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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2 18:41:02, 조회 : 1,012,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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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링크 : http://cafe.daum.net/BluenotE/FhnX/415?docid=3498455279&q=%C7%D1%B1%B9%20%BA%D2%B1%B3%20%BC%B3%C8%AD%BF%A1%20%B3%AA%C5%B8%B3%AD%20%BF%E5%B8%C1%B0%FA%20%B1%FA%B4%DE%C0%BD&r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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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월산 동남쪽에 선천촌(仙川村)이 있다.
그 마을에 두 사람이 살고 있는데, 한 사람은 노힐부득(努胯夫得)이며 부친의 이름은 월장(月藏)이고 모친은 미승(味勝)이라 했다. 또 한 사람은 달달박박(怛怛朴朴)으로 부친 이름이 수범(修梵)이고 모친은 범마(梵摩)였다.
두 사람은 모두 풍채와 골격이 비범하고 속세를 벗어난 높은 사상이 있어 서로 벗이 되어 사이좋게 지냈다.
나이 스무 살이 되자 촌의 동북쪽 고개 너머에 법적방(法積房)에 가서 다 같이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얼마 후에 선천촌 서남쪽 법종곡(法宗谷) 승도촌(僧道村)에 옛 절이 하나 있는데 머물며 수양할 만하다는 말을 듣고 같이 가서 대불전(大佛田)과 소불전(小佛田)에서 각기 살았다.
노힐부득은 회진암(悔眞庵) 회사(悔寺)라는데 있고, 달달박박은 유리광사(琉璃光寺)에 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처자(妻子)가 있어 생계를 꾸리면서도 서로 왕래하며 마음을 닦는 이외의 뜻은 잠깐도 놓지를 않았다.
서로 몸과 세상살이의 무상함을 보고 말하길,
“좋은 밭과 풍년이 드는 게 참으로 좋기는 하지만 옷과 음식이 마음대로 생기고 절로 배부르고 따뜻함을 얻는 것만 못하며, 계집과 집이 좋기는 하지만 연지(蓮池) 화장(華藏)의 천성(千聖)과 같이 놀고 앵무(鸚鵡) 공작(孔雀)과 서로 즐기는 것과 같지 못하다.
불(佛)을 배우면 마땅히 부처가 되고, 참됨을 닦으면 반드시 진리를 얻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이미 낙채(落彩머리를 깎음)하여 중이 되었으므로, 마땅히 속세에 얽매인 것을 벗어버리고 무상(無上)의 도를 이루어야 한다. 그런데 어찌 풍진(風塵)에 파묻혀 세속의 무리들과 다름없이 살아야만 하는가.” 하며, 그들은 세속을 버리고 장차 깊은 산으로 숨으려 하였다.
하루는 꿈을 꾸는데,
꿈에 백호광(白毫光)이 서쪽으로부터 비치고 빛 가운데로 금색(金色)의 팔이 내려와 두 사람의 이마를 만져 주었다.
이튿날, 서로가 같은 꿈을 꾼 것에 감탄하여 둘은 드디어 백월산 무등곡(無等谷)으로 들어갔다.
달달박박은 북령(北嶺) 사자암에 판자로 팔척방(八尺房)을 만들어 살아서 판방(板房)이라고 했고, 노힐부득은 동쪽 고개 돌무더기 아래에 방을 짓고 살아서 뇌방(磊房)이라 하였다.
각자 암자를 지키며 부득은 미륵(彌勒)을 구하고, 박박은 미타(彌陀)를 염불 예념(禮念)한지 3년이 못 되는 경룡(景龍) 3년, 기유년(709) 4월 8일, 성덕왕(聖德王)이 즉위한지 8년째인 어느 날이었다.
해가 저물 무렵, 나이가 20세가량 되어 보이는 자태가 아름다운 낭자(娘子)가 난초와 사향 냄새를 풍기며 북암(北庵)에 찾아 왔다.
낭자는 암자에 하룻밤 자고가길 청하며 시를 지어 가로되,
“行逢日落千山暮(행봉일낙천산모) 깊은 산속 해는 저물어 가는데
路隔城遙絶四隣(노격성요절사린) 사방은 길이 막히고 성은 머네
今日欲投庵下宿(금일욕투암하숙) 오늘 이 암자에서 자려고 하니
慈悲和尙莫生嗔(자비화상막생진) 자비스런 스님 화내지 마시오.”이라 했다.
박박이 대답하길, “절은 청정한 곳이니 낭자가 가까이 할 데가 아니오. 지체 말고 빨리 이곳을 떠나시오.”라며 문을 닫고 돌아 섰다.
낭자는 이번에는 남암으로 가서 똑같이 청했다.
부득은 말하였다. “그대는 이 밤중에 어디에서 왔소?”
낭자가 말하였다. “저의 고요하고 맑은 모습이 태허와 같은 몸인데, 어디를 오고 가겠습니까? 다만 어진 선비의 뜻과 소원이 깊고 덕행이 높고 견고하다는 말을 듣고 장차 보리를 이루도록 도와주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계를 하나 읊퍼 가로되,
“日暮千山路(일모천산로) 해가 저문 깊은 산길에
行行絶四隣(행행절사린) 가도 가도 인가는 없네
竹松陰轉邃(죽송음전수) 대나무 소나무 그늘 그윽하고
溪洞響猶新(계동향유신) 계곡의 물소리 더욱 새로워라
乞宿非迷路(걸숙비미로) 길을 잃어 잘 데 찾는 게 아니요
尊師欲指津(존사욕지진) 존사를 인도하려는 것이니
願惟從我請(원유종아청) 원컨대 내 청만 들어 주시고
且莫問何人(차막문하인) 길손이 누군지는 묻지를 마오.”
하니, 부득은 놀라서 말했다.
“이곳은 낭자와 함께 있을 곳은 아니지만, 중생을 보살피는 것 또한 보살행의 하나지요. 더구나 깊은 산속에 밤이 어두웠으니, 어찌 소홀히 대접할 수 있겠소.”하며 읍하여 맞아들였다.
부득은 그런 뒤 반벽(半璧)에 불을 줄이고 맑은 마음으로 몸가짐을 가다듬고 고요히 염불을 했다.
밤이 더욱 깊어지자 낭자가 말하길,
“내가 불행하게도 산기가 있으니, 스님께서는 짚자리를 깔아주십시오.”
부득은 불쌍히 여겨 촛불을 은근(慇懃)히 밝히는데, 낭자는 이미 해산하고 목욕하기를 청했다.
부득은 부끄러운 마음과 두려움이 있었으나, 애처로운 마음이 더해져 거절하지 못하고 목욕통을 준비하여 낭자를 통 속에 앉히고 더운물로 목욕을 시켰다.
그러자 통 속의 물이 향기가 나고 금액(金液)으로 바뀌었다.
부득이 크게 놀라자 낭자가 말하였다. “우리 스님께서도 물에 목욕을 하십시오.”
부득이 마지못해 따르자 홀연 정신(精神)이 맑아지고 피부가 금빛이 났다.
그리고 옆에 하나의 연화대가 생겼다. 낭자가 거기에 앉기를 권하면서 말하였다.
“나는 관음보살인데 이곳에 와서 대사를 도와 대보리(大菩提)를 이루도록 한 것이오.”
말을 마치자 낭자는 사라졌다.
한편 박박은 오늘 밤에 부득은 반드시 계를 더럽혔을 것이므로 비웃어 주겠다며 나섰다.
그러나 가서 보니 부득이 연화대에 앉아 미륵존상(彌勒尊像)이 되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박박은 자신도 모르게 예(禮)를 갖추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어떻게 이렇게 되셨습니까?”
부득이 그 사유를 말해 주자 박박은 탄식하며 말하길,
"내가 마음이 닫혀 요행이 부처를 만났는데도 도리어 예우하지 못하였습니다. 원컨대 옛날의 교분을 잊지 마시고 함께 도와주십시오.”
노힐이 말하였다.
“통 안에 아직도 남은 물이 있으니 목욕을 할 수 있을 것이오.”
박박도 그대로 목욕을 했더니 부득처럼 무량수(無量壽)를 이루어 두 부처가 엄연히 마주 대하게 되었다.
산 아래 촌민(村民)들이 듣고 다투어 와서 우러러보고 감탄하면서 “참으로 희한(稀罕)한 일이다.”라고 하였다.
두 부처는 그들에게 설법을 하고 구름을 타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천보(天寶) 14년 을미(乙未, 755)에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 소식을 듣고 정유(丁酉, 757)년에 사람을 보내서 대가람을 세우고 이름을 백월산 남사(白月山 南寺)라 하였다.
광덕(光德) 2년 갑진(甲辰, 764) 7월 15일에 가람이 완성되자, 다시 미륵존상을 만들어 금당(金堂)에 모시고 당호(堂號)를 현신성도미륵지전(現身成道彌勒之殿)이라 붙였다.
또 아미타불상을 만들어 강당에 모셨는데, 금액(金液)이 부족해 몸 전체를 다 바르지 못했기 때문에 아미타불상에는 얼룩진 흔적이 보인다.
당호는 현신성도무량수전(現身成道無量壽殿)이라 붙였다.
* [한국불교 설화에 나타난 욕망과 깨달음]에 대한 요약논문이 있어 링크를 해놓았으니 법우님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빛이 되는 사람들 - 김무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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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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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불교 설화 올려주심에 감사히 공부합니다. 초발심 거사님 한주내내 건강하시고 성불하십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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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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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발심거사님 불교설화에 대한 소중한글 감사한 마음으로 공부해 봅니다. 복 짓는 한주가 되시고 성불하십시오.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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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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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데...듣는내내 (죄송) 달달박박이라는 이름때문에 웃었습니다,ㅎ죄송합니다,,귀한글인데,,이해해주셔요~(^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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