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head9.jpg
Home 방송안내 신행생활 음악수필 불교강좌
 
  운영자인사
  운영자소개
  방송시간표
  생방송듣기
  방송대화방
  윈앰프설치
  사이버연등
  후원금보시

무창포불교대학


  방송게시판

 9,금강경 金剛經 일상무상분
常不輕菩薩 2015-06-10 22:19:28, 조회 : 1,511, 추천 : 0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다원이 생각하기를,
나는 수다원과를 얻었다 하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리기를,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수다원은 성인의 흐름 속에 들었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들어간일이 없습니다.
빛,소리, 냄새, 맛, 닿음, 법에 들어가지 않으므로 이름을 수다원이라 합니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다함이 생각하기를 내가 사다함과를 얻었다 하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리기를,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사다함은 한번 왕래한다 하지만 사실은 왕래함이 없으므로 이름을 사다함이라 합니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나함이 생각하기를 내가 아나함과를 얻었다 하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리기를,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아나함은 다시 오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다시 오지 아니함이 없으므로 이름을 아나함이라 합니다.
수보리야,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라한이 생각하기를,
내가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 하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리기를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사실 은 아무법도 있지 않은 것을 아라한이라 이름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아라한이 생각하기를, 내가 아라한과를 얻었다. 한다면 이것은 곧 나다, 사람이다, 중생이다, 오래산다는 생각에 빠져 드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저에게 다툼없는 삼매를 얻은 사람 가운데서 제일이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첫째 가는 욕심없는 아라한이지만,
세존이시여 저는 욕심없는 아라한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만일 생각하기를,
내가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 한다면 세존께서는 수보리에게 아란나행을 좋아하는 자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시나 수보리가 실 제로는 행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수보리는 아란나행을 좋아하는 이라고 이름하셨습니다..
---------------------------------------------------일체의 상을 여읨



해설

일상(一相)' 이란 상대적인 개념을 떠나 하나로 통합된 깨달음의 경지를 말합니다.
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렀어도 깨달음을 얻었다는 마음을 낸다면 그 순간 상에 빠져 버리게 됩니다.
깨달음은 실체가 없는 것이므로 집착하지 말고 과감히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 경계가 바로 일상무상의 경계입니다.

상(相)은 나와 남을 가르는 마음의 장벽입니다.
장벽을 벗어 버리고 나와 남을 분별하지 않으면 이 우주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화엄경에서'허공은 나의 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우주에 있는 모든 삼라만상은 부처님의 기운을 머금고 살아가는 하나의 존재입니다.

우리 몸 속에 있는 세포들은 상호 관계 속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면 모든 세포들이 같이 죽어 버리고 맙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많은 사람들과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합니다.
나만 특별한 존재라는 상을 내는 것은 조화를 깨게 되므로 자신은 물론 주위 사람을 불행으로 이끄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소승불교에서는 깨달음을 닦아 성인이 되는 단계를 성문 사과(四果)라 하여
수다원, 사다함,아나함,아라한으로 나눕니다.
근본적으로 마음자리에 불성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성인이나 우리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어떤 구분이 있어서 성인이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세계,인격이 고양된 정도로써 성인이라 하는 것입니다.
성인이라 할지라도 겉으로는 우리와 대동소이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순간순간 만나는 사람들이 성인의 분신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수다원이란 성인의 길에 들었다고 하여 입류(入流)라 하기도 하고,
도도히 흐르는 삶의 거센 물결을 이긴 존재라는 뜻으로 역류(逆流)라고도 합니다.
모먕,소리,냄새,맛,촉감,법의 물질경계로부터 자유로워져 어떤 형상에도 끄달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아 있는 습을 끊지 못했으므로 일곱 번 더 인간으로 와야 생사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성자의 반열에 들어간 존재라고 하지만 들어가고 말고 할 자리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수다원이 스스로 수다원과를 증득했다고 생각한다면 아상에 속박되어 있는 것입니다.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은 내가 누구라는 것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제트기 엔진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드는 스웨덴의 한 회사는 광고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제품을 사용해 본 전 세계 사람들이 우수성을 인정해서 그 회사 제품만 찾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실력과 능력이 출중하면 내가 세상에 나서지 않아도 세상이 나에게 다가오는 법입니다.

물질세계를 이겨낸 수다원의 경계는 현실 생활 속에서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경계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을 살다보면 먹고 마시고 즐기는 물질경계에서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욕심이 끝이 없기에 절제하기도 힘이 듭니다.
그러나 물질경계에 함락당하지 않고 이겨냈을 때의 희열은 느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자긍심이 크기 때문에 어떤 강한 유혹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물질경계에 빠지지 않도록 마음의 브레이크를 잘 조종해야 합니다.

사다함은 성문 사과 중 두 번째 단계로 일래(一來)라 합니다.
이 세상의 물질경계에 미련이 남아 있지 않아 한 번만 오면 다시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습니다.
현재의 업은 끊겼지만 과거의 업이 아직 남아 있어서 한 번 더 윤회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이나 인간 세계에 태어났다가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이르게 되는 경계입니다.
그러나 사다함이라는 단계에 올랐다 하더라도 '내가 사다함과를 얻었다'라는 상을 가지고 있으면 이미 사다함이 아닙니다.

일상이 무상이므로 이 우주법계는 오고가는 자리가 따로 없는 하나의 세계입니다.
깨달음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하나이므로 천상이나 지옥이나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살도를 걷는 사람은 지옥에 태어난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도 않으며 천상에 태어난다고 해서 기뻐하지도 않습니다.

아나함은 불환(不還)이라 하여 인간 세계에 다시는 오지 않는 존재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한 관심과 집착이 떨어져 버렸기에 다시 올 필요가 없습니다.
다시 오지 않는다고 하지만 떠나야 할 세계가 있고 태어나야 할 세계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 역시 상입니다.
아나함은 이 세상에 온다 혹은 오지 않는다는 분별심을 넘어선 경지이므로 이름을 아나함이라 말할 뿐입니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밑바탕에는 사랑하는 마음이 깔려 있고 그 마음 따라 발걸음이 움직입니다.
좋아하는 물건이 있으면 그 물건이 있는 시장에 갈 것이고,
음악을 좋아하면 음악회에 갈 것이며 미술을 좋아하면 전시회에 갈 것입니다.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탐닉하게 되고,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집착하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사바세계의 물질경계에 집착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이 세상에 계속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좋아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 다시 올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수행을 통해 집착하는 마음을 떨쳐 내라는 것입니다.

아라한은 욕계,색계,무색계를 벗어나 해탈을 이룩한 성자로서 깨달음의 가장 높은 단계를 성취한 존재입니다.
온갖 번뇌에서 벗어나 생사를 초월했기 때문에 다시는 몸을 받지 않으므로 불생(不生)이라고 합니다.
물질의 경계를 떠나 몸은 태어나지 않고 마음만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좋아하니까 육신이 생기고,눈으로 보기 좋아하니까 눈이 생기며,
귀로 듣기 좋아하니까 귀가 생깁니다. 좋아하는 마음 따라 생기는 것입니다.
욕망을 버리고 탐착하는 마음이 없으면 육신이 필요 없는 존재가 됩니다.

아라한이 깨달음의 가장 높은 단계를 성취했지만 만약 내가 아라한도를 얻었다고 한다면
얻을 법이 있다는 상에 집착한 것입니다.
어떠한 고정된 법이 있어서 아라한도를 얻은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을 아라한이라 할 뿐입니다.
아라한이라고 하는 자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세계입니다.
경전에 보면 아라한은 삼천대천세계에 떨어지는 빗방울 숫자를 한 눈에 다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뉴턴이 기사작위를 수여받을 때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우주의 모든 진리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으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그랬더니 뉴턴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이 어마어마한 대우주 가운데 아주 작은 편린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치 저 바닷가에서 어린아이가 예쁜 조개껍질을 하나 주워 들고 좋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아라한 같은 성인의 세계나,영원의 세계인 우주는 어마어마한 세계입니다.
그 세계는 말로 설명되는 자리가 아니고 직접 깨달아서 아는 자리입니다.
우리도 끊임없이 수행정진하여 그들의 지견이 되어 보면 그 경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란나는 적정처 혹은 무쟁처라고 해서 번잡함을 떠나 조용하고 다툼이 없는 장소를 말합니다.
또한 번뇌와 시비가 끊어진 고요한 마음자리를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일체의 상을 떨쳐 버리고 일체의 다툼이 없는 경지에서 고요히 수행하는 것을 아란나행이라 합니다.

무쟁삼매는 일체 모든 상이 떨어져 남과 다투지 않는 경계입니다.
나와 남을 분별하는 상이 없으면 너와 내가 하나이기 때문에 다툴 이유가 없습니다.
부처님은 수보리가 이런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에 무쟁삼매를 얻은 사람 가운데 으뜸이라고 칭찬하셨지만
수보리는 그 칭찬에 흔들리지 않습니다.그런 상을 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아란나행을 즐기는 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수보리는 공의 도리를 가장 잘 이해하여 혜공제일로 불립니다.
부처님께서는 만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공관(空觀), 가관(假觀), 중관(中觀)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공관은 무한한 진리의 세계, 無의 경계를 인지하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영원을 생각하고,보이지 않는 세계를 생각하고,부처님을 향한 뜨거운 신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마음 가운데 공관이 서 있기 때문입니다.

가관은 현상세계, 有의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말합니다.
자식들이 좋은 학교에 들어가야 되고, 돈도 많이 벌어야 되는 등 현실세계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견해입니다.

중관은 공관에도 쏠리지 않고 가관에도 쏠리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하나로 보는 것을 말합니다.

중도의 입장에 서서 살아가는 존재들을 대승보살이라고 합니다.
사바세계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현실의 삶에 충실하면서 마음 가운데는 무한세계를 머금기 위해
마음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참다운 마음공부는 시끄러운 세속을 떠나 조용한 산 속에 들어가야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몸은 세속에 있더라도 마음을 고요히 하고 번뇌와 시비를 끊어 버리면 그것이 진정한 마음공부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부부일심동체라는 말이 무색하게 매일 얼굴 맞대고 살아가는 남편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죽을 고생하며 낳아 키운 자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라는 상에 사로잡혀 내 잣대로 세상을 살아가려니 괴로움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내 잣대를 버리고 상대방을 존중할 때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나'라고 하는 독사가 자리하고 있는지 순간순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는 상에 사로잡혀 남에게 칭찬받고 대접받으려 합니다.
권력의 힘을 빌려 군림해 본 사람이나, 대중의 인기를 누려 본 사람은 그 환호를 더욱 잊지 못합니다.
왜 사람들은 그토록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끌려 하고,남이 자기를 보아주기를 바라는 것일까요?
그것은 나는 무엇인가 특별하다는 상에 사로잡혀 자신의 본모습을 잊은 채 꼭두각시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가 나를 잘났다고 얘기하면 자신이 잘난 줄 알고,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참담한 기준에 빠져버립니다.

남에게 대접 받으려 하지도 말고 칭찬 받으려 하지도 마십시오.
그게 다 빚입니다.부처님 말씀 가운데 '남들이 들려주는 말로 도둑이 되지도 말고 아라한도 되지 말라'
는 말이 있습니다.그래서 칭찬을 마구니로 생각하고 오히려 귀에 거슬리는 말을 업장을 녹이는
고마운 말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남의 칭찬에 연연해 할 것도 없고 남의 비난에 괴로워 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들은 그 누구에 의한 인생이 아니라 자신에 의한 인생을 펼쳐 가야 합니다.     / 옮김




& 얼마를 닦아야 거울마음닮을까 / 하윤주
오도행 [2015-06-11] : 일상무분별은 해설을 읽어도 이해가 어렵네요 아직 초보불자로서 깊이가 없다보니 느낌이 와 닿지가 못하여 스님 말씀 듣고 다시 공부하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常不輕菩薩 [2015-06-12] : 모든것이 허공과 같음을 깨우처 일어나는 사상없이 모든 번뇌를 여위어서 시시비비 다투지 않는 무쟁삼매로 들어 아란나행을 즐길수 있는 마음공부를 하도록 노력을 해 보면서 이해가가지 않는 곳에서는 이해가 가도록 스님말씀 경청하겠습니다..._()_
常不輕菩薩 [2015-06-12] : 오도행 法友 님 크리스찬에서 불교로 개종을 하신걸로 알고 있는데요.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불교와 크리스찬은 거의 일맥상통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스님, 저의 생각이 맞는지요.??.._()_
芙蓉(부용)거사 [2015-06-12] : 불교와기독교는 완전하 틀리죠...불교는 인본주의고..기독교는 신본주의임...다르죠...
常不輕菩薩 [2015-06-12] : 부용거사님, 신본주의와 인본주의..신과 사람이라는 의미인데요. 제가 크게 착각을 했습니다..성불하십시오.._()_


  이전글 육조대사 법보단경 쉰 두번째 시간 [선조... [1] 法空 2015-06-11
  다음글 잡아함경 - 절약은 하되 인색해서는 안된다... [1] 법광(法光) 2015-06-10

목록으로 수정하기 삭제하기 추천하기
ⓒ 2001-2004 by Passkorea Co., Ltd. All rights reserved   

후원금보시함

신행상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