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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가귀감 본문 제79장 [ 부처나 조사를 원수처럼 대하라]
法空 2015-02-10 20:21:52, 조회 : 1,958, 추천 : 0
大丈夫(대장부)는 見佛見祖(견불견조)를 如원家(여원가)하나니
若着佛求(약착불구)하면 被佛縛(피불박)이요
若着祖求(약착조구)하면 被祖之縛(피조지박)이라
有求皆苦(유구개고)라 不如無事(불여무사)니라.

《한자》원(원수 원. 원통할)
        縛(매일, 얽을 박)
        皆(다, 모두 개)

대장부는 부처나 조사 보기를 원수같이 하여야 한다.
만약 부처에게 매달려 구하는 것이 있으면 부처에 얽매이는 것이고,
만약 조사에게 매달려 구하는 것이 있으면 조사에게 얽매이는 것이 된다.
무엇이나 구하는 것이 있으면 모두 고통이 되므로 일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니라.

◎ 漢文本 註解

佛祖如원者(불조여원자)는 結上無風起浪也(결상무풍기량야)요
有求皆苦者(유구개오자)는 結上當體便見也(결상당체변견야)요
佛如無事者(불여무사자)는 結上動念卽乖也(결상동념즉괴야)라

《한자》乖(어그러질 괴)

'부처와 조사를 원수같이 보라'하는 것은
첫 머리의 '바람 없이 물결을 일으킨다'고 한 말을 맺음이고,
'구하는 것이 있으면 다 고통이 된다'는 것은
'다 그대로가 옳은 것이다'고 한 말을 맺은 것이며,
'일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것은 '한 생각이라도 일으키게 되면 곧 어기어 버린다'고 한 말을 맺은 것이다.

到此(도차)하여 坐斷天下人舌頭(좌단천하인설두)하고
生死迅輪(생사신륜)을 庶幾停息也(차기정식야)라
扶危定亂(부위정란)은 如丹霞燒木佛(여단하소목불)과
雲門喫狗子(운문끽구자)와 老母不見佛(노모불견불)이라
皆是최邪顯正底手段(개시최사현정저수단)이나
然(연)이나 畢竟如何(필경여하)오.

《한자》到(말할,설명할 도. 이를)
        迅(빠를 신)
        庶幾(서기: 바라건대)
        息(그칠 식. 숨쉴)
        扶(바로잡을, 다스릴 부)
        危(위태할 위)
        燒(불사를 소)
        喫(먹을 끽)
        최(꺾을 최)
        底(어조사 저)
        畢竟(필경: 결국에는, 마침내)

이렇게 되면 앉아서 온 천하의 혀끝을 끊게 되며,
나고 죽는 빠른 바퀴가 저절로 멈추게 되리라.
난리를 평정하고 나라를 평안하게 하는 것은 '단하선사'가
'목불(木佛)을 불살라버린 것'과
'운문선사'가 '개밥 준다'는 것과
'노파가 부처님을 아니 보려는 것'같은 것들이니,
모두 요사한 것을 꺾고 바른 것을 드러내는 수단이니라.
그러나 필경 어떠할 것인가?

단하소목불(丹霞燒木佛) : '단하천연(丹霞天然 739∼824)
  선사'가 어느 추운 겨울 낙동의 '혜림사'에 이르렀는데
  방이 너무 추우므로 법당의 나무불상을 쪼개어 불을 땠다.  
  이 절 원주가 이것을 보고 크게 나무라니 '단하'는 재를
  뒤적이며 "부처님의 사리를 찾는다."고 했다.
  이에 원주가 "목불상에서 무슨 사리가 나옵니까?"하니
  단하가 답하길 "사리가 나오지 않으면 나무토막이지
  무슨 부처님이오."하였다.
  사람마다 본래 불성을 가지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참 부처'를 등지고 밖으로 부처를 찾고 있음을 경책하는
  방편임.

운문끽구자(雲門喫狗子) : 석가모니 부처님이 정반왕의 아들로
  태어날 때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한 말에 대하여
  여러 조사스님이 해석하고 찬탄한 바가 많지만,
'운문(雲門. 864∼949)선사'는  "평지풍파를 일으켰으니
  내가 그 당시에 있었더라면, 그 아기를 한 뭉치로 때려잡아
  주린 개나 주어 뜯어먹게 하여 세상을 태평케 했겠다"고
  한 말.
  각자의 본래면목을 찾는 것이 중요함을 말한 것.

노모불견불(老母不見佛) : 부처님 계실 적에 '사위성'의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을 뵈러 길로 나오는데,
  성동(城東)의 한 노파는 부처님을 안 보려고 문을 닫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는데, 열 손가락 끝마다 부처님이
  또렷이 나타났다고 한다.
  손가락 끝에서 부처님이 나타나는 까닭은 노파가 모든 집착
  을 벗어나 노파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경계가 참 부처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다 있는 참 부처를 가리키는 말이다.
  부처는 어디에나 아니 계시는 곳이 없다는 말로서,
  부처의 육신을 보려함이 어찌 어리석은 일이 아닐 것인가
  하는 경구다.


頌

常憶江南三月裡(상억강남삼월리)에
자고啼處百花香(자고제처백화향)이라.

《한자》裡(때 리.이 / 속)
        자고(자고: 새 이름)
        啼(울 제)

자고새 노래하고 온갖 꽃 곱게 피는,
저 강남 삼월 놀이 언제나 그리워.

⊙ 언문 주해

이것은 이 책 앞 부분에서 "부처님과 조사께서 세상에 나오신
것은 마치 바람도 없는데 물결을 일으킨 것이다"라고 한 것을
맺은 것이니 앞뒤가 조화를 이루고 처음과 끝을 하나로 꿰었다고 할 수 있다.

"구하는 것이 있으면 모두 괴로움이 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없다.
다 그대로 옳다"는 것이고, "일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것은 "생각을 내면 곧 어긋난다"는 말을 맺은 것이다.

무릇 부처님과 조사의 세상에 나오심이 난세의 영웅이니
태평한 시대의 간적(奸賊) 같기에 '단하'는 목불을 태웠고,
老母는 부처 보기를 원치 않았으며, '운문'은 "때려 죽여
개에게나 던져주리라"하였거니,
이 모두 삿됨을 부수어 정법을 나타내려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필경에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동쪽 언덕에 구름이 이니 서쪽 언덕(사방 언덕)이 하얗고,
앞산에 꽃이 만발하니 뒷산까지도 다 붉네.


('붓다 뉴스'에 연재된 '원순스님'의 '선가귀감 강의' 중 발췌)

'임제록(임제 의현의 법어집)'에서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도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도 죽여라"고 한다.

이상향을 추구하는 대상으로서 '부처나 조사라는 경계'까지도 얽매이지 않고 뛰어넘을 수 있는 그런 근기(根機)야말로
참된 부처요 바른 안목이 열린 대장부이다.

'눈 푸른 납자'는 어떤 인연을 따르더라도 그 속에서 무심하게 모든 일을 성취해 내는 아름다운 성자의 삶을 만들어 내어야 하는 것이다.

'부처나 조사도 원수처럼 보라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부처와 조사들이 이 세상에 나오는 일도 깨달음의 근본자리에서 보면
바람 없는 큰 바다에 쓸데없이 거친 풍파를 일으키는 헛된
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구하는 것이 있으면 이는 모두 괴로움'이라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설해진 팔만사천법문이 깨달음에 다가가기 위한 임시방편인줄 모르고 그것에 얽매여 알음알이를 내고 그것이 옳은 법이라고 시비 분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비와 분별이 사라진 마음의 당체(當體) 그 밑바탕에서는 세상의 모든 법이 부처님 법으로서 같아지니
모든 것이 옳은 것이 된다.

이 당체(當體)를 벗어나 한 생각 움직이면 바로 근본 뜻에
어긋나니 '아무런 애도 쓰지 않느니만 못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참 부처가 아닌 형상으로 나타난 석가모니 몸에 집착하고
그가 한 말에 집착하여 참 부처를 보고 찾으려 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이것을 알고 있으므로 단하는 목불을 태우고 운문은
석가모니를 때려잡으며 노파는 석가모니를 보지 않으려고 한다.
  
이것은 모두 자신의 성품에 본디 갖추어져 있는 부처님을
알지 못하고 밖으로만 부처를 찾아 헤매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위한 자비심의 표출이다.

중생들의 잘못된 소견들을 깨뜨리고 올바른 앎을 드러내려는 방편이다.


[출처] § 선가귀감 § 선가귀감 본문 제79장
대덕심 [2015-02-11] : 선가귀감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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