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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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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7 09:51:19, 조회 : 770,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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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066.jpg (106kb) 다운 :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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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부처님을 보고
눈으로 보는 것이 없으니 분별이 없고
귀에는 들리는 소리 없어 시비가 끊기었네.
시비와 분별을 모두 놓아버리고
다만 네 마음의 부처님을 보고 스스로 귀의한다.
目無所見無分別 耳廳無音絶是非
목무소견무분별 이청무음절시비
是非分別都放下 但看心佛自歸依
시비분별도방하 단간심불자귀의
- 부설 거사 -
이 시는 부설 거사의 열반송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 진덕여왕 때 다섯 살의 나이로 출가하여
원정 선사를 섬기게 되면서 받은 법명이 부설(浮雪)이다.
부설에게는 훌륭한 도반 두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영조(靈照)와 영희(靈熙)였다.
어느 날 세 스님은 명승지를 행각하자고 맹세했다.
그래서 세 스님은 지리산에서 3년 동안 경전 공부를 하고
천관사에서 5년 동안 참선 공부를 하였다.
그 후 여러 곳을 행각하다가 문수도량인 오대산을 참배하기 위해서 가는 도중 김제를 지나다가 구무원이라는 거사 집에 머물게 되었다.
구 거사는 세 스님의 법문을 듣고 극진히 공양을 올렸다.
때 마침 봄비가 며칠 간 그치지 않고 내렸다.
비가 그치고 나서야 세 스님은 구 거사 집을 나설 수 있게 되었는데 마침 거사의 딸 묘화가 그 동안에 그만 부설 스님을 사모하게 되어버렸다.
실은 묘화는 나면서부터 벙어리였는데
스님의 법문을 듣고 말문을 열게 됐다.
그 딸은 자신의 말문을 트게 해준 부설 스님을 사모하여
자살을 기도하면서까지 그와 부부가 되기를 원했다.
부설이 승려 신분임을 내세워 거절하였으나
끝내는 그를 거둬들여 부부의 연을 맺고 그 곳에서 살게 되었다.
그 뒤 두 도반들은 실망한 채 구 거사의 집을 떠났다.
결혼을 한 부설 거사는 아들 등운(登雲)과 딸 월명(月明)을 두고 살았으나 성불을 향한 정진은 더욱 치열하였고
공부의 깊이도 날로 더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오대산으로 떠났던 두 스님이 돌아왔다.
부설은 두 스님이 공부한 경지가 궁금하여
등운과 월명에게 물을 담은 세 개의 물병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부설은 물병들을 대들보에 달아놓고 두 스님에게 하나씩 치게 하였다.
병과 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부설이 치자 병만 깨지고 물은 그대로 대들보에 매달려 있었다. 부설이 두 스님에게 말했다.
“참다운 성품은 본래 영명하여 항상 머물러 있는 바
저 물이 대들보에 매달린 것과 같다.”라는 말을 마치고 나서
부설은 위에 소개한 열반송을 남기고 홀연히 입적에 들었다.
두 스님은 묘적암 남쪽 기슭에 부도탑을 세우고
부설 거사의 사리를 봉안하였다.
지금도 그의 딸 이름을 딴 월명암은 성지로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그 곳의 선원은 또한 그의 가족 네 사람이 모두 성인이 되었다 하여 사성선원(四聖禪院)이라 한다.
길은 단 하나..
세상의 시비분별과 보고 듣는 일을 떠나서
자기 마음의 부처님 세상에서 행복과 평화의 길을 모색하는 일이다. 밖으로 향하던 눈을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여
자기 마음속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어느 누구도 나 아닌 바깥세상을 바꾸려고
아무리 노력을 기울인다 하더라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바뀔 때 세상도 달라 보인다.
부설 거사의 이 한마디 말이 인생사와 세상사를 다 설명하고 있으며 그 살아가는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고 하겠다.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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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스/Massachusetts
조영남/모란동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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