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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08일(금) 아침방송법문 : “낳아주심보다 더 큰 은혜는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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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08 07:57:33, 조회 : 368,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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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70년 5월 8일(금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낳아주심보다 더 큰 은혜는 없습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은 “낳아주심보다 더 큰 은혜는 없습니다.”라는 주제를 가지고 함께 깊은 마음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어버이날이기도 합니다. 이 날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근본의 은혜를 되새기고, 그 은혜 앞에 스스로를 돌아보는 매우 뜻 깊은 날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반드시 부모님이 계십니다.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인연과 사랑 속에서 이 생명을 받아 이 세상에 오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크고 깊은 은혜 속에 살아가고 있는 존재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부모은중경에서 부모의 은혜를 설하시며, “어머니가 자식을 잉태하여 열 달 동안 품고 기르며, 해산의 고통을 참고 자식을 세상에 내보내는 그 은혜는 말로 다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생명을 낳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과 희생을 동반하는 일인지를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특히, 어머니의 은혜를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한 생명을 품고 있는 동안 겪어야 하는 수많은 불편함과 고통, 그리고 출산의 순간에 겪는 극심한 고통은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기꺼이 그 길을 선택하셨고, 그 모든 것을 감내하며 우리를 이 세상에 내보내 주셨습니다.
법우 여러분, 이 사실을 깊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우리가 지금 숨 쉬고 있고, 생각하고, 느끼고, 살아가고 있는 이 모든 것이 바로 부모님의 그 한 번의 결단과 희생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너무나도 큰 은혜를 종종 잊고 살아갑니다. 삶이 힘들 때는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마음이 맞지 않을 때는 거리를 두기도 하며, 때로는 그 존재 자체를 당연하게 여깁니다. 이것이 바로 중생의 어리석음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증일아함경에서 “부모의 은혜는 깊고도 무거워, 자식이 평생을 다해 봉양하여도 그 은혜를 다 갚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아무리 애써도 부모님의 은혜를 완전히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동시에, 그 은혜를 잊지 말고 살아가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부처님께서는 이처럼 부모의 은혜를 거듭 강조하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이 은혜를 아는 마음이 수행의 근본이 되기 때문입니다.
수행이란 무엇입니까. 수행은 나를 바로 보는 것이며, 나를 있게 한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깨닫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교만할 수 없고, 더 이상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 머물 수 없게 됩니다.
“나는 혼자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얼마나 큰 착각인지를 알게 되며,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겸손과 감사의 마음이 피어나게 됩니다. 이 마음이 바로 수행의 씨앗입니다.
법우 여러분, 낳아주심의 은혜는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는 생명의 근원입니다. 부모님이 나를 낳아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생명을 준다는 것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큰 은혜입니다.
재물이나 명예, 권력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낳아주심보다 더 큰 은혜는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인연으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수많은 인연 가운데에서도 가장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인연이 바로 부모님입니다. 부모님의 인연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 어떤 수행도, 그 어떤 깨달음도 시작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부모님의 은혜를 아는 것은 단순한 도덕적 행위가 아니라, 수행의 문을 여는 열쇠와도 같은 것입니다. 이 열쇠를 잊고 살아간다면, 아무리 많은 수행을 한다 하더라도 그 근본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가 절에 와서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경전을 읽고, 수행을 하는 것도 모두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은 나를 있게 한 근본에 대한 감사입니다.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수행은 뿌리가 없는 나무와 같습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일지 몰라도, 깊은 바람이 불면 쉽게 흔들리고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어버이날을 맞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과연 부모님의 은혜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나는 그 은혜에 대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이 질문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 속에서 우리는 진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진실을 마주할 때, 우리는 한 걸음 더 깊은 수행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법우 여러분, 부모님의 은혜를 아는 마음은 우리를 낮추고,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점점 넓어져,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힘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처럼 낳아주심의 은혜를 깨닫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감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변화시키는 큰 힘이 됩니다.
이제 우리는 이 은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삶 속에서 실천할 것인지에 대해 깊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선 법문에서 우리는 “낳아주심보다 더 큰 은혜는 없습니다.”라는 말씀을 통해, 생명을 주신 부모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함께 되새겨 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은혜를 단순히 아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어떻게 삶 속에서 받아들이고 실천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부모은중경에서 부모님의 은혜를 낱낱이 설하시며, 그 은혜를 아는 자는 반드시 보답하려는 마음이 일어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은혜를 깊이 깨닫게 되면, 그 마음은 저절로 감사로 이어지고, 감사는 곧 실천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 속에서 그 은혜를 알고도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중에 잘해 드려야지.” “시간이 되면 찾아뵈어야지.” 하면서 미루다가, 정작 그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법우 여러분, 수행은 지금 이 순간입니다.
효 또한 지금 이 자리에서 실천되어야 합니다.
내일로 미루는 효는 이미 늦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실천해야 하겠습니까?
먼저, 마음을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부모님을 대할 때, 내 기준과 내 생각을 앞세우기보다는, 부모님의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심(下心)이며, 수행자의 기본자세입니다.
부모님도 한 분의 인격체이시며, 각자의 삶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오신 분들입니다.
그분들의 삶을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 마음이 있을 때, 갈등은 줄어들고 관계는 부드러워지게 됩니다.
다음으로, 말과 행동을 살펴야 합니다.
부모님께 드리는 말은 더욱 공손하고 따뜻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밖에서는 예의 바르게 행동하면서도, 집에서는 가장 가까운 부모님께 거친 말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가까운 곳일수록 더 공경해야 합니다.
“말은 마음의 그림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가 말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께 드리는 말이 부드럽고 따뜻하다면, 그것은 이미 큰 공덕이 됩니다.
행동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자주 찾아뵙고, 안부를 묻고, 작은 것이라도 살펴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행동에 담긴 마음입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할 때 그것이 진정한 효가 됩니다.
법우 여러분, 부모님께 드리는 가장 큰 효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내가 바르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식이 건강하고, 바른 길을 가며, 스스로를 잘 돌보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 그것이 부모님께 가장 큰 기쁨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수행을 잘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이미 부모님께 드리는 큰 공양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자기를 바로 세우는 것이 곧 부모를 공경하는 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바르게 서지 못하면, 그 어떤 효도도 온전할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중생이 과거의 어느 생에서는 나의 부모였다고 가르칩니다.
범망경의 말씀처럼, “일체 남자는 나의 아버지요, 일체 여자는 나의 어머니이다.”라는 가르침은 우리에게 매우 큰 울림을 줍니다.
이 말씀을 깊이 받아들이면, 우리는 더 이상 특정한 사람에게만 효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길에서 만나는 어르신을 공경하는 마음, 힘든 이웃을 돌보는 마음,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 이 모든 것이 바로 부모의 은혜를 아는 데서 시작된 자비의 실천입니다.
이처럼 효는 개인적인 윤리를 넘어, 세상을 밝히는 보살행으로 확장됩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는 부모님과의 관계가 항상 순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고, 살아온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먼저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상대를 바꾸려 하기보다는, 나의 집착과 기대를 내려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모님이 나를 이해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집착이 강할수록 우리는 쉽게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관계는 서서히 풀리기 시작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괴로움은 집착에서 비롯된다.”고 하셨습니다.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도 이 가르침은 그대로 적용됩니다.
법우 여러분, 효는 완벽한 관계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부족한 관계 속에서도 이해하려는 마음, 받아들이려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그 마음이 바로 수행의 마음이며, 자비의 출발점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깊이 새기고, 그 은혜를 어떻게 삶 속에서 실천할 것인지 마음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이제 이러한 효의 실천이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어떤 결실을 맺게 되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법우 여러분, “낳아주심보다 더 큰 은혜는 없습니다.”라는 이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며,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려 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조용히 눈을 감고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처음 이 세상에 왔을 때의 모습,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그 작은 존재를 품에 안고 밤낮없이 지켜보시던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밤에 울면 달래주시고, 아프면 대신 아파해 주시고, 배고프면 자신의 것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시던 그 손길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 모든 순간 속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사랑과 희생이 담겨 있습니다.
어머니의 손은 거칠어졌고, 아버지의 어깨는 점점 굽어갔지만, 그 모든 변화 속에는 오직 하나, 자식을 위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손의 거칠어짐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 어깨의 무거움을 깊이 헤아리지 못한 채 살아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법우 여러분, 부모님의 사랑은 늘 뒤에서 조용히 우리를 지켜주는 그림자와 같습니다. 우리가 밝은 곳에 서 있을 때는 잘 보이지 않지만, 그늘 속에 들어가면 비로소 그 존재를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부모님입니다. 그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지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경험을 우리는 이미 여러 번 해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부모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셨습니까. 큰 것을 바라신 것이 아닙니다. 그저 건강하게 잘 살아주기를, 바르게 살아주기를, 그리고 가끔이라도 안부를 전해주기를 바라셨을 뿐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우리는 너무나 큰 사랑을 받고도 너무나 작은 것으로만 보답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마음이 저려옵니다.
부처님께서는 부모의 은혜를 갚는 길로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현세에서 정성껏 봉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물질적인 보살핌도 중요하지만, 부모님이 마음의 평안을 얻고 바른 길을 걸으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욱 큰 효라는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귀한 시간입니다. “나중에 잘해 드려야지”라는 생각은 어느 날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남을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짧은 전화 한 통이라도 드려보시기 바랍니다. “건강하십니까, 잘 계십니까, 감사합니다.” 이 한마디가 부모님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 됩니다.
혹 이미 부모님을 떠나보내신 법우님들께서는 그 은혜를 마음 깊이 새기시고, 공덕을 지어 회향하는 삶을 살아가셔야 하겠습니다. 부모님의 이름을 떠올리며 한 번 더 절을 올리고, 한 번 더 좋은 일을 행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깊은 효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부모님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됩니다. 그때 가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마음을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아는 그 마음은 우리를 낮추고, 우리의 삶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점점 넓어져, 이 세상의 모든 존재를 향한 자비로 이어지게 됩니다.
오늘 어버이날 아침, 우리는 다시 한 번 깊이 발원해야 하겠습니다.
“저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남은 삶 동안 그 은혜를 마음에 새기고,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며 살아가겠습니다. 나아가 모든 중생을 부모와 같이 여기며 자비의 길을 걷겠습니다.”
이 발원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수행이며, 부처님께 올리는 가장 아름다운 공양이 될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부모님의 은혜를 마음 깊이 간직한 채 오늘 하루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 마음이 여러분의 삶을 밝히고, 여러분의 인생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늘 함께하시기를 두 손 모아 기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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