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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금강경 金剛經 법회인유분
常不輕菩薩 2015-05-25 22:30:03, 조회 : 1,414, 추천 : 0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한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서  천이백오십 인의 큰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공양 시간이 되자 가사를 입으시고 발우를 드시고 사위성에 들어가 걸식을 하시었다.
차례대로 걸식을 하신 다음 본래 계시던 곳으로 돌아오셔서 공양을 하셨다. 공양을 마치고는 가사와 발우를
제자리에 놓으시고 발을 씻으신 다음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법회인유분.

해설

부처님은 공양 때가 되어 가사를 두르고 발우를 들고 걸식을 나가십니다.
부처님은 아무리 작은 일일지라도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으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옷을 입을 때는 그 옷과 하나가 되고 발우를 들 때는 그 발우와 하나가 되십니다.
공양을 하실 때는 음식 하나하나에 천지의 기운이 들어 있으므로 우주를 대하듯 정중하게 음식을 취하셨습니다.
나를 완전히 비운 마음이기에 우주의 모든 존재와 하나가 되신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문자를 떠난 '불립문자'의 세계라고 하지만 우리는 엄연히 이 현실 속에 존재합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 순간을 제외하고 다른 영원은 없으며, 이 자리를 떼어 놓고서는 영원의 다른 공간도 없습니다.
현재 이 순간을 영원답게 살기 위해서는 내가 있는 지금 이 자리에서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금강경으로 들어가는 문은 바로 여기서부터 열리는 것입니다.

금강경은 '내가 이와 같이 들었다'는 아난존자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로 경전이 시작하는 것은 불교 경전의 전통적인 형식입니다.
내가 들었다'고 하는 것은 내가 깨달은 것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보태거나 빼지 않고
그대로 전댤한다는 진실성을 담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설법한 시간과 장소 설법의 주인과 듣는 대중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은 '누가, 언제,어디서,무엇을,어떻게,왜 했다'는 현대 논리학의 육하원칙과 일맥상통합니다.
이러한 원칙을 철저히 지킴으로써 부처님 말씀이 있는 그대로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여(如)' 라는 말은 항상하고 영원하다는 뜻으로 안팎이 없는 진여의 세계를 말합니다.
시(是)'는 옳고 그름을 가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시(如是)란 항상하고 여여한 진리 자체라는 의미입니다.
부처님의 진리를 들을 때는 굴곡이 없는 여여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막을 씌운 편벽한 마음으로 듣지 말고 진여의 도리를 참 마음으로 듣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어느 누구의 얘기를 듣는다 하더라도 가능한 한 마음 깊은 곳을 보려 애쓰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영원한 마음자리에 부처님 말씀을 아로새겨 마음을 보배로 만들고 아름답게 장엄하면
세세생생 어디를 가더라도 보배스러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일시'는 어느 때라는  막연한 한 때를 의미합니다.
모든 불교 경전에는 구체적인 시간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불교의 독특한 시간관을 엿볼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시간이란 과거,현재,미래를 꿰뚫는 무시무종의 무량한 시간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육체적 한계 때문에 과거,현재,미래가 나누어진 듯 생각하지만 부처님의 세계는 시간을 초월한 세계입니다.
불교 경전에 언제라고 구체적인 시간을 밝히지 않고 '어느 때'라고 표현함으로써
그 시간이 바로 지금 이 순간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위국'은 사위성을 말합니다. 부처님이 태어나신 카필라국의 서북쪽에 있는 코살라국의 수도입니다.
기수급고독원'은 사위성에 있는 기원정사라는 절입니다.
왕사성의 죽림정사와 쌍벽을 이루는 부처님 당시 최대의 승원이었습니다.

기수'는 기타태자의 숲이라는 뜻이고 '급고독'은 급고독장자로 불리우는 수닷다장자를 말합니다.
기타태자의 숲을 급고독장자가 구입해서 승원을 지어 헌납하였다고 하여 기원정사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수닷다장자는 그 당시 사위성에서 제일가는 부자였으며 고독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를 좋아해서
급고독장자라고 불리웠습니다. 수닷다장자는 왕사성에 사는 친구 집에서 부처님을 뵙고 그 자리에서 귀의하게 됩니다.

수닷다장자가 부처님께서 머무실 절터로 찾은 곳이 바로 사위성으로부터 이 킬로미터 떨어진 기타태자의 숲이었습니다.
본래 절이란 사람이 사는 곳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왕래가 편안한 곳이어야 합니다.
기타태자는 그 숲을 팔 생각이 전혀 없었으므로 지나가는 말로 "내 땅에 황금 덩어리를 깔면 그것만큼만 팔겠다" 고
하였습니다. 수닷다 장자는 전 재산을 팔아서 황금으로 숲을 깔아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장자의 정성에 감탄한 기타태자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자신의 숲을 부처님께 기증하였습니다.
그때부터 기타태자와 급고독장자의 이름을 따서 기수급고독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위대한 시주들의 작품이었던 것입니다.

금강경은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걸식을 나가시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위대한 화주의 길을 떠나시는 것입니다.
발우를 들고 직접 걸식을 하심으로써 우리에게 금강경의 주제인 무상의 도리를 함께 깨우쳐 주고 계신 것입니다.
천이백오십 인의 비구' 라 함은 그 당시 부처님 제자들이 다 모였다는 말입니다.
그 때' 란 식사 때를 말하며 오전 아홉 시에서 열한 시 사이 즉 사시(巳時)를 가리킵니다.
부처님은 하루에 한 끼만 드셨는데 수행자들 사이에 오후 불식의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사는 아무 때나 입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과 제자들이 법회와 의식에서만 입는 법복입니다.
부처님께서 걸식을 나가실 때 가사를 입으시는 것은 걸식하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신 것입니다.
밥을 비는 일이나 의식을 행하는 일이나 똑같은 자세로 소중히 대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수많은 제자들이 있으므로 편히 앉아 공양을 받으셔도 될텐데
그것을 마다하고 손수 발우를 들고 걸식을 다니셨습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성취한 고귀한 분이지만 머리를 숙여 밥을 빎으로써
그들과 전혀 다름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평등한 마음 가운데는 너와 내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중생과 부처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손수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부처님은 아침마다 천이백 명이 넘는 제자들로 하여금 걸식을 나가게 하여
사위성이 스님들로 뒤덮이게 하셨습니다.
걸식을 다니게 되면 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부처님 말씀을 통해서 그들을 진리의 세계로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음식을 얻으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집집마다 부처님께 복을 짓는 광명을 고루 전달해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밥을 빌어먹는 것은 말할 수 없이 천한 수단이지만 부처님은 무명에 휩싸인 중생의 마음을 녹여 내고
복전을 일구어 그들로 하여금 새 삶을 열어 주시기 위해 공양을 받으셨습니다.
생사의 고통에서 중생을 구하고자 평생동안 맨발로 걸식하며 사신 것입니다.
진정 위대한 화주의 길이셨던 것입니다.

부처님은 한 사람이 일곱 집만 차례차례 걸식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다음 날은 다음 집에서부터 걸식하고 하루에 이틀 몫을 하지 말라고 이르십니다.
일곱 집 이상 걸식을 하게 되면 탐심이 붙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비가 주룩주룩 와서 걸식을 나갈 수 없었습니다.
아난존자가 "세존이시여,앞으로는 며칠을 대비해서 한꺼번에 걸식을 해 놓았다가 먹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하고 여쭈었습니다. 그랬더니 부처님께서는 "그런 소리 말아라. 수행자는 새와 같아야 하느니라' 고 대답하십니다.
자꾸만 축적해 놓으려는 중생들의 심성을 경계한 말씀입니다.
새들은 하루에 먹을 분량만 챙길 뿐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새둥지는 작아서 식량을 쌓아 놓을 곳이 없으므로 새끼 새들은 어미 새가 날라다 주는 먹이를 하루하루 받아먹고 삽니다.
수행자들 또한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몰아서 일을 하고 한꺼번에 쉬는 것은
수행자의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꾸준하고 견실하게 계속 수행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처님 제자 중 아난존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폐 끼칠 것을 우려하여 부잣집에만 가서 걸식을 하였고
반대로 가섭존자는 가난한 집만 찾아가 걸식을 하였습니다.
그것을 보신 부처님은 '그 두 가지 마음은 모두 분별심을 내는 일이니 공평하지 못하다.
어느 집이든 시작한 집에서 일곱 번째 집까지만 밥을 빌도록 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선한 뜻으로 행했다 하더라도 분별심은 상(相)을 내는 마음이므로 선별하는 마음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걸식을 하는데 이처럼 엄격히 이르신 것은 걸식이 무상을 실천하는 수행의 한 과정임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부처님과 그 제자들은 걸식을 마치고 본래 머물던 기원정사로 돌아와 모두 한 자리에 모여 공양을 합니다.
부처님은 초청 없이 갑자기 신도의 집을 방문하는 것을 금하기 위해 꼭 승원에 돌아와 식사를 하도록 하셨습니다.
규정된 장소에서 격식에 맞추어 공양을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공양을 마친 후 가사와 발우를  거두어들이고 발을 씻으셨습니다.
당시의 수행자는 맨발로 다녔으므로 밖에서 돌아오면 항상 발을 씻었습니다.
발에 묻은 먼지를 씻는다기보다 나에 대한 집착, 즉 상의 때를 씻는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큽니다.

부처님은 발을 씻으신 후 길상초를 편 자리 위에 단정히 앉으셨습니다.
이제 법문을 펼치기 위해 자리에 앉으신 것입니다.
자리를 펴고 조용히 앉으니 마음이 가라앉아 몸 뿐 아니라 마음도 그 자리에 놓에게 됩니다.
번뇌 망상이 사라지고 융통자재한 순수한 자아가 펼쳐지는 삼매의 세계가 열려옵니다.
그 가운데 집착의 마음을 잘라내는 금강반야의 지혜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금강경은 이러한 선정삼매 가운데 설해지게 됩니다.

부처님은 어떤 특별한 사건을 법회를 여는 동기로 삼지 않으셨습니다.
보통 사람처럼 지극히 평범한 부처님의 모습을 통해 일상 속에 반복되는 삶 자체가 道이며
가르침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 금강경 / 김승화
오도행 [2015-05-26] : 금강경 1분 법회의 인연 "해설을 올려주시여 일상 속에 반복되는 삶 자체가 도 라는 부처님 말씀 간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常不輕菩薩 [2015-05-27] : 어느 스님의 책머리말에서 정말로 금강경을 읽고 이해하고 받아들였다면 금강경 마지막 장을 덮는순간 나의 모습은 변해있을겁니다..라고 되어있더군요.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
대덕심 [2015-05-27] : 부처님 법문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_()_
常不輕菩薩 [2015-05-27] : 앙코르 와트를 다녀오시나 봅니다. 행복하시고 소중한 여행길 되십시오.._()_
길상화(吉祥華) [2015-05-27] : 귀한 법문 감사합니다._()_
常不輕菩薩 [2015-05-27] : 부처님 오신날 애 많이 쓰셨습니다.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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