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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1일(일) 아침방송법문 :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면 다툼이 줄어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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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1 08:03:57, 조회 : 2,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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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70년 10월 11일(일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면 다툼이 줄어듭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다툼을 겪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면 아주 중대한 문제보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 일하는 방식의 차이 때문에 마음이 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그것도 이해하지 못하나.”하는 생각이 앞서고,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커집니다.
가령 가족끼리 외출을 준비하는데 한 사람은 서둘러 나가자고 하고, 다른 사람은 조금만 기다리라고 합니다.
서두르는 사람은 약속을 지키려는 것이고, 준비하는 사람은 빠뜨리는 것 없이 잘 챙기려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늘 늦어.”라는 말에 “당신은 왜 늘 재촉만 해?”라는 말이 돌아오면, 외출 준비는 어느새 서로의 잘못을 따지는 시간이 됩니다.
이때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은 단지 누가 먼저 잘못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내 마음이 어느 순간부터 상대의 사정을 이해하는 일보다 내 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에 매달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함께 나들이를 잘 다녀오자는 처음의 마음은 사라지고, 상대에게 지지 않으려는 마음만 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우 여러분, “내 생각이 옳다.”는 것과 “내 생각만 옳다.”는 것은 다릅니다.
내 생각이 옳다고 여기면서도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수는 있지만, 내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면 상대의 말이 들어올 자리가 없어집니다.
말을 듣고 있는 듯해도 마음속으로는 이미 반박할 말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연기의 이치에 비추어 보면, 우리의 생각도 여러 조건을 따라 생겨납니다.
살아온 환경과 경험, 그날의 몸 상태와 마음의 형편에 따라 같은 일을 보고도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느끼고 판단한 것이 내게는 분명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상대가 겪은 사정까지 모두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평생 아끼며 살아온 분에게는 물건을 버리는 일이 쉽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반면 집 안을 정돈하고 싶은 가족에게는 쓰지 않는 물건이 쌓여 있는 것이 답답할 수 있습니다.
한쪽은 낭비하지 않으려는 마음이고, 다른 한쪽은 편안하게 생활하고 싶은 마음인데, 서로를 고집스럽다거나 헤프다고 단정하면 그 속에 담긴 뜻을 놓치게 됩니다.
“왜 그런 것을 버리지도 못합니까?”라고 묻기 전에 “이 물건에 어떤 사연이 있으세요?”하고 여쭈어 볼 수 있습니다.
“멀쩡한 것을 왜 버리느냐?”하고 나무라기 전에 “어느 부분이 가장 불편하니?”하고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묻는 순간, 서로를 향해 세웠던 마음의 벽에 작은 문이 열립니다.
법우 여러분, 다툼 속에는 흔히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겉으로는 “내 말이 맞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내 수고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내 처지도 헤아려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살피지 못하고 말의 옳고 그름만 따지면, 논리로는 이겼어도 서로의 가슴에는 서운함이 남습니다.
그렇다고 화합을 위해 언제나 내 의견을 접거나, 부당한 일을 참고만 있으라는 뜻은 아닙니다.
잘못된 일에는 분명하게 말해야 하고, 바로잡아야 할 일에는 책임 있게 나서야 합니다.
다만 그때에도 상대를 깎아내리는 말과 문제를 해결하는 말은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는 말은 사람 전체를 판단하지만, “이런 일이 생겨서 내가 힘들었어요.”라는 말은 함께 살펴볼 문제를 드러냅니다.
“내 말대로 하면 돼.”라는 말은 대화를 닫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당신 생각도 듣고 싶어요.”라는 말은 대화를 이어 줍니다.
같은 뜻을 전하더라도 어떤 마음과 어떤 말로 전하느냐에 따라 관계가 달라집니다.
오늘은 누군가의 말에 반박하고 싶어질 때, 숨을 한 번 고르며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지금 나는 이 문제를 풀고 싶은가, 아니면 내가 옳다는 인정을 받고 싶은가?”
이 한 번의 물음이 다툼으로 달려가는 마음을 멈추게 하고, 우리가 처음 바랐던 것이 무엇인지 다시 보게 해 줍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을 조금 내려놓는 것은 자신을 낮추어 하찮게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아직 보지 못한 사정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만큼 마음을 넓히는 일입니다.
바로 그 여유에서 상대의 말이 들리기 시작하고, 다툼을 줄이는 지혜도 자라납니다.
법우 여러분, 내 생각에도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막상 다른 사람 앞에서 그것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히 나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경험이 적다고 여기는 사람이 다른 의견을 말하면, 내용부터 살피기보다 마음이 먼저 불편해지기도 합니다.
“내가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하는 생각이 올라오면서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살아온 경험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어려운 일을 견디며 얻은 지혜와 오랜 세월 몸으로 익힌 안목은 책 몇 줄로 대신할 수 없는 귀한 자산입니다.
그러나 그 경험이 지금 눈앞의 모든 상황에 그대로 들어맞는 것은 아니기에, 경험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새롭게 배우는 마음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가 걱정되어 조언하지만, 자녀는 자기 사정을 먼저 들어주기를 바랄 수 있습니다.
부모에게는 사랑의 말인데 자녀에게는 자신의 선택을 믿어주지 않는 말로 들리기도 합니다.
이때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라는 말만 거듭하면, 사랑하는 마음이 충분해도 서로의 거리는 오히려 멀어질 수 있습니다.
“내가 걱정이 앞서서 네 이야기를 충분히 듣지 못했구나.”하고 말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부모의 사랑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이 상대에게 닿을 수 있도록 표현을 바꾸는 것입니다.
자녀 역시 “제 마음을 몰라주세요.”라고만 하기보다 “걱정해 주시는 마음은 알아요. 제 사정도 말씀드릴게요.”라고 한다면 대화가 한결 부드러워질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불교에서 경계하는 집착은 재물이나 물건에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내 의견, 내 경험, 내가 세운 기준에도 집착할 수 있습니다.
생각은 본래 상황을 살피고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그 생각을 붙잡느라 사람의 마음과 현실의 변화를 놓친다면 오히려 괴로움이 됩니다.
특히 우리가 조심해서 살펴볼 때는 상대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입니다.
마음 한편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면서도, 이미 내가 한 말이 있어서 선뜻 인정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옳은 길을 찾는 것보다 앞서 한 말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해지면, 대화는 자꾸 다른 곳으로 흘러갑니다.
처음에는 오늘 생긴 일을 이야기하다가 “지난번에도 그랬잖아.”하며 지나간 일을 꺼냅니다.
그래도 마음이 풀리지 않으면 “당신은 늘 그래.”하며 상대의 성품까지 판단합니다.
한 가지 문제를 풀기 위해 시작한 대화에 오래된 서운함이 하나둘 더해지니, 서로 감당하기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지금 이야기하는 일이 무엇인지 다시 짚어보아야 합니다.
“지난 일에도 서운함이 있지만, 오늘은 이 일부터 차근차근 이야기해 봅시다.”하고 대화의 범위를 정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쌓인 일을 외면하자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쏟아내어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순서를 세우자는 뜻입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바른 말의 실천도 우리의 이런 생활과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거짓이나 이간하는 말, 거친 말을 삼가고, 진실하고 유익한 말을 하려면 말하기 전 자신의 마음부터 살펴야 합니다.
사실이라는 이유만으로 상대의 아픈 곳을 찌르거나 여러 사람 앞에서 망신을 준다면, 그 말이 관계를 바로 세우기는 어렵습니다.
절에서 함께 봉사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양 준비를 하거나 법당을 정리하다 보면, 오랫동안 해 오신 분과 새로 동참하신 분의 방식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이때 “여기는 원래 이렇게 합니다.”하고 끝내기보다, 그렇게 하는 까닭을 설명하고 새로운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면 함께 배우는 자리가 됩니다.
오래 해 오신 분의 수고는 존중받아야 하고, 처음 오신 분의 정성도 소중히 여겨져야 합니다.
일을 익숙하게 처리하는 것만큼이나 다음에도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처님 전에 공양을 올리는 손길에 서로를 향한 배려까지 담긴다면, 그 봉사는 우리의 마음을 닦는 수행이 될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다툼이 일어날 때 실천해 볼 일이 있습니다.
먼저 상대가 말을 마칠 때까지 듣고, 곧바로 내 주장을 꺼내기 전에 내가 들은 뜻을 짧게 되짚어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혼자 일을 맡게 되어 힘드셨다는 말씀이군요.”하고 확인하면, 상대는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해한다고 해서 상대의 주장에 모두 동의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점이 힘드셨겠어요. 다만 제게도 이런 사정이 있었습니다.”하고 이어 말할 수 있습니다.
상대의 형편을 인정하면서 내 입장도 차분히 전하는 것, 그것이 서로를 존중하는 대화입니다.
그리고 내게 잘못이 있었다면 그 부분만큼은 분명하게 인정하십시오.
“아까 목소리를 높인 것은 미안합니다.”라는 한마디에 굳어 있던 분위기가 풀릴 수 있습니다.
사과한 뒤 곧바로 “그렇지만 당신도 잘못했잖아요.”라고 덧붙이기보다, 먼저 전한 사과가 상대의 마음에 닿을 시간을 주는 것이 좋습니다.
수행은 언제나 내 마음이 평온할 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존심이 상하고 반박하고 싶은 바로 그 순간에,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말 한마디를 가다듬는 것도 소중한 수행입니다.
내 생각을 지키려는 힘을 조금 덜어 서로를 이해하는 데 보탤 때, 우리 사이에는 함께 풀어갈 길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법우 여러분, 다툼을 줄이는 지혜는 거창한 데 있지 않습니다.
“내가 놓친 사정이 있을 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하며,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데서 시작됩니다.
내 생각에도 부족함이 있음을 인정할 때,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오늘은 가까운 사람에게 “그렇게 생각하신 까닭이 있겠네요.” 하고 먼저 말씀해 보십시오.
내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 점은 제가 미안합니다.” 하고 진솔하게 인정해 보십시오.
그 한마디가 굳었던 마음을 풀고, 끊겼던 대화를 다시 이어줄 수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살피되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필요한 말은 하되 상대의 마음도 헤아려 주십시오.
가정에서도 도량에서도 내 주장만 앞세우기보다 함께 풀어갈 길을 찾는 법우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고른 따뜻한 말 한마디가 서로의 하루를 평안하게 해 주기를 발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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