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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스님의 무소유 - 1
眞虛性宗 2010-03-28 22:55:06, 조회 : 1,402, 추천 : 0
1. 법정론

  (1)불교적 지성과 현대적 사랑

  이른바 "직업적인 수필가"의 반열에 결코 끼이지 않는 법정은, 그러나 오늘의 우리 수필 문학에
서 다음 두 가지점으로 주목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그가 스님이면서 많은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는 것이 그 첫째인데, 이는 시에서, 이제는 환
속한 고은과 탁지현등  몇몇의 승려 시인이 있고 비평에도    김운학이 있지만 수필문학에서는    그
가 유일한 존재임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호사가의 관심이 아니다.    불승이 갖는
체험, 그들이 탐구하는 세계는 불교문화가  지배적인 전통으로 작용해온  우리에게  가장 깊고 오
랜 정신의 편차를 이루어왔다.  하나의  사상, 그것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가장 평이하고 명징하며
논리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수필문학에서 정작 그 불교인의 참여가 없었다는 것은  그 사상과 문
학을 위해 커다란 손실이었다.  법정은 그 공백을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불승이라는 것 이상으로 더 중요한 둘째 점은 그의 작품에서    어렵지 않게 규지할
수 있는 그의 수필정신이다.  아마 여기에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할 것이다.   "수필"문학은 우리
에게있어 흔히 자음 그대로 청천이 말한바 "붓 가는 대로"란 것으로 규정되어왔다.  청천의 진의
가 어디 있든 이 말이 "에세이 문학"을 상당히 무책임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환언하면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말이 씌어지는 대로 따르는 것이 본의라고 생각되어온 것이
다.  그것은 우리의 수필문학을 소녀적인 감상 어린 고백,    어쩌다 만나는 우연한 사건의 체험담,
혹은 전문적인 직종을 가진 사람의 산문적인 보고로 추락시킨 것이다.
  물론 이런 글들이 수필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데카르트의  방법론으로부터 카뮈의 "시시포스의
설화"가 에세이라는 점에 상도할 때 이런 유의 글들이 그  사상이나 언어에서 얼마나 수필정신을
배반하고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수필은 이 세계와  삶에 대한 고도로 세련된 지적통
찰의 한 표현인 것이다.
  이 두 개의 관점은 결과적으로 법정의 불교적 지성을 존중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인간 법
정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비록 삭발을 하고 가사를 입었지만 그의 얼굴이 선승의 모습이라기보다
예리한 지식인의 그것이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볼 것이다.    이는 또한 그의 인상만이 아니다.  그
가 여러 차례 참여하는 불교인으로서, 불교계를 대표한 유일한 저항적 지식인으로서 활약했고 그
때문에 수난도 적지않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는 한국 불교 자체의 타락을 공격했고 나아가 한국사회의 의롭지 못한 것들을 비판했다.    불
교의 안과 밖에서 그는  디센더로서의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불교사
1600년 동안 호국신앙을 제외한 현실 참여의 예가 극히 적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불교적 현실
관의 개조를 위해 매우 고무적인 징조다.    입산속리하여  면벽좌선한다는 것이 득도의 진수인가?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해의 존재가 새삼 기억되어 압박해오는 이제,  불교인의 현실적
각성과 실천적 행동은 결코 도외할 수 없는 명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법정 스스로 "함께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지금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고  있건 아랑곳없이 초연하려는 종교인이 있다면, 그
가 소속한 종교는 현상 밖에서 말라 죽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이 시대의 불교도들이 나무
아미타불을 입으로만 외고 몸소 행동하지 않을 때,  골목 안 꼬마들한테서만이 아니고 수많은 대
중들로부터 날아오는 돌팔매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나무아미타불)라고 외친다.
  여기서 그는 돌팔매란 기독교 성서의 용어를 썼지만 그의 짧고 긴 많은 글들은 그 감수성과 사
상의 근거가 불학에만 멈추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카뮈가 인용되고 베토벤이 감상되
며 간디에서 교훈을 얻고 워즈워스가 애송되며 막스 밀러의 말이 회상되고 드디어는 성경을 통해
기독교와 불교의 진리는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 지적은 그가 박학하다든지 서구 문명에 경도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니며 불교 자
체가 반지성이란 말은 더욱 아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의 사물  혹은 사건을 바라보고 그 의미를
추구하는 데 있어 불교라든지 기독교라든지 하는, 어떤  한쪽에 편집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뜻한
다.
  건강한 지성이란 아마 이런 사고유형을 말할 것이다.   법정은 승복차림으로 영화를 보는 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인간이 달에 착륙했는데도 조금도 경이스럽게 느끼지 않는다.  그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명쾌하게 해부한다.
  그의 수필집 "영혼의 모음"(73년) 전편을 훑어볼 때  나타나는 다음 두 가지 정신적 특징은 그
가 서구적 의미에서의 지성인임을 방증한다.  즉 하나는 그가 승려임을 의식하면서도 "색즉시공"
이라든지 "허무"와 같은 불교언어가 거의 보이지 않고 그 대신 "영원"이나 "근원"이란 어휘가 강
한 설득력을 갖는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여래의 자비가 그에게 서구적인 사랑의 어감으로
윤색되고 있으며 그것은 생 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대한 맹렬한 경사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
가 이 책을 자기에게 소개해준 사람을 "한평생 잊을 수  없는 고마운 벗"이라고 감사하며 30여권
을 이웃에게 선사했고 이 책에 감응을 받지 않는 사람과는 더불어 상대할  수 없다고까지 열애한
다는 것은 "어린왕자"의 사랑이 기독교적 전통의 산물이라는 점과 연결시킬 때 결코 범상한 승려
가 아님을 시사한다.
  그의 지성이 어디서 발원했든 법정에게서  가장 탁월한 것은, 가령  서울의 불구적인 근대화를
꼬집은 "너무 일찍 나왔군"이나 도시의 소음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불국사행 고속버스를 탔으나
끊임없이 틀어대는 카세트 유행가 때문에 오히려  소음기행을 했다는 탄식으로부터, 꽃피는 모습
에서 일대사건을 발견하는 "순수한 모순"에 이르기까지 사건과  사물의 대상을 반대편에서재검하
는 아이러니 정신이다.  그는 방패를 보면서 그것을 뚫는 창을 생각하고 창을 보며 그걸 막는 방
패를 예상한다.

  침묵을 배경으로 하지 않은 언어는 사실 소음이나  다름없다........(중략).........우리의 영혼을 뒤흔
드는 말은 장엄한 음악처럼 침묵에서 나와 침묵으로 사라져 간다.(비가 내린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 않던 아름드리 나무들이,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 하던 그 소나무들이 눈
이 내려 덮이면 꺾이게 된다.  가지 끝에 사뿐사뿐 내려 쌓이는  그 하얀 눈에 꺾이고 마는 것이
다.  깊은 밤,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나무들이 꺽이는 메아리가 울려올 때 우리들은  잠을 이룰 수
가 없다.  정정한 나무들이 부드러운 것에 넘어지는 그 의미 때문일까.  산은 한겨울이 지나면 앓
고 난 얼굴처럼 수척하다.(운해목)

  세계에 대한 모순적 인식은 변증적 사고의 출발일  것이며 가장 예리한 지성의 능력일 것이다.
그의 많은 현실적, 종교적, 언어적비판은 이 모순의  파악에서 적용받는다.    그리하여 그가 "무소
우"에서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
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엔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라고 말할 때 그것은 현실적인 교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난초에 얽매이며 그것에 편집될
때, 마침내 애지중지 키워오던 그 난초를 친구에게 주어버리고 홀가분한 해방감을 누리게 되었을
때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결심하며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중략)......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
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이니까.

의 결론을 얻는데, 이에 이르러 모순이 종교적  각성의 차원으로 상승하고 있음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사실 그의 작품들은 불교 자체를 주제로 한 것이 많으며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불교적 어휘가
빈번히 사용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나 더 주목할 것은 그에게 주요한 모티브로 사용되고 있
는 "모순"또는 "역리"의 사상 근저에는 불교의 세계관이 깊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그의 사상이
서구정신으로 상당히 침윤되어 있으며 "자비"보다 "사랑"을 더 아름답게 사랑하고 있음에도 불구
하고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기보다, 흐트러지려는  나를 나 자신이 거두어 들이는 일
이 아닐까 싶다"(탁상시계 이야기)고 자기 반성  내지 확인을 부단히 재촉한다거나 "읽는다는 것
은 .......다른 목소리를 통해 나 자신의 근원적인 음성을 듣는 일이  아닐까"(그 여름에 읽은 책)라
며 내적 대화를 강조하는 것은  불교의 득도관을 현대 언어로 표현한  것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무더운 여름날 화엄경을 읽으며 변소에서 역겨운 냄새가 풍겨올 때 "내 몸 안에도 자가용 변소가
있지 않느나, 사람의 양심이 썩는 냄새보다는 그래도 낫지 안느냐"며 견디어내고 "일체가 유심소
조"라고 생각을 돌리는 것은 불교적 체관, 극도의 유심주의의 한 세속적 편린에 불과하다.
  이렇게 볼 때 법정의 에세이 정신은 심산유곡의 불심, 고색창연한 불교신앙을  오늘의 이 현실,
끊임없이 사랑과 증오의 사상으로 갈등을 일으키는 이  세계로 끌어내온 것이다.  그는 전통신앙
으로부터 거의 절연된 현대의 사상시장에 새로  옷 입힌 불교의 정신을 내놓은  포교사이기도 하
다.  그의 수필이 대부분 짤막하며 일상의 단상 내지 세속잡사에 대한 수감이지만 우리에게 소중
한 것은 이 편린들을 통해 새로이 발견하는 불교의 현대적    모습이다.  그를 통해 나타나는 불교
는 체념과 도피, 초속과 허무의 그것이 아니라  경이롭게 바라보고 자기 삶의 확대로 체득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다.  절의 뜰에 핀 양귀비를  보았을 때 느낀 다음과 같은  정서는 이 세계의 가장
내밀한 부분과 통정하는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경이였다.  그것은 하나의 발견이었다.......
(중략).......아름다움이란 떨림이요 기쁨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순수한 모순)

                            김 병 익(문학평론가)


  복원 불국사

  한낮의 기온에는 아랑곳없이 초가을의 입김이 서서히 번지고  있는 근일.    이른 아침 우물가에
가면 성급한 낙엽들이 흥건히 누워 있다.    가지 끝에 서성거린  안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져버
린 것인가.  밤 숲을 스쳐가는 소나기 소리를  잠결에서 자주 듣는다.  여름날에 못다 한 열정을
쏟는 모양이다.    비에 씻긴 하늘이 저렇듯  높아버렸다.  이제는 두껍고 칙칙하기만 하던 여름철
구름이 아니다.
  묵은 병이 불쑥 도지려고 한다.  훨훨 털어버리고 나서고 싶은 충동이, 어디에도 매인  데 없이
자유로워지고 싶은 그 날개가 펼쳐지려 한다.  이렇게 해서 엊그제 다녀온 곳이 불국사.   면목이
일신된 복원 불국사다.  가을이면  불쑥불쑥 찾아 나서는  경주,  신라 천년의 꿈이    서린 서라벌.

  초행길에도 낯이 설지 않은 그러한 고장이 경주다.  어디를 가나 정다운 모습들.    이제는 주춧
돌마저 묻혀가는 황룡사, 그 터만 보아도, 그리고 안산인 남산과 좌으로 연해 있는  그 능선만 보
아도 마음이 느긋해지고 은은한 향수 같은 걸 호흡할 수 있는 고장이 또한 경주다.
  어디나 옛 도읍지에 가면 느끼게 되듯이 경주도 어딘지 텅 빈 것 같은, 뭔가 덜 채워져 아쉬운,
그래서 배 떠난 나루 같은 그런 분위기가 마음을 끄는 것이다.
  그 중에도 불국사는 허전하고 안타까운 신라 천년의 잔영을 한아름 지닌 가람이다.  난간이 떨
어져 나간 청운교, 백운교의 그  유연한 곡선, 단청 빛은 바랬어도    장중한 자하문, 날 듯이 깃을
올린 범영루 그리고 앞뜰에서 자하문 좌우로 올려다 보이는 석가탑과 다보탑의 공간.....이런 것들
이 우리들에게 천년의 세월을 성큼 뛰어넘게 해주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기억들은 온전히 과거
완료형.
  복원된 불국사는 그 같은 회고조의 감상을 용납하지 않는다.  가득  들어 찼기 때문에 기댈 만
한 여백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뭣보다도 사방에 둘러쳐진    회랑이 과거에 대한 기억을 가로막는
다.  그리고 현란한 단청빗이 1973년에 직립해 있는 오늘의 우리를 의식케 한다.
  불국사는 지난 4년간에 걸쳐 많은 인력과 재력으로 말짱하게 복원해 놓았다.  돌 한 덩이, 서까
래 하나까지도 허투루하지 않고 모두가 과학적인 고증에 의해 거의 원형대로 복원해 놓았다고 한
다.  원형대로 복원해 놓았다고하니 지난 천여 년의 허구한 세월이 도리어 무색할 지경이다.     관
계당국과 전문가들의 끈질긴 열과 성의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서운
해 하는 것은, 그렇다, 못내 안타깝고 서운해 하는 것은 이제껏 길들여진 그 불국사가 사라져버린
일이다.  천년 묵은 가람의 그 분위기가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복원된 불국사에서는 그윽한 풍경 소리 대신 씩씩하고 우렁찬 새마을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서울신문, 1973. 9. 1.)


  나의 취미는

  취미는 사람들의 얼굴만큼이나 다양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선택에서 ㅇ루어진 것
이므로 누구도 무어라 탓할 수 없다.  남들이 보기에는 저런 짓을 뭣하러 할까  싶지만, 당사자에
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절대성을 지니게 된다.  그    절대성이 때로는 맹목적일 수도 있긴
하지만, 그래서 지나치게 낭비적이요 퇴폐적인 일까지도 취미라는 이름 아래 버젓이 행해지는 수
가 있다.  굵직굵직한 자리가 바뀔 때마다 소개되는  면면들의 취미를 보면 하나같이 "골프"라고
한다.  언제부터 이 양반들이 이렇게들 "골프"만을 좋아하시게 됐을까 싶을 정도다.
  우리 같은 현대 속의 미개인들은 그 골프라는 걸 아직 구경조차 못 해보았지만 그게 좋기는 좋
은 모양이다.
  아이젠하워 같은 양반도, 만약 이 게임이 없었다면  나는 도대체 무얼 하면서 시간을 보냈을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시원스레 다듬어진 드넓은 초원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친밀한 사람들과  즐기는 동작은 상
상만으로도 상쾌할 것 같다.  이런 일로 해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고 다음 일을 보다 탄력
있게 수행할 수도 있으리라.  구경꾼들은 한낮 싱거운 장난처럼 볼지 모르지만 거기에 열중한 플
레이어들에겐 그야말로 골프일 것이다.
  이와 같이 좋기만 한 골프가 아직도 우리에게 저항감을 주고  있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더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우리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없는 특수 계층만의 취미요, 오락이기 때문이
다.  거기에 사용되는 연장들은 모두가 값비싼 외제, 그러니까 외화를 주고 들여온 것들이다.  그
리고 골프클럽에 가입하는 데는 보통 월급쟁이로서는 명함도 못 낼 고액이 든단다.  또한 골프는
초원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한때 항간에  떠돌던 정치와 사업은 집무실에서가 아니
라 대개 골프를 통해서 익는다는 풍문도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닐 듯 싶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취미다운 취미라면 우선 자기 분수에 알맞은 일이어야 한다.  자기 처지로
서는 도저히 같이 어울릴 수 없는데 체면    때문에 마지못해 섞인다거나, 모처럼의 주말을 가족들
과 함께 지내고 싶은데 상사의 시야를 의식하고 끌려나가는 일이 있다면 드넓은  초원과 맑은 공
기도 그들에게는 오히려 공해임이 분명하다.  "골프는 인간의 죄를 벌하기 위해 스코틀랜드의 칼
비니스트들이 창조해 낸 전염병"이라고 한 말을 상기해 봄직하다.
  오늘 우리 현실은 개인의 기본권이라  할지라도 국력의 총화를 위해서라면  가차없이 유보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수 계층만이 즐기는 취미는 사회적  계층의식을 격화시켜 마침내 국력의 약화
를 초래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이른바  유신이념에 부합될 수 없을 것이
다.  바람직한 취미라면 나만이 즐기기보다는 고결한 인품을 함양하고 생의 의미를 깊게 하여, 함
께 살아가는 이웃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오늘 나의 취미는 끝없는 끝없는 인내다.(서울신문, 1973. 9. 8)


  비독서지절

  추석을 지나면서부터 요즘의 날씨는 낮과 밤을 가릴 것 없이 전형적인 가을이다.  이토록 맑고
쾌적한 하늘 아래서 사람인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무 아래서 그저 서성거리기만 하여도,
누렇게 익어가는 들녘만 내다보아도 내 핏줄에는 맑디맑은 수액이 도는 것을.
  장미 가시에 손 등을 찔려 꼬박  한 달을 고생했었다.  내 뜻대로  움직여주던 손에 탈이 나니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다.  독일의 그 릴케를 생각하고 때로는 겁도 났었지만, 모든  병이 그러
듯이 때가 되면 낫는 모양이다.  밀린 옷가지를 이제는 내 손으로  빨 수 있게 됐으니 뭣보다 홀
가분하다.  오늘처럼 맑게 갠 날은 우물가에  가서 빨래라도 할 일이다.  우리처럼 간단명료하게
사는 단수에게는 이런 일은 일거양득이 되니까.
  이 쾌청의 날씨에 나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벽을 바라  좌선을 할 것인가, 먼지 묻어 퀴
퀴한 경전을 펼칠 것인가.  그런 짓은 아무래도 궁상스럽다.  그리고 그것은 이토록 맑고  푸르른
가을 날씨에 대한 결례가 될 것이다.  그저 서성거리기만 하여도  내 안에서 살이 오르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밖에 무엇을 더 받아들인단 말인가.
  가을 하면 독서의 계절을 연상한다는 친구를 만나 어제는 즐겁게 입씨름을 했다.  내 반론인즉
가을은 독서하기에 가장 부적당한 비독서지절이라는 것.  물론  덥지도 춥지도 않은 추야장에 책
장을 넘기는 그 뜻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어디 그 길이 종이와   활자로 된 책에만 있을 것인가.

  이 좋은 날에 그게 그것인 정보와 지식에서 좀 해방될 수는 없단 말인가.    이런 계절에는 외부
의 소리보다 자기 안에서 들리는 그 소리에 귀기울이는 게 제격이 아닐까.
  독서의 계절이 따로 있어야 한다는  것부터 이상하다.  얼마나 책하고  인연이 멀기에강조주간
같은 것을 따로 설정해야 한단 말인가.  독서가 취미라는 학생처럼 그건 정말 우습다.   노동자나
정치인이나 군인들의 취미가 독서라면 모르지만, 책을 읽고 거기에서 배우는 것이 본업인 학생이
그 독서를 취미쯤으로 여기고 있다니 정말 우스운 일이 아닌가.  하기야 단행본을 내보아도 기껏
해야 1,2천 부밖에 나가지 않는데, 어느 외국 백과사전은 3만 부도 넘게  팔렸다는 우리네 독서풍
토이긴 하지만.
  그렇더라도 나는 이 가을에 몇 권의 책을 읽을 것이다.
  술술 읽히는 책말고 읽다가 자꾸만 덮어지는 그런 책을 골라  읽을 것이다.  좋은 책이란 물론
거침없이 읽히는 책이다.  그러나 진짜 양서는 읽다가 자꾸 덮이는 책이다.    한두 구절이  우리에
게 많은 생각을 주기 때문이다.
  그 구절들을 통해서 나 자신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양서란 거울 같은 것이어야 한
다.  그래서 그 한권의 책이 때로는 번쩍    내 눈을 뜨게 하고, 안이해지려는 내 일상을  깨우쳐준
다.
  그와 같은 책은 지식이나 문자로 씌어진 게  아니라 우주의 입김 같은 것에 의해  씌어졌을 것
같다.  그런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좋은 친구를 만나 즐거울  때처럼 시간 밖에서 온전히 쉴 수가
있다.(서울신문, 1973. 9. 15.)


  가을은

  가을은 참 이상한 계절이다.
  조금 차분해진 마음으로 오던 길을 되돌아볼 때, 푸른 하늘  아래서 시름 시름 앓고 있는 나무
들을 바라볼 때, 산다는게 뭘까 하고 문득 혼자서    중얼거릴 때, 나는 새삼스레 착해지려고 한다.
  나뭇잎처럼 우리들의 마음도 엷은 우수에 물들어간다.  가을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의 대중가요에도,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그런 가사 하나에도
곧잘 귀를 모은다.
  오늘 낮 사소한 일로 직장의 동료를 서운하게 해준 일이 마음에 걸린다.  지금은 어느 하늘 아
래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멀리 떠나 있는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깊은  밤등하에서 주소
록을 펼쳐 들고 친구들의 눈매를, 그 음성을 기억해낸다.  가을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
  한낮에는 아무리 의젓하고 뻣뻣한 사람이나 할지라도 해가 기운 다음에는    가랑잎 구르는 소리
하나에, 귀뚜라미 우는 소리 하나에도 마음을 여는 연약한 존재임을 새삼스레 알아차린다.  이 시
대 이 공기속에서 보이지 않는 연줄로 맺어져 서로가 믿고 기대면서 살아가는  인간임을 알게 된
다.  낮 동안은 바다 위의 섬처럼 저마다 따로따로 떨어져 있던 우리가 귀소의 시각에는 같은 대
지에 뿌리박힌 지체임을 비로소 알아차린다.
  상공에서 지상을 내려다볼 때 우리들의 현실은 지나간  과거처럼 보인다.    이삭이 여문 논밭은
황홀한 모자이크.  젖줄같은 강물이 유연한 가락처럼 굽이굽이 흐른다.  구름이 헐벗은  산자락을
안쓰러운 듯 쓰다듬고 있다.  시골마다 도시마다 크고 작은 길로 이어져 있다.  아득한 태고적 우
리 조상들이 첫걸음을 내디디던 바로 그 길을 후손들이 휘적휘적  걸어간다.  그 길을 거쳐 낯선
고장의 소식을 알아오고, 그 길목에서 이웃 마을 처녀와 총각은 눈이 맞는다.  꽃을    한아름 안고
정다운 벗을 찾아가는 것도 그 길이다.  길은 이렇듯 사람과 사람을 맺어준 탯줄이다.
  그 길이 물고 뜯는 싸움의 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사람끼리 흘기고 미워하는 증오의 길이라고도 생각할 수 없다.  뜻이 나와 같지 않대서 짐승처
럼 주리를 트는 그런 길이라고는 차마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미워하고 싸우기 위해
마주친 원수가 아니라, 서로 의지해 사랑하려고 아득한 옛적부터 찾아서 만난 이웃들인 것이다.
  사람이 산다는게 뭘까?  잡힐 듯하면서도 막막한 물음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일은, 태어난
것은 언젠가 한 번은 죽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  생자필명, 회자정리, 그런 것인 줄은 뻔히 알면
서도 노상 아쉽고 서운하게 들리는 말이다.  내 차례는 언제 어디서일까 한고 생각하면 순간순간
을 아무렇게나 허투루 살고 싶지 않다.  만나는 사람마다 따뜻한 눈길을 보내주고 싶다.  한 사람
한 사람 그 얼굴을 익혀두고 싶다.  이 다음 세상 어느 길목에선가 우연히 서로 마주칠 때, 오 아
무개 아닌가 하고 정답게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도록 지금 이 자리에서 익혀두고 싶다.
  이 가을에 나는 모든 이웃들을 사랑해주고 싶다.  단 한    사람이라도 서운하게 해서는 안될 것
같다.
  가을은 정말 이상한 계절이다.(서울신문, 1973. 9. 29)


  무소유

  稈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요稈
  마하트마 간디가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원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마르세
유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면서 한 말이다.  케이. 크리팔라니가 엮은 "간디 어록"을 읽다
가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
의 적에서 사려져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된
것이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될 정도로 꼭 요
긴한 것들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
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마만큼  많이
얽히어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난해 여름까지 난초 두 분을 정성스레, 정말 정성을 다해 길렀었다.  3년전 거처를 지금
의 다래헌으로 옮겨왔을 때 어떤 스님이 우리 방으로 보내준 것이다.  혼자 사는 거처라 살아 있
는 생물이라고는 나하고 그애들뿐이었다.    그애들을 위해 관계서적을 구해다 읽었고, 그애들의 건
강을 위해 하이포넥슨가    하는 비료를 바다  건너가는  친지들에게    부탁하여 구해오기도 했었다.

여름철이면 서늘한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겨주어야 했고, 겨울에는 필요  이상으로 실내 온도를
높이곤 했다.
  이런 정성을 일찍이 부모에게 바쳤더라면 아마 효자 소리를 듣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렇듯 애
지중지 가꾼 보람으로 이른 봄이면 은은한 향기와 함께 연둣빛  꼿을 피워 나를 설레게 했고, 잎
은 초승달처럼 항시 청청했었다.    우리 다레헌을 찾아온 사람마다 싱싱한 난을 보고 한결같이 좋
아라 했다.
  지난해 여름 장마가 갠 어느 날 봉선사로 운허노사를 뵈러 간 일이 있었다.  한낮이 되자 장마
가 갇혔던 햇볕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고  앞 개울물 소리에 어울려 숲속에서는  매미들이 있는
대로 목청을 돋구었다.
  아차!  이때에야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난초를 뜰에 내놓은 채 온  것이다.  모처럼 보인 찬
란한 햇볕이 돌연 원망스러워졌다.  뜨거운 햇볕에 늘어져 있을 난초잎이 눈에 아른거려 더 지체
할 수가 없었다.  허둥지둥 그 길로 돌아왔다.  아니나다를까, 잎은 축 늘어져 있었다.   안타까워
안타까워하며 샘물을 길어다 축여주고 했더니 겨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어딘지 생생한 기운
이 빠져버린 것 같았다.
  나는 이 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
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녑해버린 것이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난을 가꾸
면서는 산철에도 나그네 길을 떠나지 못한 채 꼼작 못 하고  말았다.  밖에 볼일이 있어 잠시 방
을 비울 때면 환기가 되도록  들창문을 조금 열어놓아야 했고, 분을  내놓은 채 나가다가 뒤미처
생각하고는 뒤돌아와 들여놓고 나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 지독한 집착이었다.
  며칠 후,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분을 안겨주었다.   비로소 나
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날 듯 홀가분한 해방감.  3년 가까이 함께  지낸 "유정"을 떠나보
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
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
고 있는 것 같다.  소유욕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
념으로 출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 든다.  그  사
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는 끔찍한 비극도 불사하면서,  제 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소유욕은 이해와 정비례한다.  그것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간의 관계도 마찬가지, 어제의 맹방들
이 오늘에는 맞서게 되는가 하면, 서로 으르렁대던 나라끼리 친선사절을 교환하는 사례를 우리는
얼마든지 모고 있다.  그것은 오로지 소유에 바탕을 둔 이해관계 때문인 것이다.  만약 인간의 역
사가 소유사에서 무소유사로 그 향을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싸우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
다.  주지못해 싸운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간디는 또 이런 말도 하고 있다.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그가 무엇인가를 갖는
다면 같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가질 수 있을 때 한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거
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자기 소유에 대해서 범죄처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소유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하고많은 물량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
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볼 말씀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이니까.(현대문학, 1971. 3.)


  너무 일찍 나왔군

  서울이 몇 해 전부터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것은, 밖에서  온 친선사절들의 입을 빌릴 것 없
이 우리들 손으로도 만져볼 수 있다.  지방과는 달리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힘이 집중 투하되
기 때문에 특별시로는 모자라 서울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빌어먹더라도 서울로 가야 살
수 있다는 집념으로 인해 서울은 날로 비대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이라고 해서 다 살
기 좋고 편리하게만 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넓혀지고 치솟는 중심가의 근대화와는 상관없이
구태의연한 소외지대가 얼마든지 있다.
  강을 사이에 두고 나룻배가 오락가락한다면 백마강쯤으로 상상할 사람이 많겠지만 그곳은 부여
가 아니라 대서울의 뚝섬나루.  강 건너에는 수백 가구의 주민들이 납세를 비롯한 시민의 의무를
다하면서 살고 있다.  행정구역상 서울특별시 성동구 무슨무슨 동임에는 틀림없는데, 거기는 전기
도 전화도 수도시설도 없는 태고의 성역이다.  교통 수단이라고는 오로지 나룻배가 있을 뿐.
  그런데 그 나룻배라는 게 참 재미가 있다.  그 배는 지극히 서민적이어서 편식을 하지 않고 닥
치는 대로 마구 먹는다.    승용차뿐 아니라 소가 끄는 수레며 분뇨를 실은 트럭이며 그 바퀴 아래
신사와 숙녀들도 함께 태워준다.    그리고 그 나룻배는 도무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   아침
여섯시에서 밤 열한 시까진가 하는  사이에 적재량이 차야 움직인다.  아무리  바빠서 발을 동동
구른댔자 시간부재의 배는 떠나지 않는다.  그거나마 장마철과 결빙기에는 며칠씩 거르게 되고.
  같은 서울이면서 강을 하나 사이에 두고 이렇듯 문명의 혜택은  고르지 않다.  처음으로 그 나
루를 이용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을 많이 당하게된다.  시간을 예측할 수 없
어 허겁지겁 강변에 다다르면 한걸음 앞서 배가 떠나고 있거나 저쪽 기슭에    매달린 채 부동자세
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조금 늦을 때마다  너무 일찍 나왔군 하고 스
스로 달래는 것이다.
  다음 배편이 내 차례인데 미리 나왔다고 생각하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시간을 빼
앗긴 데다 마음까지 빼앗긴다면 손해가 너무 많을 것 같아서다.
  똑같은 조건 아래서라도 희로애락의 감도가 저마다 다른    걸 보면, 우리들이 겪는 어떤 종류의
고와 낙은 객관적인 대상에 보다도 주관적인 인식 여하에 달린 모양이다.  아름다운 장미꽃에 하
필이면 가시가 돋쳤을까 생각하면 짜증이    난다.  하지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가시에서 저토록
아름다운 장미꽃이 피어났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감사하고 싶은 것이다.(동아일보, 1969. 8. 7)


  오해

  세상에서 대인관계처럼 복잡하고 미묘한 일이 또 있을까.   까딱 잘못하면 남의 입살에 오르내
려야 하고, 때로는 이쪽 생각과는 엉뚱하게 다른 오해도 받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이웃에게 자신
을 이해시키고자 일상의 우리는 한가롭지 못하다.
  이해란 정말 가능한 걸까.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가  상대방을 이해하노라고 입술에 침을 바
른다.  그리고 그러한 순간에서 영원을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 이해가 진실한 것이라면  항상
불변해야 할 텐데 번번이 오해의 구렁으로 떨어져버린다.    나는 당신을 이해합니다라는 말은 어
디까지나 언론자유에 속한다.  남이 나를, 또한 내가 남을 어떻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이해하고 싶을 뿐이지.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타인.
  사람은 저마다 자기 중심적인 고정관념을 지니고 살게  마련이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물에
대한 이해도 따지고 보면 그 관념의 신축작용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의 현상을 가지고 이러쿵저
러쿵 말이 많은 걸 보아도 저마다  자기 나름의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나름의 이해란
곧 오해의 발판이다.  하니까 우리는 하나의 색명에 불과한 존재.  그런데 세상에는 예의  색맹이
또 다른 색맹을 향해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안달이다.   연인들은 자기만이 상대방을 속속들이 이
해하려는 맹목적인 열기로하여 오해의 안개 속을 헤매게 된다.
  그러고 보면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가 아니라 상상의  날개에 편승한 찬란한 오해다.  "나는 다
신을 죽도록 사랑합니다"라는 말의 정체는 "나는 당신을 죽도록 오해합니다"일 것이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었다.  종단 기관지에 무슨 글을 썼더니 한 사무승이 내 안면 신경이 간지
럽도록 할렐루야를 연발하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이렇게 뇌고 있었다.  "자네는 날 오해
하고 있군.  자네가 날 어떻게 안단 말인가.  만약 자네 비위에 거슬리는 일이라도 있게 되면, 지
금 칭찬하던 바로 그 입으로 나를 또 헐뜯을 텐데, 그만두게, 그만둬."
  아니나다를까, 바로 그 다음호에 실린 글을 보고서는 입에 게거품을 물어가며 죽일 놈 살릴 놈
이빨을 드러냈다.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거  보라고, 내가 뭐랬어.  그게 오해라고 하지
않았어.  그건 말짱 오해였다니까."
  누가 나를 추켜세운다고 해서 우쭐댈 것도 없고 헐뜯는다고 해서 화를 낼 일도 못 된다.  그건
모두가 한쪽만을 보고 성급하게 판단한 오해이기 때문에.
  오해란 이해 이전의 상태 아닌가.  문제는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달린 것이다.  실상
은 언외에 있는 것이고 진리는 누가 뭐라 하건 흔들리지 않는  법.    온전한 이해는 그 어떤 관념
에서가 아니라 지혜의 눈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 이전에는 모두가 오해일 뿐.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제기랄, 그건 말짱 오해라니까.(중앙일보, 1972. 1. 31.)


  운해목

  해가 저문 어느 날, 오막살이 토굴에 사는 노승앞에 더벅머리 학생이 하나 찾아왔다.  아버지가
써준 편지를 꺼내면서 그는 사뭇 불안한 표정이었다.
  사연인즉, 이 망나니를 학교에서고 집에서고 더 이상 손댈 수 없으니, 스님이 알아서 사람을 만
들어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노승과 그의 아버지는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편지를 보고 난 노승은 아무런 말도 없이 몸소 후원에 나가 늦은 저녁을 지어왔다.  저녁을 먹
인 뒤 발을 씻으라고 대야에 가득 더운 물을 떠다주는  것이었다.  이때 더벅머리의 눈에서는 주
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아까부터 훈계가 있으리라 은근히 기다려지기까지 했지만 스님은 한마디  말도 없이 시중
만을 들어주는 데에 크게 감동한 것이었다.  훈계라면 진저리가 났을 것이다.  그에게는 백천  마
디 좋은 말보다는 다사로운 손길이 그리웠던 것이다.
  이제는 가버리고 안 계신 한  노사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게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노사의
상이다.
  산에서 살아보면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겨울철이면 나물들이 많이 꺾이고 만다.  모진 비바
람에도 끄떡 않던 아름드리 나무들이,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  하덕 그 소나무들이 눈이 내려 덮
이면 꺾이게 된다.  가지 끝에  사뿐사뿐 내려 쌓이는 그 하얀  눈에 꺾이고 마는 것이다.  깊은
밤,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나무들이 꺾이는 메아리가 울려올 때,   우리들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정정한 나무들이 부드러운 것에 넘어지는 그 의미 때문일까.   산은 한 겨울이 지나면 앓고 난
얼굴처럼 수척하다.
  사아밧티이의 온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던 살인귀 앙굴리마알라를 귀의시킨  것은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신통력이 아니었다.  위엄도 권위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자비였다.  아무리 흉악무도한 살인귀라 할지라도    차별 없는 훈훈한 사랑 앞에
서는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
는 물결인 것을.(불교신문, 1968. 4. 21.)
  아파트와 도서관

  한때 우리나라는 "섰다"하면 교회라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그 말도  이제는 빛이 바래버렸다.
그 자리에는 바야흐로 호텔과 아파트가 우뚝우뚝 치솟고 있다.
  호텔은 요즘 밀려드는 외국 관광객의 사태로 이른바  즐거운 비명를 지르고 있다니, 외화 획득
에안간힘을 쓰고 있는 국가 정책면에서 볼  때 크게 환영할 일이다.  그  외화의 위력 앞에 몸과
마음을 아무렇게나 굴려 겨레의 체면이나 긍지를 내동댕이치는 일만 없다면.
  서민의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 장려되고  있는 건축양식이 아파트임은 더 말할  것도 없
다.  그런데 이 아파트가 본래의 건축 목적을 외면한 채 호화판으로 기울고 있으니 어떻게 된 노
릇인가.  심지어 한 가구에 2천만원짜리까지 있다니, 그것도 파격적인 가격이라고  한다니 서민들
은 그야말로 파격적인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주택 부족률은    40퍼센트선을  상회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아파트 건축 관계자들임에도  호화판에만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이다.  호화판일수록 입주자가 쇄도하기 때문인가.    호화 아파트는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
여 오손도손 살기 위해서가 아님은 물론, 허영심을  부채질하고 일부 여유 자금의 부동산 투기대
상이 되기도 한다는 것.    이래서 서민들은 혜택권 밖에서 바람비를 맞는다.
  가난한 서민의 이름으로 시작된 일이 돈 많은 부자들 차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아파트의 위세가 설 자리를 가리지 않고 어디나 불쑥불쑥 고개를  디밀려는 데에 우
리는 저항을 느낀다.
  서울대학교 본부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심히  안타깝고 착잡한 심경이
었다.  그 대학이 내게는 모교도 자교도 아니지만, 유서 깊은 대학의 터가 학문의  전당으로 보존
되지 못하고 기껏 그러한 아파트로 주저앉는가 싶어서였던    것이다.  가뜩이나 대학의 역사가 길
지 않은 우리고 보면 그 터는 평당 얼마짜리의 단순한 지면으로 칠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이며 분
위기까지도 대학의 역사와 함께 보존되어야 한다.
  최근에 나는 참으로 흐뭇한 소식을 들었다.  그것은 눈물겹도록 갸륵하고 고마운 일이었다.  서
울대 본부 캠퍼스에 국립도서관을 지어 캠퍼스를 학문의 전당으로서 보존하자는  운동이 그 대학
동창인 가정주부들 사이에 일고 있다는 소식.  17억원을  들여 여의도에 지을 국립도서관을 서울
대학자리에 짓는다면 그 캠퍼스는 길이 학문의 전당으로 보존될 거라는 의견은 모든 시민들이 크
게 공감할 바다.  그리고 국민의 세금으로 지를  국립도서관이라면 국민 누구나가 편리하게 드나
들 수 있는 위치여야 한다는 점에서도 그 캠퍼스는 최적지일 것 같다.  여의도에는 국회도서관이
설테니 한 군데 둘씩이나 세울 필요는 없다.  그리고 도심에  아파트를 짓는 것은 도시의 인구분
산정책에도 역행될 것이다.
  이제 시민들은 관계당국의 지혜로운 배려가 있기를 다 같이 기대하자.  아파트냐 도서관이냐는
민족의 슬기를 잴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될 것이다.  우리들이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지혜로
운 배려에 미소를 머금을 수 있도록, 이 시대의 우리만이 아니라 후대의 자손들까지도 그 미소의
의미를 물려받을 수 있도록 한 겨레의 처지에서 간절히 바라는 바다.(서울신문, 1973. 9. 22.)


  종점에서 조명을

  인간의 일상생활은 하나의 반복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대개 비슷비슷한 일을 되풀이하면서 살
고 있다.  시들한 잡담과 약간의 호기심과 애매한 태도로써 행동하고 거지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기성찰 같은 것은 거의 없고 다만 주어진 여건 속에 부침하면서 살아가는    범속한 일상인이 있
을 뿐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의지에서가 아니라 타성의 흐름에 내맡긴  채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모방과
상식과 인습의 테두리 안에서 편리하고 무난하게 처신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지닌 생생한 빛깔은 점점 퇴색되게 마련이다.
  생각하면 지겹고 답답해 숨막힐 일이지만 그래도 그렁저렁  헛눈을 팔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
러한 일상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때로 나그네 길을 떠난다.  혹은    한강 인도교의 비어
꼭대기에 올라가 뉴스거리가 되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자신의 그림자를 이끌고
되돌아오고 만다.
  자기의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았으면 좋겠다는 별난  사람이 있었다.  필자는 그를 데
리고 불쑥 망우리를 찾아간 일이 있다.  짓궂은 성미에서가 아니라    성에 차지 않게 생각하는 그
의 생을 죽음 쪽에서 조명해주고 싶어서였다.  여지가 없는 무덤들이 거기 그렇게 있었다.
  망우리!  과연 이 동네에서는 모든  근심 걱정을 잊어버리고 솔바람 소리나  들으며 누워 있는
것일까.  우뚝우뚝 차갑게 지켜 서  있는 그 비석들만 아니라면  정말 지극히 평온할 것  같았다.

  죽어본 그들이 살아 있는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만약 그들을  깊은 잠에서 불러
깨운다면 그들은 되찾은 생을 어떻게 살아갈까?
  사형수에게는 일분 일초가 생명 그 자체가 실감된다고 한다.  그에게는 내일이 없기 때문.     그
래서 늘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에    살고 있으면서도 곧잘 다음날로 미루
며 내일에 살려고 한다.    생명의 한 토막인 하루 하루를  소홀히 낭비하면서도 뉘우침이 없는 것
이다.
  바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의 음악에서 장엄한 낙조같은 걸 느낄 것이다.  단조로운 듯한 반
복 속에서 심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일상이 심화 없는 범속한  되풀이만이라면 두 자리
반으로 족한 "듣기 좋은 노래"가 되고 말 것이다.
  일상이 지겨운 사람들은 때로는 종점에서 자신의 생을  조명해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그것
은 오로지 반복의 심화를 위해서.(경향신문, 1970. 5. 30.)


  흙과 평면공간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이 말은  근대화에서 소외된 촌락에 사는 사람
이면 누구나 입에 담을 수  있는 오늘의 속담이다.  우리 동네에서    뚝섬으로 가는 나루터까지의
길도 그러한 유명에 속하는 개발도상의 길이다.
  이 길은 몇 해 전만 해도 산모퉁이며 논길과 밭둑길이 있어 사뭇 시골길의 정취가 배어 있었는
데, 무슨 지구개발인가 하는 바람에  산이 깎이고 논밭이 깔아뭉개지더니  그만 허허벌판이 되고
말았다.  물 빠질 길도 터놓지 않아 비가 오거나 눈이 녹으면 그야말로 엉망진창인 것이다.  그래
도 이 길을 다니는 선량한 백성들은 당국에 대한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오고 간다.  가위 양
같이 어진 이웃들이라 할 만하다.
  이제 이 길에 얼음이 풀리니  장화를 신고도 발을 떼어놓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길에도
감사를 느끼면서 걷기로 했다.  그것은 한동안 잃어버렸던    흙과 평면공간을 이 길에서 되찾았기
때문이다.
  몇 사람이 합숙을 하면서 해야 할 일이 있어 어느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 한달 남짓 지냈었다.
  같이 일할 사람들이 절에서는 거처가  불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처음에는 생활환경이 바뀌는
데서 오는 약간의 호기심과 아파트의 주거상태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라 싶어  그런 대로 지낼만
했다.  생활이 편리해서 우선 시간이 절약되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일에 능률도 안 오르고 무
엇인가 퇴화되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8층에서 단추만 누르면 삽시간에 지상으로 내려온다.  슬리퍼를 신은  채 스무 걸음쯤 걸어 아
케이드에서 필요한 것을 사온다.    그것도 귀찮으면 전화로 불러 가져오게 한다.
  물론 연탄불을 갈 시간 같은 것에 신경을 쓸 필요도 없다.  이렇듯 편리하게 사는데도 뭔가 중
심이 잡히지 않은 채 겉돌아 가는 것 같았다.  무슨 까닭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흙탕길을 걸으면서 문득 생각이 피어    올랐다.  잘산다는 것은 결코 편리하
게 사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우선 우리는 보행의 반경을 잃은 것이었다.  그리고 차단된 시야
속에서 살았던 것이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몸의  동작만이 아니라 거기에는 활발한 사고작용
도 따른다.  툭 트인 시야는 무한을 느끼게 한다.
  그곳에는 수직공간은 있어도 평면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이웃과도 온전히 단절되어 있었다.  오
르내리는 엘리베이터 속의 지면들도 서로가  맨송맨송한 타인들.  그리고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흙이다.  그렇다, 인간의 영원한 향수같은 그  흙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늘 추상적으로  살았던
것이다.  마치 온실 속의 식물처럼.
  흙과 평면공간, 이것을 등지고 인간이 어떻게 잘살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현대문명의 권속들
은 그저 편리한 쪽으로만 치닫고 있다. 그 결과 평면과 흙을 잃어간다.  불편을  극복해가면서 사
는 데에 건강이 있고 생의  묘미가 있다는 상식에서조차 멀어져가는 것이다.   불편하게는 살 수
있어도 흙과 평면공간 없이는 정말 못 살겠던데.(중앙일보, 1972. 3. 6.)


  탁상시계 이야기

  처음 만난 사람과 인사를 나눌 경우, 서투르고  서먹한 분위기와는 달리 속으로 고마움을 느낄
때가 있다.  이 지구상에는 36억인가 하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는데, 지금 그 중의 한  사람을
만난 것이다.  우선 만났다는 그 인연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하늘 밑, 또같은 언어와 풍속 안에 살면서도 서로가 스쳐 지나가고 마는 인간의 생태이기
때문이다.  설사 나를 해롭게 할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와 나는  그만큼의 인연이 있어 만난 것이
아니겠는가.  그 많은 사람 가운데서 왜 하필이면 나와 마주친 것일까.  불교적인 표현을  빌린다
면 시절인연이 다가선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물건과 사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많은 것 중에 하나가 내게 온 것
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탁상에는 내 생활을 거동케 하는 국적 불명의  시계가 하나 있다.
그놈을 보고 있으면 물건과 사람 사이의 인연도 정말 기구하구나 싶어진다.    그래서 그놈이 단순
한 물건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가을, 새벽 예불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큰 법당 예불을 마치고 판전을    거쳐 내려오
면 한 시간 가까이 걸린다.  돌아와 보니 방문이 열려 있었다.  도선생이 다녀간 것이다.  평소에
잠그지 않는 버릇이라 그는 무사 통과였다.  살펴보니 평소에 필요한 것들만 골라갔다.  내게  소
용된 것이 그에게도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가져간 것보다 남긴 것이 많았다.   내게 잃어버릴 물건이 있었다는 것이, 남들이  보고
탐심을 낼 만한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적잖이 부끄러웠다.  물건이란 본래부터 내가 가
졌던 것이 아니고 어떤 인연으로 해서 내게 왔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떠나가게 마련이라 생각하
니 조금도 아까울 것이 없었다.  어쩌면 내가 전생에 남의 것을 훔친 과보인지  모른다 생각하면,
오히려 빚이라도 갚고 난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는 대단한 것이라도 있는가 싶어 있는 것 없는    것을 샅샅이 뒤져놓았다.  잃은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애석하지 않았는데 흐트러놓고 간 옷가지를 하나하나 제자리에 챙기자니 새삼스
레 인간사가 서글퍼지려고 했다.
  당장에 아쉬운 것은 다른 것보다도 탁상에 있어야 할 시계였다.    도선생이 다녀간 며칠 후 시
계를 사러 나갔다.  이번에는 아무도 욕심내지 않을 허름한 것으로 구해야겠다고  작정, 청계천에
있는 어떤 시계 가게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런데, 허허,    이거 어찌된 일인가.  며칠전에 잃어버
린 우리 방 시계가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웬 사내와 주인이 목하 흥정
중이었던 것이다.
  나를 보자 사내는 슬쩍 외면해버렸다.  당황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에게 못지않게 나도  당
황했다.  결국 그 사내에게 돈 천원을 주고 내 시계를 내가 사고 말았다.  내가  무슨 자선가라고
그를 용서하고 말고 할 것인가.  따지고 보면 어슷비슷한 허물을 지니고 살아가는 인간의 처지인
데.  뜻밖에 다시 만난 시계와의 인연이 우선 고마웠고, 내  마음을 내가 돌이켰을 뿐이다.  용서
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라기보다, 흐트러지려는 나를    나 자신이 거두어들이는 일이 아닐까
싶다.(샘터, 1972. 4.)


  동서의 시력

  내 몸이 성할 때는 조금도 그런 생각이 없는데, 어쩌다 앓게 되면 육신에    대한 비애를 느낀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 모든 체했다가, 조금 지나서는 큰마음 먹고 약국에 들른다.  그러
다가 마침내는 그토록 머리 무거운 병원 문턱을 들어설 때    그 비애를 느끼는 것이다.  진찰권을
끊고 차례를 기다리며 목도에 앉아 있는 그 후줄근한 시간에는 육신이 사뭇 주체스러워진다.    의
사를 대했을 때 우리는 말 잘 듣는 착한 어린이가 되어버린다.
  재작년 겨울이던가, 눈이 아파 한동안 병원에를    드나든 적이 있었다.  그 무렵 성전  간행일로
줄곧 골몰했더니 바른쪽 눈이 충혈되고 찌뿌드드해 무척  거북스러웠다.  안약을 넣어도 듣지 않
았다.  미적미적 미루다가 하루는 마음을 크게 먹고 신문에 자주 나오는 안과를 찾아갔다.   나처
럼 서투르고 어설픈 사람이면 대개가 그러듯이 광고의 유도를 받은 것이다.
  그 안과는 어찌나 환자들로 붐비던지 진찰받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몇 곱절 더 길었다.
  의사는 밀린 환자 때문에 그럼인지 경기장에서 갓 나온 운동선수처럼 씩씩러리면서 내 눈을 살
폈다.  시력에는 이상이 없었다.    기표소처럼 휘장이 쳐진 구석을 가리켰다.  대기하고 있던 간호
원이 철썩 엉덩이에 주사침을 꽂았다.  그리고 안약 한벼, 지극히 단순하고 신속한 진료였다.  날
마다 오라고 했지만 나는 그 의사는 초대를 사양했다.  날마다  찾아갈 성의도 여가도 함께 없었
지만 뭣보다 그 의사에게 신뢰가 가질 않았기 때문이다.
  내친 걸음에 다음날은 그 길 건너에 있는 안과를 찾아갔다.  분위기가 차분했다.  물론  씩씩거
리지도 않았다.    병명은 구결막 부종.  우리 시민사회의 말로 하자면 눈의 흰자가 좀 부었다는 것
이다.  시력에는 영향이 없으니 걱정말고 눈을 푹 쉬라고 했다.  그런데 출간 예정일 때문에 눈을
쉬게 할 수가 없었다.  할 일은 태산 같은데 몸이 따르지 못하는 그런 안타까움이었다.
  그렁저렁 두어 주일이 지났다.    의사는 걱정 마라 했지만 당사자인 나는 차도가 없으니 속으로
불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번듯한 종합병원을 찾아갔다.  그곳은 진찰권을 끊는 창구
부터 큰 혼잡이었다.  복도마다 환자들로 장을 이루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앓고 있는 것만 같
았다.  갈데없이 나도 환자로구나 싶었다.  한 시간 가까이 안과 앞에서 기다리다 못해 그만 일어
서려는데, 그때 유감스럽게도 내 이름을 불렀다.  진료에 참고가 될까 해서 그간의 경과를 이실직
고했더니 담당 의사는 갸웃거리면서 내가 알아볼 수 없는 글씨로 내리갈겼다.  간호원은 나를 혈
액 검사실로 보냈다.  그러고 나서는 변을 받아 오라고 했다.  이거 왜 이럴까 싶었지만  착한 어
린이가 된 환자라 시키는 대로 순종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생각이 스쳤다.  아하, 종합병원이란
곳은 참으로 종합적으로 진찰을 하는 데로구나.  주머니 실력도 종합적으로 공평하게 분산시키는
데로구나.
  혈액이고 변이고 검사 결과는 물론 정상이었다.    그토록 정상인 내 몸을 이번에는 또 수술실로
데려가는 것이었다.  조직검사를 해보자는 것이다.  그 방면에 문외한인 나는 조직검사가 어떤 것
인지를 전혀 알지 못했었다.  만약 사전에  알았더라면 그것만은 단연 불응했을 텐데.  수술대에
누이더니 눈 언저리에 마취주사를 놓았다.  구결막을  두어 군데 오려내고 꿰매는 것이었다.    내
눈은 납치범이 아닌 의사의 손에 의해 철저히 봉해졌다.  이것도 뒤늦게야 안 일이지만,  혹시 암
이 아닌가 싶을 때 조직검사를 한다는 것이다.  한주일 후에야  그 결과가 판명된다는 말을 듣고
한쪽 눈을 안대로 가린 나는 몹시 답답하고 막막한 심경이었다.  귀로에 나는 문득 내 육신에 미
안하고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평소 잘 먹이지도, 쉬게 하지도 못하고 너무 혹사만  했구나 생
각하니 새삼스레 연민의 정이 솟았다.  그리고 색신이 시고임을, 업보로 된 이 몸뚱이가  바로 괴
로움이라는 사실을 거듭거듭 절감하게 되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그 한주일 동안은 불안한
나날이었다.  불필요한 상상력이 제멋대로 날개를 쳤다.  젠장 살다가 병신이 될 모양인가.........
  이때 나는 베토벤이 아니었더라면 그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했을 것이다.  어떠한 병과라 할
지라도 그가 겪은 것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닐 것 같았다.   그의 가혹한 운명적인 생애가 병고
에 위축된 그 겨울의 나를 따뜻하게 그리고 밝게 조명 해주었던 것이다.
  검사 결과는 혈관이 좀 수축되었다는 것, 그뿐이었다.  다행이라 싶었지만 한편  생각하니 괘씸
했다.  돈 들이고 병을 산 셈이 아닌가.  그 동안에 입은 정신적인 피해는 놔두고라도 조직검사로
인해 눈을 더 망쳐놓은 것이다.  의사 자신이나 그 가족의 경우였다면 그같이 했을까 싶었다.  그
러나 돌이켜 마음먹기로 했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니까.  왜 하필임변 내가 그날 그 병원에
가서 그 의사한테 진료를 받게 됐을까.  그것은  모두가 인연의 줄에 얽힌 소이일 것이다.  설사
그 의사의 신중하지 못한 임상실험으로 내  육신이 피해를 입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내가 지어서
받은 과보.  내가 아쉬워서 내 발로 찾아갔으니까.  그리고 유기체인 이 육신을 가지고 항상 온전
하기를 바란다는 것부터가 과분한 일.
  눈은 그 뒤 한의사의 가루약 다섯 봉지를 먹고 나았었다.
  조직검사의 자죽만은 남긴 채.    그 한의사의  말인즉, 너무 과로했기 때문에 심장에 열이  생겨
상기가 됐다는 것.  상기가 되면 구결막이 붓는 수가 있다고 했다.    심장의 열만 다스리면 저절로
나를 거라고 지어준 약을 먹었더니 이내 나았었다.
  그런데 모두가 의학박사이기만 한 그 의사들은 병의 근원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고 겉에 나타난
증상만을 치료하려 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안질을 통해서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사회현상
을 비롯한 사물의 실상을 측면에서 볼 수 있는 그러한 눈을.  그리고 동양과 서양의 시력 같은걸
내 나름으로 잴 수 있었다.  막막한 그 육신의 비애를 치러가면서.(현대문학, 1973. 11.)


  회심기

  내 마음을 내 뜻대로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한도인이 될 것이다.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온갖 모순과 갈등 속에서 부침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화를 내고 속상해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외부의 자극에서라기보다 마음을 걷잡을 수
없는 데에 그 까닭이 있을 것 같다.
  3년전,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절의 경내지가  종단의 몇몇 사무승들의 농간에 의해  팔렸을 때,
나는 분한 생각 때문에 며칠 동안 잠조차 이룰 수 없었다.    전체 종단의 여론을 무시하고 몇몇이
서 은밀히 강행해 버린 처사며, 수천 그루의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눈앞에서 넘어져 갈 때, 그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불도저가 산을 헐어 뭉갤 때, 정말 분통이 터져 견딜 수가 없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원망스럽고 저주스러웠다.  함께 살던 주지 스님도 다른 절을
맡아 가버리고, 그 그늘에서 붙어 살던 나는 그야말로 개밥에 도토리가 되고 말았다.   나는 다른
도량으로 옮겨 차라리 눈으로 보지나 말자고 내심 작정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법당에서 예불을 마치고 내려오던 길에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본래
무일물!  본래 한 물건도 없다는 이 말이 떠오른 순간 가슴에 맺혔던 멍울이 삽시간에 술술 풀려
버리고 말았다.
  그렇지!  본래 한 물건도 없는 거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가지고  온 것도 아니고, 이 세상을
하직할 때 가져가는 것도 아니다.   인연 따라 있었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고 마는  거다.
언제가 이 몸뚱이도 버리고 갈 것인데.........
  이렇게 생각이 미치자 그 전까지의 관념이 아주 달라지고 말았다.   내가 주지 노릇을 하지 않
고 붙어 살 바에야 어디로 옮겨가나 마찬가지아니냐.   중생들끼리 얽혀 사는 사바세계라면 거기
가 거기지.  그렇다면 내 마음 먹기 탓이다.
  차라리 비리의 현장에서 나를 키우리라.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난다는 옛사람의 말
도 있지 않더냐.
  이때부터 팔려버린 땅에 대해서도 애착이 가지 않았다.  그것은 본래 사찰 소유의 땅이 아니었
을 것이다.  신도들이 희사를 했거나 아니면 그때까지 주인이 없던    땅을 절에서 차지한 것일 게
다.  그러다가 그 인연이 다해 내놓게 된 것이다.    그리고 경내지가 팔렸다고 해서 그  땅이 어디
로 간 것이 아니고 다만 소유주가 바뀔 뿐인 것이다.
  이날부터 마음이 평온해지고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었다.    그토록 시끄럽던 불도저며 바위를 뚫
는 컴프레서 소리가 아무렇지 않게 들려왔다.  그것은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들을 향해서
는 곧잘 베풀라고 하면서 지금까지 나 자신은 무엇을 얼마나 베풀어 왔느냐.  지금 저 소리는 너
의 잠을 방해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집이 없는 이웃에게 집을 지어주기  위해 터를 닦는 소리다.
이 소리도못 듣겠다는 게냐?
  그리고 그 일터에는 수백 며의 노동자들이 밤잠도 못 자가며 땀 흘려 일을 하고 있다.  그들에
게는 저마다 몇 사람씩 딸린 부양가족이 있을 것이다.  그들  가족 중에는 지금 입원환자도 있을
거고, 등록금을 내야 할 학생도 있을 것이다.  연탄도 들여야  하고, 눈이 내리기 전에 김장도 해
야 할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보내주지는 못할망정 살기 위해  일하는 소리조차 듣기 싫다는 게
냐?
  이처럼 생각이 돌이켜지자 그토록 시끄럽고 골이 아프던 소음이 아무렇지도  않게 들렸던 것이
다.  이때를 고비로 나는 종래까지의 사고와 가치의식이 아주 달라져버렸다.  이 세상은 나  혼자
만이 아니라 많은 이웃과 함께 어울려 살고 있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새겨지게 되었다.
  소유 관념이나 손해에 대한 개념도 자연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내 것이란 아무것도 없기 때
문에 본질적으로 손해란 있을 수 없다.  또 내 손해가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겐가 이익이 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잃은 것이 아니라는 논리였던 것이다.
  절에도 가끔 도둑이 든다.  절이라고 이 지상의 풍속권에서 예외는 아니니까.  주기적으로 기웃
거리는 단골 도군이 있어 허술한 문단속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다.  날마다 소용되는 물건을
몽땅 잃어버렸을 때 괘씸하고 서운한 생각이 고개를 들려고 했다.  그러자 예의 본래무일물이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한동안 맡아 가지고 있던 걸 돌려보낸 거라고.  자칫했더라면 물건잃고 마음
까지 잃을 뻔하다가 공수래 공수거의 교훈이 내마음을 지켜주었던 것이다.
  대중가요의 가사를 빌릴 것도 없이, 내 마음  나도 모를 때가 없지 않다.    정말 우리  마음이란
미묘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 한 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여우조차 없으니까.  그러한 마음을 돌이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
이 내 마음이라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화 나는 그 불꽃 속
에서 벗어나려면 외부와의 접촉에도 신경을 써야겠지만,  그보다도 생각을 돌이키는 일상적인 훈
련이 앞서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을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고 옛사람들은 말한 것일까.(세대, 1972. 12.)


  조조할인

  지난 일요일, 볼일로 시내에 들어갔다가 극장 앞에 줄지어 늘어서 있는  장사진을 보고, 시민들
은 참 열심히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낮의  뙤약볕 아래 묵묵히 서 있는 그
들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았을 때    측은한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먼  길의 나그네에게서나 느낄
수 있는 피로와 우수의 그림자 같은 걸 읽었기 때문이다.
  모처럼 휴일을 맞아 남들은 권태로운 영역을 탈출,  녹음이 짙은 산과 출렁거리는 물가에서 여
가를 즐기고 있을 텐데 무슨 자력에라도  매달리듯 마냥 같은 공해지대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그
모습들이 조금은 슬펐다.
  시정의 서민들이 기껏 즐길 수 있는 오락이라는 게 바로 극장에서 돌아가고는 있지만.  우리도
가끔 그런 오락의 혜택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나 백주의 장사진에 낄 만한 열성을 갖지 못했다.
사실 오락은 그때의 기분과 직결되는 것이라는 때와 장소가 문제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얼마 전 우리 국산영화 사상 드물게 보는 수작이라고, 그걸  안 보면 한이 되리라는 듯이 하도
보채는 광고와 영화평에 이끌려 한낮에 을지로 쪽으로  찾아갔었다.  극장을 나오는 길로 약국에
들러 명랑을 사서 먹고도 불쾌감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영화 자체도  문제 이하의 것이지만
(전문가들은 그 영화에 무슨 상을 내렸다) 그 극장의  분위기가 퀴퀴하게 밀폐된 창고 같아서 30
분도 못되어 골이 아프기 시작했다.  즐기러  갔다가 즐기기는커녕 고통을 당한 것이다.  허물은
광고문에 속은 이쪽에 있었지만.
  나는 그래서 조조할인을 좋아한다.  그 까닭은 결코 할인에 있는    것이 아니고 조조의 그 분위
기에 있다.  우선 창구 앞에 늘어설 필요가 없으니 절차가 간단해서 좋다.  줄지어 늘어서서 기다
릴 때 오락은 절반쯤 그 폭이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아무데나 앉고 싶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특권이    있다.  안내양의 그 불안하도록 희미
한 플래시의 지시를 받을 필요도    없이 선택의 좌석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모처럼 배당받은
좌석 앞에 벽처럼 버티고 앉은 좌고가 시야를  가릴 경우 나의 죄없는 고개는 피해를  입어야 한
다.  그러나 조조에는 그런 피해도 없다.
  뭣보다도 조조의 매력은 듬성듬성 앉아 있는 그 여유있는 공간에    있을 것 같다.  우리들이 영
화나 연극을 보는 것은 단조롭고 반복되는 일상적인 굴레에서 벗어나 색다른 세계에 자신을 투입
하여 즐기려는 것인데, 밀집한 일상 영화관에까지 연장된다면  어떻게 색다른 세계를 이룰 수 있
을 것인가.  그러한 밀집은 출퇴근 시간의 만원버스나  다닥다닥 붙은 이웃집 처마끝만으로도 충
분하다.  가뜩이나 각박한 세정에 듬성듬성 앉을 수 있는 그러한 공간은 여유가 있어 좋다.
  그렇게 앉아 있는 뒷보습들을 보노라면    말할 수 없는 친근감이 출렁거리게  된다.  이 아침에
모인 이웃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일자리를 얻지 못해 얹혀사는 사람들일까, 혹은 너무 선량하기
때문에 일터에서 밀려난 사람들일까,  어쨌든 다 선량한 사람들만 같다.  누가 잘못해 자기  발등
을 좀 밟았기로 그만한 일을 가지고 눈을 흘기거나 시비를 걸  사람은 아닐 것 같다.  나직한 소
리로 이야기를 하면 막혔던 의사가 술술 풀릴 그런 이웃들 같다.
  "25시"를 보고 나오던 지난해 여름의 조조, 몇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 자국을 발견했을 때 나는
문득 "요한 모리츠!"하고 그들의 손을 덥석 쥐고 싶은 충동을 느꼈었다.(월간문학, 1970. 10.)


  나그네 길에서

  사람들의 취미는 다양하다.  취미는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인간적인  여백이요, 탄력이다.  그러
기에 아무개의 취미는 그 사람의 인간성을 밑받침한다고도 볼 수 있다.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개인의 신체적인 장애나 특수 사정으로 문밖에  나서기
를 꺼리는 사람도 없지 않겠지만, 대개의 경우 여행이란 우리들을 설레게 할 만큼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호주머니의 실력이나 일상적인 밥줄 때문에    선뜻 못 떠나고 있을 뿐이지
그토록 홀가분하고 마냥 설레는 나그네 길을 누가 마다할 것인가.
  하고한 날 되풀이되는 따분한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무엇보다 즐거운 일.  봄날의 노고지
리가 아니더라도 우리들의 입술에서는 저절로 휘파람이 새어 나온다.
  훨훨 떨치고 나그네 길에 오르면 유행가의 가사를 들출것도 없이 인생이 무어라는 것을 어렴풋
이나마 느끼게 된다.  자신의 그림자를  이끌고 아득한 지평을 뚜벅뚜벅 걷고  있는 나날의 나를
이만한 거리에서 바라볼 수 있다.
  구름을 사랑하던 헤세를, 별을 기리던 생  텍쥐페리를 비로소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낯선 고향을 헤매노라면 더러는 옆구리께로 허허로운 나그네의 우수 같은 것이 스치고 지나간다.
  지나해 가을, 나는 한 달 가까이 그러한 나그네 길을 떠돌았다.  승가의 행각은  세상 사람들의
여행과는 다른 데가 있다.  볼일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어디서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발길 닿는대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운수행각이라고 한다.  예전부터 선가에
서는 석달 동안 한 군데서 안거하고 나면 그 다음 석달  동안은 행각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
니까 행각은 관광의 의미에서가 아니라 유동하면서 교화하고 정진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말
하자면 덧없는 세상 물정을 알면서 수행하라는 뜻에서다.
  행장을 풀고 하룻밤 쉬는 곳은 물론 우리들의 절간.  두어군데말고는 다들  낯익은 사원이었다.
  해질녘 절 동구길에서 듣는 만종소리와 발을  담그고 땀을 들이는 차가운 개울물, 객실에 들어
오랜만에 만난 도반과 회포를 풀면서 드는 산다의 향기가 나그네의 피로를 다스려주곤 했었다.
  이렇게 지난 가을 동으로 서로 남으로  발길이 닿는 대로 구름처럼 떠돌아다니면서  입산 이후
도정의 자취를 되새겨보았던 것이다.  그때마다 지나간 날의 기억들이 저녁 물바람처럼 배어들었
다.  더러는 즐겁게 혹은 부끄럽게 자신을  객관화시켜 주었다.  그러면서도 단 한군데만은 차마
가볼 수 없는 데가 있었다.   아니 참으로 가보고 싶은  곳이기 때문에 가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출가가 연천했던 시절, 구도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배웠고 또한 빈틈없는 정진으로 선열을 느끼던
그런 도량이라 두고두고 아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리산에 있는 쌍계사 탑전!
  그곳에서 나는 16년전 은사 효봉선사를 모시고 단둘이서    안거를 했었다.    선사에서 문자를 통
해 배우기는 "초발심자경문" 한 권밖에 없지만 이곳 지리산 시절 일상생활을 통해서 입은 감화는
거의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 시절 내가 맡은  소임은 부엌에서 밥을 짓고    찬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정진 시간이
되면 착실하게 좌선을 했다.  양식이 떨어지면 탁발(동냥)을 해오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50리밖에
있는 구례장을 보아왔다.
  하루는 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소설을 한 권 사왔었다.   호손의 "주홍글씨"라고 기억된다.
아홉 시 넘어 취침 시간에 지대방(고방)에 들어가 호롱불을 켜놓고 책장을 펼쳤다.  출가한 후 불
경 이외의 책이라고는 전혀 접할 기회가 없던 참이라 그  때의 그책은 생생하게 흡수되었다.    한
참을 정신없이 읽는데 방문이 열렸다.  선사는 읽고 있던 책을 보시더니 단박 태워버리라는 것이
다.  그런 걸 보면 "출가"가 안된다고 했다.  불연세속을 출가라고 하니까.
  그 길로 부엌에 나가 태워버렸다.  최초의 분서였다.  그때는 죄스럽고 좀 아깝다는 생각이었지
만, 며칠 뒤에야 책의 한계 같은 걸 터득할 수 있었다.  사실 책이란 한낱  지식의 매개체에 불과
한 것, 거기에서 얻은 것은 하나의 분별이다.  그 분별이 무분별의 지혜로 심화되려면 자기응시의
여과과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전까지 나는 집에 두고 나온 책 때문에 꽤 엎치락뒤치락거렸는데, 이 분서를 통해 그러한 번
뇌도 함께 타버리고 말았다.  더구나 풋내기 사문에게는 온갖 분별을 조장하는 그런 책이 정진에
방해될 것은 물론이다.  만약 그때 분서의 건이 없었던들 책에 짓눌려 살았을지도 모른다.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찬거리가 떨어져 아랫마을에  내려갔다가 낮 공양 지을 시간이
예정보다 십분쯤 늦어버렸다.  선사는 엄숙한 어조로 "오늘은 단식이다.  그렇게 시간관념이 없어
서 되겠니?" 하는 것이었다.  선사와 나는 그 시절 아침에는 죽을, 점심때는 밥을 먹고, 오후에는
전혀 먹지 않고 지냈었다.  내 불찰로인해 노사를 굶게 한    가책은 그때뿐 아니라 두고두고 나를
일깨웠다.
  이러한 자기 형성의 도량을 차마 들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보나마나 관광지로 주저앉았을, 고
등고시 준비를 위한 사람들의 별장쯤으로 빛이 바래져 있을 것이기 때문에.
  나그네 길에 오르면 자기 영혼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며  지내고 있는지,
내 속 얼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행이 단순한 취미일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자기 정리의 엄숙한 도정이요,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하는 그러한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을 하직하는 연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현대문학, 1971. 9.)



  그 여름에 읽은 책

  가을을 독서의 계절로 못박아놓고들 있지만 사실 가을은 독서하기에 가장    부적당한 계절일 것
같다.  날씨가 너무 청청하기 때문이다.  엷어가는 수목의 그림자가 우리들을 먼 나그네 길로  자
꾸만 불러내기 때문이다.  푸르디푸른 하늘 아래서 책장이나  뒤적이고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고
리타분하다.  그것은 가을 날씨에 대한 실례다.
  그리고 독서의 계절이 따로 있어야  한다는 것도 우습다.  아무때고 읽으면  그때가 곧 독서의
계절이지.  여름엔 무더워서 바깥일을 할 수  없으니 책이나 읽는 것이다.  가벼운 속옷바람으로
돗자리를 내다 깔고 죽침이라도 있으면  제격일 것이다.  그러니까 수고롭게 찾아  나설 것 없이
출렁거리는 바다와 계곡이 흐르는 산을 내 곁으로 초대한다.
  8, 9년 전이던가, 해인사 소소산방에서    독송하면서 한여름 무더위를  잊은  채 지낸 적이 있다.

  그해 운허노사에게서 "화엄강"강을 듣다가 "십회향품"에  이르러 보살의 지극한 구도정신에 감
읍한 바 있었다.  언젠가 틈을 내어 "십화향품"만을 따로 정독하리라 마음먹었더니 그 여름에 시
절인연이 도래했던 것이다.
  조석으로 장경각에 올라가 업장을 참회하는 예배를  드리고 낮으로는 산방에서 독송을 했었다.
  산방이라지만 방 하나를 칸 막아 쓰니  협착했다.  서까래가 내다뵈는 조그만 들창과 드나드는
문이 하나밖에 없는 방, 그러니 여름이 아니라도 답답했다.  그래도 저 디오게네스의 통 속보다는
넓다고 자족했었다.  또 한 가지 고마운 것은 앞산이 내다보이는 전망이었다.  그것은 3백호쯤 되
는 화폭이었다.
  "화엄경"은 80권이나 되는 방대한 경전이다.  "십회향품"은 그 중 아홉  권으로 되어 있다.  한
여름 그 비좁은 방에서 가사와 장삼을 입고 단정히 앉아 향을 사르며 경을 펼쳤다.  먼저 개경게
를 왼다.  "더없이 심오한 이 법문/ 백천만겁에 만나기 어려운데/ 내가 이제  보고 듣고 외니/ 여
래의 참뜻을 바로 알아지이다." 경은 실차난타 한역의 목판본으로 읽었었다.   요즘은 한글대장경
으로 번역이 나와 있지만 그때는    번역이 없었다.    한글 번역이 있다  하더라도 표의문자가 주는
여운이며 목판본으로 읽는 그 유연한 맛은 비교될 수 없을    것이다.  더러는 목청을 돋구어 읽기
도 하고 한자 한자 짚어가며 목독하기도 했었다.
  비가 올 듯한 무더운 날에는 돌담밖에 정랑(변소)에서 역겨운 냄새가 풍겨왔다.  그런 때는  내
몸 안에도 자가용 변소가 있지 않느냐, 사람의 양심이 썩는 냄새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느냐, 이렇
게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았다.    일체가 유심소조니까.   저녁 공양 한 시간쯤 앞두고 자리에서
일어서면 가사 장삼에 땀이 흠뻑 배고 깔았던 방석이 축축히  젖어 있었다.    비로소 덥다는 분별
이 고개를 든다.  골짜기로 나가 훨훨 벗어버리고 시냇물에 잠긴다.  이내 더위가 가시고  심신이
날 듯이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이렇게 해서 그해 여름 "십회향품"을 10여 회  독송했는데 읽을수록 새롭고 절절했었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라면 그렇게 못 했을 것이다.  스스로 우러나서 한 일이라 환희로 충만할 수 있었
던 것이다.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다른 목소리를 통해 나 자신의  근원적인 음성을 듣는 일이 아닐까.
(동아일보, 1972.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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