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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09일(금) 아침방송법문 : “사람을 살리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넵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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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9 07:24:39, 조회 : 3,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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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70년 10월 9일(금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사람을 살리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넵시다.”
법우 여러분, 우리는 하루 동안 참 많은 말을 하며 살아갑니다.
아침에 가족에게 건네는 인사부터 전화로 나누는 이야기, 휴대전화로 보내는 짧은 글까지, 우리의 하루는 말과 글로 이어져 있습니다.
오늘 한글날을 맞아, 내가 사용하는 말이 누군가의 마음에 어떤 흔적을 남기고 있는지 함께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살아가지만, 마음을 알아주는 말에서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몸이 고단한 날에 듣는 “오늘도 애쓰셨습니다”라는 한마디, 일이 잘되지 않아 풀이 죽었을 때 듣는 “혼자 걱정하지 말고 함께 생각해 봅시다”라는 말이 큰 위로가 됩니다.
그 말이 당장의 어려움을 모두 해결해 주지는 못해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안도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누군가를 오랫동안 아프게 하기도 합니다.
“그 정도 일로 뭘 그렇게 힘들어하느냐”, “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은 말하는 사람에게는 잠깐의 표현이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다시 속마음을 꺼내지 못하게 하는 문턱이 될 수 있습니다.
힘들다는 말을 꺼내기까지 얼마나 망설였을지 생각한다면, 우리는 조금 더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대답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주제인 “사람을 살리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넵시다”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습니다.
거창한 말로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어 놓으라는 것이 아니라,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외롭고 하찮은 존재라고 느끼지 않도록 마음을 건네자는 것입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당신의 수고를 알고 있습니다”라는 마음이 전해질 때, 말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가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앙굿따라 니까야』에서 좋은 말이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조건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뜻을 풀어보면 때에 맞고, 진실하며, 부드럽고, 도움이 되며, 상대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말입니다.
말의 내용만 옳으면 된다고 여기기 쉽지만, 언제 어떤 태도로 전하는지, 그 말이 상대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나는 틀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을 말했더라도 여러 사람 앞에서 상대를 창피하게 했다면, 그 사람은 잘못을 돌아보기보다 모욕당한 마음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옳은 내용을 전하는 일과 사람의 마음을 존중하는 일은 함께 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가족이 중요한 일을 깜빡하여 불편을 겪었다고 해보겠습니다.
“당신은 늘 그렇지, 제대로 하는 게 없어”라고 말하면, 한 번의 실수를 그 사람 전체의 모습으로 단정하게 됩니다.
“이 일이 빠져서 오늘 조금 어려웠어요, 다음에는 서로 한 번 더 확인하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면, 불편했던 사실을 전하면서도 함께 고칠 길을 열어둘 수 있습니다.
따뜻하게 말한다는 것은 잘못을 덮어두거나 싫은 일에도 무조건 웃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필요한 말은 분명히 하되, 상대의 인격을 깎아내리지 않고 구체적인 일을 놓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지키면서 상대도 존중하는 말, 그것이 우리가 일상에서 익혀야 할 바른말의 한 모습입니다.
특히 가까운 사이에서는 이러한 정성이 더 필요합니다.
밖에서는 공손하게 말하면서도 가족에게는 “그것도 몰라요?”, “알아서 해요” 하고 쉽게 말을 끊을 때가 있습니다.
가까우니 이해해 줄 것이라 여기지만, 가까운 사람의 말이기에 더 깊이 마음에 남는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평생 함께 살아온 부부라도 고맙다는 말을 저절로 아는 것은 아닙니다.
늘 밥을 차려주는 사람에게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집안일을 챙긴 사람에게 “당신이 해주니 한결 수월하네요”라고 전해보십시오.
매일 반복되는 수고를 당연하게 넘기지 않을 때, 같은 집에서 살아가는 마음에도 온기가 더해집니다.
자녀나 손주에게도 결과를 평가하는 말보다 먼저 노력을 알아주는 말을 건네면 좋겠습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일이 있더라도 “속상했겠구나, 어떤 점이 어려웠니?” 하고 물으면 아이는 자기 마음을 설명할 기회를 얻습니다.
잘못을 바로잡는 일도 그 이야기를 충분히 들은 뒤에 하면, 무엇을 도와주어야 할지 더 분명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법우 여러분, 따뜻한 말을 하려면 먼저 상대를 자세히 바라보아야 합니다.
누가 말없이 수고하고 있는지, 누가 평소보다 기운이 없는지, 누가 자기 이야기를 꺼내려다 삼키고 있는지 살피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라보면 막연히 “잘하세요”라고 말하는 대신, “요즘 여러 일을 돌보느라 많이 애쓰셨지요” 하고 그 사람의 삶에 닿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표현이 서툴러도 괜찮습니다.
멋진 문장을 찾느라 마음을 전할 때를 놓치기보다, “고맙습니다”, “제가 들어드릴게요”, “함께해 주셔서 든든합니다” 하는 짧고 진실한 말부터 시작하십시오.
상대의 대답을 재촉하지 않고 그 말을 조용히 건네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내가 가장 자주 말을 건네는 사람을 한 분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에게 최근 어떤 말을 많이 했는지, 부탁과 지적은 자주 하면서 고마움과 격려는 아껴두지 않았는지 돌아보십시오.
사람을 살리는 말의 실천은 먼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늘 곁에 있어 미처 살피지 못했던 그 사람의 수고를 알아주는 데서 시작됩니다.
법우 여러분, 따뜻한 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그 말을 건네기는 쉽지 않습니다.
마음속으로는 고맙게 생각하면서 표현하지 못하고, 걱정되어 꺼낸 말이 잔소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럴 때에는 말을 잘하려고 애쓰기 전에, 지금 내가 어떤 마음으로 입을 열려 하는지 잠시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상대를 도우려는 마음인지, 답답한 내 속을 풀고 싶은 마음인지 돌아보십시오.
“다 당신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라고 하면서도 정작 상대의 사정은 듣지 않고 내 생각만 길게 이야기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뜻으로 시작했어도 상대가 말할 자리를 남겨두지 않으면, 그 마음은 제대로 전해지기 어렵습니다.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얼른 해결책을 찾아주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상대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방법을 알려주는 말보다, 그동안 얼마나 애썼는지 알아주는 말일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그렇게 하면 안 되지”라고 대답하기보다, “그동안 마음이 많이 무거웠겠네요” 하고 먼저 헤아려주십시오.
누군가의 아픔을 들어준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말에 무조건 동의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 생각과 다른 부분이 있어도 곧바로 판단하지 않고, 그 사람이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이해하려는 것입니다.
충분히 들은 다음 “제가 생각한 방법을 말씀드려도 괜찮을까요?” 하고 물으면, 조언도 한결 편안하게 나눌 수 있습니다.
몸이 아프거나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말을 건넬 때에도 세심함이 필요합니다.
“좋게 생각하면 다 괜찮아질 거예요”라는 말은 격려의 뜻일 수 있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고통을 가볍게 여긴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습니다.
앞날을 쉽게 장담하기보다 “제가 도울 일이 있을까요?” 하고 물으며 지금 함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편이 더 든든한 위로가 됩니다.
따뜻한 말은 작은 행동이 뒤따를 때 더욱 깊이 전해집니다.
“힘들면 연락하세요”라는 말을 건넸다면 시간이 날 때 먼저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듣겠다고 했다면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주십시오.
내 말과 행동이 같은 방향을 향할 때 상대는 그 말을 믿고 마음을 놓을 수 있습니다.
불심사에서 법우님들을 만나는 자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오랜만에 나온 분에게 “왜 이제야 왔어요?”라고 묻기보다 “오시니 참 반갑습니다” 하고 맞아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오지 못한 사정을 먼저 설명하게 하기보다, 이 자리에 함께한 기쁨을 전하면 그분도 한결 편안하게 법당에 앉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 실수했을 때에도 사람들 앞에서 바로 지적하기보다 조용히 다가가 알려주는 배려가 필요합니다.
같은 내용을 말하더라도 체면을 지켜주고 다시 해볼 여지를 주면, 상대는 부끄러움에 움츠러들기보다 고칠 용기를 얻습니다.
우리 도량이 따뜻한 곳이 되려면 법당을 정갈하게 가꾸는 정성만큼 서로에게 건네는 말도 정성껏 살펴야 합니다.
오늘은 한글날인 만큼 휴대전화로 보내는 글도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글에는 목소리와 표정이 함께 실리지 않기에, 짧게 쓴 문장이 뜻밖에 차갑거나 명령하는 말처럼 읽힐 때가 있습니다.
문자를 보내기 전 한 번만 천천히 읽으며, 받는 사람이 내 뜻을 편안하게 이해할 수 있을지 살펴보십시오.
여러 사람이 함께 보는 대화방에서는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누군가의 잘못이나 개인적인 사정을 공개적으로 꺼내기보다, 꼭 필요한 이야기는 당사자에게 따로 정중하게 전하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일보다, 서로의 관계를 지키면서 문제를 풀어가는 일이 더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이미 상처 주는 말을 했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받아들여요?” 하며 상대의 반응을 탓하기보다, 내가 한 말 가운데 무엇이 아프게 들렸을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까 여러 사람 앞에서 그렇게 말한 것은 제 잘못입니다, 미안합니다” 하고 구체적으로 인정하는 데서 관계를 돌볼 길이 열립니다.
사과했다고 곧바로 상대의 마음이 풀리기를 바라지는 마십시오.
내가 전한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도 필요하며, 같은 말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지켜볼 시간도 필요합니다.
따뜻한 말의 진심은 한 번의 표현뿐 아니라 그 뒤에 이어지는 태도 속에서도 드러납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우리가 나누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이곳에 다시 오고 싶은 이유가 되고, 다시 이야기해 볼 용기가 될 수 있습니다.
내 생각을 전하는 데에만 마음을 쏟지 말고, 상대가 자기 마음을 편안히 꺼낼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십시오.
잘 듣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건넨 말에 작은 실천을 보태는 가운데 우리의 자비는 일상의 온기가 되어 전해집니다.
법우 여러분, 마음속에 담아둔 고마움도 말로 전해야 상대에게 닿습니다.
늘 곁에 있으니 알겠지 여기며 미루었던 인사를 오늘은 직접 건네보십시오.
“당신 덕분에 힘이 납니다”, “오늘도 애쓰셨습니다” 하는 짧은 말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그 따뜻함을 자신에게도 나누어주시기 바랍니다.
실수했다고 “나는 왜 늘 이 모양일까” 하며 자신을 몰아세우기보다, “잘못은 고치고 다시 정성껏 해보자” 하고 다독여주십시오.
자신의 부족함을 차분히 받아들이는 마음은 다른 사람의 실수를 너그럽게 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오늘 한글날에는 가까운 분께 다정한 안부 한 줄을 보내보시면 좋겠습니다.
화려한 문장보다 그분에게 고마웠던 일을 하나 떠올려 진솔하게 적어보십시오.
그 짧은 글이 누군가의 외로운 하루를 따뜻하게 밝혀줄 수 있습니다.
기도하며 부처님을 부르는 입으로 이웃에게 용기를 전하고, 경전을 읽는 정성으로 가족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십시오.
그렇게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는 자비가 우리의 가정과 불심사 도량을 더욱 따뜻하게 할 것입니다.
법우님들께서 오늘 건네는 말 한마디가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기를 두 손 모아 발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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