슬픈 사람이다”, 화가 나면 “나는 못된 사람이다”, 두려우면 “나는 약한 사람이다”라고 동일시합니다.

하지만 감정은 그저 일어났다가 지나가는 현상일 뿐이며 그것을 바라보는 알아차림이 깊어지면 감정은 나를 흔들 수 없습니다.
중아함경에서는 “느낌은 느낌일 뿐 그대가 아니다”라고 설합니다.
감정을 쥔 손을 조금만 놓으면 껍데기는 금세 얇아지고 마음은 넓어집니다.

세 번째 포인트는 ‘타인의 평가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만든 껍데기보다 더 큰 감옥은 사실 타인의 시선입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기뻐하고 누군가의 표정 하나에도 흔들리며 그 평가를 통해 나의 존재를 재단합니다.

그러나 그 평가 역시 그 사람이 가진 생각과 감정과 경험의 결과일 뿐 나의 실체를 말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타인의 말에 머물면 그대는 바람 앞의 등불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평가에 흔들릴수록 껍데기는 더 두꺼워지고 평가에서 자유로울수록 마음은 더 가벼워집니다.

네 번째 포인트는 ‘과거의 나를 버리는 용기’입니다.
사람이 변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과거의 자신을 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잘했던 일도 놓지 않고, 실패했던 일도 놓지 않고,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도 놓지 않고 마음속에서 수십 년 동안 묶어둡니다.

하지만 과거는 지나간 인연일 뿐이고 현재의 나를 규정할 힘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과거의 마음은 이미 죽었고 미래의 마음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껍데기에서 벗어나는 가장 큰 길은 ‘지금의 나’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과거에 매달릴수록 껍데기는 더 단단해지고 지금을 사는 순간이 많아질수록 껍데기는 저절로 떨어져 나갑니다.

다섯 번째 포인트는 ‘자비로 나를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자비롭지 못하면 껍데기는 절대 깨지지 않습니다.
자비는 남에게 베푸는 것만이 아니라 나를 자유롭게 해주는 수행입니다.
내가 실수했더라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힘들어하는 나를 부드럽게 감싸주고, 도저히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 날에는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도 충분하다”라고 말해주는 것이 자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이는 남을 해치지 않고 스스로도 괴롭히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자비는 껍데기를 풀어주는 열쇠입니다.

이제 더욱 깊은 차원에서 껍데기를 깨는 수행을 나누겠습니다.
이 가르침은 ‘무아(無我)를 삶 속에서 느끼는 것’입니다.
무아는 철학이 아니고 일상에서 경험해야 하는 진실입니다.
설거지를 할 때에는 ‘설거지하는 내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움직임이 일어나고 사라짐을 느껴 보십시오.

걷는 순간에는 ‘걷는 나’가 아니라 발걸음의 감각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아차려 보십시오.
화가 날 때도 ‘내가 화났다’가 아니라 마음에서 화의 감정이 피어올랐다가 사라지는 과정을 살펴보십시오. 이렇게 무아를 체험하면 ‘나’라는 틀은 점점 희미해집니다.

두 번째 가르침은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생각이 일어나면 생각을 그대로 두고, 감정이 일어나면 감정을 그대로 두고, 상황이 오면 상황을 그대로 두면 됩니다.
있는 그대로 둔다는 것은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집착은 껍데기를 강화하지만 놓아줌은 껍데기를 약화시킵니다.
법구경에는 “집착하는 만큼 괴로움이 자라고 놓아버리는 만큼 평안이 깊어진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놓아두는 연습은 곧 껍데기를 비워내는 연습입니다.

세 번째 가르침은 ‘비교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비교는 자신을 끊임없이 규정하는 작업이고 그 규정이 모여 껍데기를 만듭니다.
“저 사람보다 못하다”, “나는 늘 부족하다”, “남들은 다 잘하는데 나는 왜 이럴까”라는 생각은 수행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입니다.
비교를 멈추는 순간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마주하고 그 자리에서 비로소 자유가 시작됩니다. 부처님께서는 “타인의 허물을 보지 말고 오직 자신의 마음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을 바라보는 순간 비교는 힘을 잃습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가 ‘나’라고 믿고 있는 것은 실체가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연 따라 잠시 모여 있는 것들의 조합일 뿐입니다.
그 조합을 굳게 붙잡고 “이것이 바로 나다”라고 믿는 순간 괴로움이 생기고 그 괴로움이 껍데기가 됩니다.
그러나 그 껍데기가 허상임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바로 그 자리에서 넓고 자유로운 본래의 마음을 되찾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이 비면 그대는 모든 것에 머물지 않고 모든 곳에서 자유롭다”고 하셨습니다.

오늘의 법문은 우리가 스스로 만든 틀에서 벗어나 더 넓게 보고 더 깊게 느끼고 더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한 수행의 방향을 함께 살펴본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나라는 껍데기’는 우리가 목적을 삼아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해하고 알아차리고 놓아줄 대상입니다. 알아차림은 껍데기를 흔들고 자비는 껍데기를 부드럽게 만들며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 마음은 껍데기를 완전히 벗겨냅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아침 이 법문이 여러분 마음속에서 작은 울림이 되어 ‘나’의 틀을 조금 내려놓고 더 넓고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힘이 되기를 진심으로 발원합니다. 우리 모두는 껍데기로 규정될 존재가 아니며 부처님 성품을 지닌 넓고 맑고 끝없는 존재입니다.

그 본래의 나를 기억하며 오늘 하루를 살아가신다면 모든 인연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고 모든 상황이 수행의 길이 될 것입니다.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가 법우님들의 걸음마다 함께하기를 깊이 축원드리며 이 아침 법문을 회향합니다.


(클로징 멘트)

법우 여러분, 오늘 아침 함께한 시간 속에서 우리가 평소 얼마나 ‘나’라는 틀에 스스로를 가두고 살았는지, 또 그 틀을 내려놓을 때 얼마나 마음이 가벼워지는지를 조금은 느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만든 껍데기는 때로는 나를 보호해 주는 듯 보이지만 결국에는 변화의 길을 막고 자유로운 삶을 가로막습니다.

그러나 방금 우리가 나누었던 법문처럼 마음을 잘 살피고 알아차림을 잃지 않는다면 그 껍데기는 언제든 벗겨낼 수 있고 그 속에서 본래 맑고 넓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무아의 가르침은 우리를 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넓고 깊은 자리로 이끄는 가르침입니다.
그 가르침을 오늘 하루의 삶 속에서 작은 실천으로 이어가시기를 발원드립니다.

법우 여러분의 하루가 조금 더 부드럽고 따뜻하길 바라고 자신을 규정하던 말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하루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남이 바라보는 ‘나’의 틀에서 벗어나고 내가 만들어 놓은 ‘나’의 모습에서도 벗어나며 오직 지금 이 순간 깨어 있는 마음으로 살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 깨어 있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바로 수행이며 그 수행이 쌓여 여러분의 삶을 환하게 밝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가 법우 여러분의 걸음마다 함께하시기를 진심으로 서원드리며 이 아침방송을 회향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전글 2월 26일(목) 아침방송법문 : “오복(五福)... 眞虛性宗 2026-02-26
  다음글 2월 24일(화) 아침방송법문 : “근심 걱정... 眞虛性宗 2026-02-24

목록으로 수정하기 삭제하기 추천하기
ⓒ 2001-2004 by Passkorea Co., Ltd. All rights reserved   

후원금보시함

신행상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