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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스님의 무소유 - 2
眞虛性宗 2010-03-28 23:03:06, 조회 : 1,535, 추천 : 0
잊을 수 없는 사람

  수연 스님!  그는 정다운 도반이요, 선지식이었다.  자비가 무엇인가를 입으로  말하지 않고 몸
소 행동으로 보여준 그런 사람이었다.  길가에 무심히 피어 있는  이름 모를 풀꽃이 때로는 우리
의 발길을 멈추게 하듯이, 그는 사소한 일로써 나를 감동케 했던 것이다.
  수연 스님!  그는 말이 없었다.  항시 조용한 미소를 머금고 있을 뿐, 묻는 말에나 대답을 하였
다.  그러한 그를 15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아니 잊혀지지 않는 얼굴이다.
  1959년 겨울, 나는 지리산 쌍계사 탑전에서 혼자 안거를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준비래야
삼동 안거중에 먹을 식량과 땔나무, 그리고 약간의 김장이었다.  모시고 있던 은사 효봉선사가 그
해 겨울 네팔에서 열리는 세계 불교도 대회에 참석차 떠나셨기 때문에 나는    혼자서 지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음력 시월 초순 하동 악양이라는 농가에  가서 탁발을 했다.  한 닷해  한 걸로 겨울철 양식이
되기에는 넉넉했었다.  탁발을 끝내고 돌아오니 텅 비어 있어야 할 암자에 저녁 연기가 피어오르
고 있었다.
  걸망을 내려놓고 부엌으로 가보았다.  낯선 스님이 한 분 불을 지피고 있는 것이다.  나그네 스
님은 누덕누덕 기운 옷에 해맑은 얼굴, 조용한 미소를 머금고 합장을 했다.    그때 그와 나는 결연
이 되었던 것이다.  사람은 그렇게 순간적으로 맺어질 수 있는 모양이다.  피차가 출가한  사문이
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지리산으로 겨울을 나러 왔다는 그의 말을 듣고    나는 반가웠다.    혼자서 안거하기란 자유로울
것 같지만, 정진하는 데는 장애가 많다.  더구나 출가가 연천한 그때의 나로서는 혼자 지내다가는
잘못 게을러질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월 보름 동안거에 접어드는 결제일에 우리는 몇 가지 일을  두고 합의를 해야만 했었다.    그
는 모든 일을 내 뜻에 따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진하는 데는 주객이 있을 수 없다.  단둘이 지
내는 생활일지라도 둘의 뜻이 하나로 묶여야만 원만히 지낼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전혀 자기 뜻
을 세우지 않았다.  그대로 수순하겠다는 것이다.
  육신의 나이는 나보다 한 살 모자랐지만, 출가는 그가 한해 더 빨랐다.  그는 학교 교육은 많이
받은 것 같지 않았으나 천성이 차분한 인품이었다.   어디가 고향이며 어째서 출가했는지 서로가
묻지 않는 것이 승가의 예절임을 아는  우리들은 지나온 자취 같은 것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알 필요도 없는 것이다.
  다만 그 사람의 언행이나 억양으로 미루어 교양과 출신지를 짐작할 따름이다.  그는 나처럼 호
남 사투리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소화 기능이 안 좋은 것 같았다.
  나는 공양주(밥 짓는 소임)를 하고 그는 국과  찬을 만드는 채공을 보기로 했다.  국을 끊이고
찬을 만드는 그의 솜씨는 보통이 아니었다.  시원치 않은 감일지라도 그의 손을 거치면 감로미가
되었다.  나는 법당과 정랑의 청소를 하고 그는 큰방과 부엌을 맡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하루
한 끼만 먹고 참선만을 하기로 했었다.
  그때 우리는 초발심한 풋내기 사문들이라 계율에 대해서는 시퍼랬고 바깥일에  팔림이 없이 정
진만을 열심히 하려고 했다.
  그해 겨울 안거를 우리는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 뒤에  안 일이지만 아무런 장애 없이 순
일하게 안거를 보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듬해 정월 보름은 안거가 끝나는 해제일.  해제가 되면 함께  행각을 떠나 여기저기 절 구경
을 다니자고 우리는 그 해제절을 앞두고 마냥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해제 전날부터 나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 찬물로 목욕한 여독인가 했더
니, 열이 오르고 구미가 뚝  끊어졌다.  그리고 자꾸만 오한이 드는  것이었다.  해제는 되었어도
길을 떠날 수가 없었다.
  산에서 앓으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사문은 성할 때도 늘 혼자지만 앓게 되면 그런 사실이 구
체적으로 감촉된다.  약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까이에 의료기관도 없다.  그저 앓을만큼 앓다가
낫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철저하게 무소유였다.  밤이면 헛소리를 친다는 내  머
리맡에서 그는 줄곧 앉아 있었다.  목이 마르다고 하면 물을 끓여 오고, 이마에 찬 물수건을 갈아
주느라고 자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그는 잠깐 아랫  마을에 다녀오겠다고 나가더니 한낮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해가 기울어도 감감 소식이었다.  쑤어둔 죽을 저녁까지 먹었다.  나는 몹시 궁금했다.
  밤 열 시 가까이 되어 부엌에서 인기척이 났다.    그새 나는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가 방문
을 열고 들어올 때 그의 손에는 약사발이 들려 있었다.  너무 늦었다고 하면서 약을 마시라는 것
이다.  이때의 일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의 헌신적인 정성에 나는 어린애처럼 울어버리고 말
았다.  그때 그는 말없이 내 손을 꼬옥 쥐어주었다.
  암자에서 가장 가까운 약국이래야 40여리밖에 있는  구례읍이다.    그 무렵의 교통수단이라고는
구례장날에만 장꾼을 싣고 다니는 트럭이 있었을  뿐.  그러니까 그날은 장날도 아니었다.  그는
장장 80리 길을 걸어서 다녀온 것이다.
  서로가 돈 한푼 없는 처지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구례까지 걸어가 탁발을 하였으리라.  그 돈
으로 약을 지어온 것이다.  머나먼 밤길을 걸어와 약을 달였던 것이다.
  자비가 무엇인가를 나는 평생 처음 온 심신으로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도반의 정
이 어떤 것인지도 비로소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토록 간절한 정성에 낫지 않을 병이 어디
있을까.  다리가 좀 휘청거리긴 했지만, 그 다음날로 나는 기동하게 되었다.
  그때 우리가 거처하던 암자에서 5리 남짓 깊숙이 올라가면 폭포 곁에 토굴을 짓고 참선하는 노
장스님 한 분이 계셨다.    노장님이 무순 볼일로 동구밖에 다녀올라치면 으레 우리들 처소에 들르
곤 했다.  그때마다 노장님이 메고 온 걸망은 노장님보다 먼저 토굴에 가 있었다.  그가 아무말도
없이 져다주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렇듯 무슨 일이고 그가 할  만한 일이면 말없이 선뜻 해버리
는 것이었다.
  한동안 우리는 만나지 못한 채 각기 운수의 길을 걸었었다.   서신 왕래마저 없으니 어디서 지
내는지 소로가 알 길이 없었다.  운수들 사이는 무소식이 희소식으로 통했다.
  세상에서 보면 어떻게 그리 무심할 수 있느냐 하겠지만, 서로가 공부하는 데 방해를 끼치지 않
도록 배려하고 있는 것이다.
  인정이 많으면 도심이 성글다는 옛 선사들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집착은 우리를 부자유하게
만든다.  해탈이란 고로부터 벗어난 자유자재의 경지를 말한다.  그런데 그 고의 원인은 다른  데
있지 않고 집착에 있는 것이다.  물건에  대한 집착보다도 인정에 대한 집착은  몇 곱절 더 질긴
것이다.  출가는 그러한 집착의 집에서 떠남을 뜻한다.  그러기 때문에 출가한 사문들은 어느모로
보면 비정하리만큼 금속성에 가깝다.
  그러나 그러한 냉기는 어디까지나 긍정의 열기로 향하는 부정의 기류다.  긍정의 지평에 선 보
살의 자비는 봄볕처럼 따사로운 것이다.
  내가 해인사로 들어가 퇴설선원에서 안거하던 여름, 들려오는 풍문에 그는 오대산.  상원사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여름 살림이 끝나면 그를 찾아가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더니, 그가 먼저
나를 찾아왔었다.  지리산에서 헤어진 뒤 다시 만나게 된 우리는 서로 반기었다.  그는 예의 조용
한 미소를 머금고 내 손을 꼬옥 쥐었다.    함께 있을 때보다 안색이 못했다.  앓았느냐고 물으니
소화가 잘 안 된다고 했다.  그럼 약을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 했더니 괜찮다고 했다.   그가 퇴설
당에 온 후로 섬돌 위에는 전에 없이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여남은 켤레되는 고무신이 한결같
이 하얗게 닦이어 가지런히 놓여 있곤 했었다.  물론 그의 밀행이었다.
  스님들이 빨려고 옷가지를 벗어놓으면 어느새 말끔히 빨아 풀먹여 다려놓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를 보고 스님들은 "자비보살"이라 불렀다.
  그는 공양을 형편없이 적게 하였다.  물론 이제는 우리도 삼시 세 끼를 스님들과 함께 먹고 지
냈었다.  한날 나는 사무실에 말하고 그를 억지로 데리고 대구로 나갔었다.
  아무래도 그의 소화기가 심상치 않았다.  진찰을 받고 약을 써야 할 것 같았다.
  버스 안에서였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주머니 칼을 꺼내더니  창틀에서 빠지려는 나사못 두 개
를 죄어놓았다.    무심히 보고 있던 나는 속으로 감동했다.    그는 이렇듯 사소한 일로 나를 흔들어
놓는 것이다.  그는 내 것이네 남의 것이네 하는 분별이 없는 것 같았다.  어쩌면 모든 것을 자기
것이라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기 때문은 사실은  하나도 자기 소유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그는 실로 이 세상의 주인이 될 만한 사람이었다.
  그해 겨울 우리는 해인사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의 건강을 걱정한 스님들은 그를 자유롭
게 지내도록 딴 방을 쓰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대중과 똑같이 큰방에서 정진하고  울력(작업)에
도 빠지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반 살림(안거 기간의 절반)이 지날 무렵 해서 그는 더 버틸 수가 없도록 약해졌다.
   치료를 위해서는 산중보다 시처가  편리하다.    진주에 있는  포교당으로 그를 데리고 갔었다.

거기에 묵으면서 치료를 받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사흘이    지나자 그는 나더러 살림중이니 어서
돌아가라고 했다.  그의 병세가 많이 회복된 것을 보니 친분이  있는 포교당 주지스님과 신도 한
분에게 간호를 부탁했다.  그가 하도 나를 걱정하는 바람에 나는 일주일 만에 귀사하고 말았다.
  두고 온 그가 마음에 걸렸었다.  전해오는 소식에는 많은 차도가 있다고 했지만.  그 겨울 가야
산에은 눈이 많이 내렸었다.  한 주일 남짓 교통이 두절될 만큼 내려 쌓였었다.  밤이면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나무 넘어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눈에 꺽인 것이다.
  그 고집스럽고 정정한 소나무들이 한 송이 두  송이 쌓이는 눈의 무게에 못 이겨  꺾이고 마는
것이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덕 않던 나무들이 부드러운 것 앞에 꺾이는 묘리를 산에서는  역력히 볼 수
있었다.
  꺾여진 나무를 져 들이다가 나는 바른쪽 손목을 삐고 말았다.  한동안 침을 맞는 둥 애를 먹었
었다.  한날 나는 조그만 소포를 하나 받았었다.  펼쳐보니 파스가 들어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가 사 보낸 것이다.    말이 없는 그는 사연도 띄우지 않은 채였다.
  나는 슬픈 그의 최후를 되새기고 싶지 않다.  그가 떠난 뒤 분명히 그는 나의 한 분신이었음을
알 것 같았다.
  함께 있던 날짜는 일년도 못 되지만 그는 많은 가르침을 남겨주고 갔다.  그  어떤 선사보다도,
다문이 경사보다도 내게는 진정한 도반이요, 밝은 선지식이었다.
  구도의 길에서 "안다"는 것은 "행"에 비할 때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  사람이  타인에게 영
향을 끼치는 것은 지식이나 말에 의해서가 아님을 그는 깨우쳐  주었다.  맑은 시선과 조용한 미
소의 따뜻한 손과 그리고 말이 없는 행동에  의해서 혼과 혼이 마주치는 것임을 그는  몸소 보인
것이다.
  수연! 그 이름처럼 그는 자기 둘레를 항상 맑게 씻어주었다.  평상심이 진리임을 행동으로 보였
다.  그가 성내는 일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는 한 말로해서 자비의 화신이었다.
  그를 생각할 때마다 사람은 오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신동아, 1970. 4.)


  미리쓰는 유서

  죽게 되면 말없이 죽을 것이지 무슨 구구한 이유가 따를 것인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지레 죽
는 사람이라면 의견서(유서)라도 첨부되어야겠지만, 제 명대로 살 만치 살다가  가는 사람에겐 그
변명이 소용될 것 같지 않다.  그리고 말이란 늘 오해를 동반하게 마련이므로.
  그런데 죽음은 어느 때 나늘 찾아올는지 알 수 없는 일.    그 많은 교통사고와 가스중독과 그리
고 증오의 눈길이 전생이 갚음으로라도 나를 쏠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걸음 한걸음 죽어오고 있다는 것임을 상기할 때, 사는 일은  곧 죽는 일이며,
생과 사는 결코 절연된 것이 아니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내 이름을 부를지라도 "네"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유서는 남기는 글이기보다 지금 살고 있는 "생의 백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육신으로서는 일회적일 수밖에 없는 죽음을 당해서도 실제로는 유서 같은 걸  남길 만한 처지
가 못 되기 때문에 편집자의 청탁에 산책하는 기분으로 따라 나선 것이다.
  누구를 부를까(유서에는 흔히 누구를 부르던데)?
  아무도 없다.    철저하게 혼자였으니까.    설사 지금껏 귀위해 섬겨온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그는
결국 타인.  이 세상에 올 때에도 혼자서 왔고 갈 때에도 나 혼자서 갈 수 밖에 없으니까.  내 그
림자만을 이끌고 휘적휘적 일상의 지평을 걸어왔고 또 그렇게 걸어갈 테니 부를  만한 이웃이 이
웃이 있을 리 없다.  물론 오늘까지도 나는 멀고 가까운 이웃들과 상의상관하며 살고 있다.  또한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생명 자체는  어디까지나 개별적인 것이므로 인간은 저
마다 혼자일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은 보랏빛 노을 같은  감상이 아니라 인간의 당당하고 본질적
인 실존인 것이다.
  고뇌를 뚫고 환희의 세계로 지향한 베토벤의 음성을  빌리지 않더라도, 나는 인간의 선의지 이
것밖에는 인간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온갖  모순과 갈등과 증오와 살육으로 뒤범벅이
된 이 어두운 인간의 촌락에 오늘도 해가 떠오르는 것은 오로지 그 선의지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내가 할 일은 먼저 인간의 선의지를 저버린 일에 대한 참회다.
  이웃의 선의지에 대해서 내가 어리석은    탓으로 저지른 허물을 참회하지 않고는  눈을 감을 수
없을 것 같다.
  때로는 큰 허물보다 작은 허물이 우리를 괴롭힐 때가 있다.  허물이란 너무 크면 그 무게에 짓
눌려 참괴의 눈이 멀어버리고 작을 때에만 기억에 남는 것인가.  어쩌면 그것은 지독한 위선일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평생을 두고 그 한 가지 일로  해서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자책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문득문득 나를 부끄럽고 괴롭게 채찍질했다.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동무들과 어울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서였다.    엿장수가  엿판을 내
려놓고 땀을 들이고 있었다.  그 엿장수는 교문 밖에서도 가끔  볼 수 있으리만큼 낯익은 사람인
데 그는 팔 하나가 없고 말을 더듬는 불구자였다.    대여섯 된 우리는 그 엿장수를 둘러싸고 엿가
락을 고르는 척하면서 적지않은 엿을 슬쩍슬쩍 빼돌렸다.  돈은 서너 가락치밖에  내지 않았었다.
  불구인 그는 그런 영문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일이, 돌이킬 수 없는 이 일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그가 만약 넉살  좋고 건강한 엿장수였
더라면 나는 벌써 그런일을 잊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반병신이었다는 점에서 지
워지지 않는 채 자책은 더욱 생생한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지은 허물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중에는 용서받기 어려운 허물도
적지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그때 저지른 그 허물이 줄곧 그림자처럼 나를 쫓고 있는 것이다.  이 다
음 세상에서는 다시는 더 이런 후회스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빌며  참회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살아 생전에 받았던 배신이나 모함도 그때 한 인간의 순박한 선의지를 저버린 과
보라 생각하면 능히 견딜 만한 것이었다.
  "날카로운 면도날은 밟고 가기 어렵나니, 현자가 이르기를 구원을 얻는 길 또한 이같이 어려우
니라." (우파니샤드)의 이 말씀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
  내가 죽을 때에는 가진 것이 없을 것이므로 무엇을 누구에게 전한다는 번거로운  일도 없을 것
이다.  본래무일물은 우리들 사문의 소유관념이니까.  그래도 혹시 평생에 즐겨 읽던 동화책이 내
머리맡에 몇 권 남는다면, 아침 저녁으로 "신문이오"하고 나를 찾아주는 그 꼬마에게 주고 싶다.
  장례식이나 제사 같은 것은 아예 소용없는 일.  요즘은 중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한술 더 떠 거
창한 장례를 치르고 있는데, 그토록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이 만약 내 이름으로 행해진다
면 나를 위로하기는커녕 몹시 화나게 할 것이다.  평소의 식탁처럼 간단명료한 것을 즐기는 성미
니까.  내게 무덤이라도 있게 된다면 그 차가운 빗돌 대신 어느 여름날 아침부터 좋아하게 된 양
귀비꽃이나 모란을 심어 달라 하겠지만, 무덤도 없을 테니 그런 수고는 끼치지 않을 것이다.
  생명의 기능이 나가버린 육신은 보기 흉하고 이웃에게 짐이 될 것이므로 조금도  지체할 것 없
이 없애주었으면 고맙겠다.  그것은 내가 벗어버린 헌옷이니까.  물론 옮기기 편리하고  이웃에게
방해되지 않을 곳이라면 아무데서나 다비(화장)해도 무방하다.  사리같은 걸 남기어 이웃을  귀찮
게 하는 일을 나는 절대로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꼭 한군데  있다.  "어린왕자"가 사는 별나라.
  의자의 위치만 옮겨 놓으면 하루에도 해지는  광경을 몇 번이고 볼 수 있다는  아주 조그만 그
별나라.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안  왕자는 지금쯤 장미와 사이좋게 지
내고 있을까.  그 나라에는 귀찮은 입구사증 같은 것도 필요없을 것이므로 가보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내 생에도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고 싶다.  누가 뭐라  한대도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
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다시 출가 사문이 되어    금생에 못다 한 일들 하고 싶은 것이
다.(여성동아, 1971. 3.)


  인형과 인간

  내 생각의 실마리는 흔히 버스 안에서 이루어진다.  출퇴근 시간의 붐비는 시내버스 안에서 나
는 삶의 밀도 같은 것을 실감한다.  선실이나 나무 그늘에서  하는 사색은 한적하긴 하지만 어떤
고정관념에 갇혀 공허하거나 무기력해지기 쉬운데    달리는 버스 안에서는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종점을 향해 계속해서 달리고 있는 버스는 그 안에 실려가는 우리들에게 인생의 의미를 적잖게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산다는 일이 일종의 연소요, 자기 소모라는 표현에 공감이 간다.  그리고
함께 타고 가는 사람들의 그 선량한 눈매들이, 저마다 무슨 생각에 잠겨 무심히 창밖을 내다보는,
그래서 조금은 외롭게 보이는 그 눈매들이 나 자신을 맑게 비추고 있는 것이다.  그 눈매들은 연
대감을 갖게 한다.  이 시대와 사회에서 기쁨과 아픔을 함께하고 있다는 그러한 연대감을.
  나는 얼마 전부터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택시를 타지  않는다.  탈 줄을 몰라서가 아니라
타고 싶지가 않아서다.  주머니 실력도 실력이지만, 제멋대로 우쭐대는 물가의 그 콧대에 내 나름
으로 저항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이유는 택시 안에서는  연대감을 느낄 수
없다는 점에 있다.  돈을 더 내면 편하고 신속하게 나를 운반해 주겠지만, 그때마다    이웃과의 단
절을 번번이 느끼게 된다.
  붐비는 차 속에서 더러는 구둣발에 밟히기도 하고 저고리의 옷고름이 타지는 수도 있지만 그런
데에서 도리어 생명의 활기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어 견딜 만한 것이다.
  그리고 버스를 타면 운전사와 승객 사이의 관계를 통해 새삼스레 공동운명체를 헤아리게 된다.
  그가 딴전을 부린다거라 운전을  위태롭게 한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우리 모두의 것.  그러기
때문에 그의 기술과 노고를 인정하면서도 차를 제대로  몰고 가는지, 당초의 약속대로 노선을 지
키면서 가는지에도 무관심할 수 없는 것이다.  머리  위에서 고래고래 뿜어대는 유행가와 우습지
도 않은 만담이 우리를 몹시 피곤하게 하지만 운전사와 차장이 좋아하는 것일 테니 참고 견딜 수
밖에 없다.  끝없는 인내는 다스림을 받는 우리 소시민들의 차지니까.
  사람을 흙으로 빚었다는 종교적인 신화는 여러 가지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법하다.  고대 인
도인들도 우리들 신체의 구성요소로 흙과    물과 불과 바람을 들고  있는데, 쇠붙이나 플라스틱을
쓰지 않고 흙으로 만들었다는 데에는 그만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대지는 영원한 모성.    흙에서 음식물을 길러내고 그 위에다 집을 짓는다.  그 위를 직
립 보행하면서 인생의 생태.  그리고 흙은 우리들 생명의 젖줄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씨앗을 뿌리면 움이 트고 잎과 가지가 펼쳐져 거기 꽃과 열매가 맺힌다.  생명의 발
아 현상을 통해 불가시적인 영역에도 눈을 뜨게 한다.  그러기  때문에 흙을 가까이하면 자연 흙
의 덕을 배워 순박하고 겸허해지며, 믿고 기다릴 줄을 안다.  흙에는 거짓이 없고  무질서도 있을
수 없다.
  시멘트와 철근과 아스팔트에서는 생명이 움틀 수 없다.
  비가 내리는 자연의 소리마저 도시는 거부한다.    그러나 흙은 비를, 그 소리를 받아들인다.  흙
에 내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우리들 마음은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정결해지고 평온해진다.

어디 그뿐인가.  구두와 양말을 벗어버리고 일구어놓은 밭흙을 맨발로 감촉해보라.    그리고 흙냄
새를 맡아보라.    그것은 약동하는 생의 기쁨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잘살겠다는 구실 아래    산업화와 도시화로 치닫고 있는 오늘의  문명은 자꾸만
흙을 멀리하려는 데에 모순이 있는 것이다.  생명의 원천인 대지를 멀리하면서,  곡식을 만들어내
는 어진 농사꾼을 짓밟으면서 어떻게 잘살수 있을 것인가.    산다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상.    따라서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느냐에 의해 삶의 양상은    여러 가지로 달라질
것이다.
  요즘의 식량난은 심상치 않은 일 같다.    그것이 세계적인 현상이고, 그 전망은 결코 밝을 수 없
다고들 한다.  그 까닭을 늘어나는 인구에다만 돌려버릴 성질의 것은 아니다.  흙을 멀리한  과보
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흙으로 빚어진 인간에게 인간의  실상이 무엇인가를 경고하는 소식은 아
닐까.  어쩌면 다행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눈먼 인류에게, 흙을  저버린 우리들에게 흙의 은혜를
거듭 인식케 할 계기가 된다면.
  현대인들은 이전 사람들에 비해서 아는 것이 참 많다.  자기 전공 분야가 아니라도  신문, 잡지
와 방송 등의 대량 매체를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똑똑하고 영리하기만    하다.  이해
와 타산에 민감하고 겉과 속이 같지 않다.  매사에 약삭빠를  뿐 아니라 성급하고 참을성이 모자
라는 현대인들에게서 끈기나 저력 혹은 신의 같은 것은 아예 기대할 수 없다.  물결에 씻긴 조약
돌처럼 닳아질 대로 닳아져 매끈거린다.
  한 선사의 논 치던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이 결코 무연하지 않은 것임을 알
수 있다.  혜월선사는 절 곁에 논을 쳤다.  쓸모없이 버려진  땅을 보고 논을 만들었으면 싶었다.
  때마침 흉년이 들어 동구  사람들이 살기가 어렵게 된 것을   보고 그들을 불ㄹ다 일을 시킨다.

한 달 두 달이 걸려서도 논은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는다.    보는 사람마다  그 노임으로 더 많은
논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만류하지만 끝내 굽히지 않는다.   마침내 그는 미친 노장이라고 비웃
게 된다.
  선사는 못 들은 체 날이 새면 일터에 나가 일꾼들과 어울려  일을 한다.  이와 같이 해서 몇백
평의 논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거기에 든 노임은 이루어진 논의 시세보다 몇 곱    더들어갔다.  그러나 선사는 없던 논
이 새로 생긴 것을 기뻐했다.
  그는 세속적인 눈으로 볼 때 분명히 산술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어리석음
으로 해서 흉년에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다.   그와 같은 사연이 깃들인 논이므로
절에서는 그 논을 단순한 땅마지기로서가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사풍의 상징처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한결같이 약고 닳아빠진 세상이기 때문에 그토록 어리석고 우직스런 일이    우리를 포근하게 감
싸주는 것이다.    대우는 대지에 통한다는 말이 결코 빈말은 아닐 것 같다.
  어떤 종파를 가릴 것 없이, 오늘날 종교가 종교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요인은 한
마디로 말하기 어렵도록 복합성을 띠고 있다.
  지나간 성인들의 가르침은 하나같이 간단하고 명료했다.
  들으면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학자(이 안에는 물론 신학자도 포함
되어야 한다)라는 사람들이 튀어나와 불필요한 접속사와 수식어로써  말의 갈래를 쪼개고 나누어
명료한 진리를 어렵게 만들어버렸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자기 자신의 문제는 묻어
둔 채, 이미 묻어버린 말의 찌꺼기를 가지고 시시콜콜하게 뒤적거리며 이러쿵저러쿵 따지려 든다.
생동하던 언행은 이렇게 해서 지식의 울 안에 갇히고 만다.
  이와 같은 학문이나 지식을 나는 신용하고 싶지 않다.  현대인들은  자기 행돈은 없이 남의 흉
내만을 내면서 살려는데에 맹점이 있는 것이다.  사색이 따르지 않는 지식을, 행동이 없는 지식인
을 어디에다 쓸 것인가.    아무리 바닥이 드러난 세상이기로, 진리를 사랑하고 실현해야 할 지식인
들까지 곡학아세나 비겁한 침묵으로써 처신하려 드니, 그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배반인 것이다.
  얼마만큼 많이 알고 있느냐는 것은 대단한 일이 못 된다.   아는 것을 어떻게 살리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인간의 탈을 쓴 인형은 많아도 인간다운 인간이  적은 현실 앞에서 지식인이 할
일은 무엇일까.    먼저 무기력하고 나약하기만한 그 인형의    집에서 나오지 않고서는 어떠한 사명
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무학이란 말이 있다.  전혀 배움이 없거나 배우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학문에 대한 무용론
도 아니다.  많이 배웠으면서도 배운 자취가 없는 것을 가리킴이다.  학문이나 지식을 코에  걸지
않고 지식 과잉에서 오는 관념성을 경계한 뜻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지식이나 정보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롭고 발랄한 삶이 소중하다는 말이다.  여러 가지 지식에서 추출된 진리에 대한 신념이
일상화되지 않고서는 지식 본래의 기능을 다할 수 없다.  지식이  인격과 단절될 때 그 지식인은
사이비요 위선자가 되고 만다.
  책임을 질 줄 아는 것은 인간뿐이다.  이 시대의 실상을    모른 체하려는 무관심은 비겁한 회피
요, 일종의 범죄다.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나누어 짊어진다는 뜻.    우리에게는 우리 이웃의 기쁨
과 아픔에 대해서 나누어 가질 책임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인형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인간
이다.  우리는 끌려가는 짐승이 아니라 신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야 할 인간인 것이다.
(현대인, 1974. 7.)


  녹은 그 쇠를 먹는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사람의 마음처럼 불가사의한
것이 또 있을까.  너그러울 때에는 온 세상을 두루 받아들이다가도, 한 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꽃을 자리가 없는 것이 이 마음이니까.  그래서 가수들은 오늘도 "내 마음 나도 몰라......."라고 우
리 마음을 대변한다.  자기 마음을 자신이 모르다니,  어떻게 보면 무책임한 소리 같다.  하지만,
이것은 평범하면서도 틀림이 없는 진리다.
  사람들은 일터에서 많은 사람들을 대하게 된다.    어떤  사람과는 눈길만 마주쳐도 그날의 보람
을 느끼게 되고, 어떤 사람은 그림자만  보아도 밥맛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한정된  직장에서
대인관계처럼 중요한 몲은 없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정든 직장을 그만두게  될 경우, 그 원인
중에 얼마쯤은 바로 이 대인관계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어째서 똑같은 사람인데 어느 놈은  곱고 어느 놈은 미울까.  종교적인  측면에서 보면 전생에
얽힌 사연들이 조명되어야 하겠지만, 상식의 세계에서  보더라도 무언가 그럴만한 꼬투리가 있을
것이다.  원인 없는 결과란 없는 법이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직장이 "외나무 다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우선 같은 일터에서 만나게 된 인
연에 감사를 느껴야 할 것 같다.    이 세상에는 삼십 몇 억이나 되는 엄청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 중에도 동양, 또 그 속에서도 5천만이 넘는 한반도, 다시 분단된 남쪽, 서울만 하더라도 6백
만이 넘는 사람들 가운데서 같은    직장에 몸담아 있다는 것은 정말    아슬아슬한 비율이다.  이런
내력을 생각할 때 우선 만났다는 인연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아니꼬운 일이 있더라도 내 마음을  내 스스로가 돌이킬 수밖에 없다.   남을 미워하면 저쪽이
미워지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미워지니까.  아니꼬운 생각이나 미운 생각을  지니고 살아간다면,
그 피해자는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아버린다면 내 인생 자
체가 얼룩지고 만다.
  그러기 때문에 대인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인생을  배우고 나 자신을 닦는다.  회심, 즉  마음을
돌이키는 일로써 내 인생의 의미를 심화시키는 것이다.  맺힌 것은 언젠가 풀지 않으면  안 된다.
금생에 풀리지 않으면 그 언제까지 지속될 지 알 수 없는 일.  그러니 직장은 그 좋은 기회일 뿐
아니라 친화력을 기르는 터전일 수 있다.    일(직무)의 위대성은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결합시키는
점일 것이다.  일을 통해서 우리는 맺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미워하는 것도 내 마음이고, 고와
하는 것도 내 마음에 달린 것이다.
  "화엄경"에서 일체유심조라고 한 것도 바로 이 뜻이다.
  그 어떠한 수도나 수양이라 할지라도 이 마음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마음이 모든
일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법구경"에는 이런 비유도 나온다.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인데 점점
그 쇠를 먹어버린다." 이와 같이 이 마음씨가 그늘지면 그 사람 자신이 녹슬고 만다는 뜻이다.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되려면, 내 마음을 내가  쓸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니고 일상적인 대인 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왜 우리가 서로 증오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같은 배에 실려 같은 방향으로 항해하는 나그네들인데..........(마음, 1973. 7.)

  영달한 산

산에서 사는 살람들이 산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있다면, 속 모르는 남들을 웃을지  모르겠다.  하
지만 산승들은 누구보다도 산으로 내닫는 진한 향수를 지닌다.  이  산에 살면서 지나온 저 산을
그리거나 말만 듣고 아직 가보지 못한 그 산을 생각하는 것이다.
  사전에서는 산을 "육지의 표면이 주위의 땅보다 훨씬 높이 솟은 부분"이라고 풀이한다.  이러한
산의 개념을 보고 우리는 미소를 짓는다.  그것은  형식논리학의 답안지에나 씀직한 표정이 없는
추상적인 산이기 때문.
  산에는 높이 솟은 봉우리만이 아니라 깊은 골짜기도 있다.  나무와 바위와 시냇물과 온갖 새들
이며 짐승, 안개, 구름, 바람, 산울림 그리고 퇴락해가는 고사, 이 밖에도 무수한 것들이 우리들의
상념과 한데 어울려 하나의 산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산이 좋아 산에서 산다는 말이 있지만 그건 거짓이 아니다.  산이 싫어지면 산에서 살 수가 없
다.  그러니 한 번 산에 들어 살게 되면 그 산을 선뜻 떠나올 수 없는 애착이 생긴다.
  산은 사철을 두고 늘 새롭다.  그 중에도 여름이 지나간  가을철 산은 영원한 머시마인 우리들
을 설레게 한다.  물든 잎이, 머루와 다래와 으름이 숲에서 손짓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일과가 끝
나는 가을날 오후에는 선원이고 강원이고 절 안이 텅 빈다.   다들 숲에 들어가 산짐승처럼 덩굴
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우수수 꿀밤이 떨어진다.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뭐라 지껄이는 소리들이  귀에 익은 음성처럼
그토록 정답게 들려올 수가 없다.  이런 일들로 해서 산에서 사는 사람들한테서는 풋풋한 냄새가
난다.
  예전 수도승들은 살던 산이 단조로워지면 도반들 곁을 떠나 더욱 깊은 산을 찾아 홀로 나섰다.
  벼랑아래 삼간 초막을 짓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자연을 벗삼아 도심을 닦았다.

  흰구름 무더기 속에 삼간 초막이 있어
  앉고 눕고 거닐기에 저절로 한가롭다
  차가운 시냇물은 반야를 노래하고
  맑은 바람 달과 어울려 온몸에 차다.

  이런 경지에 고려말 나옹선사뿐 아니라 산을 알고 도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출
세간의 멋이다.  깊은 산이라 온종일 사람 그림자 끊이고 홀로  초막에 앉아 만사를 쉬어버린 것
이다.  서너 자 높이의 홀로 초막에 앉아 만사를 쉬어버린 것이다.  서너 자 높이의  사립을 반쯤
밀어 닫아두고, 고단하면 자고 주리면 먹으면서 시름없이  지내는 것은 단순한 은둔을 즐기기 위
해서가 아니었다.  시절인연이 오면 사자후를 토하기 위한 침묵의 수업인 것이다.
  숲과 새들이 있고 감로천이며 연못이 있는 우리 다래헌이지만 무더운  여름날이면 문득문득 산
생각이 안다.  그때마다 시냇물 소리를 그리워하며 속으로 앓는다.  훌쩍 찾아갈 산이 없어  날개
가 접히고 만다.  요즘의 산사에서는 그 풋풋한 산 냄새를 맡을 수가 없다.  관광 한국의 깃발 아
래 그 그윽한 분위기가 사라져가고 있다.
  이래서 뜻있는 수도승들은 명산 대찰을 등지고 이름없는  산야에 묻힌다.  도시의 공해로 인해
새들이 어디론가 사라져가듯.
  안타까운 일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동아일보, 1973. 7. 26.)



  침묵의 의미

  현대는 말이 참 많은 시대다.  먹고 뺀어내는 것이 입의 기능이긴 하지만, 오늘의  입은 불필요
한 말들을 빼어내느라고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수고를 하는  것 같다.  이전에는 사람끼리 마주
보며 말을 나누었는데, 전자매체인가 하는 게 나오면서부터는 혼자서도 얼마든지 지껄일 수 있게
되었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는 유언비어나 긴급조치에 위배만 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다
스리는 사람들의 정책에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그 말의 내용이 아첨이건 거짓이건 혹은 협박이건
욕지거리건간에 마음대로 지껄일 수 있다.  가위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풍토인 것이다.
   그런데 말이 많으면 쓸 말이 별로 없다는 것이 우리들의 경험이다.  하루하루 나 자신의 입에
서 토해지는 말을 홀로 있는 시간에 달아보면 대부분 하잘것없는 소음인 것이다.
  사람이 해야 할 말이란 꼭 필요한 말이거나 "참말"이어야 할  텐데 불필요한 말과 거짓말이 태
반인 것을 보면 우울하다.  시시한 말을  하고 나면 내 안에 있는  빛이 조금씩 새어 나가버리는
것 같아 말끝이 늘 허전해진다.
  좋은 친구란 무엇으로 알아볼 수 있을까를 가끔 생각해보는데, 첫째 같이 있는 시간에 대한 의
식으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같이 있는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면 아닐 것이고,  벌써 이렇게 됐
어? 할 정도로 같이 있는 시간이 빨리 흐른다면 그는  정다운 사이일 것이다.  왜냐하면 좋은 친
구하고는 시간과 공간 밖에서 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기도를 올려보면  더욱 잘 알 수  있다.
기도가 순일하게 잘될 경우는 시공안에서 살고 있는 일상의 우리이지만 분명히 시공밖에 있게 되
고, 그렇지 못할 때는 자꾸 시간을 의식하게 된다.  시간과 공간을 의식하게 되면  그건 허울뿐인
기도인 것이다.
  우리는 또 무엇으로 친구를 알아볼 수 있을까.  그렇다, 말이 없어도 지루하거나 따분하지 않은
그런 사이는 좋은 친구일 것이다.  입 벌려 소지 내지 않더라도 넉넉하고 정결한 뜰을 서로가 넘
나들 수 있는 것이다.  소리를 입밖에 내지 않을 뿐, 구슬처럼 영롱한 말이 침묵 속에서 끊임없이
오고 간다.  그런 경지에는 시간과 공간이 미칠 수 없다.
  말이란 늘 오해를 동반하게 된다.   똑같은 개념을 지닌 말을 가지고도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
것은 서로가 말 뒤에 숨은 뜻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들이 아가의 서투른 말을 이내 알아
들을 수 있는 것은 말소리보다 뜻에 귀기울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사랑은 침묵 속에서 이
루어진다.
  사실 침묵을 배경삼지 않는 말은  소음이나 다를 게 없다.  생각없이  불쑥불쑥 함부로 내뱉는
말을 주워보면 우리는 말과 소음의 한계를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들의 입에서 토해지는 말씨
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자꾸만 거칠고 야비해져가는 현상은 그만큼 내면이 헐벗고 있다는 증거
일 것이다.  안으로 침묵의 조명을 받고 있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성급한 현대인들은 자기 언어를 쓸  줄 모른다.  정치 권력자들이, 탤런트들이,  가수가,
코미디언이 토해버린 말을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대로 주워서 흉내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골
이 비어간다.  자기 사유마저 앗기고 있다.
  수도자들에게 과묵이나 침국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것도 바로 그 점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묵상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안에 고여있는 말씀을 비로소 듣는다.
  내면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는 미처 편집되지 않은 성서인 것이다.  우리들이 성서를 읽는 본질
적인 의미는 아직 활자화되어 있지 않은 그 말씀까지도 능히 알아듣고 그와  같이 살기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아유일권경
  불인지묵성
  전개무일자
  상방대광명

  사람마다 한 권의 경전이 있는데
  그것은 종이나 활자로 된 게 아니다
  펼쳐보아도 한 글자 없지만
  항상 환한 빛을 발하고 있네

  불경에 있는 말이다.  일상의 우리들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에 잡히는 것으로써만 어떤
사물을 인식하려고 한다.  그러나 실상은 저 침묵처럼 보이지도 들리지도 잡히지도 않는 데에 있
는 것이다.  일체의 자기중심적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허심탄회한 그 마음에서 대광명이 발해진
다는 말이다.
  참선을 하는 선원에서는 선실 안팎에 "묵언"이라고 쓴 표지가 붙어있다.  말을 말자는 것. 말을
하게 되면 서로가 정진에 방해되기 때문이다.  집단생활을 하다보면 때로는 시의 비를 가리는 일
이 있다.
  시비를 따지다 보면 집중을 할 수 없다.  선은 순수한 집중인 동시에 철저한 자기 응시인 것이
다.  모든 시비와 분별망상을 떠나서만 삼매의 경지에 들게 된다.
와 분별망상을 떠나서만 삼매의 경지에 들게 된다.
  말은 의사소통의 구실을 하지만 때로는 불필요한 잡음의  역기능도 동시에 하고 있다.  구시화
문, 입을 가리켜 재앙의 문이라고 한 것도 그 역기능 면을 지적한 것이다.  어떤  선승들은 3년이
고 10년이고 계속해서 묵언을 지키고 있다.  그가 묵언 중일  때는 대중에서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수도자들이 이와 같이 침묵하는 것은 침묵 그 자체에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다.  침묵이라는 여
과과정을 거쳐 오로지 "참말"만을 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침묵의 조명을 통해서 당당한 말을 하
기 위해서인 것이다.  벙어리와 묵언자가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칼릴 지브란은 우리들이 해야 할 말은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귓속의 귀에"하는 말이라고 했다.
  사실 언어의 극치는 말보다도 침묵에 있을 것 같다.  너무 감격스러울 때  우리는 말을 잃는다.
  그러나 사람인 우리는 할말은 해야 한다.
  그런데 마땅히 입 벌려 말을  해야 할 경우에도 침묵만을 고수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미덕이 아니라 비겁한 회피인 것이다.  그와 같은 침묵은 때로 범죄의 성질을 띤다.  옳고 그름을
가려 보여야 할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침묵은 비겁한 침묵인  것이다.  비겁한 침묵이 우리 시대
를 얼룩지게 한다.
  침묵의 의미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 대신 당당하고 참된 말을 하기 위해서인지. 비겁한 침
묵을 고수하기 위해서가 아닌 것이다.  어디에도 거리낄 게 없는 사람만이 당당한 말을 할 수 있
다.  당당한 말이 흩어진 인간을 결합시키고 밝은 통로를 뚫을 수 있는 것이다.  수도자가 침묵을
익힌 그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사목, 1974. 9.)


  순수한 모순

  6월을 장미의 계절이라고들 하던가.  그래 그런지, 얼마 전 가까이 있는 보육원엘  들렀더니 꽃
가지마다 6월로 향해 발돋움을 하고 있었다.  몇 그루를 얻어다 우리 방 앞뜰에 심어놓았다.   단
조롭던 뜰에 생기가 돌았다.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노라면 모차르트의 청렬  같은 것이 옷깃에
스며드는 것이었다.  산그늘이 내릴 때처럼 아늑한 즐거움이었다.
  오늘 아침 개화!
  마침내 우주의 질서가 열린 것이다.  생명의 신비 앞에 서니 가슴이 뛰려고 했다.  혼자서 보기
가 아까웠다.  언젠가 접어두었던 기억이 펼쳐졌다.
  출판 일로 서울에 올라와 안국동 선학원에 잠시 머무르고 있을  때였다.  한날 아침 전화가 걸
려왔다.  삼청동에 있는 스님한테서 속히 와달라는 것이다.  무슨 일이냐고 하니 와서 보면 알 테
니 어서 오라는 것이었다.  그 길로 허둥지둥 직행, 거기 화단 가득히 양귀비가 피어 있었다.
  그것은 경이였다.   그것은 하나의 발견이었다.  꽃이 그토록 아름다운 것인 줄은 그때까지 정
말 알지 못했다.  가까이 서기조차 조심스러운, 애처롭도록 연약한 꽃잎이며 안개가 서린 듯 몽롱
한 잎새 그리고 환상적인 그 줄기하며가 나를  온통 사라잡아버렸던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떨림
이요 기쁨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이때부터 누가 무슨 꽃이 가장 아름답더냐고 간혹 소녀적인 물음을  해오면 언하에 양귀비꽃이
라고 대답을 한다.  이 대답처럼 분명하고 자신만만한 확답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절절한  체험
이었기 때문이다.  하필 마약의 꽃이냐고  핀잔을 받으면, 아름다움에는 마력이 따르는  법이라고
응수를 한다.  뭘 안다고.
  이런 이야기를 우리 장미꽃이 들으면 좀 섭섭해 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그해 여름 아침 비로소
찾아낸 아름다움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게는 오늘 아침에 문을 연 장미꽃이 그 많은
꽃 가운데 하나일 수가 없다.  꽃가게 같은 데 피어 있을 그런 장미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다.
  이 꽃에는 내 손길과 마음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생 텍쥐페리의 표현을 빌린다면, 내가 내 장
미꽃을 위해 보낸 시간 때문에 내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하게 된 것이다.   그건 내가 물을 주어
기른 꽃이니까, 내가 벌레를 잡아준 것이 그 장미꽃이니까.
  흙 속에 묻힌 한 줄기 나무에서 빛깔과  향기를 지닌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건이야말로, 이 "순수한 모순"이야말로 나의  왕국에서는 호외감이 되고도 남을
만한 일이다.(경향신문, 1976. 6. 3.)


  영혼의 모음 - 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

  어린 왕자!
  지금 밖에서는 가랑잎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창호에 번지는 하오의 햇살이 지극히 선하다.
  이런 시각에 나는 티없이 맑은 네 목소리를 듣는다.  구슬같은 눈매를 본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해 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그 눈매를 그린다.  이런 메아리가 울려온다.
  "나하고 친하자, 나는 외롭다."
  "나는 외롭다......... 나는 외롭다.......... 나는 외롭다........."
  어린 왕자!
  이제 너는 내게서 무연한 남이 아니다.  한지붕 아래 사는 낯익은 식구다.  지금까지 너를 스무
번도 더 읽은 나는 이제 새삼스레 글자를 읽을 필요도  없어졌다.  책장을 훌훌 넘기기만 하여도
네 세계를 넘어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행간에 씌어진 사연까지도, 여백에 스며 있는 목소리까지
도 죄다 읽고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몇 해 전, 그러니까 1965년 5월, 너와 마주친 것은 하나의 해후였다.  너를 통해서 비로소 인간
관계의 바탕을 인식할 수 있었고, 세계와 나의 촌수를 헤아리게 된 것이다.   그때까지 보이지 않
던 사물이 보이게 되고,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너를 통해서 나 자신과
마주친 것이다.
  그때부터 나의 가난한 서가에는 너의  동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애들은 메마른
나의 가지에 푸른수액을 돌게 했다.  솔바람 소리처럼 무심한 세계로 나를 이끄는 것이다.   그리
고 내가 하는 일이 곧 나의 존재임을 투명하게 깨우쳐주었다.
  더러는 그저 괜히 창문을 열 때가 있다.  밤하늘을 쳐다보며 귀를 기울인다.  방울처럼  울려올
네 웃음소리를 듣기 위해.  그리고 혼자서 웃음을 머금는다.  이런 나를 곁에서 이상히 여긴다면,
네가 가르쳐준 대로 나는 이렇게 말하리라.
  "별들을 보고 있으면 난 언제든지 웃음이 나네........."
  어린왕자!
  너의 아저씨(생 텍쥐페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더라.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동무 이야기를 하면, 제일  중요한 것은 도
무지 묻지 않는다.  그분들은 그 동무의 목소리가 어떠냐?  무슨 장난을 제일 좋아하느냐?  나비
같은 걸 채집하느냐?, 이렇게 묻는 일은 절대로 없다.  "나이가 몇이냐? 형제가  몇이냐?  몸무게
가 얼마나 나가느냐?  그애 아버지가 얼마나 버느냐?, 이것이 그 분들의 묻는 말이다.   그제서야
그 동무를 아는 줄로 생각한다.
  만약 어른들에게 "창틀에는 제라늄이 피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놀고 있는 아름다운 붉은
별돌집을 보았다"고 말하면, 그 분들은 이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생갹해내질 못한다.  "1억원 짜
리 집을 보았어"라고 해야 한다.  그러면 "거 참 굉장하구나!"하고 감탄한다.
  지금 우리 둘레에서는 숫자 놀음이 한창이다.  두 차례 선거를 치르고, 나더니 물가가 뛰어오르
고, 수출고가 예상보다 쳐지고, 국민소득이  어떻다는 등.  그러니까 잘산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숫자의 단위가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스리는 사람들은 이 숫자에 최대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이다.  숫자가 늘어나면 스스대고, 줄어들면 마구 화를 낸다.  말하자면 자기 목숨의 심지
가 얼마쯤 남았는지는 무관심이면서, 눈에 보이는 숫자에만 매달려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가시적인 숫자의 놀음으로 해서 불가시적인 인간의 영역이 날로 위축되고 메말라
간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똑같은 물을 마시는데도 소가  마시면 우유를 만들고 뱀이 마
시면 독을 만든다는 비유가 있지만, 숫자를 다루는 그 당사자의 인간적인  바탕이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흔히 내노라 하는 어른들은 인간의  대지를 떠나 둥둥 겉돌면서도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구나.
  어린왕자!
  너는 그런 사람을 가리켜 "버섯"이라고 했었지?
  "그는 꽃향기를 맡아본 일도 없고 별을 바라본 일도 없고, 누구를 사랑해본 일도 없어.  더하기
밖에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어.  그러면서도 온종일 나는 착한 사람이다,  나는 착한 사람이다 하
고 뇌고만 있어.  그리고 이것 때문에 잔뜩 교만을 부리고  있어.  그렇지만 그건 사람이 아니야.
버섯이야!"
  그래, 네가 여우한테서 얻어 들은 비밀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아.  잘 보려면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사실 눈에 보이는 것은 빙산의 한 모서리에 불과해.  보다 크고  넓은 것
은 마음으로 느껴야지.  그런데 어른들은 어디 그래?  눈앞에 나타나야만 보인다고 하거든.  정말
눈뜬 장님들이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도 꿰뚫어볼 수 있는 그 슬기가 현대인에겐 아쉽다
는 말이다.
  어린왕자!
  너는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꽃인 줄 알았다가, 그 꽃과 같은 많은 장미를 보고 실망한 나머
지 풀밭에 엎드려 울었었지?  그땡 여우가 나타나 "길들인다"는 말을 가르쳐 주었어.  그건 너무
잊혀진 말이라고 하면서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라고.
  길들이기 전에는 서로가 아직은 몇천 몇만의 흔해빠진 비숫한 존재에  불과하여 아쉽거나 그립
지도 않지만, 일단 길을 들이게 되면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가 되고 만다는
거야.
  "네가 나를 길들이면 내 생활은  해가 돋은 것처럼 환해질 거야.   난 어느 발소리하고도 다른
발소리를 알게 될 거다.  네 발자국 소리는 음악이 되어 나를 굴 밖으로 불려낼 거야."
  그리고 여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밀밭이, 어린 왕자의 머리가 금빛이라는  이 한 가지 사실
때문에, 황금빛이 감도는 밀을 보면 그리워지고 밀밭을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좋아질 거라고 했
다.
  그토록 절절한 "관계"가 오늘의 인간 촌락에서는 퇴색해 버렸다.  서로를 이해와 타산으로 이용
하려 들거든.  정말 각박한 세상이다.  나와 너의 관계가 없어지고 만 거야.  "나"는 나고 "너"는
너로 끊어지고 말았어.  이와 같이 뿔뿔이 흩어져버렸기 때문에 나와 너는 외로워질 수밖에 없는
거야.  인간관계가 회복되려면, "나", "너"사이에 "와"가 개재되어야 해.  그래야만 "우리"가 될 수
있어.  다시 네 동무인 여우의 목소리를 들어볼까.
  "사람들은 이제 무얼 알 시간조차 없어지고 말았어.   다 만들어놓은 물건을 가게에서 사면 되
니까.  하지만 친구를 팔아주는 장사꾼이란 없으므로 사람들은 친구가 없게 됐단다.  친구가 갖고
시거든 날 길들여!"
  길들인다는 뜻을 알아차린 어린 왕자 너는 네가 그 장미꽃을 위해 보낸 시간 때문에 네 장미꽃
이 그토록 소중하게 된 것임을 알고 이렇게 말한다.
  "내 장미꽃 하나만으로 수천  수만의 장미꽃을 당하고도 남아.   그건 내가 물을 준  꽃이니까.
내가 고깔을 씌워주고 병풍으로 바람을 막아준 꽃이니까.  내가 벌레를 잡아준 것이 그 장미꽃이
었으니까.  그리고 원망하는 소리나 자랑하는 말이나 혹은 점잖게 있는 것까지라도 다 들어준 것
이 그 꽃이었으니까.  그건 내 장미꽃이니까."
  그러면서 자기를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영원히 자기가 책임을 지게 되는 거라고 했다.
  "너는 네 장미꽃에 대해서 책임이 있어!"
  "사람들은 특급열차를 집어타지만, 무얼 찾아가는지를 몰라."
  그렇다.  현대인은 바쁘게 살고 있다.  시간에 쫓기고 일에 밀리고 돈에 추격당하면서도 정신없
이 산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피로회복제를 마셔가며 그저  마쁘게만 뛰어다
니려고 한다.  전혀 길들일 줄을 모른다.  그래서 한 정원에 몇천 그루의 꽃을 가꾸면서도 자기네
들이 찾는 걸 거기서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거다.  그것은 단 한송이의 꽃이나 한 모금의 물에서
도 얻어질 수 있는 것인데.
  너는 또 이렇게 말했지.
  "그저 아이들만이 자기네들이 찾는 게 무언지를 알고  있어.  아이들은 헝겊으로 만든 인형 하
나 때문에도 시간을 허비하고, 그래서 그 인형이 아주 중요한 것이 돼버려.  그러니까  누가 그걸
뺏으면 우는거야.........."
  어린 왕자!
  너는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더구나.  이 육신을  묵은 허물로 비유하면서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더구나.
  생야일편부운기, 사야일편부운멸, 삶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죽음은 한 조각 구름
이 스러지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더라.
   그렇다, 이 우주의 근원을 넘나드는 사람에겐 죽음 같은게 아무것도 아내야.  죽음도  삶의 한
과정이니까.  어린 왕자, 너의 실체는 그 묵은  허물 같은 것이 아닐 거야.  그건 낡은  옷이니까.

  옷이 낡으면 새옷으로 갈아입듯이 우리들의 육신도 그럴 거다.  그리고 네가 살던 별나라로 돌
아가려면 사실 그 몸뚱이를 가지고 가기에는 거추장스러울 거다.
  "그건 내버린 묵은 허물 같을 거야.  묵은 허물, 그건 슬프지 않아.  이봐  아저씨, 그건 아득할
거야.  나두 별들을 쳐다볼래.  모든 별들이 녹슨 도르래 달린 우물이 될거야.  모든 별들이 내게
물을 마시게 해줄거야........."
  어린 왕자!
  이제는 너를 길들인 후 내 둘레에 얽힌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어린왕자"라는 책을 처음으로 내게 소개해준 벗은 이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한평생 잊을 수 없
는 고마운 벗이다.
  너를 대할 때마다 거듭거듭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벗은 나에게  하나의 운명 같은 것을
만나게 해주었으니까.
  지금까지 읽은 책도 적지않지만, 너에게서처럼 커다란 감동을 받은 책은 많지  않았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나한테는 단순한 책이 아니라 하나의 경전이라고 한대도 조금도 과장이  아닐 것 같
다.  누가 나더러 지묵으로 된 한 두권의 책을 선택하라면 "화엄경"과 함께 선뜻 너를 고르겠다.
  가까운 친지들에게 "어린왕자"를 아마 서른 권도 넘게  사주었을 것이다.  너를 읽고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이내 신뢰감과 친화력을 느끼게 된다.  설사 그가 처음 만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너를
이해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내 벗이 될 수 있어.  내가  아는 프랑스 신부 한 사람과 뉴
질랜드 노처녀 하나는 너로 해서 가까워진 외국인이다.
  너를 읽고도 별 감흥이 없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나와 치수가 잘 맞지 않는 사
람으로 생각하는 거다.
  어떤 사람이 나와 친해질 수 있느냐 없느냐는 너를 읽고 난 그 반응으로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는 말이다.  그러니까 너는 사람의 폭을 재는 한 개의 자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그리고 네 목소리를 들을 때 나는  누워서 들어.  그래야 네 목소리를  보다 생생하게 들을 수
있기 때문이야.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치고 날아다닐 수 있는 거야.  네 목소리는 들을수록 새
롭기만 해.  그건 영원한 영혼의 모음이야.
  아, 이토록 네가 나를 흔들고 있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건 네 영혼이 너무도 아름답
고 착하고 조금은 슬프기 때문일까.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샘물이 고여 있어서 그렇듯이.
  네 소중한 장미와 고삐가 없는 양에게 안부를 전해다오.
  너는 항시 나와 함께 있다.(아동문학사상, 1971. 11.)


  신시 서울

  한동안 뜸하던 꾀꼬리 소리를 듣고 장마에 밀린 빨래를 하던 날 아침  우리 다래헌에 참외장수
가 왔다.  노인은 이고 온 광주리를 내려놓으면서 단 참외를 사달라는 것이다.  경내에는  장수들
이 드나들 수 없는 것이 사원의 규칙으로 되어 있지만, 모처럼 찾아온 노인의 뜻을 거절할 수 없
어 일금 40원을 주고 두 개를 샀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돈을 받아 쥔 노인은 돈에
대고 퉤퉤 침을 뺑는 것이 아닌가.  그 표정이 하도 엄숙하기로 차마 연유를 물어볼 수 없었다.
  며칠 후, 일주문 밖에서 그 참외장수 할머니를 우연히 만났다.  왜 돈을 침을  뱉었느냐 물으니
그날의 마수걸이여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래 잘 팔리더냐고 했더니 아주 재수가 좋았다 한다.
  그때 돈에 침을 뱉던 그 엄숙한 표정과  비슷한 모습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억을 잡느라고
나는 한참 맴을 돌았다.  그렇지, 삼청동 뒷산에서였지.
삼청동 칠보사에서 기식하던 시절, 이른 아침 산에 오를 때마다 본 일이다.  바위 틈에서 아낙네
들이 음식을 차려놓고 치성을 드리던 바로 그  표정이었다.  때로는 무당들이 골짜기가 떠들썩하
게 징을 쳐가면서 신명을 풀기도 했다.  더욱이 입시 무렵에는 인왕산 일대와 함께 "야외음악당"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근대화로 줄달음치고 있는 조국의 수도권에서 이와 같은 무속이 건재하고 계신 것을 보고 대한
민국의 신시는 계룡산이 아니라 바로 서울이구나 싶었다.   이 신시의 순례자들은 서민층만이 아
니고 높은 벼슬아치의 댁내들께서도 가끔 동참하고 있다는 데는 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종교
와 미신의 분수령에는 여러 가지 푯말이 박혀 있겠지만, 그 중에는 정과 사도 있을 법하다.  구하
는 바가 청정하고 바른 것이냐, 아니면 사되고 굽은 것이냐에 따라  그 길은 갈라질 것이다.
  절간을 찾아온 사람들 중에도 사원을 예의 신시로 잘못 알고 오는 이가 더러 있다.  그런가 하
면 어떤 부류의 승려들은 자기 본업을 망각한 채 관상을 보고 사주팔자를  곱작거리며 작명의 업
을 벌임으로써 엉뚱한 길로 오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종교와 미신의 촌수는 실로 모호하게 된다.  이러한  소지가 남아있는 한 가짜 사기
승이 나올 만도 하지 않은가.
  오늘 아침 그 노인이 또 나타났다.
  이번에는 복숭아를 이고 왔다.
  이러다가는 갈아주는 호의가 동업자로 변질되고 말 것 같다.(동아일보, 1969. 8. 3.)




  본래무일물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물건과 인연을 맺는다.  물건 없이  우리들이 일상생활은 영위될 수 없
다.  인간을 가리켜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것도 물건과의 상관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면적인 욕구가 물건과 원만한 조화를 이루고 있을 때 사람들은 느긋한 기지개를 켠다.  동시
에 우리들이 겪은 어떤 성질의 고통은  이 물건으로 인해서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 중에도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물자체에서보다도 그것은 대한 소유관념 때문인 것이다.
  자기가 아끼던 물건을 도둑맞았거나 잃어버렸을 때 그는 괴로와한다.  소유관념이란 게 얼마나
지독한 집착인가를 비로소 체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개의 사람들은 물건을  잃으면 마음까지
잃는 이중의 손해를 치르게 된다.  이런 경우 집착의 얽힘에서  벗어나 한 생각 돌이키는 회심의
작업은 정신위생상 마땅히 있음직한 일이다.
  따지고 보면, 본질적으로 내 소유란 있을 수 없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물건이 아닌
바에야 내 것이란 없다.  어떤  인연으로 해서 내게 왔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가버리는  것이다.
더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나의 실체도 없는데 그 밖에 내 소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저 한동안 내
가 맡아 있을 뿐이다.
  울타리가 없는 산골의 절에서는 가끔 도둑을 맞는다.  어느 날 외딴 암자에 밤손님이 내방했다.
밤잠이 없는 노스님이 정랑엘 다녀오다가 뒤꼍에서 인기척을 들었다.  웬 사람이 지게에 짐을 지
워놓고 일어나려다가 말고 일어나려다 말고 하면서 끙끙거리고  있었다.  뒤주에서 쌀을 한 가마
잔뜩 퍼내긴 했지만 힘이 부쳐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스님은 지게 뒤로 돌아가 도둑이 다시 일어나려고 할때 지그시 밀어주었다.  겨우 일어난 도
둑이 힐끗 돌아보았다.
  "아무 소리 말고 지고 내려가게."
  노스님은 밤손님에게 나직이 타일렀다.  이튿날 아침, 스님들은 간밤에 도둑이 들었었다고 야단
이었다.  그러나 노스님은 아무말이 없었다.  그에게는 잃어버린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본래무일물, 본래부터 한 물건도 없다는  이말은 선가에서 차원을 달리해  쓰이지만 물에 대한
소유관념을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그 후로 그 밤손님은 암자의 독실한 신자가 되었다는 후문.(경향신문, 1970. 5. 14.)


  아직도 우리에겐

  6월이 장미의 계절일 수만은 없다.  아직도 깊은 상흔이 아물지 않고 있는 우리에게는.  카인의
후예들이 미쳐날뛰던 6월, 언어와 풍습과 핏줄이 같은 겨레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피를 흘리던 악
의 계절에도 꽃은 피는가.
  못다 핀 채 뚝뚝 져버린 젊음들이, 그 젊은 넋들이 잠들어 있는 강 건너 마을 동작동.  거기 가
보면 전쟁이 뭐라는 걸 뼈에 사무치도록 알게 될 것이다.  그것도 남이 아닌 동족끼리의 상잔, 주
의나 사상을 따지기에 앞서 겨레의 치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살아 남은 사람들에게는 전쟁의 상처가 강  건너 마을만큼이나 잊혀지고 있는 것 같다.
  6월이 오면 하루나 이틀쯤 겨우 연중행사로 모였다가 흩어지고 마는 가벼운 기억들.  전장에서
억울하게 죽은, 정말 억울하게 죽어간 그들이 남긴 마지막 발음이 무엇이었던가를 우리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이 사치와 허영과 패륜과 메울  길 없는 격차와 단절을 가져오
기 위해 그 무수한 젊음들이 죽어간 것인가.
국회의사당과 행정부처가 때로는 국립묘지로 이동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왜
냐하면 국가대사를 요리하는 선량이나 고급 관리들에게 전쟁의 의미를 실감케 하고, 나아가 생과
사의 관념적인 거리를 단축시켜주기 위해서, 이런 환경에서라면 정치의 탈을 쓴 흉정이나 음모가,
부패나 부정이 그래도 체면을 차리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인 것이다
  몇 해 전 의사당 안의 풍경 한 조각.  바깥 싸움터로  군대를 보내느냐 마느냐 하는 가장 엄숙
한 결단의 마당에서 민의를 대변한다는 어떤 "손"들은 꾸벅꾸벅 졸고 있더란다.  아무리 자기 자
신은 싸움터에 나가지 않는다기로 이렇듯  소홀한 생명 관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것이 비록
가난한 우리 처지로서는 빵과 목숨을 맞바꾸어야 하는 비극적인 상황이었다 할지라도.
  적어도 그들은 가부를 내리기 전에 한 번쯤은 이 침묵의 마을에 와야 했을 일이다.  그 무수한
젊음들이 피를 뿌리며 숨져갈 때 부르짖던 마지막 말이 무엇이었던가를 귀기울여 들여야 했었다.
  전쟁이 용서 못 할 악이라는 것은 새삼스레 인류사를 들출 것도 없다.  어떠한 명분에서일지라
도 살려는 목숨을 죽이고 평화로운 질서를 짓밟는 전쟁은 악이다.
  야수처럼 서로 물고 뜯으며 피를 찾아 발광하는 살기 눈 띤 눈이 결코 우리들  인간의 눈은 아
니다.
  무심한 꽃은 핀다 하기로 6월이 장미의 계절일 수만은 없다.
  아직도 우리 조국의 산하에서는.(경향신문, 1970. 6. 12.)


  상 면

  아무개를 아느냐고 할 때 "오, 그 사람? 잘 알고말고.   나하곤 막역한 사이지.  거 학창시절엔
그렇고 그런 친군데........"하면서 자기만큼 그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는 듯이 으스대는 사람
이 간혹 있다.  그러나 남을 이해한다는 것처럼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  다양하고 미묘한 심층을
지닌 인간을 어떻게 다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인간은 저마다 혼자다.  설사 칫솔을 같이 쓸
만큼 허물없는 사이라 할지라도 그는 결국 타인이다.
  그러니까 아무개를 안다고 할 때  우리는 그의 나타난 일부밖에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는 데서 우리는 불쑥 그와 마주칠 때가 있다.  길가에  무심히 피어 있는 이름 모를 풀
꽃이 때로는 우리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듯이.
  필자는 적연선사를 생전에 뵌 일이 없다.  필자가 입산하기 전에 선사는 이미 사바세계에서 인
연을 거둔뒤였기 때문이다.  시온을 가볍게 하기 위해 항상 누더기를 걸치고 생식을 했다는 선사,
하루 세 시간밖에 잠을 안 자고 참선만을 했다는, 그리고 평생토록 산문밖 출입을 하지 않았다는
그가 어떤 분인지 남들이 전하는 말만 듣고서는 도무지 그 상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그 스님이 머무르던 암자에 갔을 때였다.  거기서 나는 뜻밖에도 선사와 마주쳤던 것
이다.  한 문도가 간직하고 있는 유물을 보고 문득 선사의 걸걸한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서글
서글한 눈매며 늘씬한 허우대까지도 역력히 보았던 것이다.   이렇듯 선사와 상면하게 된 계기는
줄이 다 해진 거문고와 손때가 밴 퉁소에서였다.
  그때까지 나는 선사를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기 없는 고목처럼 꼬장꼬장한  수도승, 인간
적인 탄력이라고는 눈곶만큼도 없는 카랑카랑한 목소리, 일에 당해서는 전혀 타협을 모르는 고집
불통이었으리라고.  그런데 암자 한구석에 세워둔 거문고와 그 위에 걸린 퉁소를 보고 그의 인간
적인 여백과 마주쳤던 것이다.
  암자 곁 커다란 반석에 앉아 땀을 들이고 있었다.  솔바람  소리를 타고 상상의 날개가 펼쳐졌
다.  청명한 달밤, 선사는 거문고를 안고 나와 선열을 탄다.  더리는 머루주 잔을 기울인다.  걸걸
한 목청으로 회심의 가락을 뽑는다.  반석 위에 뽀르르 다람쥐가 올라온다.  물든 잎이  시나브로
진다.
  그는 찬바람이 감도는 율승이 아니었을 것이다.  경전의 구절이나 좌선에만 집착하는 시시콜콜
한 도승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날의 상면으로 인해 나는 생전에 일면식도 없던 선상에게서 훈훈
한 친화력 같은 걸 느끼게 되었다.  물론 내 나름으로 알고  있는 그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겠지
만, 그와 그렇게 마주쳤던 것이다.(경향신문, 1970. 6. 16.)


  살아 남은 자

  요 며칠 사이에 뜰에는 초록빛  물감이 수런수런 번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가을 이래 자취를
감추었던 빛깔이 다시 번지고 있는 것이다.  마른 땅에서 새 움이 트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하기만
하다.  없는 듯이 자취를 거두었다가 어느새 제철을 알아보고 물감을 푸는 것이다
  어제는 건너 마을 양계장에서 계분을 사다가 우리  다래헌 둘레의 화목에 묻어주었다.  역겨운
거름 냄새가 뿌리를 거쳐 줄기와 가지와 꽃망울에 이르면 달디단 5월의 향기로 변할 것이다.  대
지의 조화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새봄의 흙 냄새를  맡으면 생명의 환희 같은 것이 가
슴 가득 부풍어오른다.  맨발로 밟는 밭흙의 촉감, 그것은 영원한 모성이다.
  거름을 묻으려고 흙을 파다가 문득 살아 남은 자임을 의식한다.   나는 아직 묻히지 않고 살아
남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겨울 춘천을 다녀오면서도 그런 걸 느꼈었다.  그때  어쩌다
맨 뒷자리 비상구 쪽이 배당받은 내 자리였다.  그 동네도  초만원인 망우리 묘지 앞을 지나오면
서 문득 나는 아직도 살아 남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굳이 비상창구를 통해서 본 묘지가 아니더라도 지금 생존하고 있는  모든 이웃들은 "살아 남은
자들"임에 틀림없다.  눈 한 번  잘못 팔다가는 달리는 차바퀴에 남은  목숨을 바쳐야 하는 우리
처지다.  그 이름도 많은 질병, 대량 학살의 전쟁, 불의의  재난,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갈등.  이
런 틈바구니에서 우리들은 정말 용하게도 죽지 않고 살아 남은 자들이다.
  죽음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영원한 이별이기에  앞서, 단 하나뿐인 목숨을 여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생명은 그 자체가 존귀한 목적인 것이다.  따라서 생명을 수단으로 다룰  때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악이다.   그 어떠한 대의명분에서일지라도 전쟁이 용서  못할 악인 것은
하나뿐인 목숨을 서로가 아무런 가책도 없이 마구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 남은 사람들끼리는 더욱 아끼고  보살펴야 할 것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자기 차례를
맞이할 지 모를 인생이 아닌가.  살아  남은 자인 우리는 채 못  살고 가버린 이웃들의 몫까지도
대신 살아주어야 할 것 같다.  그러니까 나의 현 존재가 남은 자로서의 구실을 하고 있느냐가 항
시 조명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날 일을 마치고 저마다 지붕 밑의 온도를 찾아 돌아가는 밤의 귀로에서  사람들의 피곤한 눈
매와 마주친다.
  "오늘 하루도 우리들은 용하게 살아 남았군요"하고 인사를 나누고 싶다.  살아 남은 자가 영하
의 추위에도 죽지 않고 살아 남은 화목에 거름을 묻어준다.  우리는 모두가 똑같이 살아 남은 자
들이다.(중앙일보, 1972.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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