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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의 불교계소식

 조계종 종정 진제 대종사 신축년 동안거 해제 법어 발표
眞虛性宗 2022-02-13 08:31:27, 조회 : 192,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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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진제 법원 대종사는 2월 15일(음력 1.15) 신축년 동안거(冬安居) 해제법어를 발표했다.

진제 스님은 “시간이란 신속(迅速)함이라. 돌이켜보매 인생(人生) 또한 이와 같아서 나태(懶怠)하고 방일(放逸)해서는 청춘(靑春)이 일순간에 노인(老人)이 되어 있음이라.”고 하시며, 운문종(雲門宗)의 개창조(開創祖)인 운문선사(雲門禪師)의 일화를 들어 “시간을 허비(虛費)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화두를 챙기고 의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조계종에 따르면 전국선원수좌회에서 전국 선원의 정진대중 현황을 정리한 신축년 동안거 선사방함록<辛丑年 冬安居 禪社芳啣錄>에 의하면 총림 7곳, 비구선원 62곳, 비구니선원 31곳 등 전국 100개 선원에서 총 1,978명(총림 251명, 비구 1,097명, 비구니 630명)의 대중이 정진했다.

다음은 조계종 종정 진제 대종사 동안서 해제 법문 전문

大韓佛敎曹溪宗 宗正 辛丑年 冬安居 解制法語

[주장자(&#25284;杖子)를 들어 대중(大衆)에게 보이고 이르시기를,]

불기섬호수학심(不起纖毫修學心)하면
무상광중상자재(無相光中常自在)라.
무한낙화수류거(無限落花隨流去)하고
석양춘색만강호(夕陽春色滿江湖)로다.
털끝만큼이라도 닦아 배울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상(相)이 없는 빛 가운데 항상 자재(自在)함이라.
무한한 낙화(落花)는 흐름을 따라가고
해 저문 봄빛이 강호(江湖)에 가득하도다.

금일(今日)은 동안거 해제일(解制日)이라. 산문(山門)을 폐쇄(閉鎖)하고 결제(結制)하여 하루가 모여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어느 듯 구순(九旬)이 지나갔음이라.

이렇듯 시간이란 신속(迅速)함이라. 돌이켜보매 인생(人生) 또한 이와 같아서 나태(懶怠)하고 방일(放逸)해서는 청춘(靑春)이 일순간에 노인(老人)이 되어 있음이라. 해제일이 되었다고 화두(話頭)를 놓아 버리고 정신없이 산천(山川)을 다니느라 시간을 허비(虛費)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화두를 챙기고 의심해야할 것이라.

화두가 있는 이는 각자의 화두를 챙기되,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하고 이 화두를 앉으나 서나, 가나 오나, 자나 깨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 一切時)에 화두를 챙기고 의심하기를 하루에도 천 번 만 번하여 흐르는 시냇물처럼 이어지게 하여야 할 것이라.

중국의 당나라시대는 선가오종(禪家五宗)이 성립하여 선(禪)의 황금시대를 구가(謳歌)하던 때였다.
운문종(雲門宗)의 개창조(開創祖)인 운문선사(雲門禪師)는 동진(童眞)으로 출가하여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신심과 정진으로 일관하였다.

당시는 목주(睦州) 선사의 도명(道名)이 유명했던 때였다. 목주 선사는 조그마한 단칸 토굴을 지어 외인(外人)이 전혀 들여다 볼 수 없게끔 한 길이 넘게 담장을 빙 둘러쌓고, 한쪽에 사립문만 하나 내어놓고, 그 안에서 생활하셨다.

운문 스님이 목주 선사의 법(法)이 장하다는 소문을 듣고서, 내가 그 스님을 친견하고 탁마(琢磨)받아서 기어코 부처님의 심오한 진리의 법을 깨치리라.는 생각으로 목주 선사를 찾아갔다.

토굴 앞에 이르러 사립문을 똑똑 두드리자, 목주 선사께서 문을 반쯤 열고 나오시더니 대뜸 멱살을 잡고 소리를 지르셨다.

“이르고 일러라!”

운문 스님이 답을 못 하고 우물쭈물하자, 목주 선사께서는 서슴없이 한 손으로 밀어 버리셨다. 그러자 운문 스님은 저만큼 가서 나동그라졌고, 목주 선사는 여지없이 문을 닫고 들어가 버리셨다.

도(道)를 깨쳤다면, 이르고 일러라!할 때 답이 척 나오게 되어 있다.

운문 스님이 목주 선사를 친견하고자 수차 참방(參訪)하였지만, 이르라는 데 답을 못 하니 계속 이런 식으로 쫓겨 날뿐, 도무지 안에 들어가서 진법문(眞法門)을 들을 기회가 생기지를 않았다.

그래서 돌아가 용맹정진을 하다가 하루는, 이번에는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목주 도인 토굴 안에 들어가고야 말리라.하는 분심(憤心)이 일어, 다시 목주 선사를 찾아갔다.

사립문을 두드리니, 목주 선사께서 나오셔서 또 멱살을 잡으시고는,

“이르고 일러라!”하셨다.

운문 스님은 이번에도 또 우물쭈물하였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어떻게 해서든지 토굴 안에 들어가리라는 사생결단(死生決斷)의 각오를 했기 때문에, 목주 선사께서 여지없이 밀어내시는데, 밀어내는 그 팔을 잡고 전신의 힘을 다해 늘어지면서 한 발을 사립문 안에 들여 놓았다.

한쪽에서는 밀어내고 한쪽에서는 들어가려고 하는 와중에, 목주 선사께서 그만 사립문을 닫아 버리셨다. 그러니 사립문 안에 들여놓았던 운문 스님의 다리가 여지없이 부러졌다.

“아얏!”

뼈가 부러지는 순간, 운문 스님은 자신이 지른 이 소리에 진리의 눈이 활짝 열렸다.

그래서 운문 스님은 일생을 절름발이로 살면서 불법(佛法)을 선양(宣揚)하였다.

운문 스님이 이렇게 해서 깨닫고는, 당시에 천오백 대중을 거느리고 계시던 설봉(雪峰) 선사의 회상을 찾아갔다.

다리가 불편하다 보니 항상 시자를 데리고 다녔는데 일주문 앞에 당도해서 시자에게 일렀다.

“네가 들어가 조실방 앞에 가서 스님, 어찌해서 항상 목에 철칼을 쓰고 계시면서 벗지 못하십니까?하고 여쭈어라. 그리고 설봉 선사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서 무슨 말씀을 하시더라도, 이것은 네 말이라고 하여라.”

시자가 운문 스님이 시키는 대로 설봉 선사 문전에 이르러서,
스님, 어찌해서 항상 목에 철칼을 쓰고 계시면서 벗지 못하십니까?”
하자, 설봉 선사께서 벼락같이 문을 열고 나오셔서 그 말하는 스님의 멱살을 잡고 다그치셨다. “일러라!”

시자가 대꾸를 못 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자, 설봉 선사께서
“그것은 네 말이 아니다.”하시고는 내던져 버리셨다.

“아닙니다. 그것은 제 말입니다.”

“아 이놈아, 그것은 네 말이 아니다.”

설봉 선사께서 유나(維那)스님을 불러 운집종(雲集鐘)을 치게 하셔서, 천오백 대중이 다 모인 가운데 이르셨다.

“이 놈이 바른 말을 할 때까지 천장에 거꾸로 매달아놓고 패라.”

그리하여 사중의 모든 대중이 큰방에 모여서 시자 스님을 밧줄로 묶어 천장에 거꾸로 매달아놓고는 주장자(&#25284;杖子)로 패려고 하자, 시자가 그 때서야

“제 말이 아닙니다.”하고 실토를 하였다.

“그러면 누구의 말이냐?”

“운문 스님이 시키신 대로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운문 스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느냐?”

“일주문 밖에 계십니다.”

그러자 설봉 선사께서 대중을 향해,

“일천 오백 대중을 지도할 수 있는 안목(眼目)을 갖춘 훌륭한 선지식이 오셨으니, 대중은 일주문 앞에 가서 그 스님을 모시고 오너라.”하고 이르셨다.

성인(聖人)이라야 능히 성인을 안다. 이 도안(道眼)이 열리면 일거일동에 상대방의 살림살이를 다 아는 법이다.

“스님, 어찌해서 항상 목에 철칼을 쓰고 계시면서 벗지 못하십니까?”하는 이 말의 낙처(落處)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야 된다. 설봉 선사께서도 시자가 처음 토한 이 말이 천고(千古)에 빛날 가치 있는 말이라서, 벼락같이 방문을 열고 나오셔서 그 말하는 스님의 멱살을 잡고 “일러라!” 하셨던 것이다.

운문 스님은 여기에서 설봉 선사의 인가(印可)를 받고 제자가 되어 다년간 설봉 선사를 모시고 지냈다.

당시에 또 영수(靈樹)선사라는 도인이 계셔서 수백 명 대중을 거느리고 참선지도를 하셨는데, 20년 동안 수좌(首座)자리를 비워놓고 어느 스님도 추대하지 않으셨다.

“수좌 스님은 언제 오십니까?”

하고 대중이 물으면,

“이제 태어났다. 태어나서 소를 잘 먹이고 있다.”

태어나서 지금 수도(修道)를 잘 하고 있다는 그러한 말씀만 20년간 계속 해오셨다.

그러다 근 20년이 지나서 하루는,

“오늘은 수좌 스님이 올 것이니 대중은 맞을 준비를 하라.”하고 이르셨다.

조실 스님의 명(命)이 떨어지자, 대중이 일시에 온 도량을 청소하고는 가사 장삼을 수(垂)하고 산문(山門) 앞에 나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웬 스님 한 분이 산문을 들어오셨다. 운문 선사께서 제방(諸方)을 행각(行脚)하시다가 영수 선사 회상을 찾아오셨던 것이다.

영수 선사께서, “수좌 자리에 모셔라!”하셔서, 대중들이 운문 선사를 수좌 자리에 모셨다.

그러자 대중 가운데 한 스님이 칼을 가지고 와서 운문 선사의 정수리에 대고는, “이 때를 당해 어떠합니까?”하고 대번에 시험을 하였다.

이에 운문 선사께서 주저하지 않으시고, “피가 범천궁(梵天宮)까지 넘쳤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시험을 던졌던 스님이 칼을 거두고 큰 절을 하였다.

그 후 운문선사의 법이 널리 펴져서 선사의 법제자가 20명에 이르니, 운문종파를 이루게 되고 운문선사의 선법(禪法)이 중국천하를 풍미(風靡)하였다.

세월이 흘러 운문(雲門) 선사께서 세연(世緣)이 다해가니, 제자들을 모아 놓고,

세 가지 법문을 물으셨다.

첫째, 어떠한 것이 부처님의 진리의 도(道)인가?

둘째, 어떠한 것이 제바종(提婆宗)인가?

셋째, 어떠한 것이 진리의 보검인가?

이 물음에 여러 제자들이 훌륭한 답을 했지만,

그 중에서 파릉(巴陵)스님이 답하기를,

어떠한 것이 부처님의 진리의 도(道)인가?

“눈 밝은 사람이 우물에 빠졌습니다.”

어떠한 것이 제바종(提婆宗) 인가?

“은쟁반 위에 흰 눈이 소복이 쌓였습니다.”

제바종이란 당시 인도에는 96종의 외도들이 서로 자기들의 종교가 최고라고 주장하여 혼란스러웠다. 이에 국왕이 모든 외도들을 모아 논쟁을 시킬 때, 부처님 심인법 제14조이신 용수보살의 법을 이은 가나제바 존자가 뛰어난 지혜와 방편으로 96종의 외도들을 모두 조복(調伏) 받았다.

그래서 왕이 오직 가나제바 존자의 법(法)만을 남겨두어 그 종지(宗旨)가 인도전역에서 크게 떨쳤다.

어떠한 것이 진리의 보검인가?

“산호(珊瑚)나무 가지가지에 달이 주렁주렁 매달렸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운문 선사께서 이 답처(答處)를 듣고 매우 기뻐하시며 제자들에게

“내가 열반(涅槃)에 든 후, 너희들은 기일(忌日)에 갖가지 음식을 차리지 말고 항상 이 세 마디 법문을 일러다오.” 라고 하셨다.

요즈음의 선지식들이 당기(當機)에 다다라 주저하게 되는 것은 견처(見處)도, 살림살이도 다 고인(古人)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무변대도(無邊大道)의 불법진리(佛法眞理)를 바로 알려면 고인들의 법문 하나하나를 다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이여!

이 운문삼전어(雲門三轉語) 법문을 안다면 한 산중(山中)의 방장(方丈)이 될 자격이 있음이라.

필경(畢竟)에 진리의 일구(一句)는 어떠한 것이냐?

일곡양곡무인회(一曲兩曲無人會)

무한운산벽층층(無限雲山碧層層)

진리의 곡조를 한곡 두곡 읊어야 아는 이 없고

한없는 구름산만 겹겹이 푸르도다.

〔주장자(&#25284;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고 하좌(下座)하시다]


출처 : 불교닷컴(http://www.bulkyo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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