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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불교계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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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30 10:01:05, 조회 : 2,267,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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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성동 봉은사 주지 명진<사진> 스님이 8월 30일 천일기도를 회향한다. 지난 2006년 11월 봉은사 주지로 임명된 명진 스님은 12월 5일 천일기도에 들어갔다. 3년여 동안 산문 밖을 나서지 않고 매일 천배의 절을 올리며 기도하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이었고 봉은사 신도들과의 약속이었다. 소식이 알려지면서는 곧 모든 불자들과의 약속이 돼 버렸다.
천일기도 회향을 앞두고 기자들과 마주한 스님은 “대책 없이 천일기도를 한다고 큰 소리를 쳐 놓고는 약속을 지키느라 하루하루를 조바심 속에서 살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덧붙여 “수행자에게 있어 엄청난 자기 성찰과 내면의 변화를 일으킨 계기가 됐으며 남은 중노릇도 이 마음으로 해야겠다는 각오도 생겼다”고 말했다.
-. 천일기도를 회향한 소감은.
:대책 없이 천일기도 한다고 큰 소리 쳐 놓고 그 약속을 지키느라 하루하루를 조바심 속에 살았다. 한 번도 늦지 않고 빠지지 않는 것이 비록 형식이지만 그 형식에 공을 들이는 과정이 내용을 채워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을 배웠다. 천일기도는 신도들과의 약속이지만 소문이 나는 통에 대한민국 불자들과의 약속이기도 했다. 더 조심스럽고 무게가 느껴져 하루하루가 조바심 나는 날들이었다. 혹시라도 늦게 자는 날은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긴장감에 더 일찍 잠이 깰 정도였다. 기도라는 것이 결국 약속을 통한 긴장 관계라고 본다. 수행자의 생활에 있어 엄청난 자기 성찰과 내면의 변화를 일으킬 계기가 된다. 남은 중 노릇을 천일기도한 마음으로 해야겠다는 각오다.
-. 천일기도 기간 중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인가.
:처음 시작해서 한 달 정도 됐을 때다. 다리가 부어서 절을 못할 정도였다. 천일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절을 못하면 법당에 앉아라도 있어야 겠다고 생각했지만 다행히 좋아졌다. 기도 중 감기 몸살 외에는 크게 몸이 아픈 적도 없었고 다치지도 않았다. 기도를 중단할 만한 큰 위기가 없었던 것만으로도 봉은사 부처님의 가피가 컸다고 생각한다.
조바심 속에 하루하루 살았다
-. 몸은 산문 안에 있어도 늘 사회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기도 중에도 매체들을 접할 수 있었다. 출입을 삼가는 것은 방편이었을 뿐이지 사회적인 여러 사안들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안가질 수도 없는 처지다. 봉은사 주지는 개인의 삶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느 때 보다도 관심을 가졌고 활발하게 발언을 하기도 했다. 쇠고기 수입 문제 등으로 촛불시위가 일어났을 때는 나도 동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종교편향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정말 나가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갈등을 느꼈다. 그러나 약속이 있었고 그 약속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마음속에 번뇌가 일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때는 산문을 나섰다. 권양숙 여사가 봉은사 재적 신도였고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이 가슴 아팠기 때문이다. 또 그것이 하나의 역사였고 그 흐름에 동참해야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 회향 후 가장 첫 번째 일정이 용산참사 현장 방문이다.
:천일기도 회향의 의미를 사회적 약자, 힘든 사람들과 함께 하겠다는 원력이다. 이 시대 불교가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은 권력 앞에서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하는 것이다. 천일기도 중에도 용산 참사 희생자들에게 항상 미안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유가족들에게 비록 약간의 조의금을 보냈고 수시로 과일이나 떡 같이 도울만한 것을 보내기도 했지만 마음의 빚도 덜고 싶었다. 회향의 첫 행보를 용산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다. 생존의 터전을 뺏길 처지에 처한 사회적 약자들이 다소 과격한 방법, 그것이 비록 탈법이고 불법일지라도 그것을 진압하기 위해 특공대까지 투입하고 사람이 죽는 지경에 이른다는 것은. 전시가 아닌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노 대통령 영결식 참석은 역사에의 동참
-. 종단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회향 후 종단 내부의 일에 더 관심을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더구나 총무원장 선거도 임박해 있다.
:94년 종단 개혁 때 가사를 벗어 원로스님께 바치며 종단 개혁을 이루지 못하면 이 가사를 다시 입지 않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의현 스님이 물러난 뒤 보니까 총무원장 한 사람에게 집중돼 있던 권력이 종회의원과 본사주지에게 나눠져 있었다. 종단 권력의 구조만 바뀐 것이지 종단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었다. 봉은사 주지 임명 소식을 들었을 때 봉은사 같이 비교적 큰 절이라면 이곳에서 변화를 시작해 종단의 변화를 꾀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계종에서는 가장 예산이 많은 절이고 이런 절에서 바람직한 모델을 만든다면 종단 안팎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천일기도도 시작했다. 예산을 공개하고 신도를 종무회의에 참여시키는 일련의 과정들은 예전부터 갖고 있던 종단 개혁 방안들을 실천해나가는 과정의 하나였다. 그동안 불교는 권력 앞에 비루했다. 이제는 신도들에게서 신뢰를 얻고 그를 통해 종단 안팎으로 위상을 확보해 잘못된 일들을 잘못 됐다고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불교가 새로운 위상을 만들어 가는 모델이 봉은사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가사를 벗고 종단을 떠나겠다는 그때의 각오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러나 지금 내 힘은 종단 전체를 좌우할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봉은사를 잘 가꾸고 봉은사가 올바른 불교의 위상을 세우는 그런 절이 된다면 나중에는 총무원장이 되거나 총무원장에 영향을 주는 것 보다 더 큰 영향력을 봉은사가 가질 수 있다고 본다.
-. 기도 입제 때의 발원은 지금 얼마나 이뤄졌는가.
:봉은사 신도들과의 신뢰는 내가 원했던 수준에 비추어 거의 100%에 가깝다고 본다. 그런 신뢰가 가장 큰 힘이다. 천일기도, 재정공개, 일요법회의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면서 가능했다. 또 봉은사 17명 스님들은 하루도 아침예불을 거르지 않는다. 아침에 대중이 발우공양하며 하루 일정을 논의하고 함께 마당을 쓸며 운력을 한다. 처음 임명장을 받았을 때 어떻게 살겠냐는 물음에 예불 잘 모시고 운력하고 발우공양 하며 살겠다고 답했더니 고작 그것을 중노릇이라고 하느냐며 웃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도심에 살면서도 산중과 마찬가지로 스님들이 여법하게 사는 것. 그것이면 중노릇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천일기도도 처음에는 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어쩌면 쇼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좋은 쇼, 그것을 통해 사람들이 감동하고 따라 올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은 좋은 쇼다. 여법하게 사는 모습을 통해 신뢰를 얻어나가고 불교 미래를 밝혀나가는 하나의 모델이 된다면 스님들이 모두 그런 쇼를 하기 바란다. 지금 봉은사에는 신도회, 종무원, 스님들이 하나가 돼서 봉은사가 바뀌어 간다는 희망, 한국 불교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역동성을 갖고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하다. 그것이 하나의 에너지로 확대되고 있다고 본다.
쇼를 해서라도 신도 신뢰 얻어야
-. 천일기도 동안 혹시 잃은 것이 없나.
:천일기도하는 동안 인간관계는 좀 소원해진 것 같다. 사실 신도들이 준 용채 같은 돈이 좀 생기면 도반들에게 밥도 한 끼 안사고 야박하게 돈을 모아서 지금 1억2000만원 정도 모았다. 그 1억 원은 조만간에 쓸 곳이 있다. 그러다보니 인심 사납다는 소리 좀 들었다. 주지 살기 전에는 여기저기 다니며 잘도 얻어다 쓰더니 주지 들어가서는 산문 출입 안한다는 이유로 밥도 안사고 큰 절 주지가 여기저기 인사치레도 안한다는 원성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봉은사의 재정을 투명하게 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였다.
-. 천일기도 회향 후 바로 산철 결제에 들어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1999년 처음으로 방북 기회가 생겼었다. 불교계로서는 처음이었는데 그 때도 방북을 포기하고 인제 용화선원으로 들어갔다. 수행자로서의 기본 입장을 견지하고 싶었다. 천일기도도 어떻게 하면 내 수행에 게을러지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됐다. 주지를 잘 살면서도 내 성찰에 게을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의 결론이었다. 천일기도는 내 자신을 살피는 시간이었고 그 기도의 힘으로 대중들과 함께 정진하고 싶다는 것이 오래된 생각이었다. 1988년 초 개운사 주지를 1년 만에 사표 낸 후 바로 봉암사 선방을 갔다. 그 후로는 1년에 한 철씩 선방 가는 것을 빼먹은 적이 없다. 그것을 빼먹을 정도가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99년 첫 방북을 포기할 만큼 중요하게 생각해 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 성찰이 안 된다면 지금이라도 주지자리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으로 들어간다.
-. 한때 ‘검찰 출입 삼가’라는 플렌 카드가 이슈가 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 49재 기간 중 검찰 출입 삼가 조치에 대해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던 것을 잘 알고 있다. 당시 검찰의 수사행태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기소 전에는 피의 사실 공포를 못하도록 돼 있음에도 노 전대통령의 수사 과정에 대해서는 마치 중개하다시피 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반드시 검찰에 과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민족사적인 비극의 원인은 검찰에 분명 책임이 있다고 본다. 치열하고 치졸하고 야비한 방법으로 사람을 몰아갔다. 노 대통령 재임당시 검사들과의 대화 때 그렇게 달려들던 검찰들이 다 어디가고 지금은 최고 권력 앞에 짖으라면 짖고 물으라면 물고 핥으라면 핥는 총애 받는 충견이 돼 있다. 떡값이 뭔가, 그게 뇌물이다. 그것을 받고 돈 주는 사람에게 꼬리를 흔들며 야양 떠는 노릇 하는 게 지금의 검찰이다. 검찰이 권력자의 눈치를 안보고 새롭게 태어나서 애완견, 충견 소리 안 듣고 국민들의 존경을 받길 바란다.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고 법은 약자를 위해 있는 것이다. 힘센 자들이 제 멋대로 하는 것이 무법천지다. 법이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나오는 것인데 지금 법은 과연 사회적 약자를 위해 집행되는 것인가. 힘 있는 자들은 다 빠져 나가고 거짓말이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사회는 희망이 없는 사회다. 국민들에게 불신이 퍼져있어 대통령 말이든 누구의 말이든 믿지 못하는 사회.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이 아니라 법을 휘두르는 이들을 위한 법이 된 사회, 무법천지가 돼 버렸다. 이런 사회가 과연 희망이 있는 사회인가. 불교가 앞으로는 소수자, 사회적 약자들이 억울함을 당했을 때 당당히 나서서 그 입장을 편들어주는 것이 보살의 행위다. 나보고 정치적이라는 사람이 많은데, (정치에 관한 발언 등을 해서) 내가 이익을 봐야 정치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이익은 고사하고 불이익이 더 많을 것이다. 그건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나는 보살의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남 신도들 상당수가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보수적이라고 해도 알건 알아야 한다. 보수는 가치를 지키는 것이다. 한국 보수는 도덕 윤리 가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물질만 지키려 한다.
‘충견’ 소리 대신 존경 받는 검찰 돼야
천일기도 동안 제적 신도의 수는 30% 가량 늘었고 일요법회 동참인원만도 150여 명에서 1500여 명으로 급등했다. 사찰재정을 공개했고 80억 원대에 머물던 사찰 재정 규모도 120억 원대로 늘렸다. 지역아동센터설립 등 이웃돕기 프로그램, 명사초청 특강 등 사찰의 활동도 다양해졌다. 특히 10월에는 총무원장 선거라는 굵직한 종단 정치 사안도 있다. 그러나 산적해 있는 일들을 뒤로 미뤄둔 채 명진 스님은 9월 3일 강원도 인제 용화선원으로 두 달간의 산철 결제에 들어간다.
천일기도를 통해 쌓아올린 신도들과의 신뢰, 그리고 개혁의 바람이 한국 불교 전체로 확산되길 바라는 명진 스님은 “‘기본’을 잘 지키는 것이 처음이자 전부”라며 “내년에는 ‘주지 스님과 함께하는 간화선 프로그램’을 개설해 선종 수사찰의 명성에 걸 맞는 실참 수행도량을 만들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자료출처 : 법보신문(www.beopbo.com)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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