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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가귀감 본문 제72장 [매사에 담담하고 적적하다면 참다운 자유인]
法空 2015-01-22 20:46:25, 조회 : 1,463, 추천 : 0
聲聞(성문)은 宴坐林中(연좌임중)이나 被魔王捉(피마왕착)하고
菩薩(보살)은 遊戱世間(유희세간)이나 外魔不覓(외마불멱)이니라.

《한자》宴(편안할 연. 잔치)
        捉(잡을 착) 覓(찾을 멱)

성문은 숲 속에 가만히 앉아서도 마왕에 붙잡히고,
보살은 세간에 노닐어도 외도와 마군이 찾지 못하니라.

◎ 漢文本 註解

聲聞(성문)은 取靜爲行故(취정위행고)로 心動(심동)이요
心動則見鬼也(심동즉견귀야)라
菩薩(보살)은 性自空寂故(성자공적고)로 無迹(무적)이요
無迹則外魔不見(무적즉외마불견)이라
此(차)는 合論二乘菩薩(합논이승보살)이니라.

성문은 고요한 것을 지키는 것으로 닦음을 삼는 까닭에
마음이 늘 움직이고,
마음이 움직이면 귀신이 보게되는 것이다.
보살은 성품이 본래 빈 것을 깨달아서 그 마음이 저절로
고요하므로 자취가 없고,
자취가 없으면 외도와 마군이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승과 보살을 합쳐서 말한 것이다.

◈ 頌

三月懶遊花下路(삼월나유화하로)에
一家愁閉雨中門(일가수폐우중문)이로다.

《한자》懶(나른 할 나. 게으를)
        愁(근심 수)

봄바람 꽃길에서 오락가락 노니는데,
우중충 어떤 집이 빗속에 잠겨있네.


('붓다 뉴스'에 연재된 '원순스님'의 '선가귀감 강의' 중 발췌)

수행을 한다고 하면 우리는 깊은 산 속에서 고요히 앉아
선정에 들어 있는 수행자의 모습을 연상한다.
번잡한 세상을 떠나 숲 속에 홀로 앉아 한가롭고
고요한 상태에서 공부하는 수행자의 생활은 생각만 해도
아름답다.

그러나 '산 속에 홀로 정진하는 수행자'라는 틀을 만들어
그 안에 갇혀 있다면 그것은 참된 수행이라 할 수 없다.
가만히 앉아 마음을 닦고 있다고는 하지만 고요한 마음에
집착하는 것은 중생의 또 다른 시비분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처님의 진실한 뜻을 모르고 부처님의 말씀만 따라 수행하는 사람들을 성문이라 부른다.
얼핏보면 고귀한 수행자인 듯 하나 불법을 모르기에 수행에 진전이 없다.

부처님의 진실한 뜻을 알고 모든 집착을 떠나서 거침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수행자를 우리는 보살이라 부른다.
보살은 범어인 보리살타(菩提薩陀)를 줄인 말이다.
뜻으로 번역하면 '각유정(覺有情)'이라고 한다.
'보리'는 '각(覺)'의 뜻이 있고 '살타'는 '유정(有情)'
곧 중생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보살은 위로는 지혜로써 무상보리(無上菩提)를 구하고
밑으로는 자비로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육바라밀행(六波羅蜜行)을 실천한다.
지혜를 기르는 자리행(自利行)과
자비심을 기르는 이타행(利他行)을 함께 오롯하게 실천하여
그 힘으로 다가오는 세상에서 불과(佛果)를 성취하니,
보살은 가만히 앉아 깨달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용맹스럽게 깨달음을 구하는 수행자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자신의 공부를 이루기 위해
세상의 삶과 떨어져 사는 성문과 연각의 경계와는 차원이
다르다.
고요한 산 속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세간에 노닐면서도
지혜를 닦고 자비를 실천하며 수행하는 사람이다.
자신만을 위한 깨달음은 있을 수 없으며
깨달음의 성취도 바로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원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깨달음의 세계는 환상도 허구도 아니다.
자리이타를 실천하는 삶 속에 내재하고 있는
현실의 향기이며 여운이다.

고요한 경계를 취한다는 것은 아직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니 경계가 남아 있어 시비분별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생각을 일으키는 것은
중생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요,
마음이 움직이면 아무리 미세한 것이라도 갈등이 없을 수
없으니 그 틈을 타 귀신에게 홀리기 쉽다.

그러나 대승 보살은 그 성품이 본디 비어서 고요하므로
움직일 마음이 없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므로 시비분별 하는 마음의 자취가 있을 수 없다.
자취가 없으니 외도와 마군들이 찾을 수 없고,
그러므로 마구니에게 홀릴 일이 없는 것이다.
모든 경계에서 집착을 떠나 무심해져야 진짜 보살이요
참된 수행자가 되는 것이다.


[출처] § 선가귀감 § 본문 제72장
법광(法光) [2015-01-22] : _()_ 고맙습니다.
운암(雲庵) [2015-01-23] : 법공거사님 고맙습니다. _()_
대덕심 [2015-01-23] : 법공거사님 감사합니다. 좋은날 되시며 성불하십시오._()_
常不輕菩薩 [2015-01-23] : 잘 ,읽어봅니다..성불하십시오.._()_
보명화 [2015-01-24] : 고맙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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