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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불교계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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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8 10:08:07, 조회 : 1,329,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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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에 갇힌 산중의 밤은 적막해서 더욱 깊다. 간간이 부는 바람만이 문풍지를 울린다. 앞산에 비스듬히 걸려 있는 이지러진 조각달이 금방이라도 호수에 빠져버릴 것만 같다. 스님은 거처에서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도시에서는 초저녁 시간이지만 자연의 리듬이 지배하는 산속은 이미 깊은 밤이다.
새벽녘 잠이 깨 방을 나서 하늘을 보니 조각달이 머리 위에 떠 있다. 푸른 바다처럼 쏟아지는 은하수 별빛이 하늘을 환하게 연다. 어둠이 깊은 곳일수록 하늘이 밝게 열린다고 했다. 전남 순천 모후산 자락의 겨울밤 풍경이다.
산공 스님은 17년 전 이곳으로 흘러들었다. 물과 바람과 달빛이 맑아 삼청리란 이름을 가진 마을이다. 빈집을 얻어 산골 여인이 됐고, 얼마 안 가서 몇 가구 안 되는 마을 위쪽에 집을 짓고 아예 터를 잡아버렸다. 지게를 지고 다락밭을 일구는 농삿꾼이 됐다.
스님은 십대 때 출가해 절집에서 수행에 전념하는 이판승으로 살았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무수한 삶의 의문이 밤을 길게 했다. 막상 있을 땐 시큰둥했던 가족과 인연들을 떠나보낸 후에야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슬픈 핑퐁게임’에 가슴이 사무쳤다. 출가승이란 이름으로 위선을 떨며 사는 자신이 싫었다. 홀로 산중에서 독하게 수행하고자 산골에 깃들었다.
처음엔 일에 치여 단순한 일꾼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 갈등도 많았다. 하지만 그동안 사찰을 운영하고 유지하는 사판승의 헌신과 고통으로 살아왔다는 생각에 머물자, 남의 등쌀에 배불렀다는 깨침이 찾아왔다. ‘거지 호사’를 누렸던 것이다. 사회라는 전체 속에서 절집을 바라보게 됐다. 지나온 모든 것이 소중한 것들이었다. 뱀이 허물을 벗듯 사흘간 참회의 눈물이 쏟아졌다. 위선과 교만으로 얼룩졌던 영혼이 투명해졌다.
땅의 영혼, 대지의 영혼이 치유제가 된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천혜의 환경을 뒤로하고 도시로 향해 떠나갔다. 편리한 생활을 누리고 용이한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서다. 쉼없이 경쟁해야 했고 남이 지닌 것을 따라잡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야 했다. 진정 추구해야 할 본연의 자아는 사라지고, 삶은 그 무엇과 경쟁하고 얻기 위한 도구가 되어 버렸다. 이젠 사는 일에 지쳐 막상 얻고자 했던 그것이 앞에 있어도 별로 기쁘지가 않다.
스님은 허허실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면서부터 삶이 축복이 됐다. 이제 많은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살얼음을 깨서 물을 긷고 나무해다 불을 지피니 범사에 감사하게 됐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이다.
“다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물으면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지요. 다 버린 사람에게 물어야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 됩니다.”
자연과 가까이 하며 사는 일상은 밤이 짧다. 쉼없이 흐르는 자연의 순환에 맞춰 호흡하는 농사일로 몸이 고달프기 때문이다. 스님이 마을 주민과 느슨한 생명공동체를 실험하고 있는 이유다. 품앗이는 물론 삼채(뿌리부추, 알리움후커리) 등 고소득 특용작물 재배법을 공유하고 모종도 나눈다. 마을공동체 회복이다. 나아가 인터넷 귀농학교를 통해 노하우를 공개할 예정이다. 지속가능한 친환경 작물을 내세워 유통망도 공동으로 구축하고 있다. 한의원과 약초 재배 농가를 연결해 주기도 한다.
동출서류의 한반도 지형지세에 삼청리는 물은 상수로 꼽히는 ‘서출동유수’다. 동의보감엔 이런 물로 약을 달여야 좋다고 했다. 실제로 삼청리 물엔 몸에 좋다는 게르마늄이 많이 함유돼 있다. 자연히 좋은 약초들도 지천이다. 봄이면 산야초를 채취해 효소액을 만든다. 빈집도 하나 둘 확보해 가고 있다. 새로운 삶을 모색하려는 이들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서다. 건강한 공동체인 ‘우리 가족’으로 감싸안는 작업이다. 미혼모와 해외 입양인을 위한 ‘마더하우스’ 건립 추진도 같은 맥락이다. 뭇 생맹을 보듬어 주는 ‘생명 농꾼’ 이다.
“미래의 바람직한 인간상과 사회상은 결국 ‘오래된 것’임을 되새기게 됩니다. 오랜 세월 형성되어온 맞춤형 생활방식을 열등한 것으로 몰아가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스님은 요즘 세대들에게 자신들의 문화와 자연으로부터 분리되어 서구화된 도시환경에 맞는 편협한 시각만 교육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자신들의 자원을 활용할 줄 모르고, 자신들의 세계에서 어떤 역할도 할 줄 모르는 청맹과니로 만들기 때문이다. 인류의 내일을 담보하는 생명공동체 교육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역사는 돌고 돕니다. 고대 문명들은 벌거숭이 산, 집약적 곡물 재배, 토양 고갈, 너무 긴 교역로, 도시 인구 증가 등 생태 취약성으로 무너졌습니다. 오늘날도 닮은 구석이 많습니다. 기업농이 재배한 작물을 몇몇 회사가 가공해 다시 수백만명의 소비자에게 파는 ‘식품제국’은 미래가 없습니다.”
스님이 지속가능한 생태농업을 실천하는 배경이다. 음식은 우리의 정신과 육체를 이어주며 우리의 몸을 땅과 연결한다. 음식이 생명을 의미하는 이유, 생태농업을 추구하는 공동체가 생명공동체로 불리는 연유다. 스님은 느슨한 생명공동체를 강조한다.
“SNS에서처럼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유용한 정보를 더 많이 제공받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가까운 이들을 기반으로 한 폐쇄적인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개방적인 ‘느슨한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더욱 힘을 발휘하고 있지요. 정보의 폐쇄성에서 벗어나 개방적인 정보의 바다가 열리게 되기 때문이지요. 결국엔 좋은 사회란 구성원이 지인 혹은 친구가 아닌 ‘타인’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스님은 폐쇄적인 공동체를 반대한다. 실제로 그동안 수많은 공동체 실험이 실패로 끝났다.
스님이 이른 아침 송광사를 품은 조계산을 내려다보고 있다. 일출을 마주하기 위해서다. 햇살이 황토벽에 반사되면서 사방이 황금빛이다. 스님은 이것이 ‘황금사원’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고 반문했다. 서산에 해가 기울 땐 반대로 조계산이 황금빛으로 불탄다. 신비로운 풍경이다. 스님이 유유자적 거닌다.
“몸이 없는 듯 영혼이 두둥실 가볍게 황홀경에 빠져들지요. 자연은 크고 위대한 진리라는 것을 깨우쳐 줍니다.”
스님이 배추밭에 들어가 눈을 걷어낸다. 흙을 가까이하는 것은 살아 있는 우주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흙을 가까이하면 나약하고 관념적인 사유의 사막에서 벗어날 수 있다.
“땅에 씨앗을 뿌려 본 이들만이 알게 되는 것이 있어요. 생명의 발아 현상을 통해 불가시적인 영역에도 눈을 뜨게 됩니다.”
흙을 가까이하면 흙의 덕을 배워 순박하고 겸허해지며, 믿고 기다릴 줄을 안다. 흙엔 거짓이 없고, 추월과 무질서도 없다.
“흙을 맨발로 감촉해 보세요. 그리고 흙 냄새를 맡아 보세요. 그것은 순수한 생의 기쁨이 됩니다. 느슨한 생명공동체의 발판이지요.”
스님이 방문을 열어보라 한다. 멀리 주암호의 물안개가 산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구름처럼 피어올랐다가 이리저리 흩어지며 사라지는 모습이 장렬하다. 부질없는 인간사 같다.
자료출처 : 2012.12.17 세계일보 편완식 선임기자 wansik@segye.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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