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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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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7 10:30:32, 조회 : 1,914,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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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방송시 스님께서 들려주신 애별리고란 음악을 감사히
듣고 찾아보니 이러한 내용이 있어 글을 옮겨 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별을 겪는다.
한 이불을 덮고 자던 부부도 이혼을 할 수 있고 매일 만나던 연인과도 결별한다.
하루하루가 이별을 위한 준비인 셈이다. 애별리고(愛別離苦)라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고통이야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언젠가 부인과의 이혼으로 크게 상처받은 30대 남성이 나를 찾았다.
그는 '차라리 죽어서 이별하는 게 낫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몇 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했기 때문에 이혼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는 것.
그러나 살아서 이별하는 것이 죽어서 이별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말하고 싶다.
살아서 이별한다면 언젠가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지만,
죽으면 그 희망마저 버려야 한다.
나는 그에게 얼마전 면담을 청한 부모의 얘기를 했다. 부부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들에게는 애지중지 하며 키운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그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된 것.
뇌사판정을 받았지만 부부는 3년간 아들을 정성껏 간호했다.
금방이라도 '엄마'하면서 일어날 것만 같았다. 의사들은 뇌사를 인정하고
아들의 장기가 좋은 곳에 쓰이길 바랐으나 부부는 한사코 이를 거부했다.
"우리 아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들과 매일 대화하고 있답니다."
그들은 비록 아들이 아무 말도 못하지만 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으며
영혼의 교감을 통해 대화하고 있다고 믿었다.
"아들을 살아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 줄 아시나요?
산소호흡기만 빼면 아들이 죽는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압니다.
하지만 차마 뺄 수 없습니다. 이대로 살아만 있어준다면 소원이 없습니다.
제가 욕심이 큰 걸까요?"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비록 다시는 움직일 수없는 아들이지만 침대에 누워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다는
그녀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뇌사 아들을 곁에 두고 싶어하는 부모의 마음.
이는 세기를 뛰어넘어 모두 마찬가지였다.
과거 이집트에서는 사랑하는 가족이 죽으면 미라로 만들어 한 집에 같이 살았다고 한다.
그러면 영원히 그 영혼이 그들과 함께 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별도 천리(天理)다. 천리를 거역하려 한다면 이유가 어찌됐든 업을 쌓게 마련이다.
천리대로 사람을 떠나보낼 줄 알 때 이별의 고통은 치유되지 않을까.
7년을 땅 속에 묻혀 있다가 7일 동안 임을 그리워하며 절규하는 매미의 울음소리에
사람들은 귀 기울이지만, 실은 말없이 자기 몸을 불태우며 침묵하는 반딧불이의
사랑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고통을 침묵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사랑이야말로
참사랑이 아닐는지.
살아서 이별하는 것이 죽어 이별하는 것보다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은 죽어봐야만 알 수 있는 어려운 화두다.
죽는 순간 삶을 알 수 있고 비로소 삶은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구명시식은 바로 우리네 꿈같은 인생의 미몽을 깨기 위한 작용을 한다.
꿈을 깼을 때에야 꿈이라는 사실을 알 듯,
죽어봐야 삶이 한낱 아름답고 고통스러웠던 꿈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까.
죽은 자의 세계를 많이 보아온 나는 반딧불이가 만들어내는 침묵의 빛을 떠올리며
그들에게 말했다. "잘 보내주십시오.
그래야 아드님도 다시 태어나 더 아름다운 인연으로 다시 만나지 않겠습니까?"
처음에 부부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나의 설득에 눈물을 흘리며 돌아갔다.
이제 그들은 사랑하는 아들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바라보며 살아서 이별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다시금 깨닫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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