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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불교계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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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30 22:18:39, 조회 : 1,920,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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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옛날 의사들은위중한 환자에게 하나에서 백까지 세어보라고 해서다 셀 수 없으면 죽을 것으로 예견했다.백을 셀 수 있는 정도의 집중력이 있다면일단의 고비는 넘길 것으로 보고그만한 집중력도 없다면 죽을 것으로 보았다.집중력이 다하는 순간,달리 말하면 중심이 무너지는 순간 그게 죽음이다.
태풍도 그렇다.태풍의 중심이 소멸하는 것,그것이 태풍의 죽음이다.
아름답다는 것도 그렇다.집중하는 순간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집중할 때는다른 잡념이 없고 잡티가 없기 때문이다.그 사람도 그리고 그 사람이 하는 일도 아름답다.일도 공부도 그 승패는 절대시간이 아니라 집중도에서 결판난다.
우리가 집중의 의미를 자주 강조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2.예로부터 집중은 그렇게 강조되는 바였다.유가(儒家)의 공부방법론도 ‘유일집중(唯一執中)’이상의 것이
없었다.이점은 불가에서도 다를 바 없고무공의 연마에서도 수행세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우리는 집중력이라고 하면 무슨 요령처럼 생각한다.마음만 먹으면 집중할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한다.그렇게 자기를 과대 평가한다.스스로가 얼마나 잡스러운 지에 대해서냉정하지 못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집중이란 것, 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집중(執中)의 상태를 삼매(三昧)라고 한다.‘독서삼매’라고 할 때의 삼매다.삼매는 산스크리트어의 사마티를 음역한 것이긴 하지만이는 단순한 음역만은 아니다.그래서 삼매(三昧)의 의미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삼(三)은 석 삼자이고매(昧)는 어두울 매, 흐릴 매(昧)자이다.그러니까 삼매의 본래적 의미는 셋이 다 애매하다는 것이다.보는 자와 보고 있는 대상 그리고 보고자 하는 의도와 목표가한번에 어우러져서 서로 구분이 되지 않는 애매한 상태라는 것이
다.불교의 유식학 용어로는감각주체인 근(根)과 그 대상인 경(境) 그리고 식(識),이 삼자의 합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책을 열심히 붙잡고 의욕적으로 읽는다고 해서집중(執中)이 되는 것은 아니다.내 욕심대로 의도대로 책을 읽을 때는집중(集中)할 수 있겠지만 집중(執中)이 되는 것은 아니다.집중이라는 것은 마음이 한 곳으로 쏠리면 가능한 것이지만그것과 삼매와는 엄청 다른 것이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자기 의도와 목표대로책을 읽으면 열심히 한다고 하고집중한다고 생각하지만자기 의도가 살아있고 목표가 살아있다면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책을 본다고 해도집중(執中)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그것은 자기 책을 자기 중심으로 끌어당기는 탐욕의 연장일 뿐이
다.의도와 목표가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것은실은 아직 열심히 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니다.나와 책이 평행선을 달리고그만큼 책에 몰입(沒入)이 안되었다는 반증이다.
4.집중(執中)이라는 것은주관의 의도와 목표마저 넘어설 수 있을 때,그 마저도 잊어버릴 정도로 열심히 볼 때라야집중(執中)을 말하고 삼매에 이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일을 할 때도 공부를 할 때도의도와 목표를 앞세운다.일이나 공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그 의도와 목표에 집중(集中)한다.그것을 집중(執中)과 혼돈한다.그러나 그 의도와 목표가실은 집중(執中)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것을 잊고 있다.
무수한 수행자들이 깨침을 의도하고 목표로 했지만깨침의 의도와 목표를 넘어서지 않고 깨침에 이른 자는 없다.깨침을 위해 생사의 고비를 넘을 수 있었지만깨침이라는 의도와 목표를 넘어서지 못한데서 좌절해갔다.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그렇게 되뇌이면서도깨침에 대한 욕심만큼은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문화일보 2005.05.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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