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head9.jpg
Home 방송안내 신행생활 음악수필 불교강좌
 
  운영자인사
  운영자소개
  방송시간표
  생방송듣기
  방송대화방
  윈앰프설치
  사이버연등
  후원금보시

무창포불교대학


  방송게시판

 2월 26일(목) 아침방송법문 : “오복(五福)보다 더 중요한 것”
眞虛性宗 2026-02-26 08:29:13, 조회 : 449, 추천 : 0
불기 2570년 2월 26일(목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오복(五福)보다 더 중요한 것”

법우 여러분, 오늘 아침 우리는 예로부터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겨온 오복(五福)의 의미를 떠올려 보면서 그보다 더 근원적인 복이 무엇인지,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참된 복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수(壽, 오래 사는 복), 부(富, 재물이 넉넉한 복), 강녕(康寧, 몸과 마음이 편안한 복), 유호덕(攸好德, 덕을 지닌 복), 고종명(考終命, 평안히 삶을 마치는 복)을 다섯 가지 큰 복이라 말해 왔습니다. 누구나 오래 살고 싶고, 재물이 넉넉하길 바라며, 몸과 마음이 편안하기를 바라고, 덕을 쌓으며 살다가 마지막 순간까지 평안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이 오복을 충족하면 복된 삶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법우 여러분, 부처님께서는 이 오복이 인간적 소망의 기준일 뿐, 진정한 의미의 복은 마음이 바르게 선 상태에서 생겨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법구경에서는 “마음이 향한 대로 삶이 이룬다.(心如工畫師 能造諸世間)”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바르면 복은 스스로 따라오고, 마음이 그르치면 아무리 많은 재물과 건강을 가졌어도 그것을 복으로 누리지 못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즉,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내적인 마음이 삶의 복을 결정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종종 ‘복을 받았다.’고 하면 밖에서 무엇인가가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부처님께서는 복이라는 것은 내 마음에서 생겨나는 가벼움, 넉넉함, 자비로움, 평안함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마음이 가벼우면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지혜로운 길을 찾고, 마음이 넉넉하면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알며, 마음이 자비로우면 사람과 세상이 다르게 보이고, 마음이 평안하면 재물과 조건이 없어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복의 기준을 밖이 아니라 안에서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요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재물과 건강이 복의 중심이라고 믿으며 때로는 그것에 지나치게 마음을 쏟기도 합니다. 그러나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만족할 줄 모르면 끊임없는 갈증이 따라오고, 건강이 아무리 좋아도 마음이 어지러우면 행복을 누리지 못하며, 오래 사는 것이 복이라 하지만 마음의 근심이 깊다면 그 생은 결코 편안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복의 기준을 다시 세워주셨습니다.

증일아함경에서는 “탐심을 줄이는 것이 복이요, 성냄을 놓아버리는 것이 복이며, 어리석음을 밝히는 것이 복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탐·진·치의 번뇌를 다스릴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오복보다 더 중심적인 복이라는 가르침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오복을 모두 누리지 못해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큰 부를 갖지 못했어도 작은 것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평온하게 살아가는 분들, 병약함 속에서도 마음의 빛을 잃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분들, 오래 살지 못할지라도 순간순간을 충실하게 살며 모든 인연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분들, 이분들은 겉으로는 오복을 충족하지 못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의 삶에는 마음의 평온과 지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더 큰 복’입니다.

복은 조건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탐욕이 적을수록 복이 커지고, 분노가 줄어들수록 복이 자라고, 어리석음이 걷힐수록 복의 빛이 선명해집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복된 삶은 마음의 상태가 만든다.”고 하셨으며, 복 자체를 외적인 성공이나 성취로 한정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말해, 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닦아가는 것입니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오복을 얻기 위해 바쁘게 달리고 경쟁 속에서 마음을 잃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복보다 더 중요한 복은 경쟁 속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살피고 마음을 돌보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열립니다. 내가 욕심을 한 번 내려놓는 그 순간 복이 생기고, 내가 한 번 더 부드럽게 말하는 그 순간 복이 자라며, 내가 한 번 더 참아주는 그 순간 복이 깊어집니다. 복은 멀리 있지 않고 항상 ‘내가 선택하는 마음의 방향’ 안에 있습니다.

법우 여러분, 부처님께서는 복을 누리기 위한 삶이 아니라 복을 짓는 삶을 살라고 권하셨습니다. 짓는다는 것은 매일의 행동, 말, 생각에 지혜와 자비를 담는다는 것입니다. 남을 속이지 않는 삶, 약한 이를 돕는 삶, 마음을 맑히는 삶, 부처님 법에 귀의하는 삶, 이러한 삶이 쌓여서 복이 됩니다. 그래서 숫타니파타 경에서는 “마음이 올바른 사람은 이미 복을 짓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는 재물과 조건이 필요하지 않으며, 단지 마음의 방향만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의 주제인 “오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마음의 방향입니다. 오복이 삶의 조건이라면, 마음의 방향은 삶의 중심이며, 중심이 잡혀 있을 때만 조건을 제대로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복의 뿌리를 마음에서 찾아라.”라고 거듭 가르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복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깊은 복인 마음의 복을 먼저 갖추라는 뜻입니다. 마음이 흐리면 오복이 와도 복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법우 여러분께 한 가지를 권하고 싶습니다. “내가 오늘 쌓을 수 있는 마음의 복은 무엇인가.”이것을 하루의 첫 질문으로 삼아 보시기 바랍니다. 작은 배려 하나, 따뜻한 말 한마디, 욕심을 덜어내는 선택 하나, 감사하는 마음 하나, 모두 복을 짓는 씨앗입니다. 오복은 얻어도 사라질 수 있지만, 마음으로 짓는 복은 잃지 않습니다. 이 복이 바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최상의 복이며, 우리가 매일 닦아가야 할 삶의 길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는 오복이 인간적인 바람의 목록이라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복은 마음의 상태에서 비롯되는 더 근원적인 복임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그 마음의 복을 어떻게 짓고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해 더 구체적인 길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복은 단순히 바라는 것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말하며 행동하느냐에 따라 조용히 자라고 사라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부처님께서는 여러 경전을 통해 누누이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마음의 복’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닦여지는지, 그 실제적인 과정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부처님께서는 “복은 마음이 머무는 곳에서 생겨난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욕심에 머물면 욕심의 결과가 따르고, 마음이 분노에 머물면 분노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마음이 어리석음에 머물면 삶이 늘 혼탁해진다고 하셨습니다. 반대로 마음이 자비에 머물면 자비를 낳고, 마음이 감사에 머물면 감사할 일이 생겨나며, 마음이 지혜를 향하면 삶의 방향이 밝아진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복이란 마음이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마음의 향기’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복은 누군가가 주는 것도, 빼앗아 갈 수도 없으며 오직 내가 지을 뿐입니다.

하루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합니다. 말 한마디를 어떻게 할 것인가, 누군가의 실수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마음이 답답할 때 어떻게 풀 것인가, 작은 소유물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이런 선택 하나하나가 모두 복을 짓는 순간이 됩니다. 법구경에는 “작은 선이라도 쌓아 가면 큰 복이 된다(積善雖小 必成大福)”고 하셨습니다. 일상의 사소한 선택이 바로 복을 짓는 밑거름이고, 그 밑거름이 쌓여 마음의 복은 점점 깊어져 갑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굳이 큰 수행을 하지 않더라도 일상 속의 작은 선행, 작은 말, 작은 배려가 모두 복의 씨앗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종종 듣는 말 중에 “나는 복이 없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건강이 좋지 않을 때, 또는 뜻한 바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복이 없다.”는 말은 결코 사실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복은 발견될 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짓고 있을 때 이미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마음을 냈다면 복이 이미 시작된 것이고, 악한 마음을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면 복은 이미 쌓이고 있는 것이며, 한 번이라도 참아내고 한 번이라도 감사했다면 그 순간이 바로 복이 피어나는 자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며, 이미 마음속에서 자라고 있는 씨앗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부처님께서는 복을 짓는 세 가지 큰 길을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보시(布施)입니다. 보시는 재물을 나누는 것뿐 아니라, 시간과 마음을 나누는 모든 행위를 의미합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누군가의 짐을 들어주는 행동, 힘든 사람에게 마음을 내주는 일, 모두 보시입니다. 보시는 복을 짓는 가장 빠르고 넓은 길입니다.

둘째는 지계(持戒)입니다. 지계는 단순히 규칙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남을 해치지 않겠다는 다짐을 삶에 실천하는 것입니다. 지계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고 삶을 정갈하게 만들며, 정갈한 마음은 그 자체로 복의 바탕이 됩니다.

셋째는 정진(精進)입니다. 잘 살고자 하는 노력, 마음을 닦고자 하는 노력, 부정한 마음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 이 정진은 복을 스스로 키우는 실천입니다. 정진은 내 삶의 방향을 곧게 하여 복이 자라도록 돕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복을 짓는 네 가지 마음의 자세도 설하셨습니다. 그것은 자(慈), 비(悲), 희(喜), 사(捨)입니다. 자는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며, 비는 고통 받는 존재를 향한 연민의 마음이며, 희는 남의 성취를 기뻐하는 마음입니다. 특히 희(喜)의 마음은 현대인에게 가장 절실한 마음입니다. 누군가 잘 되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마음은 내 마음의 복을 키우는 가장 귀한 내적 자산입니다. 그리고 사(捨)는 고집과 집착을 내려놓는 평온한 마음입니다. 이 네 가지 마음을 잘 닦으면 복은 저절로 자라며, 이런 마음은 어떤 악연도 선한 인연으로 바꾸는 힘이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마음을 잘 가꾸는 사람이야말로 복의 주인이라 하셨습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복을 바꾸고 싶다면 포기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불평과 비교와 원망입니다. 불평을 하면 마음이 어두워지고, 비교를 하면 마음이 시들며, 원망을 하면 마음이 메말라 복이 들어오지 못한다고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중아함경에서는 “원망은 복을 가리고, 분노는 복을 태운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원망하는 마음을 품는 순간 복을 막는 문이 닫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망을 내려놓는 순간 복은 다시 흘러들어옵니다. 비교의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내 삶의 복을 다시 볼 수 있게 됩니다. 불평을 줄이는 순간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지혜가 생겨나 복이 자라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복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 마음의 문을 통해 안으로 흘러오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문이 열려 있으면 작은 인연에도 복이 스며들고, 그 문이 닫혀 있으면 큰 복이 와도 흘러가 버립니다. 마음의 문은 지혜와 자비로 열리고 욕심과 분노로 닫힙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복을 짓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마음의 문을 여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이 법문을 들으시는 법우 여러분도 내 마음의 문이 어떤 상태인지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욕심과 불안으로 닫혀 있다면 천천히 열어보시고, 누군가를 향한 미움이 있다면 조금씩 내려놓아 보시며, 감사한 인연이 떠오르면 마음속으로 조용히 감사의 합장을 올려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복을 짓는 첫 걸음입니다.

법우 여러분, 복을 짓는 삶은 결코 거창한 수행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내가 오늘 밥을 먹을 때 감사하는 마음을 내는 것, 누군가에게 짧은 격려 한마디를 건네는 것, 마음이 힘든 사람을 바라볼 때 잠시 멈추어주는 것, 오늘 하루 화내지 않겠다고 스스로와 약속하는 것, 이런 소소한 마음이 바로 복을 짓는 가장 실제적인 삶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하루에 한 번이라도 선한 마음을 낸다면 그날은 이미 복된 날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복은 먼 곳이 아니라 늘 내 마음 가까이에 있습니다.

복을 짓는다는 것은 단순히 선행을 쌓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중심이 변하고 마음이 가벼워지며, 주변의 인연들이 따뜻해지고,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변화를 복이 열매로 드러나는 자리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첫째, 복을 짓는 삶을 살면 마음이 넓어집니다. 마음이 넓어진다는 것은 누군가를 이해하는 힘이 커지고 나와 다른 이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뜻입니다. 과거에는 같은 일이 일어나도 금방 화가 났던 상황에서 이제는 한 번 멈추어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불편한 일이 생겨도 예전보다 마음이 덜 흔들리며, 상대의 부족함이 보이더라도 미움보다 연민이 먼저 떠오르게 됩니다. 이것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변화가 아니라 매일 마음의 복을 쌓아가는 사람에게 자연스레 드러나는 변화입니다. 법구경에서는 “선한 마음을 익힌 사람에게는 고요가 따라온다.”고 했습니다. 고요는 넓은 마음에서 싹트는 복의 열매입니다.

둘째, 복을 짓는 삶을 살면 관계가 달라집니다. 우리가 복을 짓는다는 것은 상대에게 선한 기운을 보낸다는 뜻이며, 그 기운은 언젠가 반드시 돌아옵니다. 누군가에게 따뜻하게 대하면 그 사람도 나에게 부드러운 말로 돌아오고, 내가 먼저 감사의 인사를 건네면 상대도 감사로 화답하며, 내가 상대를 인정해 주면 그 사람도 나를 존중해 줍니다. 이것이 인연의 법칙이며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인과(因果)의 이치입니다. 악한 마음을 보내면 악한 인연이 돌아오고, 선한 마음을 보내면 선한 인연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 옵니다. 복을 짓는 사람은 결국 선한 인연의 주인이 됩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고 믿음을 갖게 되며 관계 속에서 갈등이 줄어드는 변화가 찾아옵니다.

셋째, 복을 짓는 삶을 살면 삶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전에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이고, 같은 문제 앞에서도 전에 없던 지혜가 샘솟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이 가져오는 가장 큰 변화입니다. 복은 외적인 조건의 변화가 아니라 내적인 시선의 변화를 일으킵니다. 중아함경에서는 “지혜로운 이는 어려움 속에서 길을 보고, 어리석은 이는 어려움 속에서 막힘을 본다.”고 했습니다. 동일한 상황에서도 길을 볼 수 있는 힘, 이것이 바로 마음의 복이 쌓여 생겨나는 지혜입니다. 복을 짓는 사람은 삶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일어나는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배움을 찾습니다. 이것이 복된 삶의 진정한 힘입니다.

넷째, 복을 짓는 삶을 살면 자기 자신이 달라집니다. 마음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하고, 예전의 자신보다 부드러워지고, 자신을 향한 비난이 줄어들며, ‘내가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자기 수용의 힘이 자랍니다. 과거의 나를 괴롭게 했던 후회, 실수, 상처가 조금씩 약해지고, 마음속에 남아 있던 미움도 천천히 옅어지며, 삶의 무게가 가벼워집니다. 복은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순간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나를 이해하기 시작할 때 조용히 생겨납니다. 부처님께서는 “자신을 이기는 것이 가장 큰 승리”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을 이긴다는 것은 자기 마음의 괴로움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뜻이며, 이것이 복을 쌓아갈 때 생기는 변화입니다.

다섯째, 복을 짓는 삶을 살면 평온과 감사가 자연스럽게 생겨납니다. 작은 일에도 감사한 마음이 생기면 평온이 따라오고, 평온이 자리 잡으면 삶의 속도가 달라집니다. 남보다 빨리 가려는 조급함이 줄어들고, 지금 내 앞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자랍니다. 하루 동안 밥을 먹을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고, 건강이 온전하지 않아도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어준 것에도 감사하고, 오늘 하루 살아 있음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 마음 자체가 복입니다. 이렇게 감사의 마음이 깊어질수록 외적인 오복은 더 이상 절대적 기준이 되지 않습니다. 오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감사를 아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복을 짓는 삶을 살면 언젠가 맞이하게 될 마지막 순간도 달라집니다.
부처님께서는 “복을 지은 이는 삶을 마칠 때 두려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오복의 마지막인 고종명(考終命)은 복된 마무리를 의미하지만, 그것은 외적인 조건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 살아온 마음의 상태가 마지막 순간을 결정합니다. 선한 마음으로 살아온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도 평온하며, 누구에게도 미움이 남아 있지 않기에 삶을 지혜롭게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복을 짓는 삶을 산다는 것은 결국 마지막까지 밝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닦아가는 길입니다.

법우 여러분, 복은 물론 귀한 것이지만, 오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복이며 그 복은 오늘 내가 만드는 선택 속에서 자랍니다. 내가 선택하는 말 한마디, 내가 내는 마음 하나, 내가 내딛는 작은 행동 하나가 복을 짓는 씨앗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복은 멀리 있지 않고, 스스로 짓는 이의 곁에 머문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이 순간 법우 여러분의 마음에서 이미 복이 자라고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 또한 마음의 복을 짓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법 앞에 발원드립니다.


  이전글 2월 27일(금) 아침방송법문 : “마음 평안... 眞虛性宗 2026-02-27
  다음글 2월 25일(수) 아침방송법문 : “나라는 껍... 眞虛性宗 2026-02-25

목록으로 수정하기 삭제하기 추천하기
ⓒ 2001-2004 by Passkorea Co., Ltd. All rights reserved   

후원금보시함

신행상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