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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3일(화) 아침방송법문 : “서운한 마음, 쌓아두지 마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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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3 07:51:35, 조회 : 5,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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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70년 10월 13일(화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서운한 마음, 쌓아두지 마십시오.”
오늘 함께 나눌 법문의 주제는 “서운한 마음, 쌓아두지 마십시오.”입니다.
법우 여러분, 살아가면서 누구에게 가장 서운한 마음이 드십니까?
대개는 나와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보다 가족이나 오랜 친구, 자주 만나는 도반처럼 가까운 사람에게 서운함을 느낍니다.
그 사람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있고, 그만큼 소중하게 여기는 인연이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바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며칠째 전화가 없으면 마음 한쪽이 허전합니다.
함께 사는 사람이 밖에서는 다른 이들을 살뜰히 챙기면서 정작 내 이야기는 건성으로 듣는 것 같으면 서운해집니다.
절에서 함께 일하고도 내 수고만 당연하게 여기는 듯하면, 처음에는 기꺼웠던 마음에 조금씩 그늘이 생깁니다.
이럴 때 우리는 자신을 나무라기도 합니다.
‘내가 이 나이에 이런 일로 서운해 하면 되겠나.’, ‘부처님 공부를 하는 사람이 마음이 왜 이렇게 좁을까.’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서운함이 일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수행은 마음에 아무 감정도 생기지 않게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 어떤 마음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리고, 그 마음에 끌려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도록 살피는 일입니다.
‘내가 지금 서운하구나.’하고 인정하는 것은 감정에 지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을 돌보는 첫걸음입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를 더 살펴야 합니다.
서운하다는 내 느낌과 상대가 일부러 나를 서운하게 했다는 판단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전화가 오지 않았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덧붙인 해석일 수 있습니다.
상대는 일이 몰려 정신이 없었을 수도 있고, 몸이 좋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괜찮다고 말했기 때문에 정말 괜찮은 줄 알았을 수도 있으며, 어떤 말이 내게 상처가 되는지 미처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아직 듣지 못한 사정을 내 짐작만으로 채워 넣으면, 서운함은 어느새 원망으로 커집니다.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에서 자신이 당한 모욕과 해침을 되새겨 품는 마음에는 원한이 가라앉지 않으며, 그것을 붙들지 않을 때 원한이 가라앉는다고 가르치십니다.
이 말씀은 겪은 일을 없었던 일로 여기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상처받은 장면을 마음속에서 거듭 재생하며 오늘의 괴로움까지 키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자는 것입니다.
어제 들은 말 한마디가 오늘 밥을 먹는 자리에서도 떠오르고, 일을 하는 동안에도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마음속에서는 이미 몇 번이나 따지고 다투었는데, 정작 상대는 내가 왜 말이 없는지조차 모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혼자 되풀이하는 대화는 내 아픔을 알아주는 사람도, 오해를 풀 기회도 만들어주지 못합니다.
그럴 때는 ‘저 사람이 왜 그랬을까.’를 따지기에 앞서 ‘나는 무엇이 그렇게 아쉬웠을까.’ 하고 물어보십시오.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듣고 싶었던 것인지, 내 이야기에 잠시 귀를 기울여주기를 바랐던 것인지 살펴보십시오.
서운함 아래에 있는 바람을 알아야 상대에게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차분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인정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고, 가까운 이에게 따뜻한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을 무조건 욕심이라고 몰아붙이지 마십시오.
다만 내가 원하는 방식과 때를 상대가 저절로 알아야 한다고 여기면 서로 힘들어집니다.
오래 함께한 사이라도 말하지 않은 마음까지 모두 알아주기는 어렵습니다.
오늘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잘못을 늘어놓기 전에 내 마음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보십시오.
‘나는 내 수고를 알아주기를 바랐구나.’, ‘나는 잠깐이라도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구나.’하고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운함의 속마음을 알아차리는 데서 따뜻한 대화가 시작됩니다.
법우 여러분, 내 마음을 살펴보았다면 이제는 그것을 어떻게 말할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좋다고 해서 떠오르는 말을 모두 쏟아내는 것이 바른 대화는 아닙니다.
같은 서운함도 어떤 때에 어떤 말로 꺼내느냐에 따라 상대가 받아들이는 마음이 달라집니다.
부처님께서는 앙굿따라 니까야에서 잘한 말이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를 가르치셨습니다.
그 뜻을 풀어 말씀드리면 알맞은 때에, 사실에 맞게, 부드럽게, 도움이 되도록, 자애로운 마음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서운함을 이야기할 때에도 이 다섯 가지를 마음의 기준으로 삼아보면 좋겠습니다.
먼저 때를 살펴야 합니다.
상대가 출근을 서두르거나 몹시 지쳐 있을 때, 여러 사람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불쑥 서운함을 꺼내면 대화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말할 내용이 옳더라도 상대가 들을 여유가 없으면 내 진심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습니다.
“마음에 남은 일이 하나 있는데, 오늘 저녁에 잠깐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시간을 청하는 것만으로도 상대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기회를 줍니다.
내 감정이 격해져 있다면 잠시 호흡을 고르고 말을 가다듬는 것도 필요합니다. 잠깐 미루어 차분히 말하는 것과 끝없이 덮어두는 것은 다릅니다.
다음으로는 실제로 있었던 일을 말해야 합니다.
“당신은 늘 나를 무시해요.”라는 말에는 오늘의 일뿐 아니라 상대의 사람됨 전체를 판단하는 뜻이 담깁니다.
반면에 “어제 내가 이야기하는 중에 다른 일을 계속해서 내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아 서운했어요.”라고 하면 무엇이 힘들었는지 분명해집니다.
‘늘 그렇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라는 말은 입에서는 쉽게 나오지만 상대의 마음을 닫게 하기 쉽습니다.
상대는 내 아픔을 듣기보다 자신이 잘했던 일을 찾아 반박하고 싶어집니다.
풀어야 할 일은 한 가지였는데, 어느새 지난 세월 전체를 놓고 서로의 잘못을 따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풀고 싶은 일을 하나만 꺼내보십시오.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때 내가 어떻게 느꼈는지, 앞으로 무엇을 바라는지 차례로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서운함이 막연한 비난으로 번지지 않고 서로 의논할 수 있는 일이 됩니다.
자녀에게도 “너는 부모 생각을 조금도 안 하는구나.”라고 말하기 전에 마음속 바람을 살펴보십시오.
“며칠 소식을 못 들으니 걱정도 되고 목소리도 듣고 싶더구나. 우리 서로 편한 시간을 정해서 가끔 통화하면 좋겠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녀도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가능한 방법을 함께 찾아보기 쉬워집니다.
도량에서 함께 봉사하는 도반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나만 일하게 합니까?”라고 쌓인 감정을 한꺼번에 꺼내기보다 “오늘 뒷정리를 혼자 하려니 조금 힘들었습니다. 다음에는 일을 나누어 하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해 보십시오.
나의 어려움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상대가 무엇을 함께하면 좋을지 알 수 있도록 전하는 것입니다.
따뜻하게 말한다는 것은 힘든 일을 힘들지 않은 척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제게 상처가 됩니다. 앞으로는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분명하게 말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말의 내용은 분명히 하되 상대를 깎아내리는 표현을 덜어내는 것, 거기에 부드러움과 지혜가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스스로 물어보십시오.
‘나는 지금 이 사람에게 상처를 돌려주고 싶은가, 아니면 앞으로 서로 편안하게 지낼 길을 찾고 싶은가.’
상대에게 내 아픔을 똑같이 겪게 하려는 마음으로 말하면, 서운함을 풀려던 대화가 새로운 상처를 남길 수 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차분하게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말하다가 목소리가 높아졌다면 “내 마음이 앞서서 말이 거칠어졌네요. 잠깐 쉬었다가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라고 멈출 수도 있습니다.
잘못 꺼낸 말 한마디를 알아차리고 고쳐 말하는 것, 그것도 우리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소중한 수행입니다.
법우 여러분, 따뜻한 대화는 내 마음을 잘 전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말한 만큼 상대에게도 자신의 마음과 사정을 이야기할 자리를 내어주어야 합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때 비로소 오해를 풀고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상대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것은 핑계지요.”라고 먼저 잘라버리지 마십시오.
내가 알지 못했던 사정이 있을 수 있고, 상대도 말하지 못한 서운함을 품고 있었을 수 있습니다.
내 아픔이 소중하듯 상대가 느낀 어려움도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함께 일하던 도반이 “그날은 몸이 좋지 않아 먼저 돌아갔습니다.”라고 말한다면 끝까지 들어보십시오.
“저는 그런 줄 모르고 혼자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에는 말씀해 주시면 일을 나누겠습니다.”라고 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정을 듣고 앞으로의 방법을 의논하면 서운했던 일이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됩니다.
상대의 사정을 이해한다고 해서 내가 힘들었던 마음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분도 어려웠고, 나도 힘들었다.’는 두 가지 사실이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누가 더 힘들었는지 겨루지 않을 때 서로의 마음을 돌볼 여유가 생깁니다.
반대로 누군가 나에게 서운함을 털어놓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받아들입니까?”라고 먼저 말하면 상대는 자신의 아픔을 외면당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내 뜻을 설명하기 전에 “제 말 때문에 마음이 상하셨군요.”라고 그 마음부터 알아주십시오.
이야기를 듣고 내 잘못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말을 한 것은 제 잘못입니다. 미안합니다.”라는 진솔한 사과에는 변명보다 깊은 힘이 있습니다.
먼저 사과하는 것은 체면을 잃는 일이 아니라 소중한 인연을 책임 있게 돌보는 일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에서 원한은 원한으로 가라앉지 않고, 원한을 여의는 것으로 가라앉는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 생활에서는 상대의 날 선 말에 더 날카로운 말로 맞서려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부터 실천할 수 있습니다.
상처를 주고받는 일을 내가 한 번 멈추어보는 것입니다.
다만 한 번 이야기했다고 오래된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어도 마음이 한동안 아플 수 있으니, 자신을 재촉하지 마십시오.
마음이 풀리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데에는 말에 따르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약속이 바뀌면 미리 알려주고, 상대가 이야기할 때 잠깐 하던 일을 멈추며, 함께한 수고에 고맙다고 말해 보십시오.
작은 약속을 지키는 일이 쌓이면 ‘내 마음을 소중하게 여기는구나.’하는 믿음이 생깁니다.
상대가 노력하는 모습도 알아보고 “기억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따뜻하게 답해 주십시오.
그러나 차분히 이야기해도 비웃거나 거친 말로 되받는 일이 반복된다면 잠시 대화를 멈추고 거리를 둘 필요도 있습니다.
필요할 때는 서로 신뢰하는 분의 도움을 구하는 것도 지혜입니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는 나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마음도 포함됩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마음에 걸리는 인연 한 분을 조용히 떠올려보십시오.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살핀 뒤, 준비가 되었다면 “우리 마음에 남은 일을 차분히 이야기해 보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을 건네보십시오.
가까운 사이일수록 저절로 알아주기를 바라기보다 다정하게 묻고 귀 기울여 듣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불심사에서 함께 기도하며 기르는 자비심이 가정의 대화와 도반 사이의 배려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서운함을 억지로 감추지 않되 원망으로 키우지 않고, 진심을 전하되 상대의 마음도 헤아려주십시오.
오늘 우리가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묵은 서운함을 풀고 소중한 인연을 다시 가까이하는 시작이 되기를 발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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