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금주의 불교계소식
|
|
|
|
![]()
|
|
2010-01-09 12:18:39, 조회 : 2,154, 추천 : 0 |
|
첨부파일 : 59479.jpg (158kb) 다운 : 304
![]()
![]()
|
새해가 밝았다. 그것도“60년 만에 한 번 찾아온다”는 경인(庚寅)년‘흰 호랑이해’가 밝았다.
많은 사람들이‘백호(白虎)의 늠름한 기상!’을 말하며 올 한 해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좋은 일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그러나 흰 호랑이해가 꼭 좋은 일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내외국인을 죽음으로 몰고 가고, 수백만 명을 이산가족으로 만들었으며 겨레 역사에 씻기 어려운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상처를 남긴 ‘1950년 한국전쟁’도 경인년에 일어났다.
하지만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더라도, 이제는 거의 사라진 백두산 흰 호랑이의 기운을 닮아 올해는 정말 나와 우리 가족, 우리 불교계와 우리나라 구성원 모두가 서로 도와주며 힘차게 나아갔으면 한다.
그런데 이런 기대와 희망을 갖고 시작해야 할 새해 초부터 우리 불교계에는 그리 좋지 않은 느낌이 들어 안타깝다. 이미 지난해부터 대한불교총본산을 자처하는 조계사에서는‘천도재와 영구위패 봉안’이 상식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적절한 선을 넘어‘상업화’를 우려하는 수준에 이르렀지만, 올해는 정초부터 이런 일을‘무턱대고’ 몰아 부치면서 이런저런 불협화음이 들리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밑바탕에는, 임기 말에 자신의 측근[상좌]을 조계사 주지[법적으로는 재산관리인]으로 임명하여 전통과 현재적 의미 단 한 곳에서도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는 거대한 탑과 비석을 세우고 무리하게 땅 매입을 추진한 전임 총무원장의 책임도 크다.
개인을 비난하려는 뜻은 없지만, 굳이 트집을 잡는다면 현 조계사 주지는 가야산 소재의 모 총림 주지로 있는 동안에도 ‘청동대장경 불사‘1,029일 천도재 법회’를 개발 추진하여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고, ‘청동대불 불사’를 추진하다가 큰 마찰을 일으킨 적도 있는 인물이다.
이 중에서도“해인사에 소장된 고려대장경판과 똑같은 청동대장경을 만들겠다”는‘청동대장경 불사’는 시대 흐름과도 맞지 않고 종교적인 의미도 없이 다만 “돈을 모으겠다”는 상업적 욕망만 있었던 것으로 이제는 그 존재 자체가 희미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청동대장경 불사’에 동참한 개인과 기업 등이 낸 불사금이 얼마이고 그 동안 어디에 얼마가 쓰였으며 현재 얼마나 남아있고, 앞으로 어떻게 쓸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는 이 불사를 추진한 책임자였던 현 조계사 주지와 가야산 소재 모 총림의 명확한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고, 만약 그 해명이 납득할 수준이 아닐 경우에는 조계종 총무원에서 철저한 감사를 통해 그 결과를 불사 동참자와 불자 대중에게 낱낱이 공개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조계종 총무원의 조치가 미흡할 경우에는, 불교계 단체들이 나서서 과거의 잘잘못을 가려내고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쐐기를 박아야 할 것이다.
한 곳에서 잘못을 저지르고 또 다른 곳에 가서 비슷한 일을 다시 하게 하는 일은 더 이상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재정 공개’도 아무런 의미가 없고‘사찰운영회의’도 허울에 불과할 것이며 ‘청정한 교단 건설’은 영원히 실현될 수 없는‘꿈’이 되고 말 것이다.
부처님께서 기존 바라문교의 제사 중심주의를 강하게 비판하셨던 것은 불교에 아주 작은 상식이라도 있는 이들은 모두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불교 또한 이 세상에서 조직으로 유지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재정이 필요하고 불교가 들어간 곳마다 대중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래서 각 지역의 고유 신앙을 흡수하며 보완관계를 이루기도 하였다.
절에서 다양한 형태의 제사를 모시고 재(齎)를 지내는 것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 제사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영가가 좋은 인연을 지어 좋은 곳에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이나 살아있는 후손의 슬픔을 위로하는 뜻은 명분으로만 남고, 오로지‘돈’을 목적으로 한 제사와 재가 이루어진다면 이는 부처님 가르침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그런데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1,029일 천도재’ ‘49재 7번(343법회)’이라는 제도를 만들어내서 여러 차례 되풀이하고 (그래서 나는 이런 새로운 제도를 만든 이에게 발명가 상을 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 신도들에게 동참을 강권하는 일은 눈뜨고 보기 어렵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영구위패 봉안’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보자. 불교에 과연‘영구(永久)’라는 말이 성립할 수 있는가? 이것이 부처님 가르침에 맞는가?
부처님 제자라면 누구든 알고 있는 3법인(法印)의 첫 번째 가르침이 무엇인가? “우주법계에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 제행무상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어긋나는‘영구 위패’를 봉안한다고 하니,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불교인가 힌두교인가 바라문교인가 그것도 아니면 무교(巫敎)인가?
거대한 일주문에‘대한불교총본산 조계사(大韓佛敎總本山曹溪寺)’라고 큰 현판을 달아놓고서 실제는 바라문 사제(司祭)와 다름없는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두렵지 않은가? 혹 그 간판을 떼어내고 조계사의 현재 성격에 딱 맞는 다른 내용으로 바꾸어 달아야 하는 것 아닌가?
자료출처 : 불교포커스(http://www.bulgyofocus.net) |
|
|
|
|
|
|
|
|
|
|
|
|
ⓒ 2001-2004 by Passkorea Co., Ltd. All rights reserved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