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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금강경 金剛經 지경공덕분
常不輕菩薩 2015-06-25 22:05:13, 조회 : 1,520, 추천 : 0
수보리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아침에 항하의 모래 수같이 많은 몸으로 보시하고 한 낮에 또 항하의 모래 수같이 많은 몸으로 보시하고 저녁에도 역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몸으로 보시하기를 한량없는 백천만 겁 동안 몸으로 보시한다 해도 만일 또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듣고 믿는 마음으로 따르기만 하여도 그 복은 저 복보다 더 수승하느니라.
어찌 이 경을 쓰고 받아 지ㅓ녀읽고 외우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해설하여 줌이야 말할것이 있겠느냐.
수보리야 중요한 것을 들어서 말하면
이 경은 가히 생각할수 도 없고 가히 헤아릴수없는 한 없는 공덕이 있느니라
여래는 대승의 마음을 낸 사람들을 위하여 이 경을 설하며 최상승의 마음을 낸 사람들을 위하여 설하느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능히 받아 지녀 읽고 외우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널리 일러주면 여래께서는 이 사람을 다 알고 이 사람을 다 보나니, 이 사람은 한량없고 말할수도 없고 생각할수도 없는 큰 공덕을 얻느니라. 이와 같은 사람들은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짊어짐이 되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약 소승법을 좋아하는 사람은 나라는 소견, 사람이라는 소견, 중생이라는 소견, 오래산다는 소견에 빠져들어 곧 이 경을 능히 듣지도 지니지도 읽지도 외우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해설하여 주지도 못하느니라
수보리야 어느 곳이든지 만약 이 경이 있는 곳이면 모든 세간의 하늘, 사람, 아수라가 마땅히 공양을 올려야 할 바이니 , 마땅히 알라.
이 곳은 부처님의 탑을 모신 곳과 같으므로 모두가 마땅히 공경하고 예배하고 주위를 돌면서 모든 꽃과 향으로 그 곳을 덮어야 함이니라..
------------------------------------------경을 지니는 공덕.


해설


지경공덕분에서는 금강경을 수지독송하고 남을 위해 설해 주는 공덕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경전을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 까닭은 부처님 말씀을 공부한 후의 삶의 모습이 그 전과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 가운데 진리를 간직하게 되면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도 점차 긍정적인 차원으로 변모되어집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키가 자라는 것을 스스로는 잘 모릅니다.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자신의 키가 컸음을 알 수 있듯이
마음이 자라나는 것도 알아차리기가 어렵습니다.부처님 말씀을 듣고 진리의 가르침을 가까이 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의 치수가 훌쩍 자라나 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세속에는 여러 가지 많은 책들이 있지만 금강경을 공부하는 것과 그 차원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탐욕을 바탕으로 한 지식들은 세월이 흐르면 변질되고 없어지지만 마음에 간직한 부처님 말슴은 영원무궁합니다.
금강경은 부처를 이루게 하는 최상의 가르침이므로 이 경전을 모셔 둔 곳은 부처님의 탑을 모신 것과 같아서
인간,천인,아수라가 공양하게 됩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생활하는 시간대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새벽 세 시부터 아홉 시까지를 초일분,
아홉 시부터 오후 세 시까지를 중일분, 오후 세 시부터 저녁 아홉 시까지를 후일분이라고 합니다.
초일분,중일분,후일분에 걸쳐 보시한다는 것은 하루 온종일 쉬는 시간 없이 보시한다는 뜻입니다.
항하의 모래 수만큼이나 많은 몸으로 보시한다는 것은 한 생뿐만 아니라 수천만억 겁 동안 남을 위해
내 몸을 보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죽어서 썩어버릴 몸뚱이인데도 아끼고 애지중지하며 남을 위해 일하는 데 무척 인색합니다.
이렇게 소중한 우리의 목숨을 한 번이라도 보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물며 무량 백천만억 겁에 걸쳐 몸을 아깝지 않게 생각하고 보시하는 공덕은 정말 헤아릴 수 없이 클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공덕보다 금강경을 듣고 마음에 거슬리는 것 없이 투철하게 믿게 되었다면 그 복이 훨씬 더 크다는 것입니다.
더우기 금강경을 잘 받아 지니고 독송하여 남을 위해 설하는 공덕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소중한 목숨으로 보시를 하여 큰 복을 얻는다 하여도 그 복은 언젠가는 사라질 유위의 복일 뿐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 마음 가운데 새겨져 억천만 겁이 지나도 변치않는 영원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은 물질에 탐착하여 오염된 우리의 마음을 청정하고 밝은 본래의 마음으로 되돌아가게 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는 공부는 껍데기를 공부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본질적인 공부란 마음을 닦는 공부입니다.
의식을 맑혀 한 곬로 집중하다 보면 거기에 거대한 우주가 형성되어집니다.
이처럼 우리의 의식이 확장되면 될수록 아주 미세한 것까지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경전에 보면 사람 몸 받기가 하늘에서 바늘이 떨어져 겨자씨에 꽂히는 것만큼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모든 생물의 정자와 난자 중에 사람의 것이 제일 작아서 300배율의 현미경으로 보아야만 볼 수 있습니다
허공계에서 이처럼 작은 정자와 난자를 볼 수 있으려면 고도의 집중을 통해 정화된 정신세계를 이룩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금생에 기도 정진으로 마음을 맑히는 것은 내생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일이기도 한 것입니다.

금강경의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이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닫는 공덕이며 일체 중생을 성불케 하는 공덕입니다.
그러므로 이 금강경의 가르침은 아무한테나 설해지는 것이 아니라 대승보살도를 향하는 사람들,
최상상의 마음을 낸 사람들을 위해서 설해지는 것입니다.
대승의 보살은 나 혼자만의 깨달음을 구하지 않으며, 일체중생을 제도하고서도 한 중생도 제도했다는마음을 내지 않는 대승보살행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육조 혜능은 '금강경 오가혜' 에서 '최상승이란 더럽다고 싫어하지도 깨끗하다고 구하지도 않으며,
제도할 중생도, 증득한 만한 열반도 없으며,중생을 제도한다는 마음도, 중생을 제도하지 않겠다는 마음도
갖지 않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최상승의 마음을 낸 사람은 물질계의 작은 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성불하여 이 땅을 불국토로 만들고자 하는 대승의 가장 높은 법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금강경을 잘 받아 지니고 독송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설하게 되면 부처님이 그 사람을 다 알고 다 보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경을 공부한 사람은 곧 여래의 깨달음을 함께 이어받은 사람입니다.
바로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거대한 힘이 그의 어깨 위에 드리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여래의 능력과 위신력을 하나도 빠짐없이 자신의 것으로 이어받아서 모든 것을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갖게 됩니다. 불보살의 가호지묘력이 항상 그 사람에게 작용하여 도저히 헤아릴 수 없고
측량할 수 없으며 끝이 없고 불가사의한 공덕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께서 우주의 모든 것을 낱낱이 내려다보고 계시고 사진을 찍고 계시다는 사실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은 악한 사람이 득세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바른 것은 생명성을 영원히 보장받을 수 있지만 바르지 못한 것은 언젠가는 깨지고 부서지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에 바른 것이 서지 못한다면 이 우주는 존재 가치성이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썩은 나무로는 기둥을 세울 수 없습니다. 모든 학문에도 체계가 있어서 기본부터 차곡차곡 쌓아가야 하는 것처럼
공들여 만든 것만이 수명을 오래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힘겹고 어려울 때일수록 부처님 전에 기도해야 합니다.
부처님 전에 오게 되면 어떤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그 때부터 조정기를 거쳐가며 서서히 나아지게 됩니다.
마음이 맑아져서 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안목과 지견이 길러지게 되어 고비를 잘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불교는 절대로 단판 승부가 아닙니다. 그저 한 생을 마치면 천당과 지옥으로 영원히 나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미래세까지 선한 기운이 쌓이고 쌓여 언젠가는 그 과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밭에 자라는 탐욕의 잡초,허위의 독버섯 같은 것들은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고 정진하지 않으면
뽑아낼 수가 없습니다.독버섯도 제거하고 해충도 잡아내어 밭을 깨끗이 한 다음 진실의 씨를 심어야만 참된 열매를 거두어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정해진 시간에 주어진 문제를 풀어야 하는 시험장과 같은 것입니다.
껍데기의 마음이 아닌 원천 그대로의 마음,부처님의 마음을 지녀야만 제대로 문제를 풀게 됩니다.
기도하는 마음이 아니고서는 올바른 삶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소승의 작은 깨달음에 안주하는 사람은 아직 사상(四相)이 남아 있는 사람입니다.
나라는 분별,남이라는 분별,중생이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별, 나이에 대한 분별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주관과 객관이 아직 완전히 떨어지지 않아 금강경의 근본 도리를 바로 알 수가 없습니다.
소승의 논리로는 금강경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상에 집착하여 자기 고집만 내세우게 되면 이 경전을 읽고도 제대로 이해할 능력을 갖지 못합니다
법문을 듣지도 못하고 감당도 하지 못해 그건 불법이 아니라고 비방만 합니다.
금강경을 수지독송하여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해설할 마음의 자세가 안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아라한과를 증득했다 하더라도 공덕이 수승하지 않으면 중생제도는 불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작은 법을 좋아하는 사람은 마음에 오염된 안경을 끼고 있는 것과 같아서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합니다.
빨간색 안경을 쓰면 세상이 빨갛게 보이고 파란색 안경을 쓰면 파랗게 보이듯이
마음이 오염되면 세상을 바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행하고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는 까닭은 마음의 안경을 올바로 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금강경이 그저 글자로만 보이지만 진리는 빛이기 때문에 허공에서 보면 밝은 광채를 낸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금강경이 있는 곳에는 천인,아수라들이 예를 다해 그 주변을 둘러싸고 꽃과 향을 뿌린다는 것입니다.

금강경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곳은 부처님의 사리보탑이 우뚝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육조 혜능은 "만약 어떤 사람이 입으로 반야를 외우고 마음으로 반야를 행해서 어느 곳에서든지 함이 없고
상이 없는 행을 하면 이 사람이 있는 곳은 부처님의 탑이 있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자신이 부처님을 모신 탑과같아서 부처님의 거룩한 몸과 마음이 깃들게 되는 것입니다.
금강경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은 어디라도 외부에서 날아오는 마장이 침범할 수 없습니다.
마음 가운데 금강경의 가르침을 간직하고 있으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우리 머리 위에
아름다운 꽃과 향이 뿌려지고 있을 것입니다    /옮김



신청곡:아미타불 나의님 / 범능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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