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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가귀감 본문 제75장 [영원한 마음자리를 깨우쳐야 한다]
法空 2015-01-29 20:56:45, 조회 : 1,938, 추천 : 0
禪學者(선학자)는 本地風光(본지풍광)을
若未發明則孤초玄關(약미발명즉고초현관)을 擬從何透(의종하투)리오
往往(왕왕)에 斷滅空(단멸공)으로 以爲禪(이위선)하고
無記空(무기공)으로 以爲道(이위도)하며 一切俱無(일체구무)로 以爲高見(이위고견)하나니
此(차) 冥然頑空(명언완공)이라 受病幽矣(수병유의)니라
今天下之言禪者(금천하지언선자)가 多坐在此病(다좌재차병)이니라.

《한자》孤(홀로, 단독 고)
        초(가파를 초)
        擬(의심 의)
        俱(다 구)
        冥(어두울 명, 깊을)
        幽(깊을 유. 귀신)
        矣(어조사 의)

참선하는 이가 만약 본래 면목을 밝히지 못하고서야 높고
아득한 진리의 문을 어떻게 꿰뚫어볼 것인가.
종종 어떤 이는 아주 끊어져서 없어진 빈 것으로써 참선을
삼기도 하고,
무엇이라 말할 수 없이 빈 것으로써 도를 삼기도 하며,
온갖 것이 다 없는 것으로써 높은 소견을 삼기도 하니,
이런 것들은 캄캄하게 비기만 한 것이라 병든 바가 깊다.
지금 천하에 참선을 말하는 이들이 거의 이런 병에 걸려
있느니라.

무기(無記) : 非善非不善. 선과 악에 전혀 관계가 없는 상태.

완공(頑空) : 공견(空見), 공법(空法: 소승의 법과 소승의
             열반)에 집착하는 견해.

◎ 漢文本 註解

向上一關(항상일관)은 措足無門(조족무문)이라
雲門(운문)이 云(운) 光不透脫(광불투탈)이면 有兩種病(유양종병)이요
透過法身(투과법신)이라도 亦有兩種病(역유양종병)이니
須一一透得(수일일투득)하야사 始得(시득)하리라.

《한자》措(둘 족. 섞을 착)

아득하게 올라가는 한 관문은 발붙일 곳이 없다.
'운문선사'가 이르기를 "빛(본래면목)을 꿰뚫지 못하는데
두 가지 병이 있고, 법신(法身)을 꿰뚫은 뒤에도
또한 두 가지 병이 있는데, 모름지기 낱낱이 꿰뚫어야
한다."고 하였다.

◈ 頌

不行芳草路(불행방초로)하면 難至洛花村(난지낙화촌)이니라.

우거진 풀밭을 걷지 않고 꽃 지는 마을엔 언제 가리.

방초로(芳草路)는 본래면목(本來面目),
낙화촌(洛花村)은 법신(法身)이 깃들어 있는 곳.


('붓다 뉴스'에 연재된 '원순스님'의 '선가귀감 강의' 중 발췌)

참선하는 사람들이 선정과 지혜를 함께 갖추지 못하고 있다면
공부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모든 번뇌가 사라진 고요한 성품인 자신의 본바탕(본지本地)을
알면,
저절로 흘러 넘치는 온갖 지혜(풍광風光)로써 많은 중생들을
제도하게 되니,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어질고 자비로운 마음이다.

태양처럼 밝은 부처님의 지혜가 넘쳐 흐르는 이런 자비심 없이
수행자가 고요한 선정에만 집착하여
그것이 공부의 전부인 줄 알고 있다면 병이 깊은 것이다.

'본지풍광'을 달리 말하면 '보조스님'이 '수심결(修心訣)'에서 자주 언급하고 있는 '공적영지(空寂靈知)'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번뇌가 사라진 고요한 부처님의 마음자리를 '공적('空寂)이라 하고,
이 공적한 마음자리에서 일어나는 부처님의 지혜로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신령스런 앎을 '영지(靈知)'라고 하기 때문이다.

고요한 마음자리인 선정 속에서 밝은 지혜가 드러나고
밝은 지혜 속에 고요한 마음자리가 있어야 진정한 부처님의
세상이 다가온다.

'단멸공(斷滅空)'이란 화두를 챙길 때에 마음을 잘못 챙기므로
'공(空)'에만 집착하여 아무 것도 없는 고요하고 깜깜한 경계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도 수행자는 이 자리를 화두공부의 마지막인 줄 알고, 이 고요한 경계에 안주하고 집착하여 더 이상 공부할 생각을 내지 않는다.
이 경계를 '침공체적(沈空滯寂)'이라고 하니,
이 경계는 선(善)도 아니요 악(惡)도 아닌 경계이므로 '무기공(無記空)'이라고 한다.
  
'무기(無記)'에서 '기(記)'는 선인지 악인지를 판단하여
기록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무기는 선으로 단정할 수도 없고 또한 악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어 선도 악도 아닌 성품을 말한다.
이 텅 빈 성품에만 집착하여 깜깜한 곳에서 더 이상 화두를 챙기지 않고 안주함으로써 부처님의 지혜가 드러나지 않는 것이 '무기공'이다.
  
이 이치를 모르는 수행자들이 이 경계에서 '일체구무(一切俱無)'라고 하여
'함께 모든 것이 사라져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높은 소견으로 삼기도 하는데,
'단멸공'이나 '무기공'이나 '일체구무'는 공(空)에 집착함으로써 깜깜한 경계에 떨어져 생기는 병이니 모두 '완공(頑空)'이다.

부처님 세상이 환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면 수행의 마지막
자리에서 뚫어야 할 '높고 아득한 진리의 문(고현관孤玄關)'을 꿰뚫을 수가 없다.

여기서 말하는 '높고 아득한 진리의 문'이란 참선 수행자가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목숨 걸고 참구해야 할 화두이다.

화두를 참구하는 수행자의 생명은 화두이다.
이 화두를 통하여 마음속 깊이 숨어 있는 무명을 다 떨쳐야
비로소 공부를 마칠 수 있다.

대혜(1089-1163)스님의 '서장'에는 다음과 같이 자세히 나와
있다.

"운문(864-949) 스님은 말한다.
마음의 빛이 모든 번뇌를 꿰뚫지 못하는 데에 두 가지 병이 있다.
모든 곳에 밝지 못하므로 눈앞에 어떤 경계가 있는 것이
하나이다.
또 하나는 모든 법이 공(空)임을 꿰뚫었더라도 은근하게
어떤 경계가 있는 듯해서
또한 마음의 빛이 마지막 무명을 꿰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법신(法身)에도 두 가지 병이 있다.
법신에 다가갔더라도 법집(法執)을 떨치지 못했기에
자기의 지견(知見)이 아직 남아서 법신 언저리에 아직 머물러 있는 것이 하나이다.

또 하나는 설사 법신을 꿰뚫었더라도 화두를 놓쳤다면
곧 무슨 기척이 있는지를 꼼꼼히 점검할 수 없으니,
이 또한 병이다.

대혜 스님께서도 수행자가 넘어야할 마지막 관문인
이 경계는 아주 미세한 번뇌만 남아 있는 곳이니
중생들은 참으로 알아채기 어려운 곳이라고 한다.
중생들뿐만 아니라 성인에 가까운 십지(十地) 보살들도 알기
어려운 곳이라고 한다.
알기 어려운 곳이지만 화두 수행자는 화두에 의지하여
화두를 놓치지 말고 끝까지 공부를 지어나가야 한다.

어려운 수행이지만 그 수행의 가치를 알고서 기쁜 마음으로
맑고 향기롭게 닦아 가는 수행만이 아름다운 부처님 세상으로 갈 수 있는 길이다.
그러니 이 병을 알면 도리어 향기로운 약이 되어 공부를 해
마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출처] § 선가귀감 § 본문 제75장
정진화 [2015-01-30] : 법공거사님 반갑습니다 ,,항상 귀한법문 올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하루도 건강한하루 보내세요 _()_
정진화 [2015-01-30] : 능은스님 :나는 어리석은중생...들려주세요_()_
芙蓉(부용)거사 [2015-01-30] : 우리 법공거사님 빠쁜중에서 부처님 공부 열심히 하는 모습 보기 상당히 조ㅎ습니다...성불하이소...부용그림..
대덕심 [2015-01-30] : 법공거사님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_()_
정진화 [2015-01-30] : 스님 신청곡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_()_
법광(法光) [2015-01-30] : _()_
보명화 [2015-01-31] : 나무관세음보살 _()_
운암(雲庵) [2015-01-31] : 법공 거사님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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