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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9 20:39:50, 조회 : 1,815,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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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시되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하느니라.
존재하는 일체 모든 중생의 종류인, 이른바 알에서 태어나는 것,태에서 태어나는 것,습지에서 태어나는 것,
화현하여 태어나는 것,형상이 있는 것,형상이 없는 것,생각이 있는 것,생각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들을 내가 다 무여열반에 들게 하여 제도하리라.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을 제도했다 하더라도 실은 한 중생도 제도한 바가 없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만약 보살이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대승정종분
해설
대승정종분에서 부처님은 대승의 바른 목표가 무엇인지 말씀하고 계십니다.
대승정종분'이란 대승의 바르고 으뜸이 되는 가르침으로 금강경의 내용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입니다.
대승은 소승의 상대적인 말로서 산스크리트어로는 '마하 야나'라고 합니다.
마하'는 크다는 뜻이고 '야나'는 탈 것이라는 뜻입니다.
모두가 함께 탈 수 있는 큰 수레라는 말입니다.
소승이 혼자만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대승은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그들의 삶에 기여하면서
함께 인생을 도모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대승의 보살은 깨달음을 얻어 모든 중생들을 부처의 경지로 이끄는 영웅이므로
소승의 성문이나 연각하고는 그 궤도를 달리합니다.
금강경에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을 버리라고 거듭 강조합니다.
상이란 눈에 보이는 겉모습을 실체로 잘못 보고 집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허공계에는 무량한 차원의 세계가 있지만 우리는 물질세계에 속박되어 무한대한 차원의 세계를 모르는 채 살아갑니다.
마치 누에가 고치 속에 갇혀 있듯이 이런저런 상에 포박되어 장벽에 가려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껍데기에 집착하는 상을 벗어 버리면 우리가 곧 우주의 진리를 머금은 위대한 존재임이 드러납니다.
대승의 진리는 우리로 하여금 삼차원의 물질세계를 뛰어넘어 영원한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
무한대한 존재와 하나되게 하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이제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에게 마음을 항복 받는 방법에 대해서 설하시고자 합니다.
구체적인 보살행을 말씀할 차비를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껍데기에 불과한 데도 그것에 집착하기 때문에
마음을 항복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왜 남들이 봐주기를 바라고 특별한 대접을 받기 원할까요?
또 꼭두각시처럼 타인의 의견에 따라 울고 웃지 않습니까?
남들한테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어하는 그만큼 칭찬에 속박되어 있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고도 했다는 마음을 전혀 내지 않을 때 비로소 마음을 항복받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속박하는 상을 소멸하면 실체를 바로 보게 되어 반야지혜가 드러나게 됩니다.
상이라는 장벽을 부수기만 하면 우리는 언제라도 그곳에서 내 안의 부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두꺼운 장벽으로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칼 부세의 <파랑새>이야기처럼 우리는 마음의 본질을 깨닫지 못한 채 밖으로만 희망을 찾아 다니느라
인생의 대부분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희망이란 우리를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아직 오지 않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크면 클수록 고통 또한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오늘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이라는 사실입니다.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운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한
순간임을 깨닫는다면 바로 그 자리가 극락입니다.
오늘 내 마음이 극락이 아니면 다른 어디에서도 극락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중생이란 사람뿐 아니라 일체의 생명이 있는 존재를 말합니다.
우주에 태어나는 무량 중생은 태어나는 방식에 따라 난생,태생,습생,화생으로 나눌 수 있고
모양의 유무에 따라 유색과 무색,생각의 유무에 따라 유상과 무상,비유상 비무상 등 아홉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난생(卵生)은 새나 나비, 닭과 같이 알에서 태어나는 중생을 말합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은 뼛속이 비어 있어 허공을 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 가운데도 마음이 가볍고 이리저리 떠다니는 부허심(浮虛心)을 가진 사람은
다음 생에 난생으로 태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태생(胎生)은 사람이나 소,말 등과 같이 어미의 뱃속에서 사지가 갖추어져 출생하는 중생을 말합니다.
잠재의식 속에 숙망심(宿望心)이 있는 사람이나 마음 속에 알 수 없는 음험한 생각과 야심을 가지고 있으면
태생으로 태어납니다.
습생(濕生)은 모기나 물고기 등과 같이 습지에서 생겨나는 생물을 말합니다.
마음이 명랑하지 못하고 눈에서 물기가 가시지 않으면 그 침울한 마음 때문에 습생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물 기운이 너무 많아서 그 업장 따라 물 속에 사는 생물이 되는 것입니다.
화생(化生)은 남의 몸을 의지함 없이 홀연히 태어나는 존재를 말합니다.
천상이나 지옥에 나는 중생도 여기에 속합니다.
감성적으로 쏠리는 경향이 많아 감화를 잘 당하고,
다른 사람 이야기에 쉽사리 휩쓸리는 성품을 가지고 있으면 화생으로 태어납니다.
몸의 형태에 따라 유색과 무색으로 나뉘는데 유색중생은 모습을 지닌 중생을 말합니다.
집착이 강하고 자기 고집이 강하면 껍데기를 갖게 됩니다.
파브르 곤충기>에 보면 장수하늘소가 집으로 날아가는 길을 바꾸어 다른 곳에 옮겨 놓았더니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작은 날벌레조차도 그처럼 고착심이 강해 껍데기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 무색 중생은 물질에 대한 집착이 완전히 떨어져 나갔으므로 형태가 없습니다.
유상(有想)과 무상(無想)은 생각의 유무에 따른 분류입니다.
마음 가운데 무언가 바라는 생각이 있는 존재는 유상으로 오지만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는 중생들은 무상으로 옵니다.
비유상 비무상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 단계에 있는 중생들을 말합니다.
생각을 가졌다고 할 수도 없고 갖지 않은 것도 아닌 존재들이며 소망하는 바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일체중생을 아홉가지로 분류하지만 한 중생을 한 가지 모양으로만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모먕만이 아닌 여러 부류에 두루 걸쳐 존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경우를 보면 우선 태생에 속하고 껍데기가 있으므로 유색 중생이며 생각이 있으니 유상 중생에 해당됩니다.
사람의 껍데기를 벗어 버리고 영혼의 세계로 들어간 중생은 무색,유상 중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구류 중생으로 나누어 말하는 것은 모든 중생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언급한다는 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욕계,색계,무색계를 포함하여 이 우주에 있는 무량한 중생들을 총망라하여 구류중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보살은 이처럼 각양각색으로 살아가는 모든 중생을 무여열반에 들게 하겠다고 서원하는 존재입니다.
한 중생도 아니고 일체 모든 중생을 빠짐없이 제도하여 번뇌와 고통으로부터 해탈케 하겠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발할 수 있는 가장 큰 발원입니다.
이러한 서원의 삶이야말로 가장 수승하고 존귀한 보살의 삶이라 하겠습니다.
원은 꼭 이루어진다는 확신과 자신이 반드시 이루겠다는 노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이룰 수 없습니다.
원 없이 사는 삶은 산 송장과 진배가 없습니다.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 가르침대로 투철한 원을 세워야 합니다.
무량 중생을 제도하리라는 원을 바탕으로 할 때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고 몸과 마음을 다해
그 많은 중생을 교화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전달해서 광대무변한 우주의 일체 중생들을 모두 무여열반에 들게 했다면,
그 공덕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모든 중생을 부처로 이끌고도 실로 한 중생도 제도한 바 없다는 마음을 내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무량중생을 다 제도하는 그렇게 큰 공덕을 짓고도 내가 했다는 마음을 티끌만큼도 내지 않는 것이
진정한 마음의 항복입니다.
내가 중생을 제도했다는 마음을 터럭만큼이라도 가진다면 그것은 아직 상이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나'가 있다는 것이므로, '남'도 있게 되고 결국 하나가 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해주었다면 해준 것으로 끝내 버려야 합니다.
해준 마음을 툭툭 털어 버리고 잊으면 그만입니다.
이것이 인생을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살게 되면 언제 어디에 가도 누구에게나 환영 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보살행을 실천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이미 너와 나의 장벽이 사라져 구제하는 이도 구제받는 이도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제도하는 보살이나 제도 받는 중생이 본래 하나이며 부처의 씨앗을 지닌 불성 인간인 것입니다.
다만 중생이라 이름하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위대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란 정말로 불가사의한 존재입니다.
세상의 모든 컴퓨터를 다 합쳐도 이 킬로그램 정도인 사람의 두뇌에 못 미친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수한 두뇌를 가지고도 사람들은 평소에 칠 퍼센트 정도밖에 활용하지 못하고 산다는 것이
두뇌공학자들의 이야기입니다.
두뇌를 백 퍼센트 쓸 수 있다면 삼천대천세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도 셀 수 있는
아라한의 초월적 능력을 갖는 것도 불가능한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으신 후 이 세상 모든 존재가 불성을 가진 부처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무량한 중생을 제도했다고는 하나 실은 나를 통해 제도된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이 본래 가지고 있는 불성을 드러내 보였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한 중생도 제도한 바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무수한 중생을 제도하고도 마음 가운데 아무런 자취도 남기지 않을 때 비로소 대자유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금강경에서는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깨달음을 얻지 못하게 하는
최대의 장애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육조 혜능은 이 사상이 있으면 중생이요,사상이 없으면 부처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무량한 중생을 제도했다 하더라도 사상이라는 그릇된 마음을 항복 받지 못하면
부처를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상(我相)은 '나'라는 실체가 있다는 집착에서 벌어지는 모든 번뇌입니다.
이른바 '나' 라는 고집이며 '내가 누구인데'하는 우월의식이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고 '내 것' 이라고 여기는 이 몸은 지수화풍 네 가지 물질이 인연따라 만들어진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이 육신에 집착하여 영원히 지속시키려고 몸부림치고 욕심을 부립니다.
나'가 있다는 생각 하나로 만 가지 번뇌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 선사들은 '나'를 비우지 않고는 아무리 도를 닦아도 모두가 악마의 짓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인상(人相)이란 나와 남이 갈라져 있는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과 생각입니다.
사람과 짐승,성인과 범부를 차별하는 것으로 배타 의식이나 차별 의식을 말합니다.
내 것만 좋고 나만 옳다 하여 남의 의견이나 생각을 경멸하거나 물리칩니다.
중생상(衆生相)이란 '나는 고작 중생에 지나지 않는 못난 존재'라는 열등의식을 말합니다.
자기가 중생이라고 생각하면 중생이고 부처라고 생각하면 부처입니다.
자기를 비하하는 중생심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위대한 성불의 길을 결코 걷지 못할 것입니다.
수자상(壽者相)은 '한 세상 살면 그만인데' 하는 한계 의식을 말합니다.
우리가 한 세상만 살면 그만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칠십 년 살면 그만인 존재가 아닙니다.
이 육신은 한동안 쓰다가 던져 놓고 가야 되는 도구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는 내생을 또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이와 같이 사상은 모든 중생들이 실체가 아닌 것을 실체로 잘못 보는 것을 통틀어 말하는 것입니다.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이렇게 네 가지로 이야기하지만 이 네 가지는 서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닙니다.
서로 얼키고 설켜서 각양각색의 마음을 잉태하고 팔만사천 가지 번뇌를 연출합니다.
부처님은 사상을 부정함으로써 껍데기를 영원불멸한 실체로 보려는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배척하신 것입니다.
이 네 가지를 완전히 떨쳐 버려야 실상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일체가 껍데기임을 바로 알게 되면 무량중생을 모두 무여열반에 들게 했더라도
내가 했다는 전도된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대승정종분은 금강경 전체의 주제가 되는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구경무아분에서 다시 되풀이 됩니다.
금강경 안에 사상에 대한 언급이 열한 번 정도 나오는데 금강경의 가르침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이 네 가지 상을 극복하라는 내용이 주도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마음이 부처라면 / 하윤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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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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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을 지혜와 자비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게 하느 가장 바르고 으뜸이 되는 위대한 부처님의가르침인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배우고 익혀서 불자로서 신행을 실천하도록 열심히 공부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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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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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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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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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상이 일체 모든 존재의 상에 빠지는 근원이 된다는 부처님 말씀 새기며 공부합니다..마하반야바라밀..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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