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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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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8 20:13:17, 조회 : 753,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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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20100926_220948_f99687dd719c4e8bc6a39e946c3d9ef7.jpg (55kb) 다운 :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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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선 일미 (茶禪一味)와 다선삼구(茶禪三句)
다선 일미란 차(茶)와 선(禪)은 같다는 말인데
대개 사람들은 이 말을 즐겨 쓰지만 왜 같은가라고 물으면 대답하지 못한다.
여기에 답을 하려면 먼저 선을 알아야 하는데 선을 모르면
어떠한 논리적 답을 해도 정답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이란 논리적으로 이해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체험 없이 말을 하면 않된다.
산승은 여기에서 차의 근본인 도를 말하기 보다는 다선삼구(茶禪三句)를 통해서 다도의 본질을 깨우치고 진정한 안락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차를 말하고자 한다.
다선삼구(茶禪三句)라는 말은 산승이 처음 쓰는 차의 대한 견해이니 잘 보기 바란다.
차와 선이 같다면 선과 음식도 같다는 것이 되어 일체가 선 아님이 없다그러면 차와 선이 같다는 뜻이 무엇인가?
먼저 다선삼구(茶禪三句)를 알아야 한다.
첫째 다 일구(茶一句)란?
차를 대하기 전에 道의 본체에서 벗어나지 않은 마음이니
모든 시간 가운데 항상 무심의 바탕에서 언제나 선심(禪心)이 현전하여잡념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무념 속에 일체행이 이뤄지니 한잔의 차 속에 대천세계가 들어가고 차 한잔 마시는 속에 일체 고뇌를 초월하니 여기 저절로 선심(禪心)이 나타난다.
차를 통해서 지고지순의 경지에 이르러니 가히 다선일미라고 부를만 하다.
둘째 다 이구(茶二句)란?
차와 음식을 대할 때 잡념은 없으나 도심(道心)이 없고 일신의 이익을 위해 먹으며무기(無記)견에 떨어져 공덕심이 없으므로 남의 스승이 되지 못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지 못한다.
무념이 되지 못하니 비록 고요하기는 하나 차(茶)의 성(性)에는 계합하지 못하고 차상(茶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때문에 차(茶)의 도(道)에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거기 차의 고요함은 있다.차를 먹으므로 마음의 고요함이 생기니 음다의 공덕이 적지 않다.
셋째 다 삼구(茶三句)란?
일반적인 차와 음식을 대하는 모습이니 차의 맛과 향에 취해 집착하고 소유욕과 분별심으로 인해 차 먹는 순간에도 차의 고요한 정신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다용(茶用)에 애착하지만 음다를 통해서 갈증을 없애고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기회가 되니 차를 먹지 않는 사람보다 맑고 신선함과 편안 함이 생겨난다.
진정한 수행자라면 다도일구(茶道一句)에 의지하여 이구와 삼구를 쓰면 다삼구(茶三句)를 온전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만일 다성(茶性)없이 다상(茶相)과 다용(茶用)만 가지고 다(茶)를 대하면 다도(茶道)가 생길 수 없다. 오늘날 차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다상(茶相)과 다용(茶用) 위주로 가르치므로 다선일미(茶禪一味)에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만일 다(茶)의 제3구(第三句)에만 의지하여 차를 대하면 그것은 하나의 기호식품을 취하는 것과 다름 없으므로 이제 불자들은 차(茶)를 통해서 높은 이상과 정신적 자유로움과 마음의 대 평안 이루기를 바랍니다.
출처 :대승정신(수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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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여래진언/현수스님&혜음
지허스님/중생의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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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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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법우님들 행복한하루 소중한시간하세요^^ 수선화보살님 건강하시죠^^ 감기조심 하세요 ,,안개가 자욱하네요 ㅠㅠㅠㅠ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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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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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바다보살님 안녕하신지요? 건강은 좋아지셨는지..수선화보살님 올려주신 소중한 글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 읽어봅니다.법우님 모두 날마다 좋은날만 있으시길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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