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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10일(월) 아침방송법문 : “먼저 손 내미는 용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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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0 08:00:47, 조회 : 123,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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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70년 8월 10일(월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먼저 손 내미는 용기”
법우 여러분, 오늘 아침 법문의 주제는 “먼저 손 내미는 용기”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다 보면 마음이 맞을 때도 있지만, 작은 말과 행동으로 서운함이 생기고 가까웠던 인연이 멀어질 때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일이었는데도 서로가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리다 보면 마음의 거리는 점점 멀어집니다. “저 사람이 먼저 잘못했으니 먼저 사과해야 한다.”, “내가 먼저 연락하면 나를 만만하게 볼 것이다.”라는 생각이 마음의 문을 닫게 합니다.
누가 더 많이 잘못했는지를 따지는 동안 인연은 더욱 굳어지고, 자존심을 지키려는 동안 서로의 마음에는 상처가 깊어집니다. 나중에는 무엇 때문에 서운했는지조차 희미해지지만, 먼저 손을 내밀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법우 여러분, 먼저 손을 내민다는 것은 내가 모두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일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행동이 옳았다는 뜻도 아니며, 무조건 참고 희생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다툼을 계속 이어 가기보다 평화를 선택하는 것이며, 자존심보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지혜로운 결단입니다. 자신의 분노와 서운함에 끌려가지 않고, 관계를 살리기 위하여 한 걸음 먼저 나아가는 용기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에서 “원한은 원한으로 사라지지 않고, 원한을 버릴 때에만 사라진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차가운 말에 차가운 말로 맞서고, 무관심에 무관심으로 대응하면 갈등은 더욱 커질 뿐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인사하지 않았다고 나도 인사하지 않고, 전화하지 않았다고 나도 연락하지 않으며, 서운한 말을 들었다고 더 아픈 말로 되갚으면 원망은 끝없이 이어집니다. 한 사람이 먼저 그 고리를 끊어야 비로소 화해의 길이 열립니다.
그 한 사람이 꼭 상대방이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먼저 인사하고, 내가 먼저 안부를 묻고, 내가 먼저 따뜻한 말을 건넬 수 있습니다. 먼저 다가가는 사람은 지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손을 내미는 일을 손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왜 나만 참아야 하는가.”, “저 사람은 잘못하고도 아무렇지 않은데 왜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하는가.”라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 마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겪었거나 진심을 다했는데도 외면 받았다면 먼저 다가가는 일이 더욱 어렵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미움과 원망을 오래 품고 있는 동안 가장 먼저 괴로움을 받는 사람은 상대방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입니다.
상대방은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데 나는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계속 떠올리며 밤잠을 이루지 못할 수 있습니다. 지나간 일을 수없이 되풀이하고, 만나지도 않은 사람과 마음속으로 계속 다투면서 귀한 시간과 평안을 잃게 됩니다.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상대방만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내 마음에 묶여 있던 미움의 매듭을 풀고, 원망의 짐에서 나 자신을 놓아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법우 여러분, 먼저 손을 내미는 방법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한 사람에게 “잘 지내십니까.”라고 짧은 문자를 보내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가족에게 먼저 “내가 말이 지나쳤습니다.”라고 사과하고, 도반에게 “혹시 마음 상한 일이 있었다면 풀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당장 따뜻하게 받아주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굳어진 마음이 한순간에 풀리지 않을 수도 있고, 상대방에게도 자신의 감정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고 해서 반드시 원하는 반응이 돌아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자비를 다했다면, 그다음은 상대방의 선택과 인연에 맡길 줄도 알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억지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미움에 끌려가지 않는 나의 마음을 만드는 것입니다. 화해의 손길을 내밀되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진심을 전한 뒤에는 조용히 기다리는 것도 지혜입니다.
가정에서도 먼저 손 내미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부부가 다툰 뒤 서로 말을 하지 않고 며칠씩 지내면 집안의 공기까지 무거워집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도 먼저 사과하면 권위가 무너진다고 생각하여 잘못을 알면서도 입을 닫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에게 “내가 네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고 말한다고 해서 부모의 자리가 낮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통하여 자녀는 정직함과 책임을 배웁니다.
자녀도 부모에게 먼저 다가가 “걱정하시는 마음을 모르고 말이 거칠었습니다.”라고 사과할 수 있습니다. 가족은 누가 이기고 지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함께 살아가는 소중한 인연입니다.
사찰과 도반의 인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법회에 참석했는데 누군가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서운해 하기보다 내가 먼저 웃으며 인사해 보십시오. 처음 온 법우가 어색해 보인다면 먼저 다가가 자리를 안내하고 따뜻하게 말을 건네 보십시오.
내가 내민 손길 하나가 한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되고, 그 사람을 부처님 인연 안에 오래 머물게 할 수도 있습니다. 먼저 다가가는 자비가 도량의 분위기를 밝히고, 도반의 인연을 더욱 깊게 만들어 줍니다.
오늘 불심사에서는 김춘제 영가님의 별세 사십구일 천도재를 봉행합니다. 죽음은 우리에게 모든 인연이 영원히 곁에 머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살아 있을 때 전하지 못한 감사와 사랑은 인연이 떠난 뒤에 깊은 후회로 남을 수 있습니다. 먼저 전화할 것을, 먼저 찾아갈 것을, 미안하다고 말할 것을 하고 뒤늦게 가슴 아파해도 이미 그 손을 다시 잡을 수 없는 때가 옵니다.
그러므로 감사할 사람이 있다면 오늘 감사하다고 말하십시오. 미안한 사람이 있다면 오늘 사과하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오늘 안부를 물으십시오. 사랑한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을 다음으로 미루지 않아야 합니다.
법우 여러분, 먼저 손을 내미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짧은 용기가 오랜 오해를 풀고, 멀어졌던 인연을 다시 이어 주며, 언젠가 찾아올 후회를 줄여 줍니다.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는 오늘, 누군가가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먼저 자비의 손을 내밀어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인사하고, 먼저 웃으며, 먼저 용서하고, 먼저 따뜻한 말을 전하는 그 마음이 바로 인연을 살리는 불자의 수행입니다.
법우 여러분, 먼저 손을 내미는 일은 단순히 연락을 먼저 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마음과 처지를 한 번 더 헤아리고, 굳어진 관계를 풀기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갈등이 생기면 자신의 서운함만 크게 바라보기 쉽습니다. “나는 이렇게 상처받았는데 저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하며, 상대방이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다가오기만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상대방에게도 말하지 못한 사정과 상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뜻하지 않게 건넨 말과 행동이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은 자기 감정만 고집하지 않고 상대방의 처지까지 돌아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마음속에는 서운함뿐 아니라 자존심도 숨어 있습니다. “내가 왜 먼저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깊이 살펴보면, 내가 옳다는 것을 끝까지 인정받고 싶은 집착이 보일 때도 있습니다.
먼저 사과한다고 해서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 말로 마음이 상했다면 미안합니다.”, “내가 당신의 사정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관계를 다시 이어 갈 문을 여는 일입니다.
사과할 때에는 “미안하지만 당신도 잘못했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이지 않아야 합니다. 먼저 상대방의 말을 충분히 듣고, 내가 잘못한 부분을 인정할 때 굳어 있던 마음도 조금씩 풀릴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인연과 무조건 다시 가까워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복하여 상처를 주거나 부당하게 대하는 사람에게는 적절한 거리를 두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먼저 손을 내민다는 것은 자신을 함부로 대하도록 내버려 두는 일이 아닙니다.
용서는 상대방의 잘못을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으로 인하여 내 마음까지 오랫동안 미움에 묶여 있지 않도록 나 자신을 놓아주는 것입니다.
직접 만나기 어렵다면 마음속으로라도 원망을 내려놓아 보십시오. 진심으로 축원하기 어렵다면 “더 이상 이 미움으로 나 자신을 괴롭히지 않겠습니다.”라고 다짐하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습니다.
오늘 불심사에서는 김춘제 영가님의 별세 사십구일 천도재를 봉행합니다. 영가님께서 살아생전 지으신 모든 업장이 소멸되고, 부처님의 자비광명 속에서 극락왕생하시기를 지극한 마음으로 발원합니다.
죽음 앞에서는 자존심과 다툼도 모두 부질없어집니다. 우리는 인연이 떠난 뒤에야 한 번 더 손을 잡아 줄 것을, 더 따뜻하게 말할 것을, 먼저 찾아갈 것을 생각하며 아쉬워합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을 때 먼저 다가가야 합니다. 부모님과 형제에게 안부를 묻고, 오래 연락하지 못한 도반에게 짧은 문자라도 보내 보십시오. “잘 지내십니까.”라는 한마디가 외로운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먼저 손 내미는 일은 멀어진 사람과 화해하는 것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힘들어 보이는 이에게 먼저 사정을 묻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며, 낯선 법우에게 먼저 자리를 권하는 것도 자비의 실천입니다.
내가 내민 손이 곧바로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자비는 상대방의 반응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내가 미움의 고리를 끊고 평화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마음에 떠오르는 한 사람에게 먼저 안부를 전해 보십시오. 먼저 인사하고, 먼저 사과하며, 먼저 따뜻한 말을 건네는 그 짧은 용기가 오랜 오해를 풀고 소중한 인연을 살릴 수 있습니다.
살아 있을 때 전해야 할 감사와 사랑을 미루지 말고, 잡을 수 있을 때 따뜻하게 손을 잡아 주십시오. 오늘 내가 먼저 내민 자비의 손길이 한 사람의 마음을 살리고, 나의 마음까지 평안하게 하는 귀한 수행이 되기를 축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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