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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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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6 18:58:29, 조회 : 1,328,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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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하겠느냐? 여래가 법을 설하였다 하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리기를
제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알기로는 일정한 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이름할 것이 없고 또한 일정한 법을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법은 취할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법도 아니고 법 아닌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현인 성인들께서 무위의 법으로써 여러가지 차별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얻을것도 설할것도 없음.
해설
무득무설(無得無說)은 깨달음을 얻은 바도 없고,법을 설한 바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은 언제나 진리 그대로인 세계입니다.
진리는 항상 온 우주 법계를 고루 비추고 있지만 중생들은 자신이 일으키는 번뇌의 틀 속에 갇혀서
보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새로운 진리를 말씀하신 것도 아니고 새로운 가르침을 펼치신 것도 아닙니다.
다만 중생의 근기에 맞게 비유법이나 인연법으로 설하시어 중생을 깨닫게 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세계로 이끄셨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어떤 고정된 법이 없는 무유정법인 것입니다.
부처님은 열반에 드시기 얼마 전 숲에 있는 나무 가지를 하나 꺾어 보이시며
내가 설한 법은 이 나뭇가지의 나뭇잎 수와 같고,아직 설하지 못한 법은 저 숲 속에 남아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뭇잎 수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설하신 말씀보다 설하지 않은 말씀이 끝이 없이 많다는 뜻입니다.
부처님의 설법이 끝이 없는 것은 중생들의 번뇌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십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수많은 법문을 설하시고도 아무 것도 설한 바가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야,네 생각은 어떠하냐" 고 물어보십니다.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상대방의 생각을 먼저 물어보는 것은 지혜로운 사고 방식입니다.
우리는 경전 내용뿐 아니라 부처님의 어법을 통해 민주적인 설득의 태도와 포용력 있는 마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으신 후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설법을 하셨습니다.
사십구 년간 설법하신 내용이 팔만대장경이란 방대한 분량으로 집대성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아무것도 설하신 바가 없다고 하시니 참으로 의아해 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부처님의 경계는 말이 필요 없는 무설(無說)의 세계이고, 이심전심의 세계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이해하는데 문자에만 얽매이지 말고 문자 속에 감추어진 부처님의 마음을 읽어 내야 합니다.
부처님 경전은 어디까지나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길 안내서일 뿐입니다.
깨달음의 세계는 말로 설명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체험을 통해 스스로 몸과 마음으로 느껴보아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체험한 것만 알아들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각자의 마음자리대로밖에 못 듣는 것입니다.
법화경에 나오는 일수사견(一水四見)의 예를 통해서도 이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물을 보면 물이라고 하는데, 아귀는 물만 마시면 입에서 불이 나오니 불이라 하고,
물고기는 나의 집이라고 하며, 하늘나라에 사는 천인들은 감로수라고 합니다.
똑같은 물을 보고도 이처럼 견해가 다릅니다.
불교를 쉽게 믿거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달리 없습니다.
실제로 수행을 해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며,
행동으로 이어 나가 부처님과 하나 되는 경지를 체험해야 됩니다.
이 단계를 신해행증(信解行證)이라 하며 이 과정을 거치면서 환희심이 나게 되고 신심이 더욱 투철해지는 것입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고정화된 실체법이 없는 세계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것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다"라고 예기하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마음 가운데 지혜의 불이 켜진 것일 뿐 특별히 눈에 보이게 얻은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깨달음 자체는 두고두고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차원이 달라지고 지견이 달라져 그의 삶이 근본적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최상의 깨달음을 얻는 것도 여러 길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참선을 하는 것도 부처가 되는 길이고,염불이나 간경을 하는 것 또한 부처가 되는 길입니다.
히말라야 산맥에 올라가는 데도 여러 갈래 길이 있고,
서울에서 부산에 갈 떄도 여러 방법으로 갈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의 근기에 따라 가는 길이 다르므로 고정된 법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현실의 삶에서는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최고의 성공으로 비유해서 이해하면 됩니다.
성공이라는 목표 지점에 가는 길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가나 법률가로 성공하는 사람,돈을 많이 벌어 성공하는 사람,아름다운 시를 써서 노벨문학상을 받는 사람,
테레사 수녀처럼 오지에서 봉사하는 사람,섬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천직으로 삼는 선생님 등
각자의 성공 목표가 다 다른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 갈래 길이 있다고 모든 길을 다 갈 수는 없습니다.
결국은 하나의 길만 선택해서 가야 됩니다.
우리 인생 여정은 선택의 연속이며 한번 선택하면 되돌리기가 어렵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이란 시에 보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을 노래한 구절이 있습니다.
가지 않은 길에 미련도 가져보고 후회도 해보지만 그렇다고 다시 되돌아 나와 다른 길을 가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의 길을 선택해서 흔들림 없이 꾸준히 갈 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무조건 나를 따르라고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나는 길 안내자로 많은 사람을 좋은 길로 안내하지만 가고 안 가고는 너희에게 달렸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길만이 최고의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갈래 길 중에 내가 가는 길만이 옳다고 주장하면 싸움을 부르게 됩니다.
칼 야스퍼스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유일한 종교가 불교라고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진실한 법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형태가 있거나 상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손에 넣을 수도 없으며 말로 설명되지도 않습니다.
진리의 세계를 말로 설명하자니 이것이 옳다,저것이 옳다 다투게 됩니다.
그러나 진리는 시시비비를 떠난 초월적인 자리에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는 가르침입니다.
어느 날 한 바라문이 부처님을 찾아와 "이것이 맞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네 말이 맞다"고 하시고,
다른 외도가 찾아와 반대의 의견을 말해도 "네 말도 옳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난존자가 "세존이시여,어떻게 두 사람의 말이 다 옳다고 하십니까" 하고
여쭈었더니 "그래,네 말도 옳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이것만이 옳다는 고정된 법이 없음을 가르쳐 주려는 것입니다.
근기에 따라 보는 눈이 천 층 만 층으로 다르기 때문에 이것만이 옳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가장 옳다고 주장하던 것들도 세월이 지나고 나서 보면
내가 그때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후회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고정된 실체법이 없는 차원을 무위법이라고 합니다.
무위법은 현상세계를 떠난 법이므로 말할 수도 없고,취할 수도 없으며,
법이라고 할 수도 없고,법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불법은 만상을 다 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진리의 한 측면만 보고 옳고 그르다는 상을 내는 것은 잘못입니다.
많은 성자와 현인은 무위로 법을 삼으나 단계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느 경우에라도 물과 젖처럼 서로 녹아들어 전혀 다툼이 없습니다.
이익과 손해의 차원을 떠난 것이고,시비곡직을 떠난 차원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무언가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아낌없이 주면 얻으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나에게 오는 것이 세상의 법칙이고
이 우주를 다 차지하는 비결입니다. /옮김
& 허공 / 하윤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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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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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 성덕수 법우님의 얻을것도 없고 설할것도 없다는 무득무설분에서 "나는 길 안내자로 많은사람을 좋은길로 안내하지만 가고 안가고는 너희에게 달렸다"는 부처님 말씀가슴 깊이 새겨봅니다 성불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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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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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행 아직 초보자라 해설집을 읽고 또읽고 스님 설명들으니 더욱 쉽게 이해됩니다 정말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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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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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해설분을 읽고 또 읽어보시는 오도행 法友 님 말씀 고맙습니다.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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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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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립문자에 따라 의미 해석하려 하지 말라는, 형식에 집착하지 말고 체험을 통해 스스로 몸과 마음으로 느께보아야 부처님 세계를 알수 있다는 말씀을 새깁니다..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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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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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금강경 해설분이 깁니다. 설하실때 따뜻한 차로 목을 축이시며 설하십시오..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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