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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12일(수) 아침방송법문 : “침묵에도 자비가 필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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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2 08:08:37, 조회 : 119,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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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70년 8월 12일(수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침묵에도 자비가 필요합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낫다.”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화가 났을 때 말을 하면 실수할 것 같아서 입을 다물기도 하고, 상대방과 다투기 싫어서 침묵하기도 하며, 때로는 아무리 이야기해도 통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말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물론 불필요한 말을 줄이고 거친 말을 삼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수행입니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에 곧바로 말을 내뱉지 않고 잠시 침묵할 수 있다면, 그 침묵 하나가 큰 다툼을 막고 소중한 인연을 지켜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법우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가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침묵한다고 해서 그 침묵이 모두 수행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거친 말을 하지 말라. 거친 말을 들은 이는 다시 거친 말로 갚으리니, 성난 말은 괴로움을 불러오고 그 보복은 그대에게 돌아오리라.”
이 말씀은 단순히 말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의 말속에 상대를 아프게 하는 마음이 들어 있지 않은지를 살펴보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이 가르침을 한 걸음 더 깊이 바라보면, 입 밖으로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마음속으로 상대를 벌주고 있다면 그것 역시 자비로운 침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가정에서 부부가 다투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한쪽이 화가 나서 며칠 동안 말을 하지 않습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외면하고, 마주쳐도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가며, 상대가 먼저 말을 걸어와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고 욕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는 “당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아라.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느껴보아라.”하는 마음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고요한 침묵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침묵이라는 방법으로 상대를 벌주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도 이런 일이 있습니다. 자식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전화를 받지 않고, 찾아와도 냉랭하게 대하며 “나는 할 말이 없다.”라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자식 역시 부모에게 서운한 일이 생겼다고 연락을 끊어버리기도 합니다.
도반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수행하고 법회를 보며 오랫동안 좋은 인연을 맺어왔는데, 작은 말 한마디 때문에 서운한 마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부드럽게 풀려고 하지 않고 어느 날부터 인사를 하지 않고, 곁에 앉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으며 조용히 거리를 둡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두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 잘못한 것이 없다.”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상대에게 상처를 주려는 마음으로 선택한 침묵이라면 말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길 수도 있습니다.
법우 여러분, 사람의 마음은 말로만 상처받는 것이 아닙니다. 대답하지 않는 것에서도 상처받고, 외면하는 눈빛에서도 상처받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돌아서는 뒷모습에서도 상처받습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자신이 한 말만 돌아볼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지 않은 말도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왜 지금 침묵하고 있는가?”하고 자신의 마음에 물어보아야 합니다.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잠시 기다리는 침묵입니까? 아니면 상대가 괴로워하기를 바라면서 하는 침묵입니까? 화를 가라앉히기 위한 침묵입니까? 아니면 내 서운함을 알아주지 않는 상대를 벌주기 위한 침묵입니까?
이 두 가지 침묵은 겉모습은 똑같아 보여도 그 마음의 방향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는 자비로 향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성냄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나에게 거친 말을 했을 때 즉시 맞받아치지 않고 잠시 입을 다무는 것은 지혜로운 침묵입니다. 그 순간 마음속으로 “지금 내가 화가 났으니 조금 가라앉은 뒤 이야기하자.”라고 생각한다면 그 침묵은 관계를 살리는 침묵입니다.
그러나 “그래, 어디 한번 당해봐라. 나도 이제 당신을 상대하지 않겠다.”라는 마음으로 입을 닫는다면 같은 침묵이라도 그것은 관계를 끊는 침묵이 됩니다.
바로 이 차이를 알아차리는 것이 수행입니다.
법우 여러분,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 사이의 인연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게 됩니다. 젊었을 때는 서운하면 안 보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나면, 내가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해서 멀어진 인연이 마음에 오래 남기도 합니다.
“그때 내가 먼저 한마디 할 것을.”
“그때 내가 먼저 전화할 것을.”
“그때 괜찮으냐고 물어볼 것을.”
세월이 흐른 뒤에는 이런 후회가 남습니다.
그러나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는 전화를 할 수도 없고, 이미 멀어진 인연에게는 마음을 전하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의 인연을 오늘 지켜야 합니다.
자비도 나중에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실천해야 합니다.
때로는 한마디 말이 필요합니다.
“제가 너무 화가 나서 지금은 말을 잘못할 것 같습니다. 마음을 좀 가라앉힌 뒤 다시 이야기합시다.”
이렇게 말하고 잠시 침묵한다면 상대방도 그 침묵의 뜻을 압니다.
그러나 아무 설명도 하지 않고 갑자기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면 상대방은 수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왜 나를 피하는 것일까?”
“이제 나를 싫어하는 것일까?”
침묵하는 사람은 편할지 모르지만 그 침묵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는 수많은 말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자비로운 침묵에는 상대를 안심시키는 배려가 필요합니다.
법우 여러분, 수행은 거창한 곳에 있지 않습니다. 말을 해야 할 때 따뜻하게 말하고, 말을 삼켜야 할 때는 지혜롭게 삼키며, 침묵해야 할 때에도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수행입니다.
오늘 하루 누군가에게 서운한 마음이 생겨 말하기 싫어질 때가 있다면 먼저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조용히 물어보십시오.
“지금 나의 침묵 속에는 자비가 있는가?”
이 질문 하나만 마음에 품고 살아도 우리의 말은 훨씬 부드러워지고, 우리의 침묵 또한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벽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게 하는 쉼터가 될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앞선 법문에서는 침묵이라고 해서 모두 수행이 되는 것은 아니며, 그 침묵 속에 어떤 마음이 담겨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자비로운 침묵은 어떤 침묵일까요?
자비로운 침묵은 상대를 외면하는 침묵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잠시 기다려 주는 침묵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참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대의 입장과 형편까지 헤아려보는 침묵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숫타니파타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분노를 버리고 교만을 버리며 모든 속박을 뛰어넘어라.” 수행의 중요한 출발은 상대를 바꾸려 하기 전에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분노와 집착을 먼저 알아차리는 데 있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섭섭한 말을 했을 때 곧바로 대꾸하면 감정이 감정을 부르고, 한마디가 두 마디가 되면서 결국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하게 됩니다. 이럴 때 잠시 입을 다물고 마음을 바라보는 것은 지혜로운 침묵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침묵하는 동안 마음속에서 계속 상대를 미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입은 다물었지만 마음속으로 “두고 보자.”, “언젠가는 갚아주겠다.”라고 한다면 몸은 조용해도 마음에서는 이미 큰 다툼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침묵은 입만 쉬는 것이 아니라 성난 마음도 함께 쉬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시 침묵하는 동안 “저 사람도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나도 모르게 상처를 준 것은 없었을까.”하고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게 더 쉽게 상처를 줍니다. 낯선 사람에게는 예의를 지키면서도 가족이나 오래된 도반에게는 “이 정도는 알아주겠지.”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낼 때가 많습니다.
특히 서운한 일이 생기면 상대가 먼저 찾아오기를 기다립니다. “잘못한 사람이 먼저 말해야지.”라고 생각하며 서로 침묵하다 보면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그렇게 좋은 인연까지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수행자는 옳고 그름만 따지기 전에 인연을 먼저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조금 억울하더라도 먼저 “혹시 제가 서운하게 한 일이 있었습니까?”라고 묻는 한마디가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어줄 수 있습니다.
먼저 말한다고 지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사과한다고 반드시 내가 더 잘못한 것도 아닙니다.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아무 말 없이 곁을 지켜주는 것도 큰 자비입니다. 슬픔에 잠긴 사람에게 좋은 말을 많이 해주려고 애쓰기보다 조용히 손을 잡아주고,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침묵이 백 마디 위로보다 깊은 위안이 될 때가 있습니다.
아픈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내세요.”라는 말을 반복하기보다 그 사람의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말하고 싶을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주는 것이 더 따뜻한 자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비로운 침묵에는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내 감정을 다스리는 지혜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따뜻함입니다.
오늘 누군가의 말이 마음에 걸리더라도 즉시 판단하지 마십시오. 잠시 침묵하면서 “저 말 뒤에는 어떤 마음이 있었을까.” 하고 한 번 더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내가 침묵하고 있을 때에는 이렇게 자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는가, 아니면 상대에게 벌을 주고 있는가?”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할 수 있다면 우리의 침묵은 점점 차가운 벽이 아니라 자비로운 수행이 되어갈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말을 잘하는 것만 지혜가 아닙니다.
말해야 할 때 말하고, 멈춰야 할 때 멈추며, 침묵할 때조차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것,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길입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우리는 “침묵에도 자비가 필요합니다.”라는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침묵한다고 해서 언제나 지혜로운 것은 아니며, 그 침묵 속에 미움과 외면이 담겨 있다면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에서 “성냄을 성내지 않음으로 이기고, 악을 선으로 이겨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가 났을 때 침묵으로 상대를 벌주기보다, 잠시 마음을 가라앉힌 뒤 부드럽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 더 큰 수행입니다.
“그 말이 조금 서운했습니다.”
“혹시 제가 잘못 이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먼저 말씀드렸어야 했습니다.”
이런 짧은 한마디가 닫힌 마음을 열고 멀어져 가는 인연을 다시 이어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말보다 침묵이 더 큰 자비가 될 때도 있습니다. 슬픔에 잠긴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함부로 충고하지 않으며, 그저 곁을 지켜주는 침묵은 참으로 따뜻한 수행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말하느냐 침묵하느냐가 아닙니다. 지금 이 사람에게 무엇이 도움이 되는지를 헤아리는 마음, 바로 그것이 자비입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누군가에게 서운한 일이 생긴다면 곧바로 등을 돌리지 말고 잠시 마음을 살펴보십시오.
“나는 지금 왜 침묵하려 하는가?”
“이 침묵이 상대를 살리는가, 아프게 하는가?”
말이 필요할 때는 따뜻하게 말하고, 침묵이 필요할 때는 따뜻하게 침묵하십시오. 감사할 일이 있다면 오늘 감사하고, 사과할 일이 있다면 너무 늦기 전에 먼저 손을 내미십시오.
침묵하되 미워하지 말고, 말하되 상처 주지 않는 것, 그것이 자비로운 수행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말과 침묵 속에 자비를 담아, 만나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하루가 되시기를 부처님 전에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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